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전

 

1. 제갈량이 둔전했다는 곳
2. 서진의 외척


1. 제갈량이 둔전했다는 곳


諸葛田
위나라에 대한 북벌을 여러 차례로 시행한 제갈량이 234년 봄에 대군을 모두 이끌고 야곡을 거쳐 출발했는데, 유마로 운송하면서 무공, 오장원을 점거하면서 사마의와 위남에서 대치했고 제갈량은 늘 군량 부족으로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근심해 군사를 나눠 둔전하고 오래도록 주둔할 기초를 만들었다.
경작하는 군사들은 위수 강변의 백성들과 섞여 지넀지만 백성들은 편안히 지내고 군에는 사사로움이 없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오장원 언덕 위에 있는 밭을 제갈전이라 불렀으며, 지금도 밭의 모양으로 남아있어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산다고 한다.

2. 서진의 외척


諸葛銓
(? ~ 311)
서진의 인물. 자는 덕림(德林). 제갈완의 오빠, 제갈매의 형, 제갈충의 장남.
낭야 양도 사람으로 서진에서 산기상시를 역임했고 태시 연간[1]사마염이 양가의 규수들을 선발해 후궁을 채우면서 조서를 통해 백성들의 결혼을 금지하면서 환관을 시켜 마부를 통해 주군을 돌아보고 선택했다.
원래는 무원황후가 선택했다가 아름다운 사람은 고르지 않으면서 피부가 희고 키가 큰 사람만 뽑았기에 화가 난 사마염이 직접 선택해서 그 사람들에게 검은 비단 실을 어깨에 걸쳐놓게 했고 귀빈, 부인, 귀인 등의 3부인과 숙비, 숙원, 숙의, 수화, 수용, 수의, 첩여, 용화, 충화 등의 9빈을 뽑으면서 이윤, 호분, 장권, 풍권, 좌사 등과 함께 외척이 되었다.
연주자사, 정위를 지내다가 영가의 난이 일어나면서 311년에 전조의 공격을 받아 낙양이 함락되어 동쪽으로 달아나다가 석륵의 군사에게 붙잡히고 죽임을 당했다.

[1] 265 ~ 274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