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왕(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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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의 등장인물. 배역은 남성진. 이름은 왕요. 왕이 되기전 정창군으로 호칭. 우왕이 폐위되자 회군파에서 이성계와의 친척이면서 덕망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왕위에 올릴 후보로 처음 언급되었다.
무능한데다 똘끼까지 충만한 우왕,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창왕과는 달리, 겉으로는 찌질하고 과장되었지만 실제론 고려를 지키고 살아남고자 암약하며 포은 정몽주와 밀회와 협력을 거듭하는 공양왕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호평을 받고 있다. 심지어 38화에서는 숙위병을 벽란도로 보내어 낙마한 이성계를 쳐야한다고 정몽주에게 의견을 강하게 개진했을 정도.
34화에서 왕위에 즉위한다. 허수아비 노릇하다 왕위를 뺏기고 목숨마저 날아갈 일임을 알아차려 불안해하다 옥새를 들고 온 배극렴을 피해 담을 넘어 도망치려는 시도도 했지만 결국 왕위에 오르고 말았다. 이 장면도 꽤 의미심장한 부분으로 담장 안쪽에는 배극렴이 가져온 '''고려'''국새가, 담장 밖에는 후일 '''조선'''개국공신이 될 이지란이 있는데 공양왕은 안도 밖도 아닌 그 '''경계'''인 담장위에서 어찌하질 못하고 있다. 흡사 공양왕의 역사적 입지를 풍자하는 듯한 장면이다. 한숨을 푹푹 내쉬고 하기싫은 티를 팍팍 내는 모습에 월요일에 야근하는 직장인 같다는 비유까지 나왔다(...).
왕위에 오른 후에는 이색이 찾아오자 정사는 수시중이 다 하니 자긴 때마다 옥새만 찍으면 된다고 하고, 이런 모습에 이색이 나라의 주인은 왕이라고 간하자 누가 들으면 어쩌냐고 정색하는 모습을 보인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성계에 대해서 아부하듯 좋은 말만 하며 설설 기고, 매일 궁녀들과 놀기만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성계 일파에게 겁을 먹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이는 암군인 척 연기를 한 것. 궁녀들과 놀던 중 정몽주가 찾아오자 "혼날 거 같으니 물러나 있거라"라는 핑계로 주변을 물리는데, 공양왕이 거짓 연기를 하는 것인지를 모르는 정몽주는 왕으로서 위엄을 보이라고 간언한다. 이에 공양왕은 얼굴색을 바꾸며, 허수아비 노릇 하라고 앉혔는데 강하게 나오면 저들이 어떻게 나오겠냐며, 정몽주가 폐가입진을 내세운 게 고려를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임을 잘 안다면서 이어서 위에 나온 명대사를 말하여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그리고 정몽주를 통해 이색의 정계 복귀를 도모하면서 반격의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정몽주에게 자신의 칙서를 가리켜 '''이것은 자신의 뜻이 아닌 정몽주의 뜻이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한다. 자신은 흑막으로서 정몽주를 후원하여 이성계와 싸우겠다는 소리다. 사극 대조영에서 나온 안동도호부 치하의 보장왕과 컨셉이 비슷하다.
정도전 일파가 무언가 간청을 할 때마다 굉장히 귀찮아 하며, 수시중에게 가서 간청을 하라는 등 온갖 이유를 대며 간청을 거절해댄다. 이는 자신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무능한 인물인 것처럼 거짓 연기를 하면서, 은근히 정도전 일파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36회에선 정도전 좌천에 반대하다가 과하게 말한 윤소종을 하옥시킨다. 이성계가 향처 한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화령으로 떠나기 전 집으로 찾아와 전의를 보내겠다고 하고, 시중이 없으면 어떻게 정사를 돌보냐고 한탄하는데, 보기에는 신하 앞에 쩔쩔매는 힘없는 국왕이지만,[2] 이성계가 수시중 정몽주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하자 "그럼 수시중을 시중대하듯 하겠습니다."라 말한 것을 보면 이성계가 개경에 없는 동안 정몽주에게 확실히 힘을 실어주기 위한 명분을 만들려고 한 듯.
37회에서 정몽주가 정도전의 출신을 문제삼아 그를 국문하자 이를 취소시켜 달라고 찾아온 정도전파의 사대부들에게 '''예로부터 천한 신분의 자가 과분한 직위에 오르면 못하는 짓이 없었다'''라고 말하며 묵살한다. 이때 윤소종 등과의 논쟁을 보면 이 사람이 결코 바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대담 도중 공양왕 본인도 자기 가면이 너무 많이 벗겨졌다는 사실을 알고 논쟁을 급히 정리했다. 이 소식을 듣고 도성에 돌아온 이성계와 대화하던 중 이성계가 사직을 청하자 극구 만류하는데, 이때 이성계가 진작에 자신이 겁쟁이의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공포를 느낀다. 정몽주를 통하여 이성계에게 불윤비답을 내리지만 이성계는 듣지 않고, 며칠 뒤 이성계가 낙마하여 정신을 잃자 포은에게 이성계 일파를 군사를 동원해 몰아내자고 권한다. 38화에선 이방원 역시 공양왕이 정몽주를 앞세워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그를 '수시중의 당여'라며 조롱한다.
39화에서는 의식불명이던 이성계가 깨어나 정도전과 그의 당여들의 사면을 요구하기 시작하자 정몽주가 이성계와 담판을 지으러 가려 하고 공양왕이 잘못하면 경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강하게 만류한다. 왕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든든한 아군을 적의 소굴에서 잃는 격이니, 하지만 정몽주가 괜찮다, 꼭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겠다는 말을 하고 기어이 이성계 문병을 간다. 정몽주는 이 일로 죽지는 않았지만 이후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지시를 받은 조영규에게 참살을 당하여 공양왕의 가장 든든한 아군이자 고려 최후의 버팀목도 이렇게 쓰러진다.
40화에서는 정몽주의 죽음을 전해듣고 흐느끼면서도 사직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도당의 중론이 폐위로 결정되자 왕조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이성계를 직접 찾아가 대문 앞에서 군신간 동맹을 제의한다. 이성계가 결국 나오지 않았음에도 버티고 있으면서 애처로운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태후 안씨가 신하들의 압박을 버티다 못해 폐위 교지를 내리고, 교지를 갖고 온 남은과 병사에 의해 결국 폐위돼버리고 만다. 이에 공양왕은 완전히 좌절하여 기력을 잃어버리고 끌려가게 된다. 끌려가기 직전에 태후께서 일을 망쳤다고 한탄했는데, 시간을 끌면서 압박하다보면 이성계가 군신 맹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듯.[3]
그 후에는 그의 일생과 1394년에 사사되기까지의[4] 행적이 나레이션으로 처리된 것으로 볼 때 용의 눈물에서 연출됐던 개성 왕씨의 멸족이나 공양왕의 최후는 스킵된 것으로 보인다. 안습. 사실 남은 분량이 10회에 불과하고 정도전과 이방원의 대립 등을 그려내기에도 빠듯하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하며 왕씨들을 물에 빠뜨려 죽였다는 내용 또한 시기적으로 드라마에 담기 부적절하다.
정도전 이전에 사극들에서는 말 그대로 호구스러운 모습만 보이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면 여기서는 멸망 직전 국가의 허수아비 왕으로서 이용당하다 죽을 것을 알고 겉으로는 이성계 일파의 의도대로 그 모습을 연기하면서 속으로는 칼을 갈고 막판 뒤집기를 위해 필사적인 모습을 보여 역대 사극의 공양왕 중 가장 인상적인 공양왕이 됐다.
'''"허수아비 노릇이나 하라고 세워놓은 왕인데 저들이 과인을 그냥 놔둘 거 같소이까. 왕씨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과인은 바보가 될 것이오. 지키는 것은 그대가 하시오."'''
'''"결국 이리 되고 말았구나... 500년 왕씨의 사직이 이 왕요의 대에서 결단이 나다니. 내 이래서 왕이 되려 하지 않았거늘.[1]
내 이 죄를 어찌 갚을 것이며, 죽어서 열성조들의 용안을 어찌 뵙는단 말인가? 이놈의 팔자 한번, 고약하지 않은가?"'''
1. 개요
정도전의 등장인물. 배역은 남성진. 이름은 왕요. 왕이 되기전 정창군으로 호칭. 우왕이 폐위되자 회군파에서 이성계와의 친척이면서 덕망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왕위에 올릴 후보로 처음 언급되었다.
무능한데다 똘끼까지 충만한 우왕,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창왕과는 달리, 겉으로는 찌질하고 과장되었지만 실제론 고려를 지키고 살아남고자 암약하며 포은 정몽주와 밀회와 협력을 거듭하는 공양왕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호평을 받고 있다. 심지어 38화에서는 숙위병을 벽란도로 보내어 낙마한 이성계를 쳐야한다고 정몽주에게 의견을 강하게 개진했을 정도.
2. 작중 행적
34화에서 왕위에 즉위한다. 허수아비 노릇하다 왕위를 뺏기고 목숨마저 날아갈 일임을 알아차려 불안해하다 옥새를 들고 온 배극렴을 피해 담을 넘어 도망치려는 시도도 했지만 결국 왕위에 오르고 말았다. 이 장면도 꽤 의미심장한 부분으로 담장 안쪽에는 배극렴이 가져온 '''고려'''국새가, 담장 밖에는 후일 '''조선'''개국공신이 될 이지란이 있는데 공양왕은 안도 밖도 아닌 그 '''경계'''인 담장위에서 어찌하질 못하고 있다. 흡사 공양왕의 역사적 입지를 풍자하는 듯한 장면이다. 한숨을 푹푹 내쉬고 하기싫은 티를 팍팍 내는 모습에 월요일에 야근하는 직장인 같다는 비유까지 나왔다(...).
왕위에 오른 후에는 이색이 찾아오자 정사는 수시중이 다 하니 자긴 때마다 옥새만 찍으면 된다고 하고, 이런 모습에 이색이 나라의 주인은 왕이라고 간하자 누가 들으면 어쩌냐고 정색하는 모습을 보인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성계에 대해서 아부하듯 좋은 말만 하며 설설 기고, 매일 궁녀들과 놀기만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성계 일파에게 겁을 먹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이는 암군인 척 연기를 한 것. 궁녀들과 놀던 중 정몽주가 찾아오자 "혼날 거 같으니 물러나 있거라"라는 핑계로 주변을 물리는데, 공양왕이 거짓 연기를 하는 것인지를 모르는 정몽주는 왕으로서 위엄을 보이라고 간언한다. 이에 공양왕은 얼굴색을 바꾸며, 허수아비 노릇 하라고 앉혔는데 강하게 나오면 저들이 어떻게 나오겠냐며, 정몽주가 폐가입진을 내세운 게 고려를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임을 잘 안다면서 이어서 위에 나온 명대사를 말하여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그리고 정몽주를 통해 이색의 정계 복귀를 도모하면서 반격의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정몽주에게 자신의 칙서를 가리켜 '''이것은 자신의 뜻이 아닌 정몽주의 뜻이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한다. 자신은 흑막으로서 정몽주를 후원하여 이성계와 싸우겠다는 소리다. 사극 대조영에서 나온 안동도호부 치하의 보장왕과 컨셉이 비슷하다.
정도전 일파가 무언가 간청을 할 때마다 굉장히 귀찮아 하며, 수시중에게 가서 간청을 하라는 등 온갖 이유를 대며 간청을 거절해댄다. 이는 자신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무능한 인물인 것처럼 거짓 연기를 하면서, 은근히 정도전 일파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36회에선 정도전 좌천에 반대하다가 과하게 말한 윤소종을 하옥시킨다. 이성계가 향처 한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화령으로 떠나기 전 집으로 찾아와 전의를 보내겠다고 하고, 시중이 없으면 어떻게 정사를 돌보냐고 한탄하는데, 보기에는 신하 앞에 쩔쩔매는 힘없는 국왕이지만,[2] 이성계가 수시중 정몽주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하자 "그럼 수시중을 시중대하듯 하겠습니다."라 말한 것을 보면 이성계가 개경에 없는 동안 정몽주에게 확실히 힘을 실어주기 위한 명분을 만들려고 한 듯.
37회에서 정몽주가 정도전의 출신을 문제삼아 그를 국문하자 이를 취소시켜 달라고 찾아온 정도전파의 사대부들에게 '''예로부터 천한 신분의 자가 과분한 직위에 오르면 못하는 짓이 없었다'''라고 말하며 묵살한다. 이때 윤소종 등과의 논쟁을 보면 이 사람이 결코 바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대담 도중 공양왕 본인도 자기 가면이 너무 많이 벗겨졌다는 사실을 알고 논쟁을 급히 정리했다. 이 소식을 듣고 도성에 돌아온 이성계와 대화하던 중 이성계가 사직을 청하자 극구 만류하는데, 이때 이성계가 진작에 자신이 겁쟁이의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공포를 느낀다. 정몽주를 통하여 이성계에게 불윤비답을 내리지만 이성계는 듣지 않고, 며칠 뒤 이성계가 낙마하여 정신을 잃자 포은에게 이성계 일파를 군사를 동원해 몰아내자고 권한다. 38화에선 이방원 역시 공양왕이 정몽주를 앞세워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그를 '수시중의 당여'라며 조롱한다.
39화에서는 의식불명이던 이성계가 깨어나 정도전과 그의 당여들의 사면을 요구하기 시작하자 정몽주가 이성계와 담판을 지으러 가려 하고 공양왕이 잘못하면 경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강하게 만류한다. 왕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든든한 아군을 적의 소굴에서 잃는 격이니, 하지만 정몽주가 괜찮다, 꼭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겠다는 말을 하고 기어이 이성계 문병을 간다. 정몽주는 이 일로 죽지는 않았지만 이후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지시를 받은 조영규에게 참살을 당하여 공양왕의 가장 든든한 아군이자 고려 최후의 버팀목도 이렇게 쓰러진다.
40화에서는 정몽주의 죽음을 전해듣고 흐느끼면서도 사직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도당의 중론이 폐위로 결정되자 왕조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이성계를 직접 찾아가 대문 앞에서 군신간 동맹을 제의한다. 이성계가 결국 나오지 않았음에도 버티고 있으면서 애처로운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태후 안씨가 신하들의 압박을 버티다 못해 폐위 교지를 내리고, 교지를 갖고 온 남은과 병사에 의해 결국 폐위돼버리고 만다. 이에 공양왕은 완전히 좌절하여 기력을 잃어버리고 끌려가게 된다. 끌려가기 직전에 태후께서 일을 망쳤다고 한탄했는데, 시간을 끌면서 압박하다보면 이성계가 군신 맹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듯.[3]
그 후에는 그의 일생과 1394년에 사사되기까지의[4] 행적이 나레이션으로 처리된 것으로 볼 때 용의 눈물에서 연출됐던 개성 왕씨의 멸족이나 공양왕의 최후는 스킵된 것으로 보인다. 안습. 사실 남은 분량이 10회에 불과하고 정도전과 이방원의 대립 등을 그려내기에도 빠듯하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하며 왕씨들을 물에 빠뜨려 죽였다는 내용 또한 시기적으로 드라마에 담기 부적절하다.
3. 기타
정도전 이전에 사극들에서는 말 그대로 호구스러운 모습만 보이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면 여기서는 멸망 직전 국가의 허수아비 왕으로서 이용당하다 죽을 것을 알고 겉으로는 이성계 일파의 의도대로 그 모습을 연기하면서 속으로는 칼을 갈고 막판 뒤집기를 위해 필사적인 모습을 보여 역대 사극의 공양왕 중 가장 인상적인 공양왕이 됐다.
[1] "내가 왕이 되고 싶지 않았다"는 발언은 실제 역사상 공양왕이 폐위되면서 한 말이다. 다만 실록에서는 "난 원래 임금 되기 싫었는데 여러 신하들이 강제로 왕으로 세웠다"는 식의 비굴한 어조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자조와 망국의 한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2] 공양왕은 근처에 호위병은커녕 내관도 없이 혼자 이성계의 자택에 들어오는 데다가, 이성계는 그런 공양왕을 허리조차 굽히지 않고 맞이한다. 덕분에 곤룡포와 익선관을 착용하고 있다는 점 외에는 전혀 왕답지 않아 보인다. 공양왕의 입지가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3] 실제로 드라마에서는 이성계는 정몽주의 죽음 이후에 조선 건국에 어느정도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고, 일어나서 나가려고 했던 것을 부인과 이지란이 몇 번을 말리고 있는 상황이었다.[4] 다만 실제론 사사되지 않고 목이 졸려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