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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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의열단 단원이며 중국 공산당 혁명음악가인 정율성의 친형이다.
2. 생애
정효룡은 1894년 1월 19일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서 정해업의 다섯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0년 고아주 서석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1911년 광주 숭일학교에 입학한 후 숭일 YMCA를 창립했다. 1919년 화순과 광주에서 3.1 운동을 주도했으며, 형사들의 추적을 피해 상하이로 망명한 뒤 1920년 3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신문사 직공으로 근무했다.
1920년 9월 임시정부의 교통부 선전원으로서 국내에 파견되어 신동호(申東浩)와 전국 각 도에 선전부 및 각 군에 선전대를 조직할 것을 협의하였다. 11월에는 전남 광주의 이기호(李基浩)ㆍ김희걸(金熙杰), 화순의 최춘열(崔春烈) 등과 선전대 조직을 협의하다 17일 경기도 제3부에 체포되었다. 1921년 6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범죄처벌령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3년 6월 광주소작인회 연합회 집행위원, 1924년 남선노농동맹(南鮮勞農同盟) 창립총회 전형위원, 광주노동공제회 교무부위원 등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1925년 3월 2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 및 공갈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8년여간 투병 생활을 하다 1934년 8월 5일 40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정효룡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