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황후 무씨

 



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


정순황후 무씨(貞順皇后 武氏, ? ~ 737년)
현종후궁이자 황후. 그녀와 현종의 소생은 하왕 도(悼), 회왕 민(敏), 수왕 모(瑁)[1], 성왕 기(琦), 상선공주(上仙公主), 함의공주(咸宜公主), 태화공주(太華公主)등 총 7인이다.[2]
측천무후의 일족인 항안왕(恆安王) 무유지(武攸止)와 정국부인(鄭國夫人) 양씨(楊氏)의 딸이다.

2. 생애


현종에게는 즉위 전부터 비(妃) 인 황후 폐후 왕씨가 있었으나 즉위 후 자식이 없었고 애정이 식었다.[3] 이후 황후 왕씨는 724년(개원 12년)에 주술을 이유로 폐위된다.
이 상황에서 애정을 받은 것이 무혜비(武惠妃)로 그녀는 무측천의 일족이었지만, 당시 혜비라는 최고의 칭호를 받으며 우대받았고, 황후 왕씨가 폐위된 후에는 황후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다.
현종은 그녀를 황후로 삼으려 하였으나, "무씨는 예로부터 부모의 불구대천의 원수이니, 무씨를 황후로 삼아서는 천하를 대할 낯이 없습니다."라는 근신들의 간언으로 중단하였다.[4][5] 그러나 그녀의 사후 현종은 후궁 신분이나, 특별하게 황후로 추존하게 된다.
또한 현종은 무혜비 소생인 수왕 모(瑁)를 태자로 세우려 하였으나, 장구령의 간언에 의해 포기한다. 이림보가 재상이 되자 수왕을 태자로 삼으라고 주청하였으나, 그 전해인 737년에 이미 무혜비는 사망했고 현종은 이에 충왕 여(與)를 황태자로 삼는다. 그가 훗날의 당 숙종이다. 당 숙종은 즉위한 뒤 생모 귀빈 양씨(원헌황후)의 정적이었던 무씨의 황후로서의 예우를 일절 폐했다.

3. 참고문헌


누노메 조후, 구리하라 마쓰오, 임대희 옮김, 『중국의 역사』 「수당오대」, 혜안, 2001.
임사영, 류준형 옮김, 『황제들의 당제국사』, 푸른역사, 2016.

[1] 양귀비의 본래 남편으로 양귀비와의 사이에는 소생이 없었다.[2] 출처는 위키백과의 당 현종 문서[3] 현종이 임치왕으로 있었을 때, 혼인한 황후는 위황후를 주살하고 태평공주를 제거할 당시 밀모에 가담해 대업의 성공에 일조했다. 그녀의 아버지 왕인교와 오빠 왕수일 또한 몇 차례에 걸친 정치적 모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현종을 지지했다.[4] 한 가지 무측천과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는데, 전임 황후의 성씨가 왕씨이고 자신이 무씨라는 점에 대해서는 겹치는 면이 있다.[5] 자신의 남편인 현종도 가족의 배우자를 자신의 배우자로 선택한 면에서는 비슷하다. 고종은 자신의 아버지인 태종의 후궁인 재인 무측천을 소의를 거쳐 황후로 삼았고, 현종은 자신의 아들인 수왕 모의 왕비인 양귀비를 귀비로 삼았다. 그 사이에 각각 승려로서, 도사로서 출가하는 절차를 거친 면도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