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전

 


'''신기전
神機箭'''
'''유형'''
고체 로켓
'''개발'''
1447년 (세종 29년)
조선
병조 군기감 (軍器監)
'''개발자'''
세종
문종
장영실
이수지
최해산
'''운용'''
조선군조선 수군
'''길이'''
1,103mm (소신기전)
1,455mm (중신기전)
5.3m - 5.5m (대・산화신기전)
'''유효 사거리'''
150m (소신기전)[1]
200m (중신기전)
450m - 1,000m 내외 (대・산화신기전)[2]
'''실전 배치'''
15세기 - 18세기
'''관련 장비'''
화차
사극 징비록에서 묘사된 문종 화차에 장전된 신기전.
1. 개요
2. 상세
3. 개발자
4. 종류 및 운용
4.1. 소신기전
4.2. 중신기전
4.3. 대신기전
4.4. 산화신기전
5. 실전에서의 사용
6. 단점과 도태
7. 대중매체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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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세종 대 개발된 고체로켓 겸 화약 추진식 화살 무기로, 문종화차 보급으로 다연장로켓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2. 상세


고려 말기의 최무선이 최초로 화약을 보급하면서 연구된 다양한 화약무기 가운데 주화(走火)의 발사 원리를 참고하여 폭발용 지화통을 부착하는 등 개량한 물건이다. 간단히 말해서, 원거리 탄도학을 이용한 화약 추진 화살에 폭탄을 매달은 일종의 로켓포였다. 단, 소신기전은 주화와 마찬가지로 폭탄이 없고 화살촉만 있었다.
화차에 다연장 로켓으로 거치해 놓고 일제히 불을 당겨 쏘는 모습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는 문종 이후 보급된 방법이며, 초기에는 중국의 화전이나 고려시대의 주화와 마찬가지로, 단발식 발사대에 놓고 쏘거나 유사시 화살통이나 허리춤 등에 끼우고 쏴서 기선제압 용도로 사용했다. (세종실록 기사 참조. 실록에 주화로 나오는 것은 신기전이 주화로 이름이 바뀌기 1년 전이라서 그렇다.) 임란 이후 명나라 남방 병법이 들어오면서 당파에 화전을 거는 방법이 들어오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신기전이라는 단어가 발사장치인 다발화전의 통을 의미한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신기전이 화약으로 추진되는 화살 자체만을 의미했다. 차이점이라면 조선에서는 갑주를 입고 위험한 다발화전보다는 화차에 얹어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많이 사용했고, 따라서 추진체를 인간이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으므로 폭약을 다는 개조가 조금 더 쉬웠다는 점이다.[3]

3. 개발자


고려말기의 최무선이 개발한 주화를 조선 세종시대에 그의 아들 최해산과 장영실이 개량한 물건이다. 변이중이 개발했다는 설도 있다. 조선 후기 기록 중에는 세종이 화차를 개발할 때 영락제의 화차를 참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개발한 당시(조선초기)의 기록이 아니라서 신빙성은 애매하고, 조선의 화차와 유사한 가화전차는 신기전+화차보다 후대에 등장했다. 자세한 것은 화차 문서 참조.
드라마 《대왕 세종》이나 동명의 영화와 달리 완전히 새롭게 만든 물건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는 명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개발된 주화를 다시금 개조한 물건이며,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개량이 이루어졌다. 최근 대신기전을 개발한 사람에 대한 정보가 밝혀졌다. 군기감에서 일하던 39세의 박강이라는 사람이라고. 물론 최무선 때도 원형으로 추정되는 대주화가 있었다.

4. 종류 및 운용


사거리에 따라 '''대, 중, 소'''신기전으로 나눈다. 또한, 별개로 '산화신기전'이 있었다.

4.1. 소신기전


조선의 소신기전은 한발의 위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발사기를 쓰면 최소 40여발의 화살을 곡사(曲射)로 쏟아부을 수 있었다. 심지어 최대로는 100여발까지도 일제사격이 가능한 화약의 운동에너지로 병사들을 관통하고, 화약의 연기와 불꽃으로 적들을 혼란시키면서, 중거리와 백병전에서 적들을 제압하는 성격이 강했다.
소신기전은 중국의 다발화전이랑 큰 차이가 없다. 단, 화차를 이용하면서 새로운 장점을 얻을 수 있었다. 일단은 발사대의 지지력이 증가하면서, 비슷한 환경에서 수십~백여발의 압도적으로 많은 화전을 운용하기에 편해졌다. 사수가 상대적으로 위험에 덜 노출되면서 사격을 할 수가 있었고, 사거리면에서도 직접 휴대할 때와는 달리 곡사가 가능했다. 또한, 아래의 중신기전과 함께 조합하여, 집단적인 제압능력을 올리는 개조도 가능해졌다.

4.2. 중신기전


중신기전은 폭약을 탑재해서 2차 폭발에 의한 파편충격을 줄 수 있었다. 이 방식은 현대전에 사용되는 미사일과 거의 동일한 셈. 중신기전의 폭발 위력은 (기록을 믿는다면) 갑옷을 입은 병사에게도 상해를 입힐 정도였다고 한다. [4] 화약의 에너지가 보존되는 유효 사거리 내에서 적중할 경우에는, 처음 맞는 한두명이 관통(!!)당할 정도로 화약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후에는 부착한 폭탄에 의해서 화상을 입혔다.
중신기전은 소신기전보다는 발사량이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원거리에서 폭약을 투척할 수 있었으므로, 밀집대형이 기본이었던 시절에는 나름대로 위협적이었다. 여진족이나 기마민족들은 소+중신기전이 연발로 쏟아지면 전의를 상실했다는 기록이 많다. 심지어 왜군조차도 소+중신기전이 쏟아지면 혼란에 빠지고 전투력이 급감했다

4.3. 대신기전


대신기전은 가장 거대한 신기전이었다. 크기가 매우 크고 아름다워(길이가 3~4미터) 우리가 익히 아는 다연장 발사대를 쓰는 신기전과 달리 전용 발사대를 세운 후 1발씩 발사해야했다. 즉, 명나라와 고려시대에 사용되었던 대형 로켓(대주화)을 조선시대에 새롭게 개량한 물건이라고 볼 수 있다.
사거리는 학자마다 이견이 많은 편이다. 한국에서 처음 신기전이 로켓무기라는 것을 밝혀낸 채연석 교수는 압록강 너머의 적을 공격하는 무기였기에 1~2킬로미터로 가정했다가, 압록강의 실제 너비와 복원실험을 통해 대신기전의 사거리를 900미터급으로 한정했다. 하지만 육사 등의 다른 곳에서의 실험에서는 1킬로미터급의 사거리를 내는 것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대신기전에 달고 쏜 흑색화약은 최대 3kg정도였다. 엄청난 화약량에 비해서, 위력은 현대의 수류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수류탄의 살상범위가 15m 정도이고 14세기의 화약무기는 사정거리가 짧았으며, 이 당시 진형은 밀집대형이 기본이었으므로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일단 중세식 밀집대형에서 반경 15m면 거의 중대 하나가 통째로 폭사한다는 소리다. 문제점이라면, 이후의 대포들은 더 적은 화약으로도 높은 살상력을 기대할 수 있었기에, 가격대 성능비를 따져보자면 확실히 비효율적인 무기였다.
대 신기전 발사영상
대신기전의 경우에는 기사를 읽어보면 일반적으로 타격이 불가능한 상황. 즉 적과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있거나, 혹은 아군이 위기에 처했을 경우에 발사하는 사실상 견제용 무기에 가까웠다. 때문에 장수와 병사들에 따라서 그 효율성이 올라갈 수도 있고, 낮아질 수도 있었다. 단, 대신기전 이후로는 로켓무기들이 점점 포탄을 쏘는 무기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

4.4. 산화신기전


대신기전과 크기가 비슷한데, 1단 로켓을 통해 수백m를 비행한 뒤 2단 로켓인 지화(地火)에 점화되면 목표지점으로 날아가 발화통의 화약이 터지기 때문에, 학설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지만 2단 로켓 혹은 다탄두 로켓으로 파괴력이 약 중신기전의 2배다.
현재 재현에는 성공했다.

대신기전조차 화약을 많이 쓴다는 불평이 많았으므로 산화신기전의 사용례는 더욱 알 수가 없다.
일부 기사에서는 세계최초의 2단 미사일 로켓무기라고 써놨다.

5. 실전에서의 사용


[image]
신기전 화차(무기)총통기.
신기전의 경우 무를 경시하는 조선의 풍토속에서도(사실 조선도 고려에 비해선 무에 대한 대접이 좋아진편) 약 200여 년 이상 잘 관리되어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방어전이라든가 명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을 지원한 지원화기로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류성룡이 자신의 문집인 《서애집》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이때쯤에는 신호용으로 쓰이고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신기전과 같은 로켓형 화살을 전투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군대는 명군이었다. 특히 2차 평양성 전투(1593년 1월 5일~8일)가 유명하다. 또한 이인좌의 난 당시에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사용해 효과를 보기도 했으며, 조선 초기인 이시애의 난 당시 유용하게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북청을 떠나서 이성(利城)으로 향하다가 적이 또 우리를 향해 와서 길에서 만났는데, 우리 군사는 작은 산봉우리에 올라가서 서쪽에 있고 적은 영(嶺)에 의거하여 동쪽에 있어 서로 마주 대하고 싸웠습니다. 해가 이미 서쪽에 기울었으나 승부가 나지 아니하다가, 우리 군사가 화차(火車)를 가지고 오니 적의 무리는 피해서 달아나고, 우리 군사가 쫓아서 베거나 사로잡은 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성종실록 권95 9년 8월 10일 기해 기사

또 같은 성종 조에서 화차로 검색해보면, 여진족 토벌 과정에서 화차가 매우 유용했고, '''괜히 비싼 돈 들여서 만든 무기가 아니니깐 잘 써먹어'''라고 성종이 하교하는 부분도 나온다.
위력에 비하면 비싼 무기였지만, 의외로 적을 제압하는 효과 자체는 뛰어났다. 성종이 홍귀달에게 이시애의 난에 대해 물었을 때에도 화차를 보자마자 적이 도망쳤다.라고 말을 했고, 이극균도 여진족을 상대로 화차가 아주 위력적이기 때문에 추가로 생산하자고 졸랐으므로, 신기전을 탑재한 화차의 '''공포 효과'''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다.
심지어 임진왜란에서는 왜군들조차도 신기전이 쏟아지자 혼란에 빠져서 전투력이 급감하거나, 무서워서 거점을 포기했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보면 신기전은 적들을 구축하는 효과도 탁월했다. 여진족을 토벌하는 과정에서는 적극적으로 화차를 앞세웠고, 심지어 위의 이극균은 화차가 400개 '''밖'''에 없으니 각 진마다 100여기 씩 설치하자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한다.

6. 단점과 도태


신기전은 기본적으로 중세의 로켓무기였으며, 원본이 되었던 주화와 다발화전의 사거리와 위력을 개선하긴 했지만, 근대 이전의 무기답게 명중률이나 살상력을 개선하지는 못했다. 신기전은 조선초기부터 근거리 화약무기였던 총통 앞에서 서서히 도태되었고, 임진왜란 당시에도 이미 신호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단점은 무지막지한 화약 소모량. 화약 대비 살상력이 떨어졌던 대신기전에 들어가는 화약량은 천자총통의 3배 이상이었다. 유황과 염초를 전량 중국에서 수입해야 했던 조선군의 입장에서 신기전에 들어가는 화약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결국, 비슷한 시기의 다른 나라들처럼 화포(총통)에 더욱 많은 투자를 하게 되었다.
물론 여진족 뿐만 아니라, 진주성 방어전에서의 왜군들조차도 지레 놀라 도망갔다는 기록이나, 또 신기전이란 이름 자체가 귀신을 쫓는 화살이란 뜻인걸 보면 현대인들의 생각처럼 쓸모가 없지는 않았다. 어쨌든, 신기전의 단점은 아래와 같이 요약 가능하다.
•단점
◦ 위력 자체는 뛰어나지만 소모되는 화약의 양이 지나치게 많다. [5]
◦조선의 화약, 초석 생산량은 외국산을 들일만큼 적었다.
◦당시 전 세계의 무기를 통틀어도, 제작에서 운용까지 높은 수준의 기교가 필요했다.
•해결 방식
◦크기가 작은 소형인 소, 중 신기전은 화차와 묶어 10~100발씩 다연발로 발사, 화력과 명중율을 보강했다. 또한 특정한 지역에 집단으로 투사하여 제압효과를 노렸다.
◦대신기전의 경우는 기선 제압용으로만 사용했다. (이전의 단발식 화전을 거대화한 형태.)
◦조선중기 이후로는 정찰대의 신호용으로 사용되었다. 소도구만을 휴대할 수 있는 정찰대 병력에서는 나름대로 유용하게 쓰였다. 수군에서는 정찰선에서 사용한 기록이 남아있다.
위력은 강하지만 연비가 나쁜 무기의 예시. 물론 비싸서 못 써먹는다고 할 순 없다. 세종이 개량한 이후로 문종이 최초로 문종화차를 만들면서 그 사용방법을 정했는데, 이후 성종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도 쓰기가 불편하거나 약하다는 주장은 없었다. "비싸니깐 살살 다뤄라" 정도. 나중에는 화약을 더럽게 많이 먹는다는 불평은 많았다.
전체적으로 신기전은 적을 멀리서부터 압도하고 공포와 혼란을 부추기는 제압용 병기의 성격이 강했다. 나아가 이전의 다발화전이나 주화에 비교해서 한층 더 발전한 운용 시스템 덕분에 분명히 발전된 모습이 많았다. 사실 현대의 MLRS 도 원래는 적들을 제압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중세 시절의 무기이지만 현대의 다연장 로켓 시스템이랑 비슷한 개념으로 운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눈에는 별 것 아니지만 13~15세기를 기준으로는 신기전 화차의 사정거리와 제압능력이 대단한 수준이었다. 신기전은 고려말기부터 총통 같은 핸드캐논(Handcannon)들과 공존하면서 합동작전을 펼친 시스템이었고 이후로는 화포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총통에게 서서히 자리를 내주었던 것이다. 즉, 신기전의 사용법이나 도태는 대단히 상식적인 범주의 진보 과정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7. 대중매체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시리즈의 네벨베르퍼 다연장로켓과 비교하는 농담이 있다. 네벨베르퍼 로켓 포격은 스치기만 해도 제압이 뜨는 엄청난 제압력을 지니고 있지만 잘 맞지 않아서 데미지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신기전에 빗댄 것이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선 완전히 화차와 판박이인 영국의 랜드 매트리스 다연장로켓이 등장하는데, 모습부터 화차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발수도 30발이나 돼서 별명이 아예 신기전이다.
  • 특전차의 중형전차로 등장하는 가상전차인 셔먼m4a3로켓발사장치형 서리화가 쓰는 로켓탄 명칭으로 등장한다.[6]
  • 레어장비들중 대신기전이라는 레어망토 장비가 있다.하지만 성능이 영 좋지 않다.그러면서 스킬명은 신의 화살이라고 되어있다.

7.1.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의 유닛


[image]
주화(Flaming Arrow)
[image]
신기전(Heavy Flaming Arrow)
출처
RTS 게임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에서 한국의 특수공성병기(!)로 등장한다. 한국의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에 등장하는데, 이는 고증오류라기보다는 게임의 밸런스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7]
게임 내 동일한 시대에 등장하는 트레뷰셋의 대체품으로, 당연히 트레뷰셋보다 성능이 좋다. 게임 내에서의 성능을 의심하는 사람도 종종 있는데, 데미지가 한 테크 위 사석포보다 살짝 떨어지는 수준이니 '''절대''' 낮은 편이 아니다. 주화와 차이는 거대한 불화살이냐 그냥 거대 화살이냐 차이로 자세한 성능은 주화에서 확인하시길.
여담으로, 실제 역사와는 달리 로켓 무기가 아니라 발리스타로 나온다.

8. 관련 문서


[1]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3752[2] https://www.yna.co.kr/view/AKR20091015219700063[3] 간단히 비교하자면, 휴대용 무반동총(다발화전)이랑 확산탄을 쓰는 소형포(소신기전+화차)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4] 이는 영화 신기전에서 소 신기전을 막은 방패를 터뜨리는 장면으로 재현했다.[5] 문종실록을 보면 냉병기보단 확실히 우위에 있었다. 80보 거리, 그러니까 약 100미터에서 갑옷과 방패를 든 허수아비를 전부 관통할 정도의 위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6] 단 등장하고나서 처음으로 쓰이는 로켓탄 말고.[7] 길고 긴 조선 왕조가 게임 내 시기로는 단 한 시대에만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