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제1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시기'''
서기 1260 ~ 1261년
'''장소'''
콘스탄티노폴리스
'''원인'''
니케아 제국콘스탄티노폴리스 탈환 시도
'''교전국'''
[image] 니케아 제국
[image] 라틴 제국
'''지휘관'''
[image] 미하일 8세
[image] 알렉시오스 스트라티고폴로스
[image] 보두앵 2세
'''결과'''
니케아 제국콘스탄티노폴리스 탈환.
라틴 제국의 멸망과 로마 제국의 부활.
1. 배경
2. 전개
2.1. 1260년 공성전
2.2. 1261년 공성전
3.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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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


1204년, 제4차 십자군 원정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고 동로마 제국의 영토는 십자군 국가들에 분할되었다. 미하일 콤니노스 두카스가 세운 알바니아의 이피로스 친왕국, 아나톨리아 서북부의 니케아 제국 같은 동로마 제국의 후계자들은 어떻게든 잃어버린 옛 수도를 다시 회복하고 싶어했다. 초기에는 이피로스가 라틴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을 듯 했지만 클로코트치냐 전투에서 제2차 불가리아 제국에게 패하고 경쟁 구도에서 탈락해 버렸다. 남은 것은 요안니스 3세의 통치로 세력을 회복하고 불가리아와의 동맹을 통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노릴 발판을 마련한 니케아 제국이었지만 1235년제1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베네치아의 간섭과 브리엔의 장이 분투한 결과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니케아 제국은 무리를 해서라도 유럽에서의 영토를 회복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고 이피로스 친왕국과 불가리아로부터 트라키아, 마케도니아를 수복하는 데 성공해 콘스탄티노폴리스 주변 지역에서의 패권을 확립했다.
이제 라틴 제국은 동서에서 포위당하고 교황청과 베네치아에게 버림받아 목숨이 경각에 달했지만 요안니스 3세와 그 후계자가 모두 간질 발작으로 더 이상 니케아 제국을 이끌지 못하게 되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1250년대 후반에 들어서 강성해진 니케아 제국은 이피로스 친왕국을 주축으로 하는 연합군에게 견제당했지만 야심만만한 미하일 8세는 1259년 여름, 펠라고니아 전투에서 연합군을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라틴 제국으로부터 수도를 탈환하는 것뿐이다.

2. 전개



2.1. 1260년 공성전


1260년 초, 펠레올로고스 왕조의 미하일 8세는 겨울이 지나자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했다.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연대기 마다 이야기가 다른데, 어떤 연대기에서는 내부에 내통자를 심어두어 소수의 병력만으로 간단히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했다고 하고 또 다른 연대기에서는 맹렬하게 저항하는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미하일 8세가 직접 나서서 공성병기 운영을 감독해야 했고 갈라타 지구를 공격하다가 큰 피해를 입었다고도 한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이러한 차이점[1]에 대해서 몇몇 연대기가 미하일 8세의 실책들을 덮으려 했다고 보고 있으며 이후의 상황을 보아도 갈라타 공격에 고전했다는 내용들이 사실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1260년 8월, 미하일 8세와 라틴제국의 보두엥 2세는 1년 간의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2.2. 1261년 공성전


공성이 실패로 돌아갔으나 미하일 8세는 재차 공성을 준비했고 1261년 3월, 제노바 공화국의 교역권을 인정하는 대신 함대를 지원받는 협정을 맺었다.[2] 이로써 베네치아와 제노바가 라틴 제국을 지원할 이유를 차단하는 데 성공하자 미하일 8세는 재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격에 나설 준비를 했다. 하지만 1261년 7월 25일, 가볍게 트라키아를 견제하려고 보낸 알렉시오스 스트라티고폴로스의 부대는 베네치아가 수비대를 다프누시아 섬 공략에 차출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를 틈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3. 영향


8월 15일, 미하일 8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했다. 마침내 니케아 제국이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동로마 제국을 재건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니케아 제국은 너무 많은 재원을 소진하고 있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십자군에게 점령당하기 이전부터 이미 동로마 제국에 내재하던 수많은 문제점들은 이제 더욱 심각해져서 니케아 제국에 부담이 될 상황이었다.
로마 제국은 멸망한 지 60년 만에 부활했으나 니케아 제국이 차지한 것은 폐허가 되고 방치된, 알맹이는 베네치아가 빼돌린 옛 영광의 그림자였다.

[1] 아크로폴리데스의 기록과 파키메레스, 그레고라스의 기록은 같은 사건을 묘사하는 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차이점이 크다.[2] 이는 당장에는 커다란 이익을 주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시련의 원흉과도 같았다. 콘스탄티노폴리스 방어의 양대 축중 하나인 동로마 해군을 건설할 자원을 고갈시켜 버리는 결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