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남오선

 



1. 개요
2. 검선(劍仙) 매종도(梅宗都)
2.1. 검선의 후예
3. 혈선(血仙) 정립병(丁立兵)
3.1. 혈선의 후예
4. 소선(笑仙) 우일기(于日琦)
4.1. 소선의 후예
5. 비선(飛仙) 조심향(趙沈香)
5.1. 비선의 후예
6. 취선(醉仙) 하정의(夏靜毅)
6.1. 취선의 후예
7. 관련 문서


1. 개요


무협소설군림천하》의 등장인물군. 12대 종남파 문인 중 검선 매종도, 혈선 정립병, 소선 우일기, 비선 초심향, 취선 하정의를 일컫는 말로, 모두 유백석의 제자다.
종남파의 21대 문인들이 활동중인 작중 시점에서 약 200년 전에 활약했고, 이 때가 종남파의 최고 전성기였다. 이 시기에는 중원무림의 자타공인 천하제일문파였을 정도.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잇따라 실종되고 그 무공도 실전되면서 종남파는 크게 쇠락했다.
종남파 무공의 극의 육합귀진신공을 완성한 사람은 검선, 혈선, 소선 세 명뿐. 검선의 무공이 제일 독보적이며 혈선이 검선의 유일한 경쟁자, 소선은 앞의 둘에 비해 조금 쳐졌다. 그 다음이 비선이며 취선이 가장 무공이 떨어졌지만, 다른 종남오선이 너무 강해서 그런 것이지 취선도 강호에선 적수가 거의 없는 초절정 고수로 평가받았다.
종남오선의 명성은 정립병과 매종도가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선 우일기는 장문인답게 사람됨이 신중하고 온유해서 좀처럼 남들과 싸우지 않았으며, 비선 조심향은 비록 신법의 당대제일고수였으나 본신의 실력은 두 사람에게 미치지 못했다. 또한 막내인 취선 하정의는 무공보다는 온갖 기행으로 이름이 더 높은 사람이었다.

2. 검선(劍仙) 매종도(梅宗都)


종남오선 중 검선(劍仙). 종남파 사상 최고 고수이자 유일한 천하제일인이었고, 조익현에게 '''고금제일인'''이 아니겠느냐는 평가까지 받았다. 별호는 태을검선(太乙劍仙), 종남파의 문인들은 그를 존경하는 뜻에서 매검선(梅劍仙), 혹은 태을사조(太乙師祖)라고 부르고 있다.
태어난 곳은 그 제남의 대명호 부근으로 날 때부터 천재로 근방에서 유명했고, 특히 무술에 탁월한 재질을 발휘했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유명한 검객인 일자매화검 매신으로, 유백석을 직접 만나서 그의 성품과 무공을 눈으로 확인하고는 자신의 아들을 맡길 결심을 한다. 종남파에 입문한 후 일대제자들 중에서 단연 탁월한 기재(奇才)를 발휘하여 두각을 나타내었고, 사형들을 능가하게 된다. 실제로 입문한지 이년 반 만에 10살 가까운 나이로 사형들을 제치고 장로회에서 특별히 낙뢰구검(落雷九劍)을 가르쳐 준다는, 정립병의 과거 회상이 있다.
매종도는 너무 탈속하고 고고한 성격에[1] 지나치게 완벽함을 추구하여 조그만 불의와도 타협치 않으려 했다. 거기에 남에게 지고는 못사는 성미를 지녔다. 그에게는 절친한 친구가 두 명[2] 있었으나 종남파 내에서는 친구 없이 오직 추종자뿐이었다.
같은 종남오선인 정립병과 조심향과의 삼각관계에 얽혔고, 이로 인해 혈선과 결투했다. 이를 후회하여 비선과 결별을 선언, 종남파를 떠나 화산 근처에서 은거하다 사망했다. 워낙 무공이 뛰어나서 종남파를 포함한 후대 무림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가 남긴 비급을 찾아 헤맸다.
21대 장문인 진산월도 매종도의 흔적을 찾아, 고생 끝에 화산(華山)의 '사냥꾼의 무덤'이라 불리는 곳을 찾아간다. 매종도는 그곳에서 기암괴석을 사용한 진법을 설치했으며, 진법에는 천하삼십육검의 천하무궁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진산월은 이를 알고 파훼하여 석진을 통과, 마침내 매종도의 은거지에 도착한다. 안에는 죽림이 울창했으며 한 채의 모옥이 있었다. 그러나 모옥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털린 뒤였다. 모옥 근처에는 이미 누군가가 매종도의 시신을 묻어줘, 작은 봉분이 있었으며 비석의 흔적은 매우 오래되었다. 훗날 매종도의 유진은 조씨가문의 누군가가 발견하여 조익현과 석동에게 넘어갔고 나머지 유진은 천룡궤 안에 보관되어 있다는 게 밝혀진다.
진산월이 석가장주에게 부탁받은 천룡궤를 전해주려고 모용단죽을 만났을 때, 현재 중원무림에서 천하제일고수로 인정받는 모용단죽[3]도 매종도를 자신보다 위에 두었다. 진정한 천하제일고수로 불리려면 자기 수준이 아니라 매종도처럼 모두를 압도할 만큼 '''절대우위'''의 무공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매종도 사후 200년이 지나고 종남파가 구대문파에서조차 쫓겨날 정도로 몰락했지만, 중원무림의 몇몇 명숙들이 매종도가 지닌 무공의 비결을 밝히기 위해 아직도 종남파의 무공을 연구하고 있다고도 말해준다.
34권에서 진짜 모용단죽에 의해 많은 것들이 밝혀진다. 천양신공은 매종도가 만든 무공으로, 그 원류는 종남파의 구양신공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육합귀진신공 문서 참조.
이 사실을 듣고 진산월이 천양신공이 종남파의 무공이였다며 한탄하자 진짜 모용단죽은 천양신공은 종남파의 무공이 아니라 태을검선의 무공이고 그분의 남긴 유진에 그 무공(천양신공)에 그 무공을 종남파에 전하라거나 종남파의 소유로 하라는 말이 없었다고 말한다. 유진을 읽어보면 천양신공을 종남파의 무공과는 별개인 단순한 자신의 창작물로 여기는 의미가 짙게 배어있고 선대의 인물들이 그것을 종남파에 전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그 무공이 욕심나서 억지를 부린 것만은 아니었다고 한다.[4]
하지만 천양신공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익히는 사람의 모든 양기를 빨아들여 삼성에 이르면 양기 부족에 시달리고 오성을 넘으면 '''남자 구실을 못 하게 된다'''. 모용단죽은 매종도가 천양신공을 익히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 분명하며 천양신공에 잘못된 점이 있을 것을 우려해 종남파에 전하라거나 종남파의 무공이라는 말을 남기지 않았던 것이라고 추정했다. 반면 진산월은 매종도 같은 일대종사가 그 치명적인 단점을 몰랐을지, 만약 알았다면 천양신공을 남긴 매종도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이었을지 의심한다.
천양신공 외에도 3개의 취와미인상을 남겼다. 천양신공의 서책에는 하나의 구절이 덧붙여 있었으며, 오랜 참오 끝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무공을 집대성한 삼 초의 검법을 만들어 내 각각의 초식을 3개의 취와미인상에 새겼다. 이것을 처음 발견한 것이 조익현, 조여홍 남매의 아버지이다. 35권 연재에서 야율척이 말하기를 조익현이 이 세 초식을 합쳐 대라삼검(大羅三劍)이라는 이름을, 그 중 하나에 대라궁해(大羅穹海)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한 나머지 둘 중 하나에 대라장천(大羅長天)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석동이다. 나머지 미인상은 주인이 없어 이름이 불명이나, 조익현이 곧 취득하여 이름을 붙일 예정이다.

2.1. 검선의 후예


취와미인상이 검선의 무학이므로 취와미인상을 익힌 자들은 모두 검선의 후예라 할 수 있다. 35권까지의 내용을 보면 의외로 많다.
  • 조익현의 아버지 - 매종도의 무덤을 발견했고, 자신이 발견한 매종도의 절학들을 챙겨간다.
  • 조익현 -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 아난대활불: 조익현의 제자.
    • 야율척: 아난대활불의 제자.
    • 쾌의당주: 조익현의 제자.
    • 인중용왕 사효심(추정): 쾌의당의 용왕중 유일하게 조익현에게서 직접 무공을 사사한 적이 있으므로 미인상의 절초를 일부라도 얻었을 수도 있다.
    • 고진: 용선생을 통해 조익현에게서 대라궁해 반 초식을 받았다.
  • 석동 - 철혈홍안에게 대라장천을 받았다.
    • 모용단죽 : 석동의 제자
    • 모용봉 : 모용단죽의 제자이자 수양손자.
    • 모용봉이 취와미인상을 보여준 사람들: 유장령, 구양수진, 백자목

3. 혈선(血仙) 정립병(丁立兵)


종남오선 중 가장 직선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이라 남성적인 매력이 가득한 인물. 일단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었고, 손속에 사정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 시절에는 양손에서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별호에 '혈(血)' 자가 붙은 것도 그 때문. 나이를 먹어도 그 성정은 여전하여 일단 출수하면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말았다.
정립병은 살아 생전에는 마도인들에게 지옥의 사신보다 더욱 두려운 존재였다. 과거 낙하구구검을 펼치면 상대는 눈앞이 어지러워 제대로 방비도 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래서 당시 혈선보다는 뒤에서 염라검객(閻羅劍客)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정의로웠으며 인간성 자체는 거칠고 화급하기보다는 유쾌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친구를 좋아했고 적당히 풍류를 즐길 줄도 알아 친구도 따르는 사람도 많았다. 어찌보면 매종도와 정반대 성향.
정립병은 산서성(山西省) 태원 출신으로, 태원의 정가보는 명문이어서 정립병은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무공수련을 할 수 있었다. 그는 타고난 싸움꾼이어서 그의 아버지는 그의 성질을 죽이기 위해 고민을 하다가 유백석에게 정립병을 맡기게 된다. 그때 정립병의 나이는 열세 살로, 보통 빠른 사람은 칠팔 세에 입문 하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늦게 들어온 편. 그럼에도 무공이 일취월장하여 단시간내에 종남파의 제자들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냈고, 훗날 종남파를 대표하는 종남오선이 된다.
종남오선 중 무공 수위는 두 번째였지만 입문 때부터 한 번도 매종도를 넘어서지 못한 콩라인. 조심향과 연인 사이였지만, 매종도가 조심향에게 고백하면서 삼각관계가 형성, 매종도와 대립했다. 하지만 조심향이 아니었더라도 어차피 둘의 격돌은 피할 수 없었음을 정립병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조심향은 격돌을 앞당긴 것뿐[5]이다.
매종도의 무공에 대한 질투심 + 열등감이 폭발해 조심향을 계기로 매종도와 다시 한 번 붙었으나 80초만에 왼쪽 가슴을 찔리고 패배했다. 이후 타도 매종도만을 삶의 목표로 삼고 종남파에 누를 끼칠 수 없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수많은 비무행을 했다. 이후 '혈삼객'이라고 불리며 강호에서 검선에 비할 검객으로 유명해졌지만 본인은 비무행을 계속해도 검선을 꺾을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몇 년동안 강호를 떠돌아 다니다가 매종도을 만나기 위해 종남파로 돌아왔으나 그는 이미 실종되고 종남파에 없었다. 다시 한번 매종도를 찾기 위해 정립병은 강호를 돌아다녔지만 끝내 매종도를 찾지 못하고 포기한다.
그리고 종남오선 중 3명이 갑자기 사라져서 위기에 처한 종남파를 구하기 위해 종남산으로 돌아왔지만, 우연히 풍운무정검 곽일산의 은거지에서 보완된 유운검법과 미완성의 유운검결 비급들을 발견하여[6] 이를 완성하기 위해 은거한다. 유운검결을 완성하면 매종도를 넘어설수 있다고 여겨 이십 년 이상을 바쳤으나 결국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한다.
비록 본인은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곽일산과 정립병 본인이 남긴 유산과 그 뜻은 그들이 간절히 원하던 종남파의 후예인 진산월이 이어받고 펼치게 되었으니 본인들로서도 크게 만족할 듯[7]
진산월의 사부는 임장홍이지만, 무공 관련으로는 진산월이 사부처럼 생각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중원무림 전체를 경악과 공포로 전율케 하는 오늘날의 진산월의 무공에 정립병이 연구한 검정중원과 그가 남긴 혈선비록이 큰 역할을 했다. 모용단죽(으로 가장한 조익현)이 혈선 정립병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한다고 말하자 내심 씁쓸해했을 정도.

3.1. 혈선의 후예


군림천하의 주인공 진산월이 바로 혈선의 후예다. 중봉석실에서 혈선 정립병의 신검 용영검과 혈선비록의 절학 9가지를 이었다. 그리고 혈선의 연구물을 바탕으로 검초 연구를 이어 3년만에 검정중원을 '''거의''' 완성했다.

4. 소선(笑仙) 우일기(于日琦)


검선, 혈선과 같이 육합귀진신공을 익힌 삼인중 1인이자 절세의 고수, 내공으로는 육합귀진신공 중 천단신공을 주로 익혔고 옥뢰신장과 낙뢰권법, 구반장법 등 권장법에 능했다. 그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구반장법이 9성임에도 불과하고, 천하제일권(天下第一拳)이며 천하제일장(天下第一掌)으로 불렸었다. 또한 천단신공과 태인장, 구반장법으로 천하제일수(天下第一手)로 불리기도 했다.
독문병기는 묵령갑. 석년의 우일기는 아침저녁으로 한 시진씩 묵령갑을 끼고 천단신공의 흡자결을 연마하여, 삼십 년간의 노력 끝에 묵령갑 없이 묵룡기라는 강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다. 그때까지 삼십 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양 손을 휘두르면 무시무시한 묵룡기가 사방으로 흘러나와 어느 누구도 감히 정면으로 받아내지 못했다고 한다.[8]
이후 11대 장문인 유백석의 뒤를 이어 12대 장문인이 된다. 무공의 1인자는 매종도였지만 그는 거대문파를 이끌기엔 너무 고고하고 탈세속적이었고, 우일기는 소선이라는 별호 그대로 항상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고 성격적으로 원만하면서도 인품이 대범하여 거대문파를 이끄는 장문인으로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기 때문. 매종도조차도 우일기가 장문인이 된 것에 불만을 품지 않을 정도.
이후 비선/검선/혈선의 삼각관계[9]로 폭발한 경쟁심과 그로 인한 비무이후 "가출"한 정립병과 사형제와 결투한 것을 후회하며 종남파를 떠난 매종도를 찾으러 나섰다. 종남파를 나서자마자 의문의 세 명의 괴한들에게 습격받고, 오랜 격전으로 진력이 고갈난 터에 갑자기 숲속에서 나타난 조심향에게 난화지를 맞고 치명상을 입는다. 이후 괴인들의 장력으로 종남산의 절벽에 떨어져 동굴에서 일생을 마친다. 우일기가 약해서는 결코 아니고, 의문의 괴한들이 종남파 무공의 약점을 전문적으로 파훼했던것이 원인. 거기에 의문의 괴한들의 무공 실력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죽기 전 동굴에 종남파의 절학 7가지가 담긴 무공비급을 남겼다.

4.1. 소선의 후예


종남삼검의 일인 해조림이 우일기가 남긴 무공비급을 발견했다. 해조림은 낙일방에게 7종 절학을 가르친 후 자신의 진신 내공을 낙일방에게 반강제로 인계한 후에 목숨이 끊겼다. 현재 낙일방이 그 뒤를 잇고 있다.

5. 비선(飛仙) 조심향(趙沈香)


종남오선 중 비선(飛仙). 천하제일미녀답게 성격이 도도한 여자였다. 종남오선 중 유일한 여자로 신법의 당대제일고수이자 지법의 대가로 당시 여중제일인이었다. 조심향이 무염보를 밟으며 다가와 난화지를 펼치면 주위가 온통 꽃 그림자로 뒤덮였고, 그 안에 갇힌 자는 전신이 피로 물든다고 전해진다. 또한 백모란, 임영옥과 마찬가지로 태음신맥 소유자였다.
200년전 사형제인 혈선 정립병과 은밀하게 교제 중이었지만, 매종도에게 고백받아 양다리를 걸쳤다. 종남오선을 파탄에 빠지게 한 시초이며 당시 천하제일문파였던 종남파가 처참하게 몰락하는 원인을 제공한 '''진정한 흑막'''. 후에 실종된 혈선과 검선을 찾으러 나온 장문인 우일기에게 난화지를 시전, 절벽으로 떨어뜨린 배신자[10]이기도 하다. 애초부터 종남파 몰락을 염두에 두고 애정공세를 펼친 사문의 배신자임이 명백한 사실.
장하민의 성심록에서 조심향에 대한 몇가지 사실들이 적혀있다. 첫번째는 조심향은 평소에도 남해 청조각의 검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청조각의 주인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는 것. 두번째는 황산의 자죽림에 사는 황산신니가 평소에도 조심향을 무척 귀여워했으며, 세번째는 낙양의 백미사가 그녀의 고향이라고 한다.
성씨와 고향으로 보건대 석가장의 철혈홍안 조(趙)여홍 가문의 선조로 추측된다. 철혈홍안이 진산월에게 천룡궤를 모용단죽에게 전달해 달라고 맡길 때 소소한 보답으로 한 가지 보법을 보여주는데, 이후 이 보법이 조심향의 성명절기 중 하나였던 무염십팔보의 전반부 열두 걸음인 것으로 밝혀진다.
30권에서 운중안 강일비가 진산월에게 설명한 바로는 조심향의 후예가 실제로 존재하며, 그 외에도 조심향은 자신의 절기인 난화지를 완성하기 위해서 용씨세가의 파천공(破天功)을 얻는 대신 종남파의 요결 중 하나인 방향결(芳香訣)을 알려 주었고 용씨세가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현재 형산파의 용선생이 독문절기로 삼고 있는 월광지(月光指)라는 지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를 들은 진산월조차도 비선 조심향의 무공에 대한 욕심은 이해한다고 해도 사문의 무공을 자기 멋대로 남에게 전해주고 사문의 무공에 남의 무공의 흔적을 넣는것에 허탈감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용씨세가의 현 후계자가 화산장문 용진산이라는 사실을 강일비가 진산월에게 가르쳐 준다.[11]
조심향이 왜 누군가와 결탁[12]하여 자신을 키워준 사문 종남파를 배신했는지, 왜 사형제 우일기를 살해했는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매종도와 조심향의 남은 비밀들이 밝혀지는 때가 군림천하의 최종장이 아닐까 예상된다. 모용단죽에 의해서 백모란이 비선의 절학을 이은 후인인 게 정식으로 밝혀졌다.
육합귀진신공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조심향 역시 대단한 천재로, 선대[13]의 연구를 바탕으로 여러 절세무공을 '''혼자서''' 만들었다. 아래는 그녀가 만든 무공의 목록.
  • 칠음진기 - 옥시음의 선녀진향신공(仙女眞香神功)을 수정, 보완했다. 태음신맥만이 대성할 수 있다.
  • 무염십팔보 - 강호 역사상 최강의 보법 중 하나.
  • 난화지 - 옥시음이 창안한 취란십이수를 개량했다. 당대 강호무림 최강의 지법.
  • 염화옥수 - 옥시음이 만든 화옥수결을 원형으로 삼아 역대 종남파 문인들이 보완한 화영옥수공을 완전히 뜯어고쳐 만들었다.
  • 각 무공들의 상세는 종남파 무공 문서 참조.

5.1. 비선의 후예


매종도만큼 후예가 많다.
  • 강일비 - 우연히 비선의 비급을 얻었다. 무염십팔보 후반 여섯 걸음과 칠음진기 전반부 132자 구결을 알고 있다. 정황상 비급을 얻으며 비선과 관련된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형이 그 사실을 누설하는 바람에 종남파를 떠나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 철혈홍안 - 무염십팔보의 전반과 중반부 열두 걸음을 가지고 있다. 조심향과 성씨가 같다.
  • 신목령주 - 칠음진기의 변형인 현음진기를 사용. 신목련주의 대제자 백자목과 막내제자 한시몽도 현음진기를 익혔다. 정황상 철혈홍안의 제자들도 익힌 걸로 보인다.
  • 남해 청조각 - 칠음진기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현청건곤강기 중 음기에 해당하는 부분은 확실히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중에서는 청조각의 주인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고 한다.
  • 경성홍안 백모란 - 조심향과 같은 태음신맥으로 칠음진기를 대성했다. 또한 종남파 최고의 합격진인 음양쌍반진의 구결을 알고 있다.
  • 유소응의 칠음진기를 누산산이 손쉽게 제거하였으므로 천봉궁 몇몇 인물들도 칠음진기를 익힌 것 같다.
종합하자면 크게 세 갈래로 나뉘는데 남해 청조각, 철혈홍안 계열인 신목령과 경성홍안 백모란 계열인 천봉궁이다.

6. 취선(醉仙) 하정의(夏靜毅)


종남오선 중 취선(醉仙). 별호에서 볼 수 있듯이 풍류와 온갖 기행을 즐기는 성격이었지만 자신을 제외한 종남 오선 모두가 실종된 이후 어쩔 수 없이 장문인 직을 맡아 무지 고생만 하게 되는 비운의 인물.
문파를 이끌기 보다 천하를 주유하기를 즐겼지만, 종남오선 중 나머지 넷이 실종되어 어쩔 수 없이 종남파를 이끌게 되었다.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하정의는 장문인에 맞지 않는 인물이었고, 이후 육합귀진신공이 실전되어 종남파의 전성기가 끝나는 것을 보았다. 구대문파로서는 존립이 가능하나 천하제일문파로서의 종남파가 유지되기 위해선 육합귀진신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미칠 듯이 찾아 헤맸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종남파의 힘은 계속 감소한다.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종남파의 명성이 건재했지만, 그의 사후에 종남파가 급속도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육천기가 전해준 초대 경요궁주 마일보의 유지에 따르면 종남파의 절기들이 절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정의가 종남파의 비전들을 따로 한 곳에 모아두고 대대로 장문인에게 전해지는 비망록에 특수한 방법으로 그 위치를 적어두었다고 한다.
다른 사선(四仙)에 비해 잡학(雜學)에 능했다. 특정한 어느 한 분야 보다는 모든 무공에 두루 재주가 있었으나, 그런 만큼 무공에 대한 경지는 다른 네 사람보다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선이 절세의 고수였기에 부각되지 않지만 하정의 역시 당시의 내로라하는 최정상의 고수였으며, 특히 특이한 기공을 만드는 것을 좋아해 취선삼학(醉仙三學)이라는 무공을 창안하였다. 이는 담명 시대때, 종남파를 노리던 흑막세력들을 피해 마일보가 들고 나와서 육천기를 통해 되돌아 온다.

6.1. 취선의 후예


경요궁의 초대 조사가 취선의 친척이었고, 이후 경요궁 무인들이 취선의 절학을 보전하고 있었다. 경요궁 궁주 육천기가 이를 종남파의 현재 장문인인 진산월에게 이를 고하고 종남파의 속문으로 인정되었다. 취선의 절기 3종도 종남파에 되돌아갔고 이 절기 중 하나는 경요궁 오대궁주 조현에 의해 천절뢰로 변형되어, 당각과의 결투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7. 관련 문서


[1] 이런 개떡 같은 성격 때문에 조심향 불륜 당시, 정립병에게 머리를 굽히거나 사과하지 않았다.[2] 종리표와 용태린. 종리표는 곤륜파의 장로이며, 용태린은 용씨가문의 11대 가주이다. 훗날, 용진산과 용성음이 용태린의 후예임이 밝혀졌다.[3] 사실 모용단죽으로 변장한 조익현. 이때도 진산월조차 감당이 안될 정도로 묘사되었고, 후에 정체가 밝혀진 뒤에도 석동, 야율척과 함께 현 무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정상급 강자임이 드러났다.[4] 물론 천양신공은 종남파의 육합귀진신공의 여섯 신공중 하나인 구양신공을 근간으로 하는, 종남파의 무공에서 파생된 무공이기에 당연히 종남파의 무공으로 취급하는 것이 맞다. 실제로 진산월도 모용단죽의 말을 수긍하지 않는다.[5] 단, 그와는 별개로 조심향이 남긴 영향력 자체는 결코 적지 않다.[6] 곽일산은 당시의 유운검법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유운검법을 보완했으나, 유운검법 18초를 단숨에 관통하는 유운검결을 완성하지 못했다.[7] 작중에서도 곽일산과 정립병이 활짝 웃으며 자신들의 생각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낸 확신에 찬 미소가 등장한다. 실제로도 그렇다.[8] 진산월은 이런 일화를 낙일방에게 말해주며, 하루 종일 묵령갑을 끼고 흡자결을 운용하라는 스파르타식 훈련을 반 강제적으로 시킨다. [9] 정황상 순수한 애정이 아닌 종남파의 몰락을 노린 배신자 조심향의 노림수로 추측된다[10] 이는 기사멸조의 죄에 해당하므로, 종남파 500년 역사상 10명도 안되는 중죄인이다. 우일기의 사망으로 이 일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죄인이 아니였었으나 이후 절벽에서 해조림이 소선 우일기의 절학을 수습하면서 우일기의 서신을 발견하면서 후대 종남파 문인들도 비선 조심향의 배반을 알게된다.[11] 즉, 용진산과 용선생은 먼 친척관계다.[12] 우일기를 암습할때 조심향과 누군가 손을 잡은 정황이 밝혀진다.[13] 대부분 비선 이전 종남파 사상 최고의 여고수 옥시음의 것이 원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