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 안씨(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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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의 등장인물. 김민주 배역. 똑같이 여말선초를 다룬 사극인 용의 눈물에서는 왕실 큰어른이라는 점으로 인해 실제보다도 훨씬 나이가 든 인물로 나왔지만[1] 본작에서는 고려가 멸망할 시기에 나이가 많아도 40대 정도일 거라는 추측에 맞춘 외모로 나온다.[2] 극중에서나 실제 역사에서나 그야말로 '''최고 안습 캐릭터''' . 후술하겠지만 고려 왕실 사람이 됐으면서도 그 왕을 세번이나 폐하라는 교지를 내렸고 결국 완전히 다른 성씨의 왕조를 들어오게 결정하는[3] 비극적인 인물이다.
공민왕의 제4비로 자제위를 시켜 겁탈하려할 때 자결을 시도하며 저항했다. 공민왕이 암살당한 후에는 주로 명덕태후의 곁을 지키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우왕이 즉위했을 때 정비가 젊고 아름다워서 정비의 처소에 자주 드나들며 자신의 후궁 중엔 정비만한 사람이 없다고 말하곤 해서 안 좋은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이 기록을 반영하였는지 16화에서 우왕이 정비의 처소에서 술을 마시면서 '후궁에 어머니 같은 미인이 없다'고 정비를 희롱하자, 정비가 진심으로 화가 나서 정색하며 우왕을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남편 공민왕이 자제위를 시켜 자신을 겁탈하려 했던 아픈 기억이 있는 정비 입장에선 의붓아들까지 이러니 속이 탈 노릇. 게다가 우왕이 하는 짓을 보면 엄연히 자신의 의붓어머니인 정비를 대하는 태도로서 하나같이 무개념한 짓이니 좋게 볼 수가 없었다. 급기야 안씨가 비구니가 되겠다고까지 하자 이인임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최영과 의논해 안씨를 대비로 올려 왕실 최고 어른으로서 자리를 확고하게 만들어준다. 이후 요동정벌이 준비되는 25화에서는 근비 및 훗날의 창왕과 함께 한양으로 피신한다.
29회에서는 회군파 장수들의 강압에 못 이겨 정창군 왕요를 보위에 오르는 교지를 내리려 하지만, 이색과 조민수가 세자를 세워야 마땅하다고 반대 의견을 표하자 흔들린다.[4] 게다가 세자와 함께 정전으로 난입한 근비가 읍소하자 이성계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여, 다시 중론을 모아야 한다는 우군 장수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성계에게서 지금 결정하시라는 대답을 받아낸다.
34회에서는 정몽주가 정도전 등이 이성계에게로의 선위를 노리고 있다면서 이성계를 설득할 테니 자신을 믿어달라고 하여 그 말을 믿지만, 그날 저녁 조준과 함께 폐위 교지를 받으러 온 정몽주에게 설득하겠다 했으면서 폐위에 폐가입진을 내세우느냐 노성을 터트린다. 그러나 결국 힘이 없어서 왕가의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정몽주에게 동의하고 만 듯 싶다.
37화에서는 강씨에게 정도전의 석방을 요구받으나, 안씨는 비록 형식적이었다고 하나 자기 손으로 두 명의 왕을 폐위시켰다는 점에서 마음에 큰 상처를 얻은 듯[5] 허께비와 같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자신은 이미 속세를 버렸다는 말로 강씨의 요구를 거부한다.
40화에서는 공양왕이 이제 사직을 지킬 사람은 자신과 정비 밖에 없다며 마음을 굳게 먹어야한다고 말하자 "해가 졌는데 밤이 되는 것을 어찌 막겠습니까."라고 대답하며 절망적인 심정을 드러냈다. 결국 대신들의 압박을 받아 공양왕의 폐위 교지를 내렸으며, 이후 의화 궁주로 강등되어 술로 여생을 보내다가 1428년, 세종 10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내레이션이 나오며 극에서 완전히 하차한다.
우스개로 최후의 승리자 소리가 나온다. 강압에 의해 그런 것이지만 어쨌든 자기 손으로 임금을 3명이나 갈아버렸고 고려를 조선으로 개국하게 승인하여 500년된 국가도 갈아버렸다. 자신을 겁박해 폐위를 종용하러 왔던 사람들이 모조리 죽고 난 뒤까지 혼자 살아남았다. 조선에서 살면서 또 태조, 정종, 태종 임금 3명이 죽는 것을 지켜보며 세종 때까지 살아남으니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 놓고보면 우스개로 숨어있는 최후의 승자라 할 만 하다. 공민왕부터 세종까지 8명의 임금을 보았다. 어찌보면 당대(여말선초)의 굵직한 일들을 다 체감한 역사의 산증인격 인물.
그녀는 극중에서 조정을 차지한 이성계의 사람들, 심지어는 최후의 승리자들로 평가받는 하륜이나 권근 같은 이들보다도 더 오래 살았다.[6] 조선왕조실록에도 그녀에게 술을 내려준 기록이 남아있다. 기록상에는 그녀에게 보낸 술을 단순한 술이 아닌 '약주'라고 적고 있는데, 실제론 인식처럼 술독에 빠져 산 것이 아니라 술을 적당히 복용해서 건강을 유지했었을 가능성도 있다.[7] 역사에선 그래도 그녀의 장례는 왕비의 예로 치러 주었다.
오래 산 것과는 별개로 개인적인 인생사는 꽤 비참한 편. 젊은 나이에 남편(공민왕)과 남편의 자식(우왕)에게 시달리고 이후 조선을 건국하는 반역세력에게도 강압당하는 처지가 되었으며 고려 망국 이후엔 신분까지 강등되었다. 그래도 그 이후엔 술에 빠져살았다는 기록 외엔 나쁜 일이 썩 두드러지지 않는 삶을 살았고 왕비의 예로 치러진 장례까지 받았으니 완전 시궁창 인생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1. 개요
정도전의 등장인물. 김민주 배역. 똑같이 여말선초를 다룬 사극인 용의 눈물에서는 왕실 큰어른이라는 점으로 인해 실제보다도 훨씬 나이가 든 인물로 나왔지만[1] 본작에서는 고려가 멸망할 시기에 나이가 많아도 40대 정도일 거라는 추측에 맞춘 외모로 나온다.[2] 극중에서나 실제 역사에서나 그야말로 '''최고 안습 캐릭터''' . 후술하겠지만 고려 왕실 사람이 됐으면서도 그 왕을 세번이나 폐하라는 교지를 내렸고 결국 완전히 다른 성씨의 왕조를 들어오게 결정하는[3] 비극적인 인물이다.
2. 작중 행적
공민왕의 제4비로 자제위를 시켜 겁탈하려할 때 자결을 시도하며 저항했다. 공민왕이 암살당한 후에는 주로 명덕태후의 곁을 지키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우왕이 즉위했을 때 정비가 젊고 아름다워서 정비의 처소에 자주 드나들며 자신의 후궁 중엔 정비만한 사람이 없다고 말하곤 해서 안 좋은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이 기록을 반영하였는지 16화에서 우왕이 정비의 처소에서 술을 마시면서 '후궁에 어머니 같은 미인이 없다'고 정비를 희롱하자, 정비가 진심으로 화가 나서 정색하며 우왕을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남편 공민왕이 자제위를 시켜 자신을 겁탈하려 했던 아픈 기억이 있는 정비 입장에선 의붓아들까지 이러니 속이 탈 노릇. 게다가 우왕이 하는 짓을 보면 엄연히 자신의 의붓어머니인 정비를 대하는 태도로서 하나같이 무개념한 짓이니 좋게 볼 수가 없었다. 급기야 안씨가 비구니가 되겠다고까지 하자 이인임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최영과 의논해 안씨를 대비로 올려 왕실 최고 어른으로서 자리를 확고하게 만들어준다. 이후 요동정벌이 준비되는 25화에서는 근비 및 훗날의 창왕과 함께 한양으로 피신한다.
29회에서는 회군파 장수들의 강압에 못 이겨 정창군 왕요를 보위에 오르는 교지를 내리려 하지만, 이색과 조민수가 세자를 세워야 마땅하다고 반대 의견을 표하자 흔들린다.[4] 게다가 세자와 함께 정전으로 난입한 근비가 읍소하자 이성계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여, 다시 중론을 모아야 한다는 우군 장수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성계에게서 지금 결정하시라는 대답을 받아낸다.
34회에서는 정몽주가 정도전 등이 이성계에게로의 선위를 노리고 있다면서 이성계를 설득할 테니 자신을 믿어달라고 하여 그 말을 믿지만, 그날 저녁 조준과 함께 폐위 교지를 받으러 온 정몽주에게 설득하겠다 했으면서 폐위에 폐가입진을 내세우느냐 노성을 터트린다. 그러나 결국 힘이 없어서 왕가의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정몽주에게 동의하고 만 듯 싶다.
37화에서는 강씨에게 정도전의 석방을 요구받으나, 안씨는 비록 형식적이었다고 하나 자기 손으로 두 명의 왕을 폐위시켰다는 점에서 마음에 큰 상처를 얻은 듯[5] 허께비와 같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자신은 이미 속세를 버렸다는 말로 강씨의 요구를 거부한다.
40화에서는 공양왕이 이제 사직을 지킬 사람은 자신과 정비 밖에 없다며 마음을 굳게 먹어야한다고 말하자 "해가 졌는데 밤이 되는 것을 어찌 막겠습니까."라고 대답하며 절망적인 심정을 드러냈다. 결국 대신들의 압박을 받아 공양왕의 폐위 교지를 내렸으며, 이후 의화 궁주로 강등되어 술로 여생을 보내다가 1428년, 세종 10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내레이션이 나오며 극에서 완전히 하차한다.
3. 기타
우스개로 최후의 승리자 소리가 나온다. 강압에 의해 그런 것이지만 어쨌든 자기 손으로 임금을 3명이나 갈아버렸고 고려를 조선으로 개국하게 승인하여 500년된 국가도 갈아버렸다. 자신을 겁박해 폐위를 종용하러 왔던 사람들이 모조리 죽고 난 뒤까지 혼자 살아남았다. 조선에서 살면서 또 태조, 정종, 태종 임금 3명이 죽는 것을 지켜보며 세종 때까지 살아남으니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 놓고보면 우스개로 숨어있는 최후의 승자라 할 만 하다. 공민왕부터 세종까지 8명의 임금을 보았다. 어찌보면 당대(여말선초)의 굵직한 일들을 다 체감한 역사의 산증인격 인물.
그녀는 극중에서 조정을 차지한 이성계의 사람들, 심지어는 최후의 승리자들로 평가받는 하륜이나 권근 같은 이들보다도 더 오래 살았다.[6] 조선왕조실록에도 그녀에게 술을 내려준 기록이 남아있다. 기록상에는 그녀에게 보낸 술을 단순한 술이 아닌 '약주'라고 적고 있는데, 실제론 인식처럼 술독에 빠져 산 것이 아니라 술을 적당히 복용해서 건강을 유지했었을 가능성도 있다.[7] 역사에선 그래도 그녀의 장례는 왕비의 예로 치러 주었다.
오래 산 것과는 별개로 개인적인 인생사는 꽤 비참한 편. 젊은 나이에 남편(공민왕)과 남편의 자식(우왕)에게 시달리고 이후 조선을 건국하는 반역세력에게도 강압당하는 처지가 되었으며 고려 망국 이후엔 신분까지 강등되었다. 그래도 그 이후엔 술에 빠져살았다는 기록 외엔 나쁜 일이 썩 두드러지지 않는 삶을 살았고 왕비의 예로 치러진 장례까지 받았으니 완전 시궁창 인생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1] 40대여야할 저 시기에 무려 80대의 노령 배우가 나왔다. 이 정도로 나오려면 사실상 세종 시기에서나 정비가 등장했어야 했다.[2] 일단 공민왕 생존 시점부터 등장하고 아들뻘인 우왕조차도 미모를 탐해 희롱한 적이 있다는 장면이 등장하는만큼 젊게 나와야 더 어색하지 않긴 하다.[3] 물론 본의가 아닌 주변의 강압 때문이지만.[4] 이때 표정을 보면 머뭇거리면서도 내심 이색과 조민수의 주청이 달가운 기색이다.[5] 더불어 결국 둘 다 죽었다는 사실도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결국 한번 더 폐위를 하게 된다.[6] 향년이 77~82세 정도로 추정되는데 5~60만 넘겨도 장수한 걸로 취급받던 저 시기를 고려해보면 진짜 오래 산 거 맞다. 그리고 현대 기준으로도 저 나이는 충분히 노인이다.[7] 날마다 약주 한 병씩 보냈다는데 매일 한 병씩 마셨다면 말술까지는 아니더라도 적게 마신 편은 아니다. 약주라니 알콜 도수가 낮았다면 이해가 가는 정도의 양. 이를 볼 때 비탄에 빠져 산 거랑 별개로 건강 관리는 나름 잘 한 걸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