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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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
1228년, 라틴 제국 황제 로베르가 사망하고 브리엔의 장이 섭정이 되었다. 이피로스 친왕국이 불가리아에게 패하면서 서쪽의 위협은 줄었지만 동로마 제국의 고토 회복을 노리는 니케아 제국의 위협은 이제 부터였다. 요안니스 3세는 불가리아와 동맹을 맺고 라틴 제국을 압박해갔다. 이 시기에 라틴 제국은 불가리아와 니케아 사이에서 쇠퇴하고 있었으나 베네치아는 니케아가 크레타의 반란을 지원하자 에게 해와 동지중해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라틴 제국의 유지를 원했다.
2. 전개
라틴 제국의 실질적 통치를 담당하던 브리엔의 장은 당시 90세가 가까운 노구였지만 1231년 라틴 제국을 맡은 이래 오히려 니케아 제국을 상대로 역습에 나서 3년 가까이를 보스포러스 해협 건너편에서 싸울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1] 그러나 34개월의 원정을 통해 얻은 것은 실질적으로는 전무했다. 아니, 이제 도시 국가로 전락한 라틴 제국의 수도를 방어하는 길이 이것뿐이었을 수도 있다.
원정 이후, 브리엔의 장은 평화 협상을 제안했지만 요안니스 3세는 이를 거절하고 불가리아와의 동맹을 체결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할 생각이었다. 1235년, 요안니스 3세는 아나톨리아와 갈리폴리에 남아있는 라틴 제국의 마지막 전초기지들을 점령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했는데 베네치아는 라틴 제국을 지원하고자 휘하의 낙소스 공국을 이용해 함대를 보냈다.
해전에서 베네치아를 상대할 수 없는 니케아 제국은 일단 물러났으나 베네치아 함대가 복귀한 1235년 겨울, 니케아와 불가리아 연합군은 재차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했다. 요안니스 3세는 교황에게 서한을 보내어 옛 동로마 제국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을 요청했으나 교황은 오히려 라틴 제국을 방어하기 위한 십자군을 구성하려 하고 있었다. 외교적 상황도 여의치 않은데 겨울이 다가오자 니케아-불가리아 연합군은 후퇴했고 내년에 포위를 다시 하기로 약속하였으나 불가리아 제국은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3. 결과
브리엔의 장이 노구를 이끌며 분투하고, 베네치아의 지원을 얻은 라틴 제국은 당장의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장이 죽고 보두앵 2세가 즉위하면서 결국 제1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끝에 라틴 제국은 멸망하고 동로마 제국이 재건된다.
[1] 1210년 브리엔의 장은 예순살의 나이로 당시 17세의 예루살렘 여왕과 결혼했었고 70대 중반을 넘어 새로 얻은 아내에게 늦둥이를 보았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