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한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진한은 1867년 5월 10일 경상도 흥해군 북하면 흥안리(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환직의 재종질로, 1906년경 아버지 정환직의 명령을 받고 고향에 내려온 삼종형 정용기와 함께 의병을 일으키는 일을 논의한 뒤 이한구, 손영각 등을 포섭했다.
정진한은 이한구·손영각과 함께 본부를 지키는 한편 이규필(李圭弼)·백남신(白南信)·정완성(鄭完成)·최기보(崔基輔)·최치환(崔致煥)·정진학(鄭鎭鶴)·정대하(丁大廈)·이창송(李蒼松) 등을 각 지방으로 파견하여 조직확대를 꾀하였다. 그리하여 산남창의진(山南倡義陣)이 형성되어 대장으로 정용기가 추대되고, 정진한은 소모장에 임명되었다. 산남의진 초기에 정진한은 의병소모와 군수품 수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906년 4월 28일, 정용기는 청하읍으로 진격하던 길에 경주 진위대 참령 신석호(申錫鎬)로부터 부친이 체포되었다는 거짓 소식을 듣고 경주로 갔다가 신석호에게 체포되어 대구로 압송되었다. 이때 정진한은 옥중의 정용기와 만나 옥중 동정을 탐지하여 진중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9월 정환직의 주선으로 정용기가 석방되었으나 여전히 감시하에 있었으므로 산남의진의 활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주요간부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1907년 4월부터 산남의진이 재기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1907년 8월 정진한은 자양(紫陽)에 침입한 왜적을 격파시키고 청하(淸河)·흥해(興海)·군의(軍義) 등의 왜적을 격파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1907년 9월 의병장 정용기가 전사하자, 그는 다시 정환직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여 청하(淸河)·영양(英陽)·영해(寧海)·일월산(日月山) 등지에서 일군과 교전하였다. 11월에 정환직마저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진 후에는 최세한(崔世翰)·이세기(李世紀) 등과 함께 항일투쟁을 전개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후 접전 중에 적에게 체포되어 종신형을 언도받았으나 1910년 한일병합 때 특사를 받아 석방되었다. 이후 영일군에 은거했고, 1947년 4월 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정진한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