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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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조경식은 1887년 12월 14일 경상도 함안도호부(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주동한 뒤, 조상규 (趙相奎)·조성규·조형규(趙炯奎)·조용효(趙鏞孝)·조정래(趙正來) 등과 함께 피신하여 다시 군북장날인 3월 20일에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한편 이 계획을 인근지역 주민들에게 알리는 등 사전준비를 진행하였다.
3월 20일 오전 9시, 군북면 동촌리 신창학교에서 50여명의 학생들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자, 아침 일찍 장터에 나가있던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일제히 궐기하였다. 오후 1시경, 3천여명의 대대적인 시위군중이 만세운동을 전개하자 군북경찰주재소의 경찰과 이곳에 파견되어 있던 마산 중포병대대 병력 16명이 출동하여 공포를 발사하여 시위대열을 해산시켰다.
오후 5시경, 5천여명으로 늘어난 시위군중은 다시 궐기하여 경찰주재소로 달려갔다. 사태의 급박함을 느낀 일본 경찰이 공포를 발사하자 격노한 시위군중은 투석으로 대항하며 주재소의 유리창과 벽을 파괴하였다. 그러자 일본 군경은 시위대열에 조준사격을 감행하여 21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18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다.
이때 그도 체포되었고, 1919년 8월 21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함안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0년 9월 1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조경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