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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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poli
나폴리 / Comune di Nap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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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문장

행정
국가

지역
캄파니아
시간대
UTC+1
인문 환경
광역 인구
2,198,000명
인구
967,000명
인구 밀도
8,247명/km²
면적
117.27km²
1. 개요
2. 역사
2.1. 여명기
2.2. 시칠리아 왕국 시대
2.3. 나폴리 왕국 시대
2.4. 프랑스 혁명과 양 시칠리아 왕국 시대
2.5. 이탈리아 통일 후
4. 문화
5. 지형
5.1. 캄피 플레그레이
6. 교통
7. 치안
8. 구경거리
9. 음식
10. 스포츠
11. 얘기거리
12. 서브컬쳐에서의 나폴리

Vedi Napoli e poi muori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 이탈리아어: Napoli
  • 영어, 프랑스어: Naples
  •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Nápoles
  • 독일어: Neapel
  • 그리스어: Νεάπολις(고대 그리스어), Νάπολη(현대 그리스어)
  • 러시아어: Неапол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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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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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밀라노에 이은 이탈리아 제3의 도시.
이탈리아 캄파니아의 주도(州都)이자 중심 도시며, 이탈리아 통일 전까지 천년 가까이 북이탈리아와는 전혀 판이한 역사를 이어온 남부 이탈리아의 정치적 중심지였다. 지금도 남이탈리아의 중심 도시이다. 지중해에 닿아 있는 항구도시로 영어로는 네이플스(혹은 네이플)라고 한다. 나폴리라는 이름에서 보여 주듯이 그리스의 식민도시 네아폴리스가 그 기원이지만 아직까지 학계에선 논란이 있다.
참고로 위 사진에 보이는 높은 산은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수비오 화산이다.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한 날, 북풍이 아닌 동풍이 불었다면 폼페이 대신 나폴리가 멸망했을 것이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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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의 중근세를 함께 한 카스텔 누오보. 이곳을 장악해야 도시를 얻을 수 있었다.

2.1. 여명기


개요에서 기술되었듯 논란이 있지만 옛 나폴리 땅에 그리스인들이 식민지 도시국가인 네아폴리스를 세웠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네아폴리스라는 단어는 네아가 new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폴리스도시의 의미이다. 즉, 신도시. 신도시가 있다는 건 구 도시도 있다는 의미고, 그 구도시가 다름 아닌 후에 파르테노피아 공화국의 어원이 되는 파르테노페(Parthenope)이다. 원래 그리스 정착지는 기원전 20세기쯤부터 새워졌지만 기원전 9세기쯤에 지금의 나폴리 시의 남서쪽(지금의 카스텔 산 엘모 (Castel Sant' Elmo)가 있는 곳 근처)에 파르테노페가 새워져서 번성하다가 기원전 6세기쯤에는 쇠퇴하고서는 약간 북동쪽 내륙(지금의 나폴리 중심가)으로 들어가서 재건한 게 네아폴리스가 되었다고 하며 현대에는 둘 다 나폴리시에 속한다.
그리스인들이 세웠다지만 쿰마인들이 주민이었으며, 후에 에트루리아의 연맹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라티움족의 반란에 의해 에트루리아가 엎어지고 그 자리에 로마 왕국이 들어서면서 나폴리도 로마의 일원이 된다. 긴 로마 제국의 황금기에도 끝이 찾아와 훈족게르만족의 발흥에 의해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나폴리 지역에는 동고트인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동고트 왕국(493~540)이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게 멸망당하고, 나폴리는 동로마 제국의 영역이 된다. 이때부터 나폴리는 1300여 년간 북부, 중부 이탈리아(롬바르디아 왕국, 교황령)과 다른 역사를 걷게 된다.

2.2. 시칠리아 왕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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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중반,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온 기사인 루제로 1세가 동로마 제국령이었던 남이탈리아를 점령했다. 11세기 후반에 아랍 사라센 왕국령 시칠리아 섬까지 점령한 이들은 2대째인 루제로 2세가 대립교황 아나크레투스 2세로부터 왕위를 인정받아 왕국으로 성립하기에 이른다. 노르망디는 그 기원이 바이킹이니, 바이킹이 지중해까지 진출해 세운 왕국이 바로 이 시칠리아 왕국이다.

2.3. 나폴리 왕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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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왕국의 왕통이 혼인을 통해 신성로마제국의 호엔슈타우펜 왕조에게로 넘어가자, 황제와 사이가 나쁜 교황의 요청으로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아우며 앙주·멘·프로방스의 영주인 샤를(카를로 1세)이 와서 호엔슈타우펜 왕조를 절멸시키고 새로운 시칠리아 왕이 돼 앙주 왕조를 세웠다. 샤를은 나폴리의 영주로서는 괜찮았으나 시칠리아에서는 동로마 제국 정복을 위한 중과세로 인해 민심을 잃었고, 결국 1282년 3월 30일에 시칠리아의 만종이라는 학살사건이 일어났다. 샤를 왕과 로마교황에게 불만을 품은 시칠리아 주민들이 프랑스계 주민 4000여 명을 학살하고 혁명을 일으킨 이 사건으로 인해 샤를 왕은 시칠리아 섬의 지배권을 잃고 시칠리아 왕국은 분열돼 시칠리아 섬에는 바르셀로나 가문의 아라곤 왕 페드로 3세가 왕위에 등극하고 남이탈리아는 앙주 왕조의 통치하에 놓인다. 당분간은 서로가 시칠리아 왕국이라고 주장했지만, 수도가 나폴리인 반도측이 편의상 구분하기 위해 나폴리 왕국이라고 불리기 시작하면서 이 명칭이 보급되었다.
앙주 왕가의 적통이 끊기면서 지파인 앙주-두라초 가문과 앙주 왕가를 모계로 계승한 발루아-앙주 가문이 내분을 벌려 발루아-앙주 가문의 르네(레나토) 1세가 나폴리 왕위를 획득했으나, 1442년 아라곤왕 알폰소 5세가 르네 1세를 무찌르면서 한동안 중단되었던 아라곤과 나폴리의 싸움은 아라곤의 승리로 끝났다. 프랑스 왕 샤를 8세가 모계로 앙주 왕가의 계승을 주장하며 1494년에 나폴리를 침공해 잠깐 나폴리 왕위에 오르기도 했으나(이탈리아 전쟁) 1504년 아라곤왕 페르난도 2세에 의해 앙주 왕가의 권리는 소멸되었고 나폴리 왕국은 당분간 아라곤 연합왕국(스페인)의 일부가 된다. 이후 2세기 동안 나폴리 지역은 왕국의 지위를 잃고 나폴리 총독 관할지역이 되는 신세가 된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일어나 잠시 오스트리아령이 되었다가, 폴란드 계승전쟁에서 카를로 7세에 의해 독립 왕국의 명칭을 되찾기까지...

2.4. 프랑스 혁명과 양 시칠리아 왕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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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카를로 7세가 죽고 불과 30년도 지나지 않아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아 파르테노피아 공화국(1799~1806)이 세워지고, 나폴레옹에 의해 점령당했다가(1806~1815), 나폴레옹 실각 후 빈 회의의 결과에 따라 부르봉 왕가가 복귀하고 시칠리아 왕국과 병합되어 도스 시칠리아 왕국(양시칠리아 왕국, 1816~1861)이 세워진다. 이 왕국은 이탈리아 통일전쟁이 일어나 주세페 가리발디에게 점령당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2.5. 이탈리아 통일 후


이탈리아의 통일로 결국 남이탈리아는 1300년 만에 최초로 (북)이탈리아에 예속되었고, 훗날 이탈리아의 도시가 되었다. 일개 지방 도시로 전락한 나폴리는 그 성세가 쇠퇴하여 많은 남부 이탈리아인들이 미국, 아르헨티나 등 신대륙으로 이민을 떠나게 됐다. 제 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3년에는 연합군의 공중 폭격을 받았으며 같은 해 10월 1일 해방되었다.
나폴리는 세계적인 관광도시에 공업도 나름대로 꽤나 발달해왔지만, 남부 각지에서 빈민들이 몰려들면서[2] 사회 문제 등이 심각하게 되었으며 마피아 세력의 중심지로 전락하기도 했다.
나폴리 역에서 내리면 성격 안좋아보이는 깡패들이 종종 보이는 재래시장을 발견할 수 있고 , 폰팔이 들이 시도때도 없이 붙으며, 길 가다 이유없는 시비를 거는 놈들도 널렸거니와, 번화가에서 벗어난 내부로 들어가면 지나가던 운전자가 빨리 안전한 데로 나가라고 친절하게 조언해주는 동네이다.[3] 나폴리가 위치한 캄파니아 주의 1인당 GDP는 2008년 PPP 기준 18,900$ 정도로 동유럽을 제외하면 유럽 최저 수준이었다.
즉, 원주민인 쿰마인-그리스-에트루리아-고대 로마-동고트족-동로마 제국-노르만-신성로마-프랑스-아라곤-합스부르크-나폴레옹 제국-이탈리아 통일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민족의 지배를 받은 땅이라 할 수 있다.

3. 인구




4. 문화


동로마 문화에 이어 스페인의 영향을 이어받았고, 17세기에 후세페 데 리베라에 의해 번성한 화파인 나폴리파의 중심지였으며, 독특하면서도 환상적인 풍경 묘사로 18세기까지 지속되었다.

5. 지형


베수비오 화산의 서쪽 기슭까지 이르고 있으며 따라서 시가는 동쪽으로 차차 높아지는 경사지에 자리하고, 토양은 비옥한 화산재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아열대산인 오렌지의 가로수가 끝없이 연속되는 모래 해안은 배후의 베수비오 화산과 더불어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따라서 예로부터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유명한 속담이 전해올 만큼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하나이다.
기후 자체가 연중 내내 온난하며 주변에는 오렌지·올리브같은 지중해성 농작물들이 번성하게 자란다. 세계 3대 미항[4] 의 하나로 알려졌으나 실제로 가 보면 그다지 실감나지는 않을 정도.[5] 생각외로 가을과 겨울엔 비가 많이 내려서 연간 강수량은 1000mm 정도로 많은 편.
대개 선원들이 꼽는 미항은 항구에 들어올 때 산이 보이는 곳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항구에서는 산이 잘 보이지 않고, 선원들이 산이 있는 내륙으로 가기 힘든 것을 감안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외에도 사실 나폴리가 아니라 나폴리 근교의 소렌토나 아말피 등이 아름다워 미항으로 부르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6]
또 사실 항구 자체는 그다지 미항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변의 카프리 섬이나 혹은 해안 절벽에 따닥따닥 붙은 아기자기한 마을이 멋진 경관을 이룬다. 따라서 나폴리에 가면 도시도 멋있지만, 차를 빌려서 주변의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며 지중해를 음미하길 추천한다.
남쪽으로 사철을 이용해 베수비오, 폼페이, 소렌토로 갈 수 있다.
베수비오 화산 인근에 있어서 폼페이처럼 화산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배수비오 화산의 분화로 인해 나폴리가 큰 피해를 입은 사례는 없다. 나폴리 시민들은 나폴리의 수호성인인 성 야누아리오(Ianuarius)가 화산으로부터 나폴리를 지켜준다고 믿고 있다.

5.1. 캄피 플레그레이


초화산인 캄피 플레그레이가 도시 옆에 있다! 구글 어스로 나폴리 왼쪽을 보면 분화구같이 생긴 게 여럿 있는데 그게 바로 캄피 플레그레이와 그 기생화산[7]이다.

어쨌든 이게 터질 경우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가 생기고 이탈리아, 알바니아 등 남유럽 국가들은 국가 막장 테크의 지름길로 갈 게 확실하기에 학계에서 주목받는 화산 중 하나이다. 마지막 분출은 1538년. 사실 위의 베수비오 화산도 캄피 플레그레이의 기생화산에 불과하다. 단지 폼페이 때문에 더 유명할 뿐.
참고로 캄피 플레그레이는 초화산 중 인구밀집지대에 가장 가깝다(!).[8] 어쨌든 이게 터지면 M 7급의 대지진, 산사태와 이로 인한 쓰나미[9], 화쇄류 등으로 상술했듯이 수백만에 달하는 인명피해가 생길 것이다. 유튜브에 보면 쓰나미로 인해 이탈리아는 물론 스페인, 그리스, 북아프리카, 발칸 반도, 몰타, 터키,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키프로스 등 지중해 연안이 모조리 쓸려나가는 수백~수천미터의 메가 쓰나미 발생 위험이 있다는 시뮬레이션도 있다! 거기다가 이탈리아 남부는 농업과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그 농업과 관광업의 기반 시설인 농지와 유적 등이 최소 수십 센티미터에서 최대 수 미터의 화산재에 파묻혀 날아가 버리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화산재로 인한 항공편 결항까지 감안하면 경 단위의 피해와 유럽 경제의 전체적 마비까지도 예상된다. 또한 네안데르탈인의 멸종과 마지막 빙하기의 용의자로 지목되는 3만 9천년 전 분화 수준으로 대분화를 할 경우 이탈리아와 유럽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기근 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인구밀집지대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초화산은 대략 그리스의 산토리니 정도 되겠다.

6. 교통


로마에서 교통지옥을 체험했다면 나폴리에선 추억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훨씬 안 좋다.[10] 건널목에 신호등이 없는 곳이 꽤 많아 길을 건널 때도 조심해야할 정도.
한때 (구시가지만 치자면)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도시였던 명성이 있는 만큼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을 크기가 아니며, 지하철 시스템은 노선 자체가 복잡하면서도 시설은 매우 열악하고, 트램은 관광구역을 벗어나 있어 사실상 도움이 안 되며, 버스는 노선도 자체가 없어서 불친절하다. 일단 지하철은 1호선과 교외선 및 푸니쿨라가 트레니탈리아 소속, 2/3호선이 나폴리 메트로 소속이며, 트램과 버스 운영사가 또 다르지만 모두 통합권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기차의 경우 중앙역인 나폴리 가리발디(Napoli Garibaldi) 단 하나만 있고[11], 이 안에 국철인 트레니탈리아 노선과 사철인 치르쿰베수비아나(Circumvesuviana)[12]가 다니고 있다. 당연하지만 사철은 유레일 패스를 사용할 수 없는데, 사실상 교외선 전철이나 다름없다. 가리발디 역 근방에 이탈리아 대표 시외버스인 시타(Sita)가 있으니 참고.

7. 치안


범죄율이 막 생각하는 대로 최악은 아니지만 높은 편이다. 이탈리아 3대 마피아 세력[13] 중 하나인 카모라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유명 관광지 근처(나폴리역 근처는 위험하니 조심하자)는 순찰 경관도 많아서 위험하지 않으며 소매치기 등의 범죄를 제외하고는 관광객이 체감할 정도는 아니지만 북부 지역인 스캄피아 지역은 공동주택의 관리 실패로 마약 거래의 온상지라서 치안이 좋지 않다.
영화 고모라에서는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 마피아 세력, 동네 양아치들이 날뛰는 마경으로 그려진다. 심지어 이 영화의 원작은 나폴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쓴 르포다.[14] 이들과 연루된 부정부패도 극심한 편. 나폴리의 쓰레기 대란도 쓰레기 수거업을 독점하고 있는 마피아와의 갈등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마피아 세력이 뿌리깊이 박혀 있다.
도시 전체적으로 쓰레기가 많은 편인데다 관광지를 벗어나면 노숙자들도 보이는 등 위생 상태가 좋지 않다는 생각이 꽤 들 것이다.

8. 구경거리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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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글
나폴리 역사 지구
영어
Historic Centre of Naples
프랑스어
Centre historique de Naples
국가·위치
이탈리아 나폴리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95년
등재기준
(ii)[15], (vi)[16]
지정번호
726
  • 아르테 카드 (Arte Card)
나폴리 혹은 캄파니아를 통합하여 사용 가능한 패스. 3일 사용이 가능하며, 가격은 각각 12유로와 27유로이다. 나폴리 패스는 나폴리 시내에만 있는 유적지/박물관 3개 통과와 나폴리 시내의 교통이 제공되며, 캄파니아 패스는 나폴리 패스에 사철(치르쿰베수비아나)과 나폴리 이외 지역의 유적지/박물관까지 2개 통과가 가능해진다. 이러다보니 사실상 폼페이와 국립박물관의 통합권으로 쓰이는 실정.
  • 국립 고고학 박물관 (Museo Nazionale)
지하철 박물관 역(뮤제오 역, 나폴리 메트로 소속)과 직통으로 연결된 곳이나 가리발디 중앙역(트레니탈리아 소속)에서 간다면 5분 거리 떨어져 있는 카보어 역에서 걸어가야 한다. 캄파니아 지구에서 발견된 유물이 모여있는데 특히 폼페이에서 퍼온 것이 여기에 모셔져 있어서 폼페이에 다녀오기 전에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되었다. 성인에게만 개방되는 비밀의 방에는 환락의 도시 폼페이에서 건져올린 춘화와 남근상 등이 전시되어있다. 19세기에는 '교양있는 남성'만 관람할 수 있었고 2005년에야 일반인들에게 완전히 개방되었다.
  • 나폴리 역사지구 (Spacca Napoli, 스파카 나폴리)
가리발디, 포에리오, 카르보나라, 카보어, 단테, 메디나, 무니치피오 거리로 감싸여있는 구역. 구 시가지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무스(로마시대의 주택가)들을 보유하고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17] 나폴리의 복잡한 일상을 그대로 구경할 수 있는 지구로, 매우 좁은 골목에 온갖 차량과 사람들이 지나가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나폴리에서 치안이 그나마 가장 좋은 지역 중 하나이자 자주 듣던 나폴리식 생활양식[18]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라 자주 지나게 될 것이다.
  • 나폴리 대성당
나폴리 역사지구에 있는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 가톨릭 나폴리 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하지만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의 대성당에 비하자면 규모로는 확실히 밀린다. 하지만 3세기의 순교성인인 성 야누아리오(이탈리아어: 젠나로)의 피를 보관한 것으로 굉장히 유명한 성당이다. 야누아리오의 피는 당연히 응고되어 있는데, 한해에 18번 액체가 되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이 기적은 매년 5월과 9월 2회에 걸쳐 외부에 공개된다. # 1980년에는 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마침 그해에 나폴리 지진이 일어나서 '기적이 안 일어난 해에는, 나폴리에 재앙이 온다'는 이야기가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 산 로렌초 마조레 성당 (San Lorenzo Maggiore)
  • 산타 마리아 에디치아카 성당 (Santa Maria Egiziaca)
  • 산타 테레사 아 키아이아 성당 (Santa Teresa a Chiaia)
  • 카펠라 산세베로 (Cappella Sansevero)
나폴리 역사지구에 있는 작은 성당. 이곳에 방문하는 이유은 오직 하나, 바로크 시대의 걸작인 주제페 산마르티노의 "베일을 쓴 그리스도" 조각상을 보기 위해서다.
  • 카스텔 누오보 (Castel Nuovo)
새 성이라는 뜻으로, 무니치피오 광장에 있다. 한때는 방어용 성채 용도로 지었으나 지금은 민족문화전시관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원래 주인장은 앙주가의 샤를 1세. 겉모습은 상당히 그럴싸 하지만 들어가도 별로 볼 것은 없는 편. 로마의 산탄젤로와 비슷한 취급이다.
  • 카스텔 델 오보 (Castel Dell'ovo)
누오보 성 이전에 쓰여진 요새. 여기서 나폴리 항구의 파노라마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별도의 입장료가 없는데, 그럴 만한 게 이 성 자체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
  • 카스텔 산 엘모 (Castel Sant' Elmo)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야 볼 수 있는 성. 이곳에서 나폴리 전경 및 야경을 감상할 수 있지만, 우범지역에 위치한 관계로 안전에 주의가 필요하다.
  • 레알레 궁전
  • 테트로 산 카를로 (산 카를로 극장)
  • 나폴리 소테라네아 (Napoli Sotterranea)
뭔가 어트랙션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적지. 로마시절 만들어진 지하 저수지를 2차 세계대전때 개조 및 확장하여 만든 지하 피난지이다. 스파카 나폴리 지구 각지에 숨겨진 비밀문을 통해서 드나들 수 있는 구조로, 터키 카파도키아의 데린쿠유 지하도시와 비슷한 분위기의 사적지이다.
  • 베수비오 화산
가리발디역에서 사철인 치르쿰베수비아나를 통해 갈 수 있다. 그렇다, 화산재와 쇄설류 덤프로 폼페이를 집어삼킨 그 악명 높은 화산이다. 엘코라노 역에서 하차하여 버스를 타고 이동한 다음 노출된 땅 위로 등산까지 해야하니 여름엔 가급적 방문을 피할 것. 한편 방송 등을 통해 익히 알려진 가곡 푸니쿨리 푸니쿨라(Funiculi-Funicula)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다. 1880년대 이곳에 케이블 카[19]가 들어섰는데, 위험할 것 같다며 아무도 타러가지 않는 통에 골머리를 썩히던 설립자가 묘안을 내서 이 전차를 내용으로 한 노래를 작곡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이 노래. 이후 노래가 대히트를 기록한 덕분에 사업 또한 대성공. 재밌는 건 가곡의 내용은 '화산은 불을 내뿜어도 가까이 가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라는 내용이지만 실제로 화산 때문에 위험해서 현재 케이블카는 폐쇄되었다. (..)
사철 치르쿰베수비아나 폼페이 스카비[20]에서 접근할 수 있다. 기타 자세한 것은 폼페이 항목 참고.
가곡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orrento)"로 유명해진 도시이지만 트레비-로마의 휴일과 같은 상관관계로 정작 이 가곡을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여튼간 이탈리아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남부 휴양지이며, 실제로도 로마시절부터 네아폴리스 지역 귀족들의 휴양지로 이용된 곳이었다.
  • 프로치다 섬(procida)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나폴리와 가장 가까운 섬이다. 여러분이 나폴리 사진을 검색하다가 노랗고 하늘색의 하얀건물들에 앞에 나무배들이있다? 그건 나폴리가 아니다. 프로치다섬의 한 마을의 사진이다. 나폴리에서 아무리 뒤져봐도 그 광경은 못 본다. 나폴리 메인항에서 배를 타고 삼십 분이면 간다.

9. 음식


이탈리아 하면 누구나 떠올릴 스파게티(토마토 소스 및 봉골레)와 피자의 발상지가 이곳 나폴리인 만큼 누구나 이곳을 방문한다면 원조의 맛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작 실제로 가보면 나폴리는 식당이 별로 없는 게 함정. 대부분이 피제리아(Pizzeria)[21] 고, 극히 일부만 고급 식당으로 되어 있으며, 어지간한 식당들 모두 시에스타 타임을 갖기 때문에 도저히 여유를 두고 먹을 수 없게 만든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딱 점심 타임과 저녁 타임에만 운영한다.
그나마 피제리아에서 나폴리 피자의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 위안을 삼자. 어지간한 피제리아가 모두 본격적인 화덕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어서, 미리 만들어서 파는 곳이 아닌 이상 아무데나 들어가도 평균 이상의 맛이 나온다. 가격 또한 고급 레스토랑보다 저렴한 편이다. 추천할 집으로는 디 미켈레, 디 마테오, 지노 솔비로(Sorbillo) 같은 곳이 있다.
이탈리아 국기를 닮은 마르게리타 피자를 최초로 개발해 만든 원조집은 Brandi라는 리스토란테이며, 레알레 궁전과 플레비스치토 광장 사이 위쪽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자리세 1.30유로가(2017년 3월 기준) 별도임을 참고할 것.
나폴리타노라는 지역 특유의 피자도 유명하다. 나폴리탄 스파게티 또한 이곳의 지명을 땄지만 사실상 일본 요리다. 진짜 나폴리 사람들은 요리로도 안 쳐준다고.
진짜 나폴리 유래의 스파게티는 "알리오 에 올리오"가 있다. 마늘과 올리브유로만 맛을 낸 서민음식.

10. 스포츠


연고 축구팀으로 SSC 나폴리가 있다.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 팀 소속이었다. SSC 나폴리세리에 A에서 만년 중하위권이었으나, 1984년 6월에 마라도나를 영입한 후 1984-85 시즌 리그 3위, 이후 1989년까지 2번의 리그 우승, 코파 이탈리아 우승, UEFA 컵 우승 등 숱한 우승컵을 잇따라 들었다.
하지만 마라도나가 떠난 후에는 추락하여 3부리그까지 내려가고, 파산까지 당하였다. 하지만 영화인 데 라우렌티스가 인수하여 2007년에 드디어 다시 세리에 A 무대를 다시 밟았다. 그의 의욕 넘치는 투자에 점점 성적이 올라오더니, 10-11 시즌엔 감독 마짜리가 이끄는 삼각편대의 힘으로 리그 3위까지 차지하며 개편 후 UEFA 챔피언스리그에 처음 진출하였다. 그 위에는 오직 밀라노 연고의 두 팀뿐이었다. 그 후 11-12시즌엔 코파 이탈리아 우승, 12-13시즌엔 세리에 A 준우승까지 하였다.
그 후 13-14 시즌엔 인테르로 간 마짜리의 후임으로 라파엘 베니테스를 선임하고 카바니를 판매한 돈으로 리빌딩을 거쳤는데, 챔스에서 죽음의 F조에 드는 불운을 겪었고 유로파에서 삽질하였지만 리그에서 3등을 하고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했다.

2005년 디에고 마라도나치로 페라라의 은퇴 경기에 방문했을 때의 영상인데, 과연 종교가 따로없는 무시무시한 인기를 자랑한다. 실제로 마라도나교가 존재하기도 하다. 이런 과거 때문에 아직까지도 나폴리에서는 마라도나가 살아있는 으로 추앙받는다고 한다. 디에고 마라도나의 부고가 전해진 후, SSC 나폴리의 홈 구장도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 개칭했을 정도.
한 가지 더욱 재미있는 점은 나폴리의 한 레스토랑의 입구 옆에는 마라도나를 위한 작은 제단이 걸려있는데, 마라도나의 사진이 당시 SSC 나폴리에서 활동하던 당시의 사진으로 되어있다. 가게 주인이 말하길 마라도나가 있을 때만큼 나폴리가 축구를 잘한 적이 없었다고. 그래서 비록 마라도나아르헨티나 사람이긴 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이렇게 제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 이 가게마저도 유명세를 타면서 또 다른 랜드마크로 급상승.

축구를 사랑하고, 그만큼 축구에 예민하다. 이과인통수 때문에 유벤투스 유니폼만 봐도 분노 섞인 욕설을 들을 수 있다. 나폴리의 라이벌인 유벤투스로마의 유니폼을 입고 나폴리에 가진 말자.

11. 얘기거리


세계 굴지의 성악가들이 주로 즐겨부르는 노래들 또한 나폴리 민요가 많고, 성악 입문자들이 가정 먼저 접하는 민요 또한 나폴리 민요일 정도로 음악으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 나폴리이다.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새로운 오페라 양식을 창안한 나폴리 악파가 활약하기도 했다. 다만 관광 차원에서 현지에서 들어보기는 어려운 편.
세계 3대 야경의 도시에 자주 이름이 올라온다.[22] 그런데 기본적으로 나폴리 거리가 그다지 깨끗한 편은 아니고[23], 밤거리 치안도 좋지 않은 관계로 몸소 체험하기는 많이 어려운 편.
13세기에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설립되어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국립대학인 '나폴리 대학교'가 있으며,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곳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좌파의 지지기반이 이탈리아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곳 중 하나다. 현재 나폴리 시의회의 집권여당은 사회민주주의 성향인 이탈리아 민주당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좌파연합 세력이다.
영화감독 파올로 소렌티노가 이 곳 출신이다.

12. 서브컬쳐에서의 나폴리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등장인물 토니오 트루사르디, 브루노 부차라티, 나란차 길가, 판나코타 푸고, 자이로 체펠리의 고향이며 5부 황금의 바람의 주무대로 영어인 네아폴리스로 언급된다.
영화 고모라의 배경이다.

[1] 전형적인 러시아의 그리스식 지명법 중 하나다. 세바스토폴, 심페로폴, 마리우폴, 스타브로폴이 대표적.[2] 사실 이러한 이촌향도 현상은 타 유럽국가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남부지역 개발에 실패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던것이다.[3] 이런 막장급 마경이 되면서부터 위에 나온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란 속담은 '죽고 싶으면 나폴리로 가라'란 비아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안습.[4] 3대 미항은 리우데자네이루, 시드니, 나폴리를 의미한다(샌프란시스코, 마르세유, 밴쿠버 심지어 빅토리아 항구 등을 집어넣기도 하는데 아니다.). 그런데 최근 평판 기준으로는 그중 나폴리가 가장 안좋다.[5] 본래 미항이라는 것의 기준이 '해안지역이지만 산이 있어서 입항할 때 항구의 위로 산이 보인다는 것'이 미항의 결정 포인트였으니 예전 시대를 생각해본다면 나폴리는 충분히 미항으로 선출될 자격은 있었다. [6] 여기는 진짜 풍광이 좋다. 그림 엽서로 만들어 질 정도. 사진을 보면 "아. 거기."라고 알아 차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7] 제주도의 오름 같은 거다[8] 사실 다른 초화산들은 인구밀집지대에서 멀리 떨어진 경우가 많은데,가령 백두산은 드넓은 만주의 허허벌판과 개마고원 사이에 있고, 7만 4000년 전 인류를 없애버릴뻔 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토바 화산은 정글 한가운데에 있다. 또한 그 옐로스톤 국립공원도 와이오밍 주 한복판의 숲속에 있다. 그런데 이 화산은 인구 수백만의 대도시 바로 앞에 있으니 학자들이 예의주시할 수밖에.[9] 구글 어스로 보면 알 수 있듯이 바다 바로 앞에 있다.[10] 당장 여행 커뮤니티만 가도 "나폴리에서 길 건널 때 죽는 줄 알았어요"라는 후기가 수두룩하다. 나폴리를 가는 여행자들의 최대 고민 두 가지로 교통과 치안을 꼽는다.[11] 나폴리 중앙역(Napoli Centrale) 또는 나폴리 가리발디 광장(Napoli Piazza Garibaldi)으로 주로 표기되는데, 둘은 사실상 같은 역이다 그러니 열차를 검색할 때 중앙역으로 해서 안 나오면 가리발디를 넣어 보자.[12] 이탈리아에서 탈 수 있는 전철, 지하철, 기차 중 가장 개판이다. 기차 자체가 폐기차를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떠돌고 있을 만큼 상태가 안좋으며, 기찻길도 안그래도 950mm 협궤인 데다 관리상태까지 개판이라 멀미하는 사람도 속출한다. 좁은 데다 낡았는데 전철 안에서 연주를 하며 구걸하는 사람까지 있어서 매우 복잡하다. 1호선의 종점이 소렌토라서 나폴리에서 캐리어 등 많은 짐을 들고 소렌토로 이동하는 여행자가 많은데 문자 그대로 존나 힘들다. 안그래도 짐을 놓을 만한 곳이 적은데(좌석 쪽에는 아예 없다고 보는게 좋다) 엄청나게 흔들리는 데다 나폴리-소렌토 구간은 이용자도 많다. 여기에 음악을 연주하며 구걸하는 이들이 밴드째로 온다면... 굳이 장점을 꼽아보자면 싸다.[13] 시칠리아의 코사 노스트라, 칼라브리아의 은드랑게타, 나폴리의 카모라.[14] 덧붙여 이 사람은 르포를 써 마피아 세계의 실상을 알린 이후 마피아들의 살해 위협에 시달리다 못해 경호원을 끼고 살다가 이민갔다.[15]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16]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17] 때문에 이 구역의 모든 건물 아래로 땅을 팔 수 없게 되어있다.[18] 건물 위로 빨랫감이 널려 있다거나... 그런것.[19] 제목의 푸니쿨리 푸니쿨라 자체가 Funicolare(케이블카)를 의미한다. 단, 케이블카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는 가공삭도 방식이 아니라 노면전차와 유사한 형태의 강삭철도 방식.[20] 폼페이라는 이름을 가진 역이 2개 있다. 하나는 폼페이 스카비, 다른 하나는 (일반) 폼페이. 현지인들은 신시가지인 일반 폼페이역에서 내리기 때문에 헷갈릴 수 있지만, 폼페이 유적은 반드시 폼페이 스카비 역에서 내려야 한다. 신 시가지에서도 갈 수는 있지만 매우 귀찮아진다.[21] 피자 등 가벼운 음식을 주로 파는 식당. 흔히 생각하는 정식 식사를 파는 레스토랑보다는 좀 편한 이미지다.[22] 나머지 2군데는 홍콩일본하코다테[23] 일부는 오히려 더럽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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