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군

 

1. 主君
2. 主軍
3. 촉한의 인물
3.1. 창작물에서
4. 백제의 왕족


1. 主君


나라의 우두머리를 호칭할 때 사용되었던 말로 사극에서 주로 사용례를 볼 수 있다.
현대 한국에서는 별로 안 쓰일 것 같지만, 정계에서 간간이 쓰인다. 거물 정치가[1]의 가신이나 측근들이 자신이 모셔온 해당 정치가를 가리켜 '주군'이라고 하는 식이다. "주군을 지키지 못했다" 든가 "주군을 뵐 낯이 없다"는 식으로 사극의 용법과 똑 같다.

2. 主軍


주력이 되는 부대를 뜻한다.

3. 촉한의 인물



周羣
(? ~ ?)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자는 중직(仲直).
파서군 낭중현 사람으로 아버지 주서로부터 학문을 배워 자연현상 등으로부터 미래의 징후를 탐구하는 학문에 전념해 정원 안에 작은 누각을 만들었으며, 집이 풍요로워 노비들이 많이 있었기에 노비들에게 교대로 누각 위로 올라가 하늘의 재해를 관찰하도록 했다. 기후의 미미한 변화가 나타나기만 해도 즉시 주군에게 알렸고 주군은 누각 위로 올라가 이를 새벽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관찰해 징후의 변화가 있으면 보지 못한 적이 없었으며, 이 때문에 그가 말한 것은 대부분 적중했고 유장의 초빙을 받아 사우종사로 임명되었다.
유비가 촉군을 평정하자 유림교위로 임명되었고 유비와 조조가 한중을 두고 다툴 때 유비가 묻자 그 땅을 얻을 수 있어도 백성은 얻지 못한다고 했으며, 일부의 군대만 출정시키면 불리해 경계하고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유비는 땅은 얻었어도 백성들은 얻지 못했고 오란, 뇌동 등을 파견해 무도군으로 들어가게 했다가 전멸해 돌아오지 못했으며, 결국 주군의 말처럼 되자 주군은 무재로 천거되었다.
주군이 죽자 아들인 주거가 그의 기술을 다소 전했다고 한다.

3.1. 창작물에서


[image]
삼국지 14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4부터 등장하고 능력치는 통솔 15, 무력 18, 지력 67, 정치 52, 매력 61이며 일러스트는 손으로 길게 기른 턱수염을 만지고 있다. 개성은 점술, 주의는 예교, 정책은 태학 Lv 2, 진형은 정란, 전법은 없고 친애무장과 혐오무장 역시 모두 없다. 생년은 147년, 몰년은 219년까지 되어있다.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42, 무용 29, 지모 59, 정무 61, 인사 63, 외교 69의 능력치로 168년생으로 나온다.

4. 백제의 왕족


酒君
백제의 왕족. 한국 측 기록이 없고 일본 측 기록에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353년 일본으로 도왜했다고 한다.[2] 도착한 후에 탈출해 '석천금직후여사'라는 왜인집에 숨어있다가 천황의 사면을 받고 왜국에 체류하게 된다. 이후 355년 기록에서 매사냥을 전파했다는 것으로 나온 후 행적은 불명이다.
일본서기 초기 기록의 신빙성이 떨어진 점, 기년이 이주갑인상 혹은 그와 맞지 않는 후대 일로 보이는 점 때문에 주군이 정확히 언제 활동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주갑인상(+120년)을 적용해 353년→473년에 도왜했으며 개로왕 대의 인물로 보는 설이 있다. 다만 문제는 이주갑인상을 해도 시기상 온전히 들이맞지 않는데다가 개로왕 대의 인물로 보는 설은 주군보다는 백제의 지방행정 정비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동시대에 존재한 카츠라기노 소츠히코의 활동 시점을 근거로 1갑자만 인하한 413년경 도왜한 것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물론 정말 개로왕 시기의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일본 매사냥 협회에서는 주군을 일본 매 사냥의 원조로 추앙하고 있다고 한다.
신찬성씨록에서 몇몇 백제계 성씨의 시조로 기록된 주왕(酒王)과 동일인이 아니냐는 설이 있다.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은게, 신찬성씨록에 등장하는 인물 중 실제 왕이 아녔던 사람에게도 왕(王) 호칭이 붙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가문은 문주왕과 주왕(酒王)을 동시에 참배하기 때문에, 주군이 문주왕의 조상 중 한 명이 아니었나 추정된다.

[1] 보통은 대통령급[2] 정상적인 파견이 아니라 일본 사신한테 '''무례'''하게 행동했다는 이유로 쇠사슬에 묶인채 일본으로 끌려갔다고 한다...고 하는데 이건 일본서기 특성상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전지왕, 순타태자, 아좌태자 등이 일본에 체류했던 점을 생각하면 태자 또는 그에 버금가는 지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