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정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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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형태의 두정갑 그림
복원된 상하분리형 두정갑을 착용한 모습
1. 개요
2. 역사
3. 구조
4. 기타
5. 다른 나라의 유사 갑옷
6. 관련 문서



1. 개요


한자어는 '''頭釘甲'''. '''조선 전기부터 중후기에 걸쳐 널리 사용된 갑옷'''. 찰갑이 발전 및 변형된 갑옷으로 동양 갑옷 진화의 최종 테크.
두정갑은 흔히 철갑과 피갑으로 나뉘는데[1], 철갑은 흔히 기병들이 주로 입었고, 피갑은 보병들이 주로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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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 촘촘하게 갑찰을 고정시킨 모습을 볼 수 있다. 갑찰의 재질은 소가죽으로 옻칠을 해서 방수와 내구성을 높인 물건이다. 몸의 굴곡에 따라 굽어지게끔 갑찰이 배열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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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판으로 만든 갑찰들을 고정시킨 철두정갑의 모습이다. 어깨 부분에 장식인 견철이 달려있다.
전투용 두정갑이 아닌 의장용 두정갑도 존재한다.[2] 대표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전시 중인 고종 황제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정갑이 있다.[3] 이러한 갑옷들은 장식들을 매우 화려하게 장식한다. 위의 철두정갑의 비교해서, 견철부터가 황금빛 나는 이다. 모양의 견철이 꿈틀거리고 입도 벌려졌다 닫히게 세세한 관절디테일을 묘사했는데, 이는 이 당시 갑옷의 화려함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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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한반도에는 몽골 제국의 간섭기였던 고려 말 시기에 전래되었다. 즉, 두정갑의 원류는 북방민족의 갑옷이라고 할 수 있다. 명광개(明光鎧)로 대표되는 중국 갑옷과는 확연히 다른 양식인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몽골이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전체를 지배했기 때문에 이후부터는 이러한 두정갑 형태의 갑옷이 일반화되었다. 중국에서도 명나라시기부터 사실상 주력 갑옷이었으며 청나라 시기부터 두정갑의 비율이 매우 높아지기 시작한다.[4]
중국에서 발간된 갑옷에 대한 서적에서는 당나라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오호십육국시대송나라 시기에는 이러한 형태의 갑옷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5] 당나라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을 몽골이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퍼뜨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중후기에 들어서면서, 거의 모든 갑옷이 두정갑으로 변하게 된다.[6] 찰갑이나 쇄자갑 등은 편의상 점점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점점 화기가 발달하고 조선군도 화기 위주의 편제를 이루게 되면서, 두정갑도 점점 쇠퇴하게 된다. 결국 구한말 군제 개혁 이후에 갑주 착용을 폐지하게 되고 개항과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두정갑 유물들이 해외로 여럿 반출된다.[7]

3.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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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두정갑. 상하분리형이다.
융원필비에 실린 두정갑. 원피스 형태이다.
왼쪽은 상하분리형으로 여러 가지 부속구가 존재하는 형태로, 흔히 기병이나 중장보병들이 착용했다. 오른쪽은 원피스 형태의 갑옷으로 여러 부속구가 존재하지 않고 그 자체만 걸쳐 입는 형태로, 일반 보병들이나 궁수들이 주로 입었다.
외형은 조선시대 배경의 사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형색색의[8] 천옷을 바탕으로 둥그런 못 머리와 비슷한 작은 철구가 여러 개 박혀있는 형태이다. 이 형태 때문에 두정(대갈못)갑이라고 불린다.
얼핏 보면 그저 천옷에 징만 적당히 붙인 것 같은 외형이라 두정갑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겉만 보고 천이나 가죽으로 만들어진 갑옷이라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옷 안에는 가죽이나 철로 된 갑찰들이 두정못으로 옷감에 고정되어있다.
두정갑은 크게 광목과 비단 등을 겹쳐 만든 외피와,[9] 방호를 위해 안쪽에 덧대는 갑찰로 구성되어 있다. 갑찰들은 보통 소가죽, 돼지가죽 등이나 철판 등으로 만들며, 찰갑에 쓰이는 것보다 훨씬 큰 크기의 갑찰들을 두정못을 이용해서 외피 뒤에 고정시킨다. 찰갑이 가죽끈을 이용해 갑찰들을 고정시켰다면 두정갑은 이 두정못으로 갑찰들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현대 개념으로 말하자면 리벳 접합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는 전장에서의 숱한 피격 경험과 갑옷의 유지 보수 및 성능에 관한 노하우가 배어 나온 결과이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두정갑의 유지 보수 및 방호력이 종래의 찰갑 류에 비해 극단적으로 향상되었다. 찰갑은 한 번 베이면 가죽끈이 끊어져서 철편들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며, 전투가 끝나면 가죽끈을 풀고 다시 철편들을 이어 붙여야 하는 등 유지 보수가 매우 시간이 들기 때문에 번거롭다. 반면 두정갑의 갑찰들은 두정못으로 단단히 고정되므로 외피가 도려내지는 수준으로 난도질당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찔리거나 베여도 갑찰과 외피의 결속이 끊어질 일이 없다. 끊어지더라도 망치질 몇 번이면 다시 갑찰이 고정되기 때문에, 끈 하나에 의존하는 찰갑에 비해 내구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또한 철판이 찰갑의 찰편에 비하여 대형화하여 담금질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는 방어력의 향상과 생산성의 향상을 이뤄냈다. 더욱이,철판 위의 가죽 혹은 직물로 갑옷의 겉감을 형성하여 겉감으로 인한 투사무기의 위력 감소 역시 나타났다. 이는 현대의 방탄복과 마찬가지로 직물이 투사체에 휘감기며 위력을 반감시키는 것과 동일하다. 거기에 더불어,철판을 고정하는 두정못은 베임과 찢어짐을 방지한다. 찰갑과 비교하였을 때, 두정갑의 방호력은 찰갑의 2배이다. 단지 유지 보수가 편하여 일본을 제외한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두정갑을 채용한 것이 아니다.
또한 의장용으로 애초부터 철편이나 가죽편 없이 정만 박혀있는 식양갑이라는 가짜 갑옷도 있었다.[10][11] 흔히 당시에 군인들이 편의상 갑찰을 떼고 다닌다는 묘사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사실 두정 못의 특성상 갑찰을 함부로 달고 떼고 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고, 아마 상기한 영조실록의 경우를 보고 의례 짐작한 내용이 와전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경우는 애당초에 갑찰을 달고 떼고 한 것이 아닌 처음부터 식양갑을 따로 만들어놓고 입었던 것이다.
또한 '갑찰이 달려있는 갑옷이라고 해서 무조건 전투용 갑옷이었다.'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엄연히 잘못된 사실이며, 육군박물관에 소장 중인 '이봉상' 장군이 원수, 부원수 시절에 입었던 갑옷의 유물들은, 금속 갑찰이 달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게가 3kg 남짓하는 가벼운 갑옷이다. 이는 갑찰 자체가 가볍고 연한 금속으로 만들어 방호력이 전혀 없는, 갑찰만 달려있는 의장품이다. 이러한 양식도 간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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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어깨 방어와 장식을 겸하는 견철이라는 장식이 존재하는데, 금실과 천으로 제작되는 견장과 달리 보통 철로 제작했으며 활동하기 편하게 2단에서 3단의 분절된 형태로 제작되어, 어깨를 따라 편하게 굽어지도록 만들었다. 상기한 의장용 갑옷들은 견철이 매우 화려한 형태로, 용이 춤을 추는 모습처럼 제작되는 매우 고급스러운 견철도 존재한다. 이러한 형태의 견철은 조선 양식 두정갑의 고유 특징이다.

4. 기타


조선시대의 황동두정갑.(사진출처) 민승기 씨의 저서 '조선의 무기와 갑옷'의 영향으로 방호용 찰이 없는 의례용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안에 연기를 쐬어 가공한 사슴가죽(연록피煙鹿皮) 찰을 붙인 것이다. 연록피는 찰갑 제조시 찰 연결용으로 쓸 정도로 질기고 튼튼한 가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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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 말까지 만들어지고 유지보수되었던 갑옷이다보니 당시 해외 열강들이 선물받거나 노흭하는 식으로 가져가서 보존한 두정갑 유물이 제법 되는 편이다.
속에 구군복을 받쳐 입고 그 위에 껴입는 게 이 갑옷을 입는 원칙이다. 이 갑옷을 입은 장수들의 옷을 아주 자세히 보면 속에 구군복을 껴입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 동양박물관에 있는 두정갑은 좋은 보존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도 두정갑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미국에도 있는데, 구한말 당시 어느 미국인이 들여와 본토에 꽁쳐두었던 것으로 보이는 두정갑 유물이 발견된 바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에서도 아주 상태가 좋은 두정갑과 투구 일습이 소장되어 있다.#
국내에는 용산의 전쟁기념관과 육군박물관에 두석린갑과 함께 전시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조선실에 전시되어있다.
과거 KBS의 프로 스펀지에 소개되었던 갑의지로 된 찰을 단 두정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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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두정갑은 다른 갑옷들보다 조선 시대 사극에 많이 나오는 경향이 있는데[12] 이것은 두정갑이 가벼워서 배우들이 입기 쉬워서 그런 것이다. 정확히는 외관을 실제와 거의 똑같이 만들면서도 무게는 가볍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사극 촬영에 쓰이는 두정갑은 내부에 철판을 덧대지 않았고, 그냥 플라스틱 구슬로 외부에 묶은 자국만 대충 따라 만든, 일종의 코트다. 가볍게 만들기 위해 다른 재질을 사용하면 가짜란 티가 확 나는 찰갑 등의 여타 갑옷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장점.[13]
도미네이션즈에서 유물로 등장한다.

5. 다른 나라의 유사 갑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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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언클래드> 中, 서양의 브리간딘
서양에도 두정갑과 구조가 비슷한 브리간딘(Brigandine)이라는 갑옷이 있다. 이 때문에 서양에선 두정갑을 Chinese brigandine이라 칭하기도 한다.
일단 서양에선 사슬갑옷에서 판금갑옷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나타났으며 근대화 직전까지 전투용 갑옷으로 두정갑을 사용한 동양과 달리 서양에선 짧은 시기에만 전투용으로 사용하고 판금갑옷 등장 후에는 두정갑 형태의 갑옷을 화려한 퍼레이드용 갑옷으로 사용했다.
참고로 드라큘라 백작의 모델로 생각되는 블라드 가시공이 입었던 갑옷이 이 브리간딘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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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쿠야크(Куяк)의 모습.*,** 두정갑의 안팎을 뒤집어 놓은 모습이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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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코트 스타일의 중국 두정갑 명나라 시기에 가장 오래 사용된 스타일의 두정갑이다. (사진은 누르하치의 두정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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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시기 두정갑. 명나라 후기 두정갑의 영향을 받아 일체형 두정갑이 아닌 상하가 분리된 두정갑을 입었다. 사진은 팔기군의 갑옷으로 각 기마다 소매와 넓은 면의 색을 달리 해서 서로를 구분했다.
중국 역시 조선과 마찬가지로 몽골 지배 이후 두정갑이 대세를 이뤘던 것으로 보이며 별도의 호칭 없이 그냥 갑 이라고 불렀다. 면갑, 정갑과 같은 호칭은 역사적 고증과는 맞지 않는 호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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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갑옷인 챨타 하자르 마샤(Chihal'Ta Hazar Masha)# 18~19세기에 사용된 갑주로, 천 안쪽에 경화 가죽과 안감을 대고 바느질로 고정한 것으로, 여기에 추가로 겉에 철판을 붙이기도 한다. 사진의 것은 인도에서 사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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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귀갑(亀甲,킷코)*. 옷의 겉이나 안에 쇠사슬과 육각형의 철판을 댄 것으로, 본래 갑옷 안쪽에 입는 보조 방호구였으나 나중에는 완전한 갑옷 형태의 킷코타타미동도 등장한다.
이외에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한국의 두정갑과 유사한 구조의 일본 갑주 1점이 보관되어 있다.@ 사실 이 유물은 여러 정황상 두정갑의 갑상(하체보호구) 오른쪽 다리 부분일 가능성이 높다.

6. 관련 문서



[1] 철갑옷과 가죽갑옷을 말한다[2] 이런 경우엔 내부의 갑찰을 생략하거나 매우 가볍고 연한 재질의 금속판을 띄엄띄엄 덧댄다.[3] 물론 학계에선 고종황제의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많다[4] 물론 사슬 갑옷 등 다른 갑옷들도 같이 사용했다.[5] 오스프리 고증화에서 중국 송나라 갑주를 고증하면서 일반 찰갑 겉에 천을 씌운 형태로 고증한 바는 있다.[6] 의장용으로 두석린갑 등도 존재하긴 했지만, 전투용으로는 두정갑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다.[7] 한국 사극에서 한때 두석린갑이 고증에 맞지 않게 조선 전중기 배경 사극에 많이 나왔던 것도 두정갑 유물들이 해외로 대거 반출되면서 한국에 두정갑 유물보다 두석린갑 유물이 더 많이 남아있게 된 것이 영향을 준 듯하다.[8] 실제론 오방색을 기준으로 제작했다.[9] 흔히 알려진 것처럼 가죽으로 외피를 만드는 경우는 없다.[10] 1742년(영조 18년)에 식양갑을 입은 장수를 보고 영조가 크게 격노하였다. 그 뒤로 식양갑을 금하였으나 결국 보편화되었다.[11] 조선 후기로 가면 화약병기가 발달하면서 갑주의 효용성에 한계가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무거운 갑주보다는 보다 가볍고 장식적인 갑주를 선호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식양갑과 같은 갑옷이 나타났을 개연성이 크다. 물론 지금도 행군할때 군장에 페트병 집어넣는 것처럼 가라치기용으로많이 쓰였다.[12] 특히 임진왜란.[13] 대표적인 것이 이글루 투구, 노스페이스 갑옷이라며 놀림받았던 태조 왕건의 사례가 있다.[14] 어원은 몽골어로 갑옷을 뜻하는 호야크(Khoyak)*란 말이 들어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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