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역해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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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정말 그림처럼 입었나?


1. 개요


오오타 텐요오(太田天洋: 1884~1946)가 일본 해군의 하청을 받고 그린 그림. 본래 일본 해군 부대 건물에 걸려있다가 현재는 일본 도쿄 긴자에 있는 아오키 화랑에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임란 당시나 직후에 일본측에서 그렸다는 주장이 퍼졌었는데, 사실은 '''20세기''' 와서 그린 그림이다.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조선군 전부가 두정갑을 입고 있는데, 결국 이 그림으로 인하여 불멸의 이순신의 고증이 대차게 까였다. 바로 이 그림에서는 조선군이 전부 두정갑을 입고 있는 것 때문이다.
영화 명량에서 주요 참고자료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2. 정말 그림처럼 입었나?


조선군이 상당히 잘 무장하고 꽤 멋있게 그려져서 이 그림을 맹신하는 경우가 있지만,[1] 그림의 제작시기가 이미 임란이 지난지 300여년을 훌쩍 지나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그림이 정확하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좁은 배 위에서 중갑을 입고 활동하기는 굉장히 불편하며, 물에 빠지면 바로 용궁으로 직행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바닷바람 맞는 환경에서 철제 갑옷을 하나하나 유지관리하는 것은 지극히 번거롭기 때문이다. 두정갑보다는 차라리 가죽찰갑이 더 현실성있다. [2] 이른바 칠천량 해전에서의 승리를 극대화하기 위한 표현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가 저렇게 짱짱 쎈 조선 수군을 개발랐다" 라는 자뻑이 들어가 있는 셈. 애초에 임란 당시에는 두정갑보다는 찰갑이나 쇄자갑, 경번갑 등이 주류 갑옷이었을 것으로 보는 게 정설이고.
이 그림에 나오는 일본 전투함이 대포를 대들보에 밧줄로 매달고 쏘는 묘사 때문에 한동안 일본 배는 구조강도가 약해서 포를 갑판에 설치할 수 없다!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는데, 최근 신재호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은 화가가 사료를 오독해서 잘못 그린 것이고, 판옥선에 비해 약하다는 평을 받기는 해도 일본 배의 구조강도가 대포 한두 문의 반동도 못 견딜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으며, 대포도 정상적으로 갑판에 거치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고증적으로는 깔려면 끝도 없이 깔 수 있는 그림이다. 당시 조선군에는 거의 쓰이지 않은 무기(불랑기포, 수노기 등)이 대표 무기로 그려진 점, 조선군 배의 목재 연결방식이 일본식으로 그려진 점, 화살집이나 저고리가 18~19세기의 방식인 점, 조선군이 신기전을 활로 쏘는 점, 육군 병종인 팽배수수군에 있고 환도가 아닌 을 들고 싸우는 점 등등.
[1] 우리나라의 사극에서 나오는 군복이 죄다 포졸복인 점 때문에 이 그림을 보고 그림처럼 군복을 모두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튀어나오고 있다.[2] 실제로 비변사등록에도 "충무공의 군대도 갑옷을 다 입지 않았다."라는 문구가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