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1. 개요
堤川 長樂洞 七層模塼石塔.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10세기 경, 현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창락사(蒼樂寺) 터에 조성된 모전석탑. 현재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65-2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459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현존 높이 9.1m.
전탑을 모방하여 만든 모전석탑으로 당시 신라인들이 회흑색의 점판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후 이를 쌓아 건축한 것이다. 문화재청 등의 설명에 따르면 현 제천시 장락동 일대에 있었던 신라시대 고찰 창락사(蒼樂寺)에서 조성한 탑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사실 창락사(蒼樂寺)라는 사찰명은 주변 지역 주민들을 통해 전해내려오는 명칭이고, 본 모전석탑을 세운 사찰의 정확한 명칭은 확실히 알 수 없다. 일단 석탑의 북쪽과 서쪽 지역에서 3개 동의 건물지와 추정 담장지 유구가 확인되었고, 그중 건물지 유구에서 삼국시대 승문평기와 및 선문평기와, 그리고 통일신라 시대의 선문평기와 격자문평기와가 출토되어 일단 이곳에 신라시대 고찰이 존재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는 탑의 동쪽 부분에 장락사라는 절이 새로 들어섰다.
연구에 따르면 이 사찰은 삼국시대에 처음 창건되어 조선 중기까지 존속하다가 17세기 경에 폐사되었다고 한다. 남한강 유역의 다른 절터와 마찬가지로 고려시대에 특히 크게 번창했으며, 이 시기에 조성된 유물들이 가장 많이 출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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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전석탑은 총 7층에 이르는 대형 탑으로, 다른 모전석탑과 비교했을 때 각 층의 줄임 비율이 적당하여 장중한 기풍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외형 또한 일반 전탑과 매우 흡사하다. 탑의 전체적인 비례가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조각수법도 양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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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실이 있는 1층 기단부의 모습. 자연석으로 쌓았으며 모퉁이에는 화강암으로 된 돌기둥을 세웠다. 탑의 남쪽면과 북쪽면에는 화강암으로 문기둥 2개를 세우고 이맛돌을 얹은 높이 1.37m, 너비 1.08m 크기의 네모난 문을 만들어놓았는데, 현재는 이 중 남쪽면의 문이 사라진 상태다. 그리고 석탑 맨 윗부분의 경우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가 존재했었으나 이것 또한 현재는 사라진 상태다. 1967년에 7층 지붕돌 윗면에서 꽃 무늬가 뚫새김된 청동 조각이 발견되었으므로, 원래는 석탑 정상부에 청동으로 만든 상륜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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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정도 규모의 탑에는 사리장엄구 및 각종 유물들이 봉안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안타깝게도 이 탑에서는 해당 유물들이 발견되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봉안유물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1967년 탑 수리 당시 5층 옥신부에서 길이 50~54㎝, 높이 31㎝의 부등변 사각형의 화강암 석재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심에 네모꼴의 사리장엄구 구멍을 만들어놓았음이 확인되어 이 탑을 처음 조성했던 당시 신라인들은 분명 사리공을 넣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도굴당한 것인지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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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모전석탑은 수많은 석재들이 겹쳐져 결구되는 특성상 전탑보다 더욱 강한 내구성을 갖게 되는데, 특히 본 탑의 상태를 통해 그 강한 내구성을 확인해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100년~1,200년대에 조성된 한국의 모전석탑으로 천년 전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현대까지 전해지고 있어 당시 제천 지역의 석조공예술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에 1967년 6월 23일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3. 바깥고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 두산백과 :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 향토문화전자대전 :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 한국어 위키백과 :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 답사여행의 길잡이 12 - 충북 : 장락동 칠층모전탑
- 답사여행의 길잡이 12 - 충북 : 제천 장락리 칠층모전석탑
- 미술백과 : 제천장락동칠층모전석탑
- 대한민국 구석구석 :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4. 보물 제459호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모양으로 깎아 쌓은 탑으로, 흙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을 모방하였다 하여 모전탑(模塼塔)이라고도 한다. 탑이 서있던 절터가 논밭으로 변하여 절의 규모는 알 수 없고, 7층에 이르는 거대한 이 탑이 주위를 압도하듯 버티고 서 있다.
회흑색의 점판암을 사용한 탑으로,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만은 점판암이 아닌 자연석으로 1단을 마련하였으며, 그 위로 벽돌로 이루어진 7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탑신은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모셔두는 곳으로, 1층의 네 모서리에는 점판암 대신 화강암을 다듬은 기둥을 세워 그 모습이 특이하다. 또한 남쪽과 북쪽면에 사리를 두는 감실(龕室:불상이나 사리 등을 모시는 방)을 설치하여 문을 달아 놓았는데, 현재 남쪽의 것은 없어졌다. 1층의 남쪽과 동쪽면이 몹시 부서져 있는데 이러한 피해는 2층의 지붕돌까지 이르고 있다. 각 몸돌을 덮는 지붕돌은 재료가 벽돌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경사면 위아래 모두 층급을 두었으며 처마도 짧고 수평을 이룬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에는 아래위로 구멍을 뚫어 풍경을 달도록 하였다.
탑의 머리부분에는 머리장식이 없어지고 장식받침인 노반(露盤)만이 남아 있는데, 그 윗면 한가운데에 동그란 구멍이 있고 구멍둘레로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1967년 무너지기 직전에 탑을 해체하여 보수했는데, 7층 지붕돌 윗면에서 꽃무늬가 조각된 청동조각이 발견되어 혹 탑의 머리장식이 아닐까 한다.
탑신 전체에는 표면에 회를 칠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주목된다. 만드는 형식이나 돌을 다듬어 쌓아올리는 수법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