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건

 

諸葛建
삼국시대의 인물들로 한자는 동일한 동명이인이다.
1.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2.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1.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 ~ 222)
건강실록에는 제갈호(諸葛虎)로 기록되었다.
222년에 이릉대전 직후에 일어난 삼로 전투에서 조인의 지휘 하에 주환군과 유수에서 맞붙게 되자 조인이 아들 조태를 유수성으로 보내면서 조인의 명령으로 제갈건은 왕쌍과 함께 장군 상조의 지휘를 받아 5천을 이끌고 유선을 타고 중주를 습격한다. 그런데 주환이 한 것은 일부러 유수성의 약점을 드러내서 유인한 계책으로 낙통과 엄규의 공격을 받아 제갈건은 상조와 함께 전사해 그 목은 효수되었다.
결국 그 싸움으로 참수되거나 익사한 사람이 정사 삼국지에는 1천 여명, 건강실록에는 3천 명 등 기록에 따라 다르지만 위군은 피해를 보았으며, 제갈건, 상조와 함께 갔던 왕쌍이 사로잡혀 무창으로 끌려갔다. 이로 인해 손권이 여러 차례 조조에게 싸움을 걸었지만 조조는 굳게 지켜 이에 응하지 않았다.

2.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 ~ 253)
제갈각의 삼남.
보병교위를 지냈고 아버지 제갈각이 주살되자 형인 제갈송과 함께 어머니를 수레에 태우고 도망쳤다가 손준이 보낸 유승의 추격으로 제갈송을 잃으면서 제갈건은 위나라로 망명하려 했다가 수십 리를 도망가고 추격병에게 체포되었다. 본래 체포되기 전에 제갈각 휘하에서 일하던 서평의 부대에게 붙잡혔다가 서평이 제갈건을 그대로 가게 해준 것이었는데, 다음에 다른 부대에게 잡힌 것이라고 한다.
체포되어 어떻게 되었는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장균이 제갈각의 장례를 치루게 해달라는 상소를 올렸는데, 상소에서 오늘 제갈각 부자 세 명의 머리가 저자에 걸린 지 며칠이나 되어 그것을 본 자는 수만 명이나 되며 욕하는 소리는 바람을 만들었다는 언급으로 제갈건이 죽임을 당했음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