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전

 


<colbgcolor=#2e8b57><colcolor=#ece5b6> '''남송의 권신
丁大全 | 정대전
'''

'''이름'''
정대전(丁大全)
''''''
자만(子萬)
'''생몰'''
? ~ 1263년
'''주군'''
송이종
'''국적'''
남송(南宋)
1. 소개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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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丁大全
(? ~ 1263년)
중국 남송시대의 정치가이자, 간신, 권신. 자는 자만(子萬). 사미원 이후 가사도와 더불어 송이종 시기 양대 권신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2. 생애


정대전은 남송 진강부(鎭江府) 출신이다. 가희 2년(1238년)에 진사로 급제하여 소흥부 소산현의 현위를 지냈으며, 이종의 환관이었던 노윤승(盧允昇)과 동송신(董宋臣)에게 아첨하여 탐욕을 부리고 중앙 정계로 진출하였다. 정대전은 대리사직과 요주 통판을 지냈으며, 중앙에서 태부사부, 우사간, 전중시어사를 역임했다.
정대전은 보우 4년(1256년)에 남송의 재상이었던 동괴를 탄핵하여 그를 내쫓고, 우간의대부, 단명전 학사, 첨서추밀원사를 지냈으며, 단양군후로 책봉되고 동지추밀원사가 되었으며, 1258년에는 참지정사, 우승상 겸 추밀사가 되어 조정의 요직을 장악했다. 이렇게 정대전은 점차 권세가 커져갔고, 자신에 반대하는 이들을 쫓아냈다.
정대전이 내부에서 요직을 장악하던 당시 남송 주변의 상황은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몽골이 급속도로 세력을 확대하면서, 남송은 몽골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1259년에 몽골군이 악주를 공격한 상황에서 변경의 급보가 조정으로 속속 전해졌는데, 정대전은 이를 숨기고 조정에 보고하지 않았다. 이미 남송의 전황이 점차 불리한 상황에서, 정대전은 전술한 이유로 인해 재상에서 파직되고, 관문전 대학사, 판진강부(判鎮江府)로 강등되었다.
정대전이 재상에서 파직된 이후, 중서사인 홍근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며 정대전의 처벌을 요구한다.

정대전은 음험한 성격과 도둑질로 흉악한 이들을 끌어들이고 충량한 이들을 재앙에 빠지게 했으며, 언로를 막고 조정의 기강을 흐리고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청컨대 정대전을 관직에서 쫓아내고 멀리 귀양보내, 국법을 펼치고 천하에 사죄하셔야 합니다.

감찰어사 요호신 또한 정대전의 4가지 죄를 논하였는데 그 죄상은 다음과 같았다.

1. 언로를 막았다.(絕言路)

2. 인재를 무너뜨렸다.(壞人才)

3. 민력을 고갈시켰다.(竭民力)

4. 변방의 수비를 그르쳤다.(誤邊防)

이렇게 정대전에 대한 처벌여론이 거세지자, 정대전은 결국 삭탈관직을 당하고 귀양을 가게 되었다. 정대전은 1263년에 해도로 가는 귀양길 도중에 호송하던 관리가 배에서 밀쳤고, 결국 바다에 빠져 익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