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Fotopedia에서 불가리아 사진 감상하기
발칸 반도의 동쪽 흑해와 맞닿아있는 나라. 수도는 소피아. 화폐 단위는 '레프'(불가리아어로는 레바 다.) 국가의 상징은 사자. 공용어는 불가리아어를 사용한다. 명산물은 장미, 담배, 유산균이 있는데 유산균으로 요구르트를 만드는 방법이 꽤 특이하다. 산수유 나뭇가지를 꺾어와서 우유에 푹 꽂아서 따뜻한 곳에 두면 요구르트가 완성된다고 한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재외국민 수는 100여 명 정도 된다. 국내에는 '요구르트를 좋아하는 나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보다 많다. (유럽에 속한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2004년에 발트 3국,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와 함께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였고, 루마니아와 함께 2007년 1월 1일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불가리아에서는 '''벌가리야'''(България)에 가깝게 발음한다.
불가리아라는 국호는 이 곳에 들어온 튀르크계 민족의 이름인 불가르(Bulgars)에서 유래한 것이다. 불가르라는 말은 아직 어원이 불분명하지만 고대 투르크어 bulģha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설이 있으며, 이는 "섞다", "흔들다", "자극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하양, 초록, 빨강의 3가지 색으로 된 국기이며 1877년 오스만 제국 지배시절 독립운동 때 처음 사용되었고 그 당시에는 사자 형상과 함께 БЪЛГАРИЯ라는 국명이 쓰여있었다. 1947년 공산주의 정권 출범 때 하양 부분에 인민공화국 국장(國章)이 있었으나 1989년 공산주의 정권 폐지 이후 없어졌다. 러시아 국기와 비슷해 보이는데 실제로 불가리아 국기는 러시아 국기에서 파랑색을 초록색으로 바꾼 것이라 한다.
친애하는 조국 참조.
불가리아 왕국의 마지막 왕인 시메온 2세(1937~)는 파란만장한 이력으로 유명하다. 그는 1946년 공산주의 혁명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스페인에서 망명생활을 했다가 불가리아가 민주화가 되고 나서야 귀국하였고, 2001년에는 정치를 시작하며 '시메온 2세 국민운동연합[4] ' 이라는 정당을 조직,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후 4년 간 총리를 지내고 '시메온 2세 국민운동연합'의 당수를 맡고 있다가 물러났다. 2001년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으나 2005년 선거에서 지지율이 절반으로 떨어져서 여당 자리를 내주었고 2009년 선거에서는 참패하여 지금은 의석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이로써 '''왕위에서 쫓겨났다 선거에서 승리해 권좌에 복귀하고 다시 선거로 물러나는''' 웃지 못할 진기록을 세웠다.[5] 당시 불가리아의 집권 여당은 '불가리아 사회당(Bulgarian Socialist Party)'으로 1990년 기존 공산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면서 후신으로 창당된 당이다.
2014년 선거 이후 집권당은 '불가리아 유럽발전 시민당(Citizens for European Development of Bulgaria)'이다.
의원 내각제 국가인 불가리아의 대통령은 이스라엘, 인도, 독일, 이라크, 그리스 등 다른 의원 내각제 공화국 국가와 마찬가지로 권한이 별로 없다, 실질적인 정부 수반은 총리이다. 대통령의 월급은 미화 400달러(40만원(...))에 불과하며, 어딜 돌아다닐 때도 경호원 몇 명(적게는 두 명)에 불과하다. 더 안습인 건, 대통령궁이라고 할 만한 건물의 반은 쉐라톤 호텔이다. 즉, 대통령궁과 쉐라톤 호텔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대통령의 이동 차량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EF쏘나타였다. 아마 이는 대통령이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지 않기 때문인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2013년에는 불가리아 내 친터키 세력의 지도자인 아흐메드 도안(Ahmed Doğan)의 테러 미수 사건이 터졌는데, 보면 알겠지만 TV 중계 중인 연설회장에 난입해서 호신용 가스총을 들이대다가 제압되었다. 최초 업로드는 코믹/유머 카테고리로 등록되어 있다가 짤렸다.
과거 공산권에 속해있던 나라답게 불가리아 사회당(Българска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 партия) 등 옛 집권 공산당의 후신 좌파 정당들도 활동하고 있으며,[6] 구 공산당 정권 시대를 추종하는 일부 원외/원내 정치인들이 민주화 이후에 폐지된 공산당 정권 수립일을 국경일로 다시 복원,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다만 불가리아 정부에서는 공산당 정권 수립일을 국경일로 부활시켜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을 헛소리 취급하며 과거 공산당 집권 시기에 존재했던 공산당 정권 수립일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주요 유럽 선진국들과 불가리아의 국민성과 생활상을 비교하며 불가리아를 까고 이 주제에 EU에 가입했다며 자축하는(...) 자학개그 영상이다. 사실 이건 이탈리아도 자주 하는 자학개그.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불가리아는 유럽(EU)의 관문이다. 즉, 불가리아를 통과하면 유럽 어느 나라든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가보면 국경 세관 검사도 까다로운 편.(참고로 동영상에서 Европа는 유럽, България는 불가리아)
1988년에 898만 명[7] 으로 인구 최고점을 찍은 이후에 출산율이 한때 1명대 초반으로 급락한데다가 다른 나라로의 이민 행렬까지 겹치면서 2014년에 1950년 수준으로 인구가 감소하였고, 2016년에는 1940년 수준으로 인구수가 줄더니 2019년에는 700만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참고로 2050년대에는 500만까지 감소할 예정이다. 그래도 2000년대 중반 들어서 출산율이 1.5명대로 회복되긴 했는데, 그 이후로 출산율이 오르지 않은데다가 사망률 역시 1000명당 15명을 기록하고 있어서 앞으로도 전망은 암울하다.
그리고 터키인과 집시인의 비율 역시 감소했다.# 참고로 출산율 저조는 동유럽 국가들의 공통된 문제다..
이미 노인 인구도 초고령사회(21.3%)에 도달한 상황이다.
주민의 대부분이 불가리아인이다. 그 외에도 터키인, 집시, 기타(러시아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등)도 거주하고 있다.
불가리아인의 기원은 트라키아인, 슬라브인, 불가르인으로 손꼽히는데 트라키아인들은 기원전부터 현재의 불가리아 일대에 살았던 민족이었지만 서기 6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많은 슬라브인들이 들어오면서 혼혈을 통해 슬라브화되었으며 언어도 슬라브어를 쓰게 되었다.
불가리아라는 이름은 튀르크 계통의 불가르인에게 따왔지만 불가르인들과 트라키아와 혼혈한 슬라브인과의 혼혈을 통해 불가리아인이 탄생했으며 불가르인들은 원래 숫자가 더 많았던 남슬라브인에게 동화되어 오늘날 불가리아인들은 완벽하게 슬라브화되었다.
[image]
대부분이 정교회를 믿고 있으며, 불가리아 헌법에서 정교회는 국교는 아니지만 전통 종교로서 규정되고 있다. 보리스 1세 국왕에 의해 불가리아에 정교회 신앙이 들어와 공인되었으며, 1945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 의해 독립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1953년 총대주교좌 교회로 위치가 격상되었다. 불가리아 정교회의 총대주교는 소피아의 관구장 겸 불가리아 교회의 수석 주교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총대주교좌 소재지는 수도 소피아에 있는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성당이다. 현재 총대주교는 2013년 선출되어 착좌한 네오피테 주교이다.
이슬람교[8] ,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9] 를 믿는 사람도 조금 있다. 최근 불가리아에서 불교 사원이 생길 예정이다.#
최근 들어서, 불가리아는 이슬람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가장 무슬림 인구비율이 높은 지역은 84%에 이른다.https://en.wikipedia.org/wiki/Islam_in_Bulgaria
불가리아어가 공용어다. 러시아어와는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으며 키릴 문자를 사용한다. 키릴 문자로 맨 처음 표기된 언어인 교회 슬라브어의 직계 후손격 언어이다. 유럽연합 소속 국가 중에서는 유일한 키릴문자 사용국이며, 유로화 지폐에 키릴문자가 있는 이유도 불가리아 덕분이다.
터키어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을 당시에 불가리아로 이주한 터키인들에 한해서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도 공산정권 시절에 러시아어가 주요 외국어였지만, 민주화이후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도 쓰이고 있다. 2005년 유럽 연합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어가 가장 많이 쓰이고, 그 다음으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순으로 쓰이고 있다. 러시아어가 영어와 함께 주요 외국어로도 지정되어 있고 2013년에는 90년대 당시에 소수에 불과했던 러시아어 교육기관이 다시 늘어났다. 그리고 불가리아는 러시아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러시아어 교육도 커지고 있다.#(러시아어) 루마니아와 함께 프랑코포니에도 가입되어 있다.
축구는 동유럽답게 꽤 잘하지만 국대는 잠깐만 잘했던 나라. 국대에 관한 것은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가 가장 유명하다. 최근에는 불가리아 백작이라는 별명을 갖고있는 맨유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알려져 있고, 레체, 유벤투스, 피오렌티나, 맨체스터 시티, 파르마, 스포르팅 등지에서 뛰었던 '''발레리 보지노프''', 이청용과 같이 볼튼 원더러스에서 뛰었던 마틴 페트로프 역시 불가리아 사람이다. 축구리그로는 불가리아 파르바리가가 있다.
하지만, 축구 응원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2019년 10월 15일에 잉글랜드와 벌인 경기에서 불가리아 관중들을 나치 경례를 하고 잉글랜드 흑인 선수 타이론 밍스에게 바나나를 던지며 비하하는 짓을 벌였다. 오죽하면 불가리아 선수들이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감독까지도 관중석에 삿대질하면서 화를 냈을까. 결국 열터진 잉글랜드에게 6-0으로 털렸으며 보리슬라프 미하일로프 축구협회장과 축구협회 이사진이 사임을 발표했고, 19일에는 대표팀 감독인 크라시미르 발라코프도 그만둔다고 발표했다. 불가리아 당국은 이 인종차별 행위에 가담한 16명의 용의자를 추적해 12명을 체포했고, 이 가운데 4명에 대해선 벌금과 축구장 출입 2년 금지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냉전 시절에는 공산권 특유의 스포츠 육성 정책에 따라 작은 나라인데도 올림픽 메달 획득 순위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역도와 레슬링에서 강세를 보였다. 1988 서울 올림픽,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6 애틀란타 올림픽까지 역도 3연패를 달성한 '포켓 헤라클레스' 나임 슐레이마놀루도 원래 불가리아 출신 선수였는데, 불가리아의 소수민족 탄압 정책으로 터키로 망명한 케이스. 1980 모스크바 올림픽때는 미국이 불참하기는 했으나 종합순위(이하 금메달수 기준)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 내기도 했다. 1984 LA 올림픽에는 공산권 보이코트로 불참했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는 당시 대한민국과 미수교 상태였지만 참가하여 금메달 10개를 따며 종합 7위에 올라 계속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하지만 공산권이 붕괴되고 이전의 스포츠 육성 정책도 무너지면서 1990년대 이후 부진한 편이다. 거기에다가 강세 종목으로 손꼽히던 역도가 선수들의 약물 스캔들로 물의를 빚게 되면서 충격에 휩싸이는 등 악재가 겹쳤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는 역도 종목에 아예 참가하지 않기로 했으며 이 대회에서 금1, 은1, 동3을 따는 데 그쳐 56년만에 하계 올림픽에서 가장 적은 수의 메달을 따는 부진을 보였다. 2012 런던 올림픽에는 더욱 부진해져서 은1, 동1에 그쳐 60년만에 하계 올림픽에서 가장 저조한 성적을 올렸고, 메달순위는 63위로 추락. 32년전 올림픽에서 3위, 24년전 올림픽에서 7위를 했던 위엄은 완전히 사라졌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은1, 동2를 획득하며 런던 때보단 나은 성적이지만 순위는 65위로, 4년전보다 2위 더 내려간 순위로 마쳤다. 여담으로 전 기계체조 선수인 요르단 요르체프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부터 2012 런던 올림픽까지 총 6번의 올림픽 출전으로 은1, 동3의 성적을 올린 바 있다. 현재까지 최다 올림픽 출전은 1972 뮌헨 올림픽부터 2012 런던 올림픽까지 총 10번을 출전한 캐나다 출신의 승마선수 이안 밀러. [10] 자세한 올림픽 최다 출전자는 링크 참조.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athletes_with_the_most_appearances_at_Olympic_Games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에서 최다 출전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귀화, 아들의 백혈병 문제 등으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옥사나 추소비티나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2016 리우 올림픽까지 총 7번 출전했다.[11] 뒤이어 요르단 요르체프가 6번 출전으로 역대 5번째로 최다 출전 기록을 갖고있다. 동계 올림픽에서는 금1, 은2, 동3개를 딴 것이 전부이다. 금메달 1개는 바이애슬론에서 나왔고, 유럽국가로는 특이하게 쇼트트랙에서 은메달 2개를 딴 바 있다. 여자 쇼트트랙의 '''예브게니야 라다노바'''는 유럽 선수 중에서는 드물게 2000년대에도 쇼트트랙에서 세계 상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던 선수다.
운동기구 불가리안 백의 종주국.
불가리아는 유럽에서 물가가 최하위권이기 때문에 일인당 3~4 만원 정도면 고급 식당에서 풀코스로 먹을 수 있다.
의외로 동유럽에서 음식과 술이 맛있는 나라이다. 술의 경우 와인과 자두, 살구등 과일을 증류해서 만든 발칸반도의 전통주 라키야가 유명한데. 그 중에서 와인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유럽의 와인 강국들의 와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맛과 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부르드, 텔리쉬, 에니라, 카다르지나등의 여러 와인 브랜드들이 있으며, 이 중 마부르드는 불가리아 현지에서만 나는 토착 포도 품종으로만 양조된다고 한다.
음식의 경우 기본적으로 유럽권 국가 답게 빵이 주식[12] 이고, 전통요리로는 요구르트로 만든 수프 요리 타라토르와 수파 탑체타, 잘게다진 고기 완자를 불에 구운 고기 완자구이 케바프체, 고기와 채소를 꼬치에 끼워 불에 구워 만드는 꼬치구이 쉬시체타, 단단한 도자기 질그릇에 고기, 달걀, 채소등을 넣고 오븐에 넣어 끓여 만드는 불가리아식 찌개 요리 카바르마, 치즈를 넣어 만든 치즈파이 바니차, 피망, 오이, 토마토 위에 양유로 만든 불가리아 전통 치즈 시레네 덩어리를 뿌려서 만드는 샐러드 샵스카, 간 감자를 양파, 달걀과 섞어서 기름에 부쳐 만드는 감자 요리인 파타트닉 등이 있다. 그 중 요구르트로 만든 냉수프 타라토르는 불가리아 현지에서도 한국의 냉면 비슷하게 여름 별미로서 인기가 굉장히 높다고 한다. 타라토르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식 찌개 요리 카바르마와 샐러드 샵스카도 굉장히 맛 있는 편이다. 역사적, 지리적으로 터키 요리와 그리스 요리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터키 요리, 그리스 요리와 유사한 부분도 많이 있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음식 중에 팔내니 추슈키(피망에 속재료를 채워 요리한 것)가 있는데 영어로는 stuffed pepper라고 부른다.
길거리 음식으로는 메키차(мекица mekitsa)[13] 라는게 있는데 한국의 호떡과 비슷하다.
한국에선 불가리아 음식 하면 요구르트가 잘 알려져 있지만, 현지인들은 좋은 것을 알면서도 자랑거리로는 삼지 않는다.[14] 대다수가 특별히 선호하는 요구르트 브랜드는 없으며 그냥 싼 게 좋은 거라고 한다(...). 한국에서 파는 요구르트 브랜드 중 도마슈노(домашно)[15] 는 불가리아어로 '집에서 만든(homemade)'이라는 뜻이다.
의외로 볶음밥 요리도 존재한다. 필레 스 오리스(Пиле с ориз)가 그것인데, 이 요리의 조리법은 삶은 닭고기를 쌀과 양파, 채소, 소금 등을 섞어서 기름에 볶은 다음, 야채 국물을 넣어 오븐에 넣어 구워서 완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단 바다와 접해있는 해안국임에도 해산물 요리는 해물 요리가 많은 아랫나라 그리스에 비하면 빈약한 편으로, 바닷물고기나 게, 새우, 오징어, 문어 같은 해산물의 경우 흑해 연안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먹고, 주로 해산물보다는 잉어나 송어 같은 민물 하천에서 서식하는 민물고기들을 주로 많이 먹는다. 다만 최근에는 공산당 1당 독재 체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국가로 정치 민주화와 시장경제 개혁개방이 이뤄지면서 생선초밥이나 사시미, 새우튀김 등 일본산 해산물 요리들이 들어와 수도 소피아와 제2 도시인 플로브디프 같은 내륙 지대 도시들을 중심으로 초밥 같은 해산물 요리들을 취급하는 음식점들이 속속 생기는 등 현지의 20~30대의 청장년층 세대들도 해산물을 먹기도 한다.
※ 해당 국가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는 제외한다.
1. 개요
발칸 반도의 동쪽 흑해와 맞닿아있는 나라. 수도는 소피아. 화폐 단위는 '레프'(불가리아어로는 레바 다.) 국가의 상징은 사자. 공용어는 불가리아어를 사용한다. 명산물은 장미, 담배, 유산균이 있는데 유산균으로 요구르트를 만드는 방법이 꽤 특이하다. 산수유 나뭇가지를 꺾어와서 우유에 푹 꽂아서 따뜻한 곳에 두면 요구르트가 완성된다고 한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재외국민 수는 100여 명 정도 된다. 국내에는 '요구르트를 좋아하는 나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보다 많다. (유럽에 속한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2004년에 발트 3국,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와 함께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였고, 루마니아와 함께 2007년 1월 1일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2. 상징물
2.1. 국호
불가리아에서는 '''벌가리야'''(България)에 가깝게 발음한다.
불가리아라는 국호는 이 곳에 들어온 튀르크계 민족의 이름인 불가르(Bulgars)에서 유래한 것이다. 불가르라는 말은 아직 어원이 불분명하지만 고대 투르크어 bulģha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설이 있으며, 이는 "섞다", "흔들다", "자극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2.2. 국기
하양, 초록, 빨강의 3가지 색으로 된 국기이며 1877년 오스만 제국 지배시절 독립운동 때 처음 사용되었고 그 당시에는 사자 형상과 함께 БЪЛГАРИЯ라는 국명이 쓰여있었다. 1947년 공산주의 정권 출범 때 하양 부분에 인민공화국 국장(國章)이 있었으나 1989년 공산주의 정권 폐지 이후 없어졌다. 러시아 국기와 비슷해 보이는데 실제로 불가리아 국기는 러시아 국기에서 파랑색을 초록색으로 바꾼 것이라 한다.
2.3. 국가
친애하는 조국 참조.
3. 역사
- 불가리아/역사 항목 참조.
4. 정치
불가리아 왕국의 마지막 왕인 시메온 2세(1937~)는 파란만장한 이력으로 유명하다. 그는 1946년 공산주의 혁명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스페인에서 망명생활을 했다가 불가리아가 민주화가 되고 나서야 귀국하였고, 2001년에는 정치를 시작하며 '시메온 2세 국민운동연합[4] ' 이라는 정당을 조직,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후 4년 간 총리를 지내고 '시메온 2세 국민운동연합'의 당수를 맡고 있다가 물러났다. 2001년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으나 2005년 선거에서 지지율이 절반으로 떨어져서 여당 자리를 내주었고 2009년 선거에서는 참패하여 지금은 의석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이로써 '''왕위에서 쫓겨났다 선거에서 승리해 권좌에 복귀하고 다시 선거로 물러나는''' 웃지 못할 진기록을 세웠다.[5] 당시 불가리아의 집권 여당은 '불가리아 사회당(Bulgarian Socialist Party)'으로 1990년 기존 공산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면서 후신으로 창당된 당이다.
2014년 선거 이후 집권당은 '불가리아 유럽발전 시민당(Citizens for European Development of Bulgaria)'이다.
의원 내각제 국가인 불가리아의 대통령은 이스라엘, 인도, 독일, 이라크, 그리스 등 다른 의원 내각제 공화국 국가와 마찬가지로 권한이 별로 없다, 실질적인 정부 수반은 총리이다. 대통령의 월급은 미화 400달러(40만원(...))에 불과하며, 어딜 돌아다닐 때도 경호원 몇 명(적게는 두 명)에 불과하다. 더 안습인 건, 대통령궁이라고 할 만한 건물의 반은 쉐라톤 호텔이다. 즉, 대통령궁과 쉐라톤 호텔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대통령의 이동 차량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EF쏘나타였다. 아마 이는 대통령이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지 않기 때문인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2013년에는 불가리아 내 친터키 세력의 지도자인 아흐메드 도안(Ahmed Doğan)의 테러 미수 사건이 터졌는데, 보면 알겠지만 TV 중계 중인 연설회장에 난입해서 호신용 가스총을 들이대다가 제압되었다. 최초 업로드는 코믹/유머 카테고리로 등록되어 있다가 짤렸다.
과거 공산권에 속해있던 나라답게 불가리아 사회당(Българска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 партия) 등 옛 집권 공산당의 후신 좌파 정당들도 활동하고 있으며,[6] 구 공산당 정권 시대를 추종하는 일부 원외/원내 정치인들이 민주화 이후에 폐지된 공산당 정권 수립일을 국경일로 다시 복원,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다만 불가리아 정부에서는 공산당 정권 수립일을 국경일로 부활시켜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을 헛소리 취급하며 과거 공산당 집권 시기에 존재했던 공산당 정권 수립일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5. 경제
- 불가리아/경제 항목 참조.
6. 교육
7. 사회
주요 유럽 선진국들과 불가리아의 국민성과 생활상을 비교하며 불가리아를 까고 이 주제에 EU에 가입했다며 자축하는(...) 자학개그 영상이다. 사실 이건 이탈리아도 자주 하는 자학개그.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불가리아는 유럽(EU)의 관문이다. 즉, 불가리아를 통과하면 유럽 어느 나라든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가보면 국경 세관 검사도 까다로운 편.(참고로 동영상에서 Европа는 유럽, България는 불가리아)
7.1. 인구
1988년에 898만 명[7] 으로 인구 최고점을 찍은 이후에 출산율이 한때 1명대 초반으로 급락한데다가 다른 나라로의 이민 행렬까지 겹치면서 2014년에 1950년 수준으로 인구가 감소하였고, 2016년에는 1940년 수준으로 인구수가 줄더니 2019년에는 700만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참고로 2050년대에는 500만까지 감소할 예정이다. 그래도 2000년대 중반 들어서 출산율이 1.5명대로 회복되긴 했는데, 그 이후로 출산율이 오르지 않은데다가 사망률 역시 1000명당 15명을 기록하고 있어서 앞으로도 전망은 암울하다.
그리고 터키인과 집시인의 비율 역시 감소했다.# 참고로 출산율 저조는 동유럽 국가들의 공통된 문제다..
이미 노인 인구도 초고령사회(21.3%)에 도달한 상황이다.
7.1.1. 주민
주민의 대부분이 불가리아인이다. 그 외에도 터키인, 집시, 기타(러시아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등)도 거주하고 있다.
불가리아인의 기원은 트라키아인, 슬라브인, 불가르인으로 손꼽히는데 트라키아인들은 기원전부터 현재의 불가리아 일대에 살았던 민족이었지만 서기 6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많은 슬라브인들이 들어오면서 혼혈을 통해 슬라브화되었으며 언어도 슬라브어를 쓰게 되었다.
불가리아라는 이름은 튀르크 계통의 불가르인에게 따왔지만 불가르인들과 트라키아와 혼혈한 슬라브인과의 혼혈을 통해 불가리아인이 탄생했으며 불가르인들은 원래 숫자가 더 많았던 남슬라브인에게 동화되어 오늘날 불가리아인들은 완벽하게 슬라브화되었다.
7.1.2. 종교
[image]
대부분이 정교회를 믿고 있으며, 불가리아 헌법에서 정교회는 국교는 아니지만 전통 종교로서 규정되고 있다. 보리스 1세 국왕에 의해 불가리아에 정교회 신앙이 들어와 공인되었으며, 1945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 의해 독립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1953년 총대주교좌 교회로 위치가 격상되었다. 불가리아 정교회의 총대주교는 소피아의 관구장 겸 불가리아 교회의 수석 주교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총대주교좌 소재지는 수도 소피아에 있는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성당이다. 현재 총대주교는 2013년 선출되어 착좌한 네오피테 주교이다.
이슬람교[8] ,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9] 를 믿는 사람도 조금 있다. 최근 불가리아에서 불교 사원이 생길 예정이다.#
최근 들어서, 불가리아는 이슬람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가장 무슬림 인구비율이 높은 지역은 84%에 이른다.https://en.wikipedia.org/wiki/Islam_in_Bulgaria
8. 문화
8.1. 언어, 문자
불가리아어가 공용어다. 러시아어와는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으며 키릴 문자를 사용한다. 키릴 문자로 맨 처음 표기된 언어인 교회 슬라브어의 직계 후손격 언어이다. 유럽연합 소속 국가 중에서는 유일한 키릴문자 사용국이며, 유로화 지폐에 키릴문자가 있는 이유도 불가리아 덕분이다.
터키어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을 당시에 불가리아로 이주한 터키인들에 한해서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도 공산정권 시절에 러시아어가 주요 외국어였지만, 민주화이후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도 쓰이고 있다. 2005년 유럽 연합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어가 가장 많이 쓰이고, 그 다음으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순으로 쓰이고 있다. 러시아어가 영어와 함께 주요 외국어로도 지정되어 있고 2013년에는 90년대 당시에 소수에 불과했던 러시아어 교육기관이 다시 늘어났다. 그리고 불가리아는 러시아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러시아어 교육도 커지고 있다.#(러시아어) 루마니아와 함께 프랑코포니에도 가입되어 있다.
8.2. 스포츠
축구는 동유럽답게 꽤 잘하지만 국대는 잠깐만 잘했던 나라. 국대에 관한 것은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가 가장 유명하다. 최근에는 불가리아 백작이라는 별명을 갖고있는 맨유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알려져 있고, 레체, 유벤투스, 피오렌티나, 맨체스터 시티, 파르마, 스포르팅 등지에서 뛰었던 '''발레리 보지노프''', 이청용과 같이 볼튼 원더러스에서 뛰었던 마틴 페트로프 역시 불가리아 사람이다. 축구리그로는 불가리아 파르바리가가 있다.
하지만, 축구 응원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2019년 10월 15일에 잉글랜드와 벌인 경기에서 불가리아 관중들을 나치 경례를 하고 잉글랜드 흑인 선수 타이론 밍스에게 바나나를 던지며 비하하는 짓을 벌였다. 오죽하면 불가리아 선수들이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감독까지도 관중석에 삿대질하면서 화를 냈을까. 결국 열터진 잉글랜드에게 6-0으로 털렸으며 보리슬라프 미하일로프 축구협회장과 축구협회 이사진이 사임을 발표했고, 19일에는 대표팀 감독인 크라시미르 발라코프도 그만둔다고 발표했다. 불가리아 당국은 이 인종차별 행위에 가담한 16명의 용의자를 추적해 12명을 체포했고, 이 가운데 4명에 대해선 벌금과 축구장 출입 2년 금지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냉전 시절에는 공산권 특유의 스포츠 육성 정책에 따라 작은 나라인데도 올림픽 메달 획득 순위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역도와 레슬링에서 강세를 보였다. 1988 서울 올림픽,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6 애틀란타 올림픽까지 역도 3연패를 달성한 '포켓 헤라클레스' 나임 슐레이마놀루도 원래 불가리아 출신 선수였는데, 불가리아의 소수민족 탄압 정책으로 터키로 망명한 케이스. 1980 모스크바 올림픽때는 미국이 불참하기는 했으나 종합순위(이하 금메달수 기준)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 내기도 했다. 1984 LA 올림픽에는 공산권 보이코트로 불참했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는 당시 대한민국과 미수교 상태였지만 참가하여 금메달 10개를 따며 종합 7위에 올라 계속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하지만 공산권이 붕괴되고 이전의 스포츠 육성 정책도 무너지면서 1990년대 이후 부진한 편이다. 거기에다가 강세 종목으로 손꼽히던 역도가 선수들의 약물 스캔들로 물의를 빚게 되면서 충격에 휩싸이는 등 악재가 겹쳤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는 역도 종목에 아예 참가하지 않기로 했으며 이 대회에서 금1, 은1, 동3을 따는 데 그쳐 56년만에 하계 올림픽에서 가장 적은 수의 메달을 따는 부진을 보였다. 2012 런던 올림픽에는 더욱 부진해져서 은1, 동1에 그쳐 60년만에 하계 올림픽에서 가장 저조한 성적을 올렸고, 메달순위는 63위로 추락. 32년전 올림픽에서 3위, 24년전 올림픽에서 7위를 했던 위엄은 완전히 사라졌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은1, 동2를 획득하며 런던 때보단 나은 성적이지만 순위는 65위로, 4년전보다 2위 더 내려간 순위로 마쳤다. 여담으로 전 기계체조 선수인 요르단 요르체프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부터 2012 런던 올림픽까지 총 6번의 올림픽 출전으로 은1, 동3의 성적을 올린 바 있다. 현재까지 최다 올림픽 출전은 1972 뮌헨 올림픽부터 2012 런던 올림픽까지 총 10번을 출전한 캐나다 출신의 승마선수 이안 밀러. [10] 자세한 올림픽 최다 출전자는 링크 참조.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athletes_with_the_most_appearances_at_Olympic_Games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에서 최다 출전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귀화, 아들의 백혈병 문제 등으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옥사나 추소비티나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2016 리우 올림픽까지 총 7번 출전했다.[11] 뒤이어 요르단 요르체프가 6번 출전으로 역대 5번째로 최다 출전 기록을 갖고있다. 동계 올림픽에서는 금1, 은2, 동3개를 딴 것이 전부이다. 금메달 1개는 바이애슬론에서 나왔고, 유럽국가로는 특이하게 쇼트트랙에서 은메달 2개를 딴 바 있다. 여자 쇼트트랙의 '''예브게니야 라다노바'''는 유럽 선수 중에서는 드물게 2000년대에도 쇼트트랙에서 세계 상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던 선수다.
운동기구 불가리안 백의 종주국.
8.3. 음식
불가리아는 유럽에서 물가가 최하위권이기 때문에 일인당 3~4 만원 정도면 고급 식당에서 풀코스로 먹을 수 있다.
의외로 동유럽에서 음식과 술이 맛있는 나라이다. 술의 경우 와인과 자두, 살구등 과일을 증류해서 만든 발칸반도의 전통주 라키야가 유명한데. 그 중에서 와인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유럽의 와인 강국들의 와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맛과 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부르드, 텔리쉬, 에니라, 카다르지나등의 여러 와인 브랜드들이 있으며, 이 중 마부르드는 불가리아 현지에서만 나는 토착 포도 품종으로만 양조된다고 한다.
음식의 경우 기본적으로 유럽권 국가 답게 빵이 주식[12] 이고, 전통요리로는 요구르트로 만든 수프 요리 타라토르와 수파 탑체타, 잘게다진 고기 완자를 불에 구운 고기 완자구이 케바프체, 고기와 채소를 꼬치에 끼워 불에 구워 만드는 꼬치구이 쉬시체타, 단단한 도자기 질그릇에 고기, 달걀, 채소등을 넣고 오븐에 넣어 끓여 만드는 불가리아식 찌개 요리 카바르마, 치즈를 넣어 만든 치즈파이 바니차, 피망, 오이, 토마토 위에 양유로 만든 불가리아 전통 치즈 시레네 덩어리를 뿌려서 만드는 샐러드 샵스카, 간 감자를 양파, 달걀과 섞어서 기름에 부쳐 만드는 감자 요리인 파타트닉 등이 있다. 그 중 요구르트로 만든 냉수프 타라토르는 불가리아 현지에서도 한국의 냉면 비슷하게 여름 별미로서 인기가 굉장히 높다고 한다. 타라토르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식 찌개 요리 카바르마와 샐러드 샵스카도 굉장히 맛 있는 편이다. 역사적, 지리적으로 터키 요리와 그리스 요리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터키 요리, 그리스 요리와 유사한 부분도 많이 있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음식 중에 팔내니 추슈키(피망에 속재료를 채워 요리한 것)가 있는데 영어로는 stuffed pepper라고 부른다.
길거리 음식으로는 메키차(мекица mekitsa)[13] 라는게 있는데 한국의 호떡과 비슷하다.
한국에선 불가리아 음식 하면 요구르트가 잘 알려져 있지만, 현지인들은 좋은 것을 알면서도 자랑거리로는 삼지 않는다.[14] 대다수가 특별히 선호하는 요구르트 브랜드는 없으며 그냥 싼 게 좋은 거라고 한다(...). 한국에서 파는 요구르트 브랜드 중 도마슈노(домашно)[15] 는 불가리아어로 '집에서 만든(homemade)'이라는 뜻이다.
의외로 볶음밥 요리도 존재한다. 필레 스 오리스(Пиле с ориз)가 그것인데, 이 요리의 조리법은 삶은 닭고기를 쌀과 양파, 채소, 소금 등을 섞어서 기름에 볶은 다음, 야채 국물을 넣어 오븐에 넣어 구워서 완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단 바다와 접해있는 해안국임에도 해산물 요리는 해물 요리가 많은 아랫나라 그리스에 비하면 빈약한 편으로, 바닷물고기나 게, 새우, 오징어, 문어 같은 해산물의 경우 흑해 연안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먹고, 주로 해산물보다는 잉어나 송어 같은 민물 하천에서 서식하는 민물고기들을 주로 많이 먹는다. 다만 최근에는 공산당 1당 독재 체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국가로 정치 민주화와 시장경제 개혁개방이 이뤄지면서 생선초밥이나 사시미, 새우튀김 등 일본산 해산물 요리들이 들어와 수도 소피아와 제2 도시인 플로브디프 같은 내륙 지대 도시들을 중심으로 초밥 같은 해산물 요리들을 취급하는 음식점들이 속속 생기는 등 현지의 20~30대의 청장년층 세대들도 해산물을 먹기도 한다.
9. 외교
10. 군사
11. 주요 도시
- 주요 도시들
12. 출신 인물
- 유명 인물(위인들까지 포함)
- 이반 릴스키(1레바 동전에 초상 있음)[16]
- 바실 레프스키
- 흐리스토 보테프
- 이반 바조프
- 알레코 콘스탄티노프(100레바 지폐에 초상 있음)
- 츠베타나 피론코바
- 이리나 보코바 - 유네스코의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 바바 반가
- 판초 블라디게로프
- 토도르 지프코프
-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 발레리 보지노프
- 마르틴 페트로프
-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 키릴과 메토디(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 그리고르 디미트로프 - 불가리아의 현역 테니스 선수, 마리아 샤라포바의 전 애인으로도 유명
- 네비아나 블라디노바 - 불가리아의 현역 리듬체조 선수. 리우 올림픽에 개인종합 7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 미할 스파소프 아슈미노프 - 약칭 미카엘. JTBC에서 방영하는 요리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이다.
- 루세프 - wwe 프로레슬러.
- 니나 도브레브
13. 불가리아 국적, 출신의 캐릭터
※ 해당 국가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는 제외한다.
[1] ''Republika Bǎlgariya''[2] 1989년 900만 명을 찍은 후 출산율의 저하와 해외이민으로 인구가 격감하고 있다. 2016년 현재엔 1940년대 후반 수준까지 인구가 줄어 2019년에는 7백만명 미만이 되고 말았다.[결함있는민주주의] 6.71점[3] 2019년 현재는 13.4%까지 증가하였다.[4] 키릴 약자로 НДСВ, 영어식 표기로는 NMSII(National Movement Simeon II)을 창당했다. 참고로 이 당은 2007년 이름을 '안정과 진보를 위한 국민운동연합'(National Movement for Stability and Progress)으로 변경했다.[5] 사실 그가 이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유년기에 왕위에 있었던 것이 한몫 했다. 그가 부왕인 보리스 3세의 급사로 인해 왕이 된 것이 1943년, 6세 때의 일이다. 공산혁명으로 인해 강제 퇴위할 때의 나이도 1946년의 일이었다. 당연히 어린 나이에 잠깐 왕위에 앉아있기만 하다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니 동정론이 어느 정도 있을 수 밖에는 없는 편.[6] 이는 세르비아, 헝가리, 알바니아, 체코, 폴란드 등 이전 공산당이 집권했던 다른 동유럽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공산정권 몰락 이후 치뤄진 총선, 지선에서 구 공산당 계열 후신 정당들이 약진했을때 이거 공산당 독재정치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는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당시 동유럽권 나라들에서 돌아다녔을 정도였다.[7] 통계별로 차이가 있다.[8] 이슬람교의 경우 오스만 제국시절에 이주한 터키인이 믿고 있지만, 오스만 제국 시절에 개종한 포마크인도 믿고 있다.[9] 19세기에 불가리아에 온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존재해 있다.[10] 유일한 10번 출전자. 9번 출전에는 두 명이 이름을 올렸지만 10번은 이안 밀러가 유일하다.[11] 심지어 이 선수는 2020 도쿄 올림픽까지 출전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자신이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보고싶다고.[12] 아침식사로 바니차(banitsa)라는 똥모양으로 말아 구운 빵을 주로 먹는다.[13] 복수형으로 메키치라고도 한다.[14] 외국인들이 김을 좋아하지만 한국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자랑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15] 같은 슬라브어파인 러시아어에서는 (다마쉬늬)Домашный라고 한다.[16]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릴라 수도원의 건립자다.[17] 미국과 불가리아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다.[18] 확실치 않으며,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