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봉구연새
1. 개요
2. 리그의 특징
3. 역사
4. 역대 우승팀
5. 과거의 소속구단들
1. 개요
중국의 세미프로 야구리그. 2015년부터 1부와 2부리그로 나뉘어 실업팀 야구 경기들이 운영되었다. 2016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2019년부터 1부리그와 2부리그 각각 6개 팀씩 본격적인 야구의 프로화 리그를 구성해서 처음으로 중국 프로야구가 시작했다. 프로화 원년을 표방하며 CNBL (China National Baseball League)이라는 새로운 명칭과 로고를 발표했다. 다만 2019시즌은 베이징, 톈진, 장쑤, 광둥 4개팀만이 참가한다. 2020시즌은 코로나로 인해 리그가 중단되었다.
2. 리그의 특징
- 엄청난 인구숫자에도 불구하고 메이져 리그 프로야구에 역사는 북미는 물론 일본 한국에 비해 상당히 짧으며 본격적인 정식 프로리그 대회도 한국 KBO보다 정확히 20년이나 더 늦게 창설되었다.
- 야구가 아직 전파중인 지역답게, CBL의 각 팀은 자체적으로 유소년 팀을 운영하는 한편 지역 야구 보급을 주도하고 있다.
- 세미프로 형태로 운영되며, 연 경기 수는 약 72경기. 그래서 리그를 열고 마무리하는 시점이 3월에서 6월 정도로, 상당히 리그 기간이 짧은 편.
- 2013년 아마추어 야구팀 수가 800개였으나 2015년에는 3000개로 대폭 늘어났다.
- 2016년 현재 중국 고교 야구팀이 50개 정도 된다.
- 중국야구협회(CBA)에서는 봉구 라는 단어는 1914년 처음 등장했는데 “칭화대학에서 발간한 <칭화주간> 1914년 4월 21일자호에 ‘봉구’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게 최초 기록”이라고 밝혔다. 다만 1907년 발간된 잡지 <세계>에는 '베이스바얼(貝斯巴爾)'이라는 음역으로 야구가 소개된다. 이어 1908년에는 곤구(棍球)라는 번역이 등장한다. 몽둥이 곤(棍)으로 ‘봉구’와 비슷한 의미다. 1909년 <신보>가 전해 미군의 샤먼 주둔을 다룬 기사에서 “야구, 축구, 테니스, 요트 등 경기를 주최했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처음 ‘봉구’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하지만 통일된 번역은 아니었다. 1909년에서 1911년 사이 <신보>는 봉구, 또다른 매체인 <시보>는 ‘박구(拍球, 공치기)’, <동방잡지>는 ‘구희(球戲, 공놀이)’ 등 제각각으로 번역했다. 베이스볼의 직역에 가까운 루구(壘球)‘나 일본에서 건너온 ‘야구’라는 단어도 쓰였다. ‘봉구’라는 단어는 1915년이 되면 공식적인 지위를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이해 상하이에서 열린 극동대회를 보도한 대다수 매체는 ‘봉구’로 표기를 통일했다. CBA에서 소개한 <칭화주간>은 1914년 3월17일자에서는 야구로 표기했다 이후에 봉구로 표기를 바꿨다. 대략 1910년대 후반이면 ‘봉구’가 다른 번역어들을 압도한 것으로 볼수 있다.
중국야구선수의 연봉. 중국 야구 선수들을 계산해 보자. 가령 월급은 5000위안, 일년이면 6만위안, 하루에 164위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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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2006년,2007년에는 CBL 연합팀(차이나 스타스)으로 구성되어 아시아 시리즈에 참전했다. CBL 리그 우승팀이 참가한 케이스는 2008년 딱 한번이다.
- 외국인 선수 제도가 있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임동규 선수가 뛰기도 했다.
3. 역사
3.1. 초창기
중국 본토는 야구의 동토(凍土)였다. 기록상으로 일본과 한국 못지 않게 오래전에 야구경기가 열렸으며[2] 중국 야구의 아버지 량푸추(梁扶初)가 일본 유학 후 1932년 귀국하면서 본격적으로 중국에 야구가 도입 되었다.[3]
그 후 국공내전 종료 뒤 중국에서도 한동안 야구 경기가 열렸다. 인민해방군도 예하 부대에서 야구팀을 운영했다. 그렇게 나름대로 뿌리를 내리고 있던 와중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다 엎어져 수그린 상태에서 1979년에 들어서야 야구 협회가 생겨났으며, 1985년 아시아 야구 연맹에 가입하면서 국제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으니 아무리 길게 잡아도 30년을 가까스로 넘기는 수준이다. 허나 중국의 강점은 그 어마어마한 인구를 기초로 한 엄청난 시장성으로, 이 점에 힘입어 90년대 말부터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야구시장 확대를 위해 중국에 여러 투자를 하기 시작했으며 다이너스티 왕차오(王朝公司)그룹의 전반적 지원 아래 2002년 베이징, 톈진, 상하이, 광둥 4개 구단을 시작으로 리그가 발족하였다.
3.2. 반복된 리그 중단
2006년부터 2개 지구제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후 정규시즌동안 같은 지구 팀과 6경기, 타 지구 팀과 3경기를 치르는 구조가 되었다. 그래서 각 팀당 21경기를 하는 형태로 변경되었다. 이후 각 지구의 1위 팀이 타 지구의 2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하는 형태로 두 팀을 선정,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5판 3선승제로 CBL 우승팀을 가리는 구조이다.
그러나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야구가 올림픽에서 제외되면서 막 싹을 티운 중국 리그도 잠시 침체기를 맞고 있다. 우선 국가당국의 지원이 줄면서[4] 세미프로의 스폰서와 지원까지 동시에 끊기고 2011년을 끝으로 CBL도 휴식기에 접어들게 되었고, 2012년 이후로는 개점휴업 상태가 되어 시즌 리그가 개막조차 되지 않았으나 2014년에는 다시 리그가 재개 되었고, 다시 2017시즌부터 중단되었다.
2014년 CBL의 관중 수는 4690명이며 평관은 대략 390명으로 추산된다.#
2015년 중국 야구 프로화 계획인 "10+6플랜"을 발표했으며 점진적인 프로화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스포츠 기업인 헝다그룹[5] 이 2014년부터 지원을 시작하여 상금 규모도 크게 확대되었고 보다 상업적이고, 관객을 이끌기 위해 흥미성이 제고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2015년부터 갑을리그로 재편하여 10개 팀이 참가하는데 갑리그는 상위 리그, 을리그는 하위 리그로 구분 하였다. 갑리그는 허난 팀을 제외한 기존의 6팀이며 을 리그는 허난 팀과 산동(상업직업대학교팀), 인민 해방군팀, 사회인 선발팀으로 되어 있다. 갑 그룹 팀 중 챔피언을 가리고 갑 그룹 6위와 을 그룹 1위는 엑스트라 매치를 치뤄 승리하는 팀이 갑 그룹에 진입하게 되는 구조로 변했다.
2016년에 KBO와 중국봉구협회 및 헝달 연합간의 업무협약이 체결되었다. ## 중국봉구협회에서 KBO 측에 먼저 제안 했다고 하며[6] KBO에서 한국시장뿐 아니라 아시아 시장 개척을 위해 협력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문을 연 중국야구, KBO리그 활로가 될까
3.3. 리그 중단 이후의 중국야구
2010년대 이후 중국 야구는 두 갈래로 나눠져 있다. 유럽 등과 비슷하게 MLB 차원에서의 아카데미(MLB Development center)를 통한 유소년들의 미국 진출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NBA가 중국 시장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걸 부러워하던 터라 이전부터 메이저리그는 개막전을 중국에서 치루기도 하고 중국에 야구붐이 불게끔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16년 쑤 궈이유안(외야수, 볼티모어 오리올스 싱글A, 호주리그 오클랜드 투아타라), 2017년 궁 하이쳉(투수, 피츠버그 파이리츠 루키), 2018년 저스틴 치양(티베트 출신의 포수, 보스턴 레드삭스 루키), 차오 졸론 룬(밀워키 브루어스 루키리그 투수),브루스 왕 양(필리스 루키리그 포수) 등 마이너리그 계약이 매년 이어지며 점차 증가하고 있다. 윈터리그인 호주리그에도 첫 마이너리거 선수인 쑤 궈이유안이 참가하기도 했으며 애들레이드 바이츠에서 몇몇 중국 유망주가 같이 훈련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중국의 국가 주도 엘리트 체육 정책이 계획적으로 진행 중이다. 체육 당국에서는 야구를 사회 체육의 한 방면으로 삼는 한편 중화계 거부들의 투자가 야구에 이뤄지고 있으며, 수백 개의 학생 야구팀[7] 이 생겼다. 정부 차원에서 2025년까지 10년 간 투자해 스포츠산업을 5조 위안(약 915조원) 규모로 키운다는 정책이 이미 정해졌는데 그 중 야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5%(약 46조원)다. 지도자 6000명, 심판 등 야구관련 전문인력 1만 명을 양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지금 야구장 규모는 3000~4000석정도인데 3년 내에 여러 곳에 1만2000석 규모 구장을 건설 하며 구단 수는 20개까지 늘릴 예정이다. #
엘리트 체육 차원에서 살펴보자면 2017년 이후로는 중국야구협회에서 국가대표 상비군을 별도로 차출해 미국 독립리그에서 뛰게하며 선수육성을 진행하는 與狼共舞(늑대와 춤을)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2018년 미국 독립리그 중 지명도 상 1-2위를 다투는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의 팀인 텍사스 에어호그스를 인수하여 중국 대표팀 상비군 30여명을 교대로 파견하였으며 (이로 인해 해당 팀은 70% 이상이 중국 선수였다. 당연히 리그에서는 압도적인 꼴지... 25승74패 기록. ) 이들을 기반으로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을 구성하였다. 대표팀은 이 때문에 일부 마이너리그 선수를 제외하면 모두 같은 소속팀 출신으로 출전하였다. 당면한 중국 야구의 최대 목표는 대만을 따라잡는 것으로 이는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 중국 대표팀의 최고 투수 중 하나인 간취안이 대만 대표팀과 상대로 0-1 승부를 펼치는 등 현재 국제대회에서 대만과의 경쟁에 최대의 힘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포함해서 중국 야구계 전체로 보아도 핵심투수 두세명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야구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갈 길이 매우 멀다고 할수 있다.
현재 리그만 중단되었을 뿐 팀들은 여전히 남아있고 매해 여름 또는 가을에 중국과 대만을 오고가며 펼치는 해협양안야구대항전에도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대만 실업 리그 팀들과 경기를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대만 실업 팀들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2018년 시즌에는 3년만에 4강팀에 대만 팀들만 진출하는 상황이 재현됐다.
4. 역대 우승팀
- 2002년 : 톈진 라이언스(준우승 베이징 타이거스) - 단판승[8]
- 2003년 : 베이징 타이거스(준우승 톈진 라이언스) - 챔피언쉽 시리즈 3승 2패
- 2004년 : 베이징 타이거스(준우승 톈진 라이언스) - 챔피언쉽 시리즈 3승 2패
- 2005년 : 베이징 타이거스(준우승 톈진 라이언스) - 챔피언쉽 시리즈 2승[9]
- 2006년 : 톈진 라이언스(준우승 광둥 레오파즈) - 챔피언쉽 시리즈 3승
- 2007년 : 톈진 라이언스(준우승 광둥 레오파즈) - 챔피언쉽 시리즈 3승 1패
- 2008년 : 톈진 라이언스(준우승 베이징 타이거스) - 챔피언쉽 시리즈 3승
- 2009년 : 베이징 타이거스(준우승 광둥 레오파즈) - 챔피언쉽 시리즈 2승[10]
- 2010년 : 광둥 레오파즈(준우승 베이징 타이거스) - 챔피언쉽 시리즈 2승
- 2011년 : 톈진 라이언스(준우승 광둥 레오파즈) - 챔피언쉽 시리즈 3승 1패
- 2012~2013년 : 리그 중단
- 2014년 : 베이징 타이거스(준우승 텐진 라이언스) - 챔피언쉽 시리즈 2승 1패
- 2015년 : 장쑤 페가수스(준우승 베이징 타이거스) - 챔피언쉽 시리즈 2승
- 2016년 : 텐진 라이언스(준우승 베이징 타이거스) - 챔피언쉽 시리즈 2승
- 2017년 : 리그 중단
- 2018년 : 광동 레오파스(준우승 장쑤 페가수스) - 단판승[11]
- 2019년 : 베이징 타이거스(준우승 장쑤 페가수스) - 챔피언쉽 시리즈 3승 1패
5. 과거의 소속구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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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갑리그
5.1.1. 베이징 타이거스(Beijing Tigers, 北京猛虎/북경맹호)
- 1975년 창설되었으며, 연고지는 베이징. 2002년 발족한 원년 네 팀 중 하나이다. 홈구장은 베이징 루청 체육운동기술학교 봉구장이며, CBL 최고의 명문팀이라고 볼 수 있다. 2003년, 2004년, 2005년, 2009년, 2014년 합해 5회 우승을 차지했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이명우 선수에게 입단 제의를 했다.
5.1.2. 톈진 라이언스(Tianjin Lions, 天津雄狮/천진웅사)
- 1926년부터 시작한 톈진은 중국 대륙 내에서 야구 역사가 가장 오래된 지역이다. 베이징과 더불어 양대 명문 팀. 연고지는 톈진이며 홈구장은 톈진 체육학원 다저 봉구장이다. 2002년 발족한 원년 네 팀 중 하나이며 CBL 최다 우승팀으로, 리그가 개막한 2002년,2006년,2007년,2008년,2011년, 2016년까지 6회 우승을 차지했다.
5.1.3. 쓰촨 드래곤즈(Sichuan Dragons, 四川蛟龙/사천교룡)
- 1972년 창설되었으며, 2005년 장쑤 호프스타스와 함께 추가로 가입한 팀이다. 연고지는 쓰촨 성 청두 시이며 홈구장은 청두 봉루곡센터 봉구장. 다만 로고, 팀 명, 색 배치등 전남 드래곤즈와 굉장히 유사해서 약간 논란이 있었다.
5.1.4. 광둥 레오파즈(Guangdong Leopards, 广东猎豹/광동엽표)
- 1995년 창설되었으며 연고지는 광둥 성 광저우 시. 홈구장은 광저우 황춘 훈련기지 봉구장이다. 2002년 발족한 원년 네 팀 중 하나이며 CBL 우승을 달성해 본 세 팀 중 하나이다.(다른 우승은 톈진과 베이징이 나눠가며 하다시피 했다.) 2010년 리그 우승으로 우승 경력은 1회.
5.1.5. 장쑤 호프스타스(Jiangsu Hopestars, 江苏希望之星/강소희망지성)
- 2005년 전국대회 직후 차이나 호프스타스라는 팀을 재정비해 창단했으며, 그 해 CBL에 가입했다. 우승년도는 2015년으로 1회 우승했다. 연고지는 장쑤 성 우시 시이며 홈구장은 허난 구류운동관리센터 봉구장이다. LG트윈스 출신의 정삼흠 코치가 2016년부터 2017년 5월 초까지 코치로 활동했다.
5.1.6. 상하이 골든이글스(Shanghai Golden Eagles, 上海金鹰/상해금응)
5.2. 을리그
중국봉구연새의 2부 리그 격이며, 1개의 실업팀인 허난 엘리펀츠와 3개의 아마추어 팀으로 구성되어있다.
5.2.1. 허난 엘리펀츠(Henan Elephants, 河南吉象/하남길상)
- 1989년 창설되었으며 2009년 CBL의 7번째 구단으로 참가했다. 연고지는 허난 성 정저우 시이며 홈구장은 허난 구류운동관리센터 봉구장이다.
5.2.2. 상동상업직업대학교
5.2.3. 중국인민해방군
5.2.4. 사회인 선발팀
[1] 중화권에서 야구는 봉구(棒球)라고 칭한다.[2] 1864년 상하이에서 미국 의료진들로 구성된 상하이 베이스볼 클럽이 첫 야구팀이며 세인트 존스 대학교와 상하이 MCA baseball club간에 친선경기가 1905에 열렸다.[3] ‘중국 철도의 아버지’로 불리는 잔텐여우(첨천우)가 1872년 예일대학 시절에 중국 유학생들과 만든 야구팀이 중국 야구(봉구)의 기원이라는 설도 있다.[4] 줄긴 했지만 투자는 꾸준히 했다. 특히 2012년 다롄 시에 전국대회 개최를 위한 야구장 건설을 한 것만 봐도...[5] CSL의 명문구단인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를 운영하는 헝다그룹과는 다르다. 헝다그룹은 恒大集团으로 부동산기업이며, 야구에 투자하는 헝다그룹은 恒达联合体育发展有限公司라는 스포츠전문기업이다.[6]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은 중국과의 거리가 멀고, 일본프로야구는 일본과 중국간의 관계 때문에 비교적 가깝고 우호적인 관계인 한국을 택했다고 한다.[7] 우리나라 고교 야구팀이 100개가 안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만 중국과 한국은 인구수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인구 대비 팀 수로 환산하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13억 인구에서의 800개팀과 5천만 인구에서의 70개팀을 계산해보자[8] 리그가 개막한 2002년의 챔피언쉽 시리즈는 단판전으로 치루었다. [9] 2005년은 사스로 인해 3판 2선승제로 챔피언쉽 시리즈가 줄어들었다. [10] 2009년에는 베이징, 광둥, 톈진, 상하이 총 네 팀이 결승 리그에 출전했다. 베이징은 2승으로 리그 우승을, 광둥은 1승 1패로 준우승을 차지했다.[11] 단기리그로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