정경패
1. 개요
'''鄭瓊貝'''
이 문서 한국의 고전소설《구운몽》의 등장인물인 정경패를 소개하는 문서이다. 영양공주(英陽公主)이자, 불심을 어지럽히는 죄를 짓고 인간으로 환생하게 된 팔선녀 중 한 명이다.
《구운몽》의 '''진 히로인'''.
2. 배경
6대를 걸쳐 공후를 지내고 대대로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의 아가씨로, 판타지로 치면 공작영애쯤 된다.
재주와 미모가 너무 뛰어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일컬어지는 미인이다. 취미는 음악 감상으로 음률에 정통해서 어떤 점이 좋고 나쁜지 세세하게 평론할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완벽한 팔방미인이지만 재상가의 처자인 데다가 본인이 예법과 정숙함을 중요시해 집안에서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실제로 그녀의 얼굴을 보기는 하늘에 별 따기라고 한다.
3. 작중 행적
양소유와의 인연은 양소유가 과거를 보러 올라오는 길에 낙양에서 만난 계섬월이 그녀를 그의 배필로 추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낙양에서 어머니의 부탁으로 자기 혼처를 찾아주기로 한 두련사도 정경패가 네 배필로 적당하겠다고 말하자 양소유는 그녀 얼굴을 직접 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
두련사는 양소유가 하도 졸라대서 한가지 꾀를 내는데, 정경패가 음악을 좋아하는 걸 이용하여 양소유가 여장, 음악 잘 하는 여도사인 척 정경패의 집에 들어가는 거였다. 그리고 그 양소유가 처음 본 순간 정신을 못 차질 정도로 엄청난 미모를 과시하며 등장, 양소유가 연주하는 곡의 이름을 척척 맞추고 평론하다가 여덟 번째에 공자가 지은 의란조(猗蘭操)를 듣고 만족해서 일어나려고 한다. 이때 양소유가 한 곡 더 듣고 가라고 붙잡는데, 아홉 번째 곡은 전한의 시인 사마상여가 아내 탁문군을 유혹할 때 탄 봉구황(鳳求凰)[1] 이었고 이 노골적인 선곡에 의심이 들어서 양소유를 자세히 살펴보다가 그가 남자란 걸 깨닫고 화가 나서 들어가버린다.[2]
정경패는 뛰어난 추리력으로 자기를 희롱한 여도사의 정체가 이번에 장원급제한 양소유란 걸 알아내고, 그가 자기 집안에 구혼하자 양소유가 자기를 속인 일을 알리면서 시집가기 싫다고 말한다. 이건 작중 유일하게 히로인이 양소유에게 먼저 구혼받은, 또 유일하게 양소유를 거절하는 장면이다. 정경패가 가진 진히로인으로서의 위상과 츤데레 속성의 대표적인 장면.
하지만 양소유가 마음에 든 아버지 정 사도는 딸의 반항을 쿨하게 씹고 혼인을 결정한다. 가부장적 사회라 아버지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지만, 의외로 한 성격하는 그녀는 양소유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자신의 친자매 같은 시녀 가춘운을 선녀로 변장시켜 양소유를 속여먹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장난을 좋아하는 사촌 정십삼도 끌어들이고 집안 소유의 정자도 무대로 이용하는 듯 주도면밀하게 준비하여 계획은 대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이 뒤에도 혼인 전의 남녀가 만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 건지 양소유와 따로 만나는 장면은 없다. 대신 가춘운이 양소유와 함께하며 생활을 돌봐줘서 양소유도 딱히 아쉬워하진 않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양소유한테 큰 애정이 없는 것 같지만 속지 말자. 이 아가씨는 츤데레다. 후에 태후가 난양공주를 소유한테 시집 보내려고 정경패 집안에 혼인 약조를 깨트리라고 압박을 넣었을 땐 양소유 외의 남자랑은 절대로 결혼 안 하겠다고 머리 깎고 비구니가 되려 한다[3] .
다행히 태후랑 달리 성격 좋은 난양공주 이소화가 나서서 어머니를 막고, 정경패의 인물이 괜찮으면 같이 처가 되고 괜찮다고 설득해서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한다. 신분을 감추고 정경패와 만나 본 이소화는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 언니처럼 따르고 태후 역시 정경패를 보고 양녀로 삼는다. 그리고 영양공주로 봉해져서 난양공주와 함께 양소유와 혼인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태후의 배려로 원래 성씨도 유지할 수 있었다.
태후가 마음을 바꾸긴 했지만 양소유가 세 번이나 자기 명령을 거절한 게 괘씸하니까 조금 골려주려고 했는데, 아직도 첫만남 때 속은 일에 묵은 감정이 남아있던 정경패는 적극 찬성(...). 양소유가 돌아오기 전에 자기가 죽은 것처럼 꾸미고 가짜 유언까지 남긴 다음 영양공주로서 이소화, 진채봉과 함께 시집간다. 세 여자가 돌아가며 첫날밤을 치르고 4일째 되는 날, 양소유가 영양공주를 보고[4] 정경패가 생각난다고 한탄하는 걸 듣더니 영양공주는 삐진 척 자기의 특기인 방콕을 시전해 틀어박히고, 진채봉을 통해 '내가 그래도 공주인데 어디 날 정경패 따위랑 비교하냐? 난 이제 네 얼굴 안 볼 거니까 내 동생이랑 잘 먹고 잘 살아라.'라고 전한다.
정경패를 떠나 보낸 슬픔에 젖어있던 양소유는 당연히 분노하고, 이소화가 자기가 언니를 설득해 보겠다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곧 '언니한테 설득이 안 통하는데 전 언니가 좋으니까 같이 있을게요. 채봉이랑 사세요.'라고 배신을 때린다. 양소유는 빡칠 대로 빡쳐서 이번엔 진채봉을 데리고 같이 검열삭제를 하면서 화를 풀려고 하는데... 이번엔 진채봉이 '부인들 없이 첩이 남편을 독차지 하는 건 예의 아니니까 저도 물러갈게요.'라고 뒷통수를 친다.
멘붕한 양소유는 세 여자를 욕하면서 혼자 쓸쓸하게 밤을 보내게 되고, 잠이 안 와서 밖에 나갔다가 영양공주 방에 불이켜져 있는 걸 보고 안을 엿본다. 거기엔 어느새 가춘운까지 불러서 보드게임을 하고 있는 자기 부인들이 있었고, 가춘운이 실수로 영양공주를 아가씨라고 부른 걸 듣고 진실을 파악한 양소유는 그녀들을 역관광시킬 계획을 세운다. 다음 날 진채봉이 양소유를 깨우러 가보니 양소유가 병에 걸려 미친 척 횡설수설을 늘어놓자 놀란 진채봉이 공주들한테 알린다.
똑똑한 정경패는 '어제까지 멀쩡하던 양반이 갑자기 아픈 게 이상하잖아? 분명 우리를 오게 하려고 저러는 걸꺼야.'라고 단번에 양소유의 의도를 꿰뚫어 보지만, 소식을 듣고 놀란 태후가 두 공주한테 얼른 가보라고 잔소리를 해서 일단 마지못해 이소화를 진채봉과 같이 보낸다. 양소유는 이번엔 '어제 꿈에 경패가 나왔어. 나를 원망하고 있더라. 경패가 자꾸 나를 불러. 나 이제 곧 죽을 거야...'라고 귀신에 홀린 연기를 해서 이소화까지 속여넘긴다. 이소화까지 정말 심한 거 같다고 말하니 결국 정경패도 오게 되었고, 곧 죽으려하는 양소유의 꼴을 보고 직접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이게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정경패가 양소유에게 데레데레하는 장면이다.
양소유가 병에 걸린 척 연기하는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또 속았다는 걸 깨달은 정경패는 다시 츤츤 모드로 돌변, 양소유가 '요즘 여자들이 작당해서 남편을 속이는 나쁜 풍속이 있는데 내가 그걸 고치려고 하다보니 병이 났네 ㅋㅋ'하고 우쭐해 할 때 정경패는 이 모든 것은 태후마마의 의도라고 대꾸하는데 이를 라노벨스럽게 표현하면 이렇다.
'흐, 흥! 난 잘못 없어. 억울하면 태후마마한테 가서 따지시든가. 아무튼 몰라 바보!'
아무튼 이렇게 티격태격한 끝에 의붓동생, 시녀와 함께 결혼해서 잘 살게 된다.
4. 기타
고전소설 히로인임에도 매우 공략이 어려운 츤데레, 그것도 츤 99% 데레 1%의 히로인이다. 작중에서 데레를 보여준 게 단 한번뿐이다(...)
어째서인지 여자들한테도 굉장히 인기가 많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가춘운은 정경패랑 헤어지기 싫어서 같이 시집왔고, 이소화는 그녀를 만나더니 '당신이라면 내 언니가 되어도 좋아요.' 여동생이 되버린다.
탐정인가 싶을 정도로 뛰어난 추리력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여장한 양소유의 정체를 가장 먼저 추리해냈고, 이소화가 변장해서 나타났을 때 가춘운은 그녀가 혹시 행방불명된 진채봉이 아닌가 헛다리를 짚지만 정경패는 정확히 난양공주라고 예상한다.
[1] 수컷 봉황이 암컷 봉황에게 구혼하다.[2] 이때 속은 게 정말 자존심이 상했는지 정경패는 나중에 기회만 생기면 이 일로 양소유를 깐다.[3] 근데 양소유는 이 사실을 본인에게 들은 게 아니라 가춘운한테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양소유한테 솔직하게 말 안 하는 거 보면 정말 중증 츤데레...[4] 첫날밤까지 치르고도 그녀를 구분 못하는 양소유를 둔감하다고 깔 수 있겠지만, 애초에 양소유는 이때까지 정경패가 내외해서 그녀 얼굴을 제대로 본 건 처음 만났을 때 잠깐뿐이었다. 게다가 양소유는 회군 중에 꿈을 꾸었는데 하늘로 올라가서 선녀가 된 정경패를 만나서 남은 사람에게 잘 대해주라는 말을 듣는 꿈이었다. 이 꿈을 꾸고 정경패가 죽었겠거니 짐작하고 있었는데 진짜로 돌아와보니 (사실은 거짓이지만) 기정사실이 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