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보카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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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ovanni Boccaccio
(1313 ~ 1375)
1. 개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작가. 동시대 시인인 페트라르카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그의 대표작인 '데카메론'이 산문작품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시인보다는 르네상스 산문 문학의 대표자로 평가받고 있다(운문문학의 대표자는 물론 페트라르카).
2. 생애
보카치오의 출생연도는 불분명하지만 1313년으로 추정된다. 그는 피렌체, 혹은 체르탈도 인근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이자 환전상이었다. 1326년 아버지가 나폴리 은행의 점장이 되어 그의 가족은 나폴리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보카치오는 은행에서 수습생으로 일했지만 그에게 은행에서 일하는 것은 맞지 않았던 듯하다. 그는 아버지에게 대학에서 법을 배우게 해 달라고 설득하여 6년동안 나폴리 대학에서 법, 문학, 과학 등을 배웠지만 이 또한 은행업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지만 나폴리에서 당시 이탈리아 반도를 휘감고 있던 문예 부흥의 분위기를 접하고 고전 문학과 인문주의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1330년대에 아버지에 의해 나폴리 왕에게 소개받으면서 나폴리 왕의 딸을 만났는데, 이 때 보카치오는 사랑에 빠져 시에서 종종 그녀를 묘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다 1338년에 아버지가 피렌체에서 파산하고 어머니는 그 후 사망하였다. 보카치오는 1341년 전염병을 피해 고향인 피렌체로 돌아가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347년 라벤나에서 후원자를 찾기 시작했는데 1349년에 그의 아버지가 피렌체에서 유행한 흑사병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그는 가족을 모두 잃게 되었고, 보카치오는 생업을 위해 피렌체시의 공무원이 되었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카치오는 피렌체의 흑사병을 피해 교외로 피난한 10명의 남녀가 열흘간 편지를 주고받는 소설인 '데카메론'을 창작했으며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 된다.
1350년부터 보카치오는 본격적으로 피렌체 정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 당시 9살 선배이자 대시인인 페트라르카를 만났는데, 페트라르카는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멘토, 혹은 롤모델 역할을 했다. 보카치오는 페트라르카를 만나면서 고전 연구를 하게 되었으며, 그의 시 창작 방식은 페트라르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페트라르카는 보카치오에게 창작한 작품을 태우거나 팔지 말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페트라르카의 설득 덕분에 현재 보카치오의 작품들은 산토 스피리토 수도원에 온전히 남아있다. 1374년 페트라르카가 죽자 보카치오는 크게 낙담하여 모든 일을 그만두고 체르탈도에서 은거했으며 이듬해인 1375년에 사망하였다.
3. 작품 목록
- 카치아 디 디아나(Caccia di Diana, 1334~1337)
- 필로콜로 (Filoccolo, 1336~1339)
- 필로스트라토 (Filostrato, 1338)
- 테세이데 (Teseide, 1340~1341)
- 닌팔레 다메토 (Ninfale d'Ameto, 1342 ~ 1343)
- 아모로사 비시오네 (Amorosa visione, 1342 ~ 1343)
- 피아메타 (Fiammetta, 1343 ~ 1344)
- 닌팔레 피아소라노 (Ninfale fiesolano, 1344 ~ 1345)
- 데카메론 (Decameron, 1348 ~ 1353, 1370년경 개정)
- 치발도네 말리아베키아노(Zibaldone Magliabechiano, 1351–1356)
- 유명한 남성들의 운명(De Casibus Virorum Illustrium, 1355)[1]
- 유명한 여성들에 대해(De mulieribus claris 1361~1362)[2]
- 코르바치오(Corbaccio, 1365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