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

 


[image]
'''명칭'''
'''한글''': 일본 프로야구
'''영문''': Nippon Professional Baseball
'''일본어''': プロ野球
'''종목'''
야구
'''설립'''
1936년 (88주년)[1]
'''리그 창설'''
센트럴 리그: 1950년 1월 1일 (74주년)
퍼시픽 리그: 1950년 1월 1일 (74주년)
'''국가'''
일본
'''운영 주체'''
일본야구기구
'''커미셔너'''
사이토 아츠시 (2017~)
'''최근 우승팀'''
[image]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20)
'''최다 우승팀'''
[image] 요미우리 자이언츠 (22회)
'''링크'''
공식 홈페이지
1. 소개
2. 인기
2.1. 2000년대
2.2. 2010년대 ~ 현재
2.3. 한국에서
2.3.1. 대한민국 선수
3. 역사
3.1. 프로야구 창설 이전
3.2. 일본직업야구연맹 시절
3.3. 양대리그 출범
3.4. 2000년대
3.5. 2011 시즌
3.6. 2012 시즌
3.7. 2013 시즌
3.8. 2014 시즌
3.9. 2015 시즌
3.10. 2016 시즌
3.11. 2017 시즌
3.12. 2018 시즌
3.13. 2019 시즌
3.14. 2020 시즌
4. 팀
4.1. 16개 구단으로 확대?
5. 시즌 운영
5.1. 일본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5.1.1. 육성선수 드래프트
5.4. 지방구장 경기
5.6. 외국인선수
5.6.1. 2021년 시즌 외국인선수
5.6.1.1. 센트럴리그
5.6.1.2. 퍼시픽리그
6. 2군 운용
7. 응원 문화
8. 참조 문서
9. 둘러보기


1. 소개



[image]
일본야구기구(NPB)가 주관하는 '''센트럴 리그(약칭 세리그)'''와 '''퍼시픽 리그(약칭 파리그)'''에 소속된 12개 구단의 프로 경기를 가리킨다.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와는 별도로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 같은 몇 개의 독립리그도 존재한다.[2]
전세계 야구 리그 중에 돈지랄의 끝판왕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이어서 '''2번째로 큰 규모와 경제성을 가진 리그이다.''' 야구가 국기인 나라의 리그답게 '''평균관중수로 따지면 메이저리그를 제치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총 12개의 팀이 있는데 모든 팀이 KBO와 유사하게 모기업을 끼고 운영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들 기업들의 규모가 한국프로야구에 참여하는 기업들에 비해 월등히 작다는 인식이 팽배한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보는것이 맞다.
일단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운영하는 마쓰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운영하는 소프트뱅크의 경우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대기업이 맞다. 하지만 이들 말고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운영하는 라쿠텐은 전자상거래의 발전으로 인하여 대기업이 된 지 오래고 오릭스 버팔로즈를 운영하는 오릭스 역시 미즈호, MUFJ, SMBC 같은 일본을 대표하는 초 대규모 은행들에 비해 규모가 작다 뿐이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비교했을때 마스터카드보다 큰 규모의 금융회사다. 한신 타이거즈를 운영하는 한신 전기철도의 모체인 한큐한신토호그룹, 유통, 미디어를 망라하는 대기업이다. 그 밖에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세이부 철도도 한큐한신토호그룹에 못 미치는건 사실이나 대형 사철의 일원답게 대기업에 걸맞은 규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이라 칭하기엔 다소 어색한 회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경우도 적잖이 존재한다. 일단 두 신문사는 비상장기업이라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치더라도 두 식품회사(야쿠르트와 니폰햄)는 분명 일본 재계에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수준이다. 심지어 야쿠르트는 사장이 "야구팀이 없었으면 그저 야쿠르트를 만드는 회사에 머물렀을 거다"라고 직접 증언을 했을 만큼 규모가 영세한 편이다. 또한 일본 롯데도 연매출액이 한국 롯데의 1/20에 불과한 수준이니 그 규모를 짐작하기 그다지 어렵진 않을 것이다. DeNA도 게임 회사이기 때문에 매출이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프로야구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규모가 작다는 인식이 생긴 가장 큰 이유는 일본 경제의 근간이 되는 토요타, 미쓰비시, 닛산, 파나소닉 등과 같은 제조업 기반의 재벌기업들이 전무하다는 것이 원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야구 전문가들은 이를 NPB의 보수성, 경직성에 기인한 문화로 보는데[3], 이들 기업들이 의욕을 갖고 야구단을 만들고자 할 때도 야구계에선 수출 위주로 돌아가는 회사들이 야구단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을 품어 수출이나 신경을 쓰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해왔다. 그런 반면 뒤늦게 창립한 프로축구 리그인 J리그는 창립 초기부터 대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였고[4] 그에 따라 기업들이 야구 대신 축구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 현재까지 이어져온 결과 이들 대기업으로선 야구단을 만들 필요성을 느끼질 못해 여지껏 참여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5]
그러나 프로야구 구단은 일개 중견기업이 쉽게 뛰어들 수 있는 분야가 결코 아니다. 당장 한국프로야구의 야구팀들만 해도 매년 200~300억씩 쓰는데 일본 야구선수들의 전반적인 연봉의 수준을 감안하면 저보다 훨씬 많을 것은 자명하다. 특히 2004년 킨키 일본 철도(킨테츠)가 야구팀 운영을 포기하는 일이 벌어지자 팀 수를 10팀으로 줄여 단일리그로 환원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각 팀들의 재정상황이 열악한 시절도 존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야구팀들이 멀쩡히 운영될 수 있는 건 모기업들이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고 한국프로야구와 마찬가지로 대외적 홍보효과가 적지 않은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현재 일본프로야구의 재정자립도는 높은 인기에 힘입어 상당히 높아진 편인 것이 위안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요미우리 같이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팀을 제외하곤 대부분 흑자 운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모기업의 전체적인 현황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운영주체에 변동이 생긴 2012년 이후 2015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데, 이렇게 되기까지의 모기업 변동과정을 도표로 정리한 곳이 있다. 또한 팀 기준의 구별이 아닌 업종 기준으로 구별한 도표도 있다. 시간이 지나며 차츰 업종과 기업규모에 정리가 이루어지지만, 그 사이에 실로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정식 인수나 혹은 네이밍 스폰서, 제휴나 공동경영의 형태로 운영에 발을 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봉의 경우 대체로 한국에 비해 높은 편이다. 1군 최저연봉은 1천5백만 엔(한화로 1억7천만 원 수준)으로 5천만 원의 한국보다 훨씬 높으며 주전급은 1억 엔 이상, 최고연봉은 대략 5~6억 엔 선에서 형성된다. 과거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상상도 못할 금액이었으나 현재는 FA 계약으로 4년 100억원 이상 계약을 따내는 선수가 나오는 등 많이 따라잡아 대략 1/2, 2/3정도까지 따라잡았다. 최저연봉도 한국과 큰 차이가 나는데 지배하선수(한국으로 치면 정식등록선수)의 경우 440만 엔이 최저보장되어 대략 한국의 2배 좀 못 되는 최저연봉을 받는다. 과거 이 문서에는 일본의 최저연봉이 240만 엔으로 한국의 2700만 원보다 낮다고 쓰여 있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240만 엔은 육성선수 최저연봉으로 일본은 등록선수와 신고선수의 최저연봉을 달리 하고 있어서 생겨난 오해.
이렇게 육성선수와 등록선수의 연봉에 차등을 두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꼬우면 열심히 해서 올라오라는 헝그리 정신의 강조와 아마야구와의 공생. 헝그리 정신이야 설명이 불필요할 것이고, 아마야구와의 공생은 구단이 무분별하게 신고선수를 영입하지 못하게 하는 제약이다. 연봉이 240만 엔밖에 안 되면 신고선수를 할 바에야 안정적인 사회인야구를 택하거나, 프로를 목표로 하더라도 사회인야구나 대학에서 돈을 더 벌거나 공부를 하며 드래프트를 준비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이런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정말 지금 당장 한시빨리 프로에 가고 싶은 선수만 신고선수 계약을 하도록 제도적으로 제약을 걸어놓은 것. 구단측에서 프로에서는 애매한 정도의 (하지만 사회인 야구에서는 중요한 전력이 되는 수준의) 선수들을 로또삼아 신고선수 계약으로 쓸어가 아마야구가 고사하는 일을 막고, 선수 개인으로서도 신고선수 계약밖에 제시를 못 받을 정도면 냉정히 프로로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선수라는 이야기인데, 이런 선수가 섣불리 신고선수 계약을 택해 몇년 후 무직자가 되느니 사회인야구를 택하는 것이 멀리 볼 때 안정적일 것이다. 이런데 프로 신고선수가 사회인야구 연봉보다 높은 금액을 부르면 아마야구계는 선수가 부족해지고, 선수는 고작 눈앞의 몇십만 엔에 앞으로의 인생이 불안정해질 수 있으며, 구단 입장에서도 터질 가능성이 희박한 신고선수에 많은 연봉을 주는 것은 손해다. 아마야구계와 선수 본인, 구단 모두의 이득이 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막아놓은 것.
일본의 그저그런 1군 선수 연봉이 대만에서는 에이스급 선수들이 받는 연봉과 똑같다.
또한 선수의 연봉이 공개되는 한국과 달리, 언론이나 연감에 공개되는 연봉이나 FA의 계약 금액은 기본적으로 추정 금액이다. 선수도 개인이고 연봉을 얼마나 받는지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영역에 들어가며, 구단 경영 차원에서도 경비 얼마나 썼는지 재무재표를 일부 공표하는 셈이라 별로 달갑지 않기 때문에 선수의 사생활과 구단의 경영편의를 존중해 주는 차원에서 공개하지 않는 것. 그래서 연봉협상 때는 스포츠신문 기자들이 구단 사무실 앞에 진을 치고 기다리다 선수에게 인터뷰를 해서 연봉을 알아내는 것이 연례행사. 선수도 정확히 밝히지는 않고, "작년보다 조금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X천만엔 이상인가요?" "그만큼은 못 받았습니다" 하는 식으로 두루뭉실하게 답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것도 선수마다 케바케인지라 구단과의 합의 하에 시원하게 연봉을 까는 선수도 있기도 한데(주로 외국인 선수),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팀의 풀네임이 길다보니 보통 일상적으로 말할 때나 인터넷에서는 줄여부르는데,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건 팀명. 지역명, 고유명도 섞여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90% 이상이 고유명인 '거인'으로 부르고 한신은 기업명이자 지역명인 한신,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기업명인 야쿠르트, 히로시마 도요카프는 팀명인 카프 등 상당히 중구난방. 조금 길게 말할때는 한국과는 달리 지역명+기업명 식으로도 부르는 경우가 꽤 있다. 한국프로야구도 초창기에는 일본의 영향으로 라이온즈, 타이거즈 등 팀명을 주로 불렀는데, 한국프로야구는 자생력이 부족한 리그 특성상 기업명을 불러줘야 홍보가 되어 기업들이 투자를 많이 한다는 이유로 기업명으로 부르는 것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일본프로야구의 자생력을 알 수 있는 부분. 어느 정도 역사와 자생력이 있는 센트럴 리그 구단들이 고유명이나 팀명으로 많이 불리는 편이고,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져 스폰서의 입김이 강한 파리그 구단들이 기업명으로[6] 주로 불리는 편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나라 일본답게 간혹 구단과 애니메이션의 콜라보 이벤트도 많이 진행한다. 주로 구단이 속한 지역이 배경인 애니메이션이 주다. 단, 예외적으로 다이아몬드 에이스는 전국 순회 형태로 콜라보레이션이 진행 중이다.
매치업 표기는 미국식이 아닌 유럽식을 따른다. 즉, 사이타마 세이부 VS 치바 롯데라고 표기되었으면 ZOZO 마린 스타디움에서 하는 경기가 아니라 메트라이프 돔이나 기타 세이부가 지정한 경기장에서 롯데 선공, 세이부 후공으로 한다는 뜻이다. 한국이야 미국식으로 표기하니 헷갈릴 일은 없겠지만, 일본야구는 유럽식, 미국식 모두 통용되는 편이라 미디어나 신문에서는 혼동될 수 있다.
또한 타구 중계 카메라가 한국과 MLB와는 달리 1루측에 있다. 이것 또한 NPB의 특징이나, 다 그런 건 아니다. 자이언츠, 한신, 오릭스는 타 리그와 마찬가지로 홈 뒤편에서 비춰준다.
메이저리그처럼 선수 유니폼의 선수 이름이 로마자로 적혀있다. 야구만의 일은 아니고 모든 일본 프로 종목이 이렇다. 한국 프로야구 유니폼은 이름을 한글로 쓰는[7][8] 것과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같은 한자라도 읽는 방법이 여러 가지인 일본어의 언어적 특성상 한자로 적어서는 뭐라고 읽는지 정확한 발음을 알 수 없기 때문. 그 외에는 SHINJYO나 T-오카다, G.G.사토 등 등록명을 알파벳으로 등록해 버리는 선수도 있고.
자체적으로 e스포츠 리그를 운영한다. 종목은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스플래툰 2.

2. 인기


야구는 올해(2014년) 미쓰비시UFJ 리서치&컨설팅 조사에서도 역시나 일본인이 좋아하는 최고의 스포츠였다. '''일본에서 프로야구를 즐기는 인구는 무려 3,128만 명에 이르렀다.'''

관련 기사

2019년 기준 아시아에서 '''평균 관중 수 2위 리그.''' (경기당 30,917명, npb 역대 신기록)[9]

[10]

[image]
2019년에 집계된 3개의 평균관중수이다.
1934년 리그 출범 이후 일본의 스포츠에서 야구스모와 더불어 일본의 국기(国技)로 평가받았으며 야구의 인기와 맞물려 일본의 프로야구 인기는 상당한 수준이다. 엄청난 시장성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다음으로 세계 2위 규모의 프로야구 리그이며, 연간 관중동원은 2016년 기준으로 2500만 명 수준으로 센트럴리그가 1384만명, 퍼시픽리그가 1113만명 수준이다. 즉, 12개 구단으로 구성된 리그가 구단당 1년에 평균 200만 명에 가까운 관중을 동원하고 있고, 이를 경기당 숫자로 환산하면 각 구단이 매 경기 평균 2만 6천 명 정도를 동원한다는 얘기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일본프로야구에서 가장 관중동원 능력이 떨어지는 치바 롯데가 2016년 경기당 평균 관중동원이 21,000명 수준인데 이는 같은 해 KBO 관중동원 1위인 두산 베어스를 능가하는 수준. 치바 롯데와 두산이 가지고 있는 배경인구를 생각하면 실질적인 관중동원력은 더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NPB 측에서는 이 정도 관중 동원도 부진하다면서 라쿠텐, 롯데 등 비슷한 수준의 관중동원을 하는 팀들에게 관중을 좀 더 동원하도록 촉구하고 있기도 하다.
1993년부터 실제 입장수 기준으로 관중수를 집계하는 J리그와 다르게, 관중수 집계는 2005년부터 실제 입장수대로 집계하는 방식을 사용 중이다.

2.1. 2000년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프로야구의 위기설이 대두되었는데 TV 시청률 및 지상파 중계방송 횟수의 하락, 젊은 층,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점도 이러한 위기설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TV 중계방송이 줄어든 것은 지상파 중계 한정이고[11] 위성방송에 가입해야 한다는 점은 있으나 모든 경기를 1회초부터 경기 끝날 때까지 중계해주기 때문에 야구팬 입장에서는 시청환경이 훨씬 나아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2014년부터 폭스스포츠에서 일본 프로야구 중계를 시작했다.[12] 관중동원은 소폭이나마 계속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13] 여성팬층의 경우 2013, 2014년에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경우 관동지방을 중심으로 대규모 팬덤이 생기며 카프조시(カープ女子(じょし)[14]라는 신조어 까지 만들어 낼정도로 여성 팬덤의 유입이 적극적이었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여성팬 흥행 이후 다른 구단들도 여성팬에게는 유니폼 및 응원도구를 무료로 증정해 준다거나, 여성 전용 좌석 신설, 레이디스 데이 개최로 여성팬 무료 입장 행사를 하는 등 여성팬 유치를 위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으며 그 결과 2015년 시즌 12구단 중 6구단[15]이 여성 관련 행사를 개최한 날 시즌 최다 관객을 유치하는 등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도요게이자이신문에서는 "KBO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광경을 이렇게 빨리 볼 수 있을지 몰랐다"며 놀라워 할 정도. 하지만 인터넷으로의 중계 접근성, 서비스 가격 설정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센트럴리그는 리그 차원에서 통합 중계를 제공하는 KBO 리그[16],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퍼시픽리그보다는 온라인 접근성이 좋지 않은 편이다. 일단 퍼시픽리그는 6개 구단이 통합중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17], 센트럴리그는 요미우리가 <자이언츠 라이브>, 한신이 <토라테레>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히로시마는 지역방송인 RCC가 PPV로 <카프 라이브>를 서비스하는 등[18] 완전히 '''각개전투'''였으나 2017년부터 주니치, 히로시마, 요코하마 경기도 Sportsnavi, DAZN이 중계에 참여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추세. 그리고 2018년부터 DAZN 플랫폼으로 요미우리를 제외한 11구단 경기가 방송되며[19], 요미우리 홈경기는 Hulu 및 자이언츠 라이브스트림 서비스를 별도로 이용해야 한다. 2019년부터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DAZN 중계를 이용하게 되었으나 히로시마, 야쿠르트 경기는 각각 J SPORTS 온디맨드, 후지 TV ONE 온디맨드 서비스로 봐야 한다.
야구에 대한 일본 젊은층들 사이의 인식 개선도 넘어야 할 산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프로야구 구단들은 여성 팬덤 유입을 위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고 실제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으며 평균관중도 여전히 많지만, 아직 일본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야구는 중년세대나 보는 스포츠'란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20] 본 아이리서치가 20대 중후반, 회사생활을 시작한 지 3년 이내의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젊은 사원들이 회식 때 하기 싫은 이야기 2위에 야구 이야기가 올랐을 정도.[21] 좀 더 장기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이는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조차 경기당 평균 5만 명의 관중을 넘은 것은 세계 최초의 개폐식 돔구장에 월드시리즈 우승 버프를 받은 1992년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풋볼 겸용구장이던 마일하이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쓰고 창단팀 버프를 받던 1993년의 콜로라도 로키스 등 몇몇 예밖에 없다. 심지어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조차 경기당 평균 5만 명을 동원한 적이 없으며 뉴욕 양키스도 팀 역사에 경기당 평균 5만 명이 넘는 관중동원을 기록한 건 4번밖에 없다. 그런데 요미우리는 도쿄돔이 개장된 1988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17년동안 매 경기 평균 5만 5000명을 동원했다고 발표해왔다. 그러나 구단이 발표하는 구장의 수용능력과 실제 수용능력이 차이가 있다는 것은 조금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일본시리즈이다. 일본시리즈에서는 무조건 유료관중을 실수로 집계하도록 되어 있었고 매경기 5만 5000명을 동원한다는 요미우리가 정작 일본시리즈에서의 관중동원은 입추의 여지 없이 관중이 들어찼음에도 불구하고 4만7천~8천명 수준으로 발표가 되었기 때문에 일찍이 관중수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되고는 했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2004년까지 요미우리는 이 차이가 일본시리즈 초청권 때문이라고 둘러대왔다. 요미우리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는 매진이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전국구 인기구단의 체면상''' 중계화면에도 빈 자리가 보이는데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무조건''' 매진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4년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합병 문제로 촉발된 일본 프로야구 재편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관행적으로 행해져오던 이런 문제들에 대한 반성과 시정이 요구 되었고[22] 2005년부터 실제 표를 사서 입장한 관중들만 카운트 하는 것으로 체제를 바꿨다. 따라서 링크된 자료를 볼 때는 2004년 이전의 자료는 무시하거나 약 10~15%정도 심하게는 20~30% 가깝게 깎아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005년 이후로만 볼 것 같으면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2011년의 외부 요인을 제외하면 센트럴리그는 적어도 현상유지, 퍼시픽리그는 관중 수가 꾸준히 증가해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프로야구가 인기가 떨어졌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이유는 일단 프로야구 지상파 중계의 시청률이 떨어진 건 사실이고[23]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의 관심과 취향이 다양화되고 따라서 예전처럼 프로야구 하나에 인기가 집중되던 시절은 일본에서도 이미 지났다.
또한 위성방송, 케이블TV의 보급 확대로 다양한 구단의 팬들이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중계하는 패키지를 구입해서 위성방송 등으로 야구를 즐기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에 공중파에서 중계하는 요미우리 경기의 시청률이 더더욱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인데 메이저리그도 해마다 플레이오프나 월드시리즈 등 공중파에서 중계되는 빅 이벤트의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는 대조적으로 관중동원은 거의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고, 중계권료와 선수들의 몸값은 갈수록 폭등하고 있다. 일본프로야구도 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요미우리와 한신을 중심으로 하는 인기팀들이 모인 센트럴 리그의 관중동원은 최근 10년간 정체에 가까운 수준인 점도 한 몫 하고 있다. 게다가 2010년 일본시리즈가 치바 롯데 마린즈주니치 드래곤즈라는 비인기 대진으로 결정나면서 1, 2, 5차전이 공중파 전국 네트워크 중계 없이 지역방송과 위성방송으로만 송출된 것도 이러한 인상을 부채질했다.[24] 퍼시픽리그의 관중동원이 증가하면서 센트럴리그 팀들도 공격적인 투자, 구장 리모델링 및 팬서비스 보강책을 내놓고 있다. 그 중 가장 성공한 사례가 2012년 DeNA의 인수 이후 평균관중이 1.8배로 늘어나고 A클래스까지 다시 복귀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요미우리와 한신도 2014년부터 라이벌리를 '전통의 일전'으로 공식 브랜드화하여 공동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비공식적으로도 인터리그 기간 동안 각 지역 방송국들이 라이벌리 기획을 함께 벌이기도 한다.[25]

2.2. 2010년대 ~ 현재


2019년 현재 일본에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여성층과 젊은층에서도 그 인기가 매우 불어났다.
이는 2002년을 전후해 한참 주가를 올리던 축구계의 인기부진도 겹쳤다. 2015년 기준으로 일본에서 젊은 팬들의 일본프로야구로의 유입은 가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히로시마 야구인기 기사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여성팬 공략으로 많은 인기를 얻는 것은 물론 일본 프로야구는 지금 호황 중, 왜?에 의하면 퍼시픽리그는 지난해 관중 1072만 6020명을 유치해 1950년 리그 창설 이후 최다 기록을 세웠다. 센트럴리그는 관중 1351만900명으로 1992년 이후 최다. 하지만 관중동원 집계가 정상화된 걸 생각하면 실질적으로는 신기록이다.[26]
구단 별로는 센트럴리그에서 야쿠르트, 요코하마가 2005년 이후 신기록을 세웠고, 히로시마는 창단 후 첫 200만 관중을 돌파했다. 퍼시픽리그에서는 라쿠텐, 세이부, 오릭스, 소프트뱅크가 관중 기록을 새로 썼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NPB를 지배한 단어는 ‘위기’였다. 2004년 일본 최대 사철기업인 킨키 일본 철도가 보유하던 프로야구단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운영을 포기했다. 영 좋지 않던 인기도 그렇지만 오사카돔 대관료 등으로 인한 약 15억엔의 대적자로 인해 이 이상 계속 운영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거기다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가 모기업 다이에의 경영난(결국 다이에는 파산했다.)으로 다른 팀에 합병될 위기에 처하기까지 했다. 2004년 위기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킨테츠 대신 창단하고, 결국 모기업이 파산한 호크스는 소프트뱅크에게 매각되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되는 것으로,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킨테츠가 합병해 오릭스 버팔로즈가 되는 걸로 일단 봉합됐다. 하지만 위기는 지속됐다. 센트럴리그에서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가 구단 운영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왔다. 이런 위기로 인해 한때 NPB에선 양대리그에서 한 팀 씩을 없애고 10개 구단 단일리그로 운영하자는 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후루타 아츠야를 비롯한 선수협 등의 강한 반발로 이 안은 결국 무산되었다. 그리고 요코하마는 2011년 인터넷 기업 DeNA에 매각됐다.
NPB는 경영 면에서 한국프로야구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야구단 운영을 모기업의 홍보 수단으로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엄청난 야구 인기에도 경영수지 개선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에 센트럴리그, 특히 요미우리와 한신이라는 양대 인기 구단의 영향력이 크다. 이영훈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2008년 NPB 전체 TV중계권 수입 1억1740만 달러의 90.5%는 센트럴리그 6개 구단의 몫이었다. 그리고 77.7%를 요미우리와 한신이 가져갔으며, 요미우리 1개 구단의 몫은 절반이 넘는 51.8%였다. 메이저리그식 통합 마케팅이 어려운 구조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달라지고 있다. 노모 히데오부터 스즈키 이치로, 마츠이 히데키 등 수퍼스타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전전긍긍하던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센트럴리그는 2011년, 퍼시픽리그는 2012년부터 관중이 매년 증가 추세다. 전체 수입에서 입장료 비중이 큰 현실에서 긍정적인 신호다.
  • 구단 별로 기발한 마케팅 노력이 눈에 띈다. 오릭스는 올시즌 일본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체크무늬 유니폼을 선보인다. 유니폼 판매를 염두에 둔 마케팅이다. 메이저리그식 마케팅으로 유명한 라쿠텐은 올시즌 개막전을 오후 4시에 치른다. 1968년 이후 최초의 ‘황혼 경기’다. 관중 편의를 우선한 발상이다. ‘시민구단’ 히로시마는 올해 360점의 신상품을 기획했다. 그 중 하나는 55만 엔(약 549만 원)짜리 3대 한정 가죽 소파다.
  • 통합마케팅에도 눈을 뜨고 있다. 퍼시픽리그는 6개 구단에서 전문가를 차출해 한국의 KBOP[27]와 유사한 통합마케팅 조직을 만들었다. 해외 중계권 등 업무를 맡을 예정으로 최근 한국 방송사 관계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 구단 조직도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 프로야구는 모기업에서 파견된 간부가 구단 대표를 맡아왔다. 대개는 스포츠 비전문가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게 메이저리그식 단장(GM)이다. 1994년 치바 롯데 마린즈요미우리의 선수 출신이자 야쿠르트, 세이부 감독 출신인 히로오카 타츠로를 최초의 GM으로 임명했지만 반향은 크지 않았다. 지금은 직함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7개 구단이 GM과 유사한 직위를 두고 있다.
  • 구단 운영과 구장 운영을 일체화시키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요코하마는 올시즌 홈구장 과반수 지분을 취득해 일체 경영에 돌입했다. 2012년에는 소프트뱅크가 870억 엔을 투자해 후쿠오카돔을 싱가포르투자청으로부터 인수했다. 매년 50억 엔이 넘는 임대료 부담을 경감하고, 구장을 수익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에서였다. 최규덕 롯데 홍보팀장은 “수입 구조상 일본 뿐 아니라 한국 프로 구단도 구장과의 일체형 경영이 절실하다. 일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28]고 말했다. 현재 NPB에서 모기업이 구장을 소유한 구단은 모두 6개다. 그리고 라쿠텐과 히로시마는 모기업, 또는 스폰서사가 구장 명명권을 취득하며 야구단 운영 효과를 끌어올리고 있다.[29]
일본 스포츠전문잡지 <넘버> 고정 칼럼니스트인 요시자키 에이지씨는 “오릭스·킨테츠 합병 문제가 발생한 2004년은 위기가 고조된 해였다. 그때를 분수령으로 모기업에서 파견된 직원이 아닌 프로야구에 애착이 있는 전문 프런트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금의 마케팅 활성화는 그 성과다. 이어 “아직까지는 ‘선물을 증정하면 손님이 온다’는 수준이다. 프로야구 흥행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일본에서 야구의 인기는 2015년을 기점으로 메이저리그를 중심으로 시작된 시간단축을 위한 스피드업 제도 도입과 젊은층을 공략하는 서포터문화 확장, 국가대표 야구를 확장한 사무라이 재팬의 신설등 게임분야에서도 코나미프로야구 스피리츠,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등등 다양한 미디어, 게임시장등 젊은층들의 문화를 공략하여 그 인기가 다시 치솟고 있다. 그러나, 코나미의 경우에는 라이센스 독점 문제로 인하여 프로야구 게임 팬들에게 까이고 있다.

또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오릭스 버팔로즈같은 비인기팀들도 호성적과 더불어 다양한 마케팅 시도로 그 관중수와 인기가 불어나고 있다. 위 영상은 NPB의 대표적인 하위권 팀이며 걸출한 스타선수도 없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 혜성같이 나타난 대졸 신인 야마사키 야스아키가 리그 신인 최다 세이브를 달성하는 영상인데, 3만 명 이상의 관중이 야마사키의 등장음악[30]에 맞춰 점프를 뛰며 '야스아키'를 외치는 일명 '야스아키 점프'가 눈여겨 볼 장면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놓고 볼 때 앞으로 세계 야구계가 전체적으로 가장 큰 과제인 경기시간 단축과 빠른 경기 흐름의 야구를 구축할 수 있다면 일본에서 야구인기는 지금보다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아직은 더 지켜봐야겠지만 시청률 면에서 야구의 사무라이 재팬이 축구의 사무라이 블루를 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2015년 11월 12일, 비슷한 시간대에 열린 두 경기를 비교했을 때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경기 시청률이 좀더 좋게 나왔다는 걸 볼 수가 있다.
'''경기'''
'''방송사'''
2015 프리미어 12 예선
일본 vs 도미니카공화국
TBS 테레비 지상파 중계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일본 vs 싱가폴
후지TV 지상파 중계
'''지방'''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칸토
'''15.4%'''
13.2%
칸사이
'''15.9%'''
11.4%
나고야
'''14.6%'''
12.8%
북부 규슈
'''25.3%'''
11.1%
또한 2016년 1월에 나온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스타 순위에서도 야구스타들의 이름이 대거 포함되었다. 일본 스포츠스타 인기순위 - 일본인이 사랑하는 스포츠맨…男테니스 니시코리 게이 1위, 야구에선 이치로가 오타니에 51표 앞서
한편으로는 도쿄, 오사카 등 몇몇 도시에 구단이 집중되어 있는 과거와는 달리 전국 각지의 대도시에 팀이 하나씩 생기면서 분권화 및 지역밀착은 과거보다 훨씬 강화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1953년 연고제 정착, 1958년 마이니치 오리온즈와 다이마이 유니온스와의 합병 이후 12구단 체제가 정립이 된 이후부터는 주부지방의 한 팀, 산요지방의 한 팀을 빼고는 죄다 도쿄 중심의 칸토지방과 오사카 중심의 칸사이 지방에 몰려있었다. 물론 프랜차이즈 시작은 후쿠오카였으나 나중에 사이타마로 옮긴 팀이라든가 집시처럼 떠돌이 생활을 했던 팀 등의 예외도 있었다.
그런데 1989년 이후 다이에가 난카이를 인수해 후쿠오카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을 보고 주로 파리그에서 적극적으로 지역 밀착 정책을 실시한 구단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4년 '공백의 2일' 파업, 2005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창단한 이후, 칸토권역에는 6팀으로 5팀으로 큰 변화는 없었으나 닛폰햄이 홋카이도에 가서 대박을 치자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뺀 나머지 구단들은 연고지 이름을 붙이면서 정체성을 강화했다. 위에서 말한 인기의 하락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인기 하락'''일 뿐 일본 프로야구 전체의 인기 하락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한신 타이거스의 경우에는 1980년대와 비교하면 현재의 인기도가 훨씬 높은 편이다. 칸사이권은 한때 4 있었으나 2005년 이후에는 2팀으로 줄은 상태. 게다가 족보가 거시기한 구단 때문에 사실상 한신 타이거스가 오사카권 팬덤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2.3. 한국에서


NPB의 위상과 수준, 규모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에서는 그 관심과 인기가 다소 낮은 편이다. 그나마 베이징 올림픽과 2009 WBC에서 일본의 우승으로 인해 그 관심이 조금 늘었지만 그래도 아직 많이 가려졌다. KBO리그의 타고투저에 싫증난 팬들이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일단 중계를 해 주는 채널이 18년 기준으로도 국내 방송사 중에선 단 한 군데도 없고 막상 현지 중계 화면으로 보려고 해도 형편없다 못해 끔찍한 중계카메라 앵글과[31][32] 소음공해 수준의 트럼펫 응원소리, 언어의 장벽 등등 진입장벽이 메이저리그보다도 훨씬 까다롭다. 아프리카 TV에서 중계를 접은 뒤로는 맘먹고 입문하는 것 조차도 몹시 어려워졌다.
이대호오승환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때 '''"우리에게도 관심을 줬으면 좋겠다"''', '''"모든 포커스가 메이저 리거들에게만 쏠려 있어서 섭섭하다"''', '''"재팬시리즈에서 우승을 하고, 구원왕을 해도 아무도 모른다"''', '''"MBC메이저리그만 중계해놓고 왜 우리를 섭외했느냐"'''[33] 라고 대놓고 투덜거렸을 정도.... 국민들과 언론의 관심이 해외야구 방면에선 메이저리그에 과도하게 편중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상당히 속이 상한 것 같다. 이대호오승환이 이러한 이유로 그토록 메이저리그 진출을 갈망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외 사례로 이승엽의 경우는 관심을 많이 받은 편이다.[34] 시즌 전이었던 2006 WBC에서의 맹활약으로 관심도가 폭발한 상황 + 요미우리 자이언츠니혼TV에 중계권료만 100억을 준 SBS Sports에서 KBO 리그보다 적극적으로 중계해 주면서 당시 이승엽의 인지도는 상당했다.[35]
현재는 중계해주는 곳이 TV에서는 없다 보니까 대부분의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야구 팬들은 아프리카TV의 오승환 공식 하이라이트[36], 토토 분석/사설토토 사이트(...)에서 일본 방송을 그대로 중계하는 것을 보고 있다. 2019년 5월 13일부터 공식 프로토에서 일본야구가 빠진다. 이제 일본야구에 돈을 건 토쟁이는 다 사설토토를 한다는 것.
굳이 보자고 한다면 퍼시픽리그TV를 결제해서 보는 것이 좋다.[37] 사실 일본에서도 네이버, 다음같이 DAZN이나 Hulu, 니코동에서 무료중계를 해주지만 지역제한이 있어서 국내에서 보기는 어렵다. 또한 매우 많은 유료서비스가 있지만[38] 모두다 지역 제한이 있고 유일하게 파리그TV만 PC/스마트폰 모두 지역 제한이 없이 제공된다.[39]
이외에는 BS위성을 수신하거나[40] 단파방송NHK 월드로 재전송되는[41] NHK1라디오 중계, 인터넷라디오 라지코 등이 있다.
다만 일본에서 실패한 KBO출신 용병들의 기사가 네이버 해외야구 기사란을 장식한 덕분에 중계는 하지 않지만 눈꼽만 한 관심은 받는 모양. 물론 대다수는 KBO리그가 질이 낮다며 무작정 까는 댓글이 주를 이룬다. KBO출신 용병들을 제외한 기타 일본야구 관련기사는 여전히 관심 밖이다.

2.3.1. 대한민국 선수


가장 대표적인 대한민국 국적 선수로는 장훈이 있다. 일제 시대에 출생을 하였으며 차별 속에서 끝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고수하였다. 장훈의 통산 3085안타는 아직도 깨지지 않은 일본 프로야구 최고 안타 기록이다. 국내에서 장훈은 한국인 선수라고 보다는 일본 야구 선수라는 이미지가 훨씬 강하다. 그래서 장훈이 대한민국 야구 보다 일본 야구에 편향적인 얘기를 하더라도, 장훈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라는 반응을 하며 이해하는 분위기다. 대한민국 국적은 아니지만 재일 교포로는 카네다 마사이치이 있다. 단 이쪽은 본인의 의지로 귀화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카네다 마사이치가 가지고 있는 기록으로는 일본 통산 최다 승수로 통산 400승을 기록하였다.[42]
KBO 리그 출범 전의 진출은 1962년 백인천의 토에이 플라이어스 입단이 최초로[43], 백인천은 이후 일본에서 20년 동안 뛰게 된다. 1966년에는 중앙고 3학년이었던 투수 이원국이 도쿄 오리온즈와 계약했으나 1967시즌 단 1경기 등판에 그친 채 퇴단한 후 미국 마이너리그로 떠났다. KBO 리그 출범 이후의 첫 진출은 해태에서 주니치로 이적한 선동열로, 선동열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이후 한국 프로야구의 특급 선수들을 데려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에 타자로서는 이종범, 이승엽, 이범호, 이병규, 김태균, 이대호 등이 있었다.

투수로서는 조성민, 선동열, 이상훈, 구대성, 임창용, 이혜천, 오승환 등이 있었다. 2021년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는 대한민국 선수는 아무도 없다.
진출 가능성이 있던 황재균, 김현수, 손아섭 역시 KBO 리그에서 뛰는 길을 선택했으며, 양현종도 KIA 타이거즈에 잔류한다. 1995년 이후 20년 이상 늘 한국인이 일본리그에 1명 이상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사실 2017년에 김정후치바 롯데 마린즈 입단 직전까지 갔으나 그의 입단에 호의적이었던 감독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바로 무산되었다. 사실 한국 국적을 가진 선수로 기준을 넓힌다면 한 명 있다. 우에다 츠요시(한국 이름 주강사)라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백업 외야수가 유일한 대한민국 국적의 일본프로야구 선수. 단 이 선수는 재일교포 4세라서 국적만 대한민국이지 사실상 100% 일본인이나 다름없다.[44] 그나마 그 우에다도 2020년 투수급 타격을 선보이면서 결국 방출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고졸로 미국에 직행한 해외파 중 갈 곳 없는 선수나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입단 테스트를 받아서 들어가는 것이 현재로써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상황.
마지막까지 일본에서 뛰었던 선수는 2016 시즌의 이대은, 하재훈, 김무영. 그러나 이대은은 병역 이행을 위해 치바 롯데에서 퇴단해 귀국했고 경찰 야구단에 입대해 병역을 이행한 뒤 2019년도(2018년 9월 시행) 신인 2차지명에서 전체 1순위로 kt wiz의 지명을 받았다.[45] 하재훈은 야쿠르트 입단 전 뛰었던 독립리그 팀 도쿠시마 인디고 삭스로 돌아갔다가[46] 투수로 전향, 2019년도 신인 2차지명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았다. 김무영은 라쿠텐에서 방출당한 뒤 은퇴했다.
일본진출이 이토록 시들해진 이유로는, 한국프로야구의 연봉상승이 큰 이유다. 과거 KBO의 실력도, 연봉규모도 지금보다 더 낮았던 시절엔 메이저는 바라볼 수조차 없었고 일본만 가도 한국과 금전적 차이가 났기에 충분히 메리트가 있었으나, 한국도 FA규모가 커지며 특급 선수에게는 일본의 2/3에 가까운 연봉을 지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일례로 일본프로야구 최고연봉자들의 연봉이 4~5억엔에서 형성되는데, 이대호가 4년 150억으로 약 40억 좀 못되는 금액. 거의 차이가 없는 금액까지 올라왔으며 그 외 특급 FA의 경우 계약금포함 연 20억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한데, 일본프로야구도 3억엔 이상 고액 연봉자들은 열 명 전후인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2/3정도의 규모까지 올라온 셈. 세금이나 해외 체류비용 및 물가차이를 고려하면 이 차이는 더 줄고 그 외 음식이나 언어 등에서 오는 타지생활 적응 등 금전 외적 문제까지 고려하면 해외 나가서 고생하느니 국내에서 편하게 야구를 한다는 메리트가 일본진출로 얻는 금전적 이득보다 커진 셈이다.[47][48] 또한 KBO리그가 인기가 커지면서 같은 시간대에 이뤄지는 일본프로야구가 인기가 많이 줄어, 중계권을 살 방송사도 그닥 없기 때문에 야구외적으로는 말 그대로 인기스타로서 대접받고 살 수 있는 한국에 비해 일본리그 용병은 그런 대접을 바라기 힘들고, 한국에서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또한 류현진 이후 메이저리그라는 또 하나의 선택지가 생겼는데 이쪽은 진짜로 한국에 비해 최소 2배, 많게는 수십 배의 연봉과 일본야구에 비해 훨씬 큰 인기와 세계최고의 무대에서 뛴다는 명예까지 얻을 수 있어서 상술한 디메리트를 희석시키고도 남아, 최상급 선수들은 일본보다 메이저리그를 정조준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또한 일본프로야구에서 선호하는 선수 타입이 한국리그에 없기도 하다. 일본에서 선호하는 용병 선수 유형이라면 투수는 선발과 구원을 막론하고 구위가 좋은 파이어볼러, 야수는 역시 장타력을 지닌 거포를 최우선으로 원하는데 이런 선수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최우선적으로 원하는데다 그 수도 적어 용병으로 수입해 오는 판이다. 현재 해외진출을 노릴만한 기량이 되는 국내리그 선수들은 에버리지 히터 유형이거나 호타준족형이 많아 일본야구에서 선호하는 외국인 선수 타입과는 거리가 있어 선수들도, 구단도 서로가 서로를 원하지 않는 모양새라 당분간은 일본 진출이 계속 시들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축구와는 다르게 유망주들이 일본 진출을 거의 하지 않는데, 똥군기니 시설이니 장황하게 써도 문제는 역시 계약금. 마이너리그도 시설 구리고 출장기회 보장 못받긴 마찬가지지만 100만달러씩 턱턱 내놓을 수 있는 미국 구단과는 다르게 일본 구단은 1억엔 이상 계약금은 정말 1라운더급이 아니면 내놓지 않는다. 설령 일본 1라운드급 유망주가 있다 할지라도 이 정도 실력이면 미국 구단에서도 러브콜을 보낸다. 이런 탓에 여태까지 이런 대접을 받고 일본으로 진출을 했던 유망주는 단 한명도 없었다. 대만이야 유망주들이 일본에 많이 가는 편이지만 여긴 자국 프로리그가 거의 박살이 난 상황이라 사정이 많이 다르다. 그런 반면 한국은 자국 학원야구와 프로리그가 잘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유망주 유출은 김칫국 마시는 이야기.
정확히 말하면 고교-대학/사회인 야구 등 아마레벨에서 일본에 진출하는 케이스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많은데, 프로까지 올라오지 못해 유망주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KBO에서 상위지명이 가능한 레벨의 진짜 유망주는 어지간하면 KBO에 남거나, 100만달러급의 계약금을 지불할 수 있는 MLB 직행을 택하지[49], KBO보다 수준은 높은데 계약금 액수가 MLB처럼 확 뛰지도 않는데다가 불투명한 1군입성을 두고 경쟁해야 하고 국내 인기도 낮은 NPB에 가지 않는다.
대부분 딱히 상위권 지명 가능성이 없는 선수들이 더 넓은 인재풀과 높은 교육수준을 지닌 일본 학원야구에서 배워 기량을 끌어올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일본에 가는데, 애초에 한국에서도 안 통하던 실력이 일본 간다고 급격히 올라가는 기적이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사례가 거의 없는 것. 실례로 지금까지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한국인은 김무영, 신성현, 송상훈 3명이 끝이다. 그리고 지명된 세 명 중에서도 김무영만 유일하게 1군을 밟았으며 그나마 30대 초반에 커리어가 끝났다. 그나마 저들 이후 유학파 중에서 이름이 알려진 케이스로 코시엔에서 홈런을 치는 등 주목받았던 송호경(메토쿠고교-니혼대학)이 있었는데[50] 니혼대 진학 이후 부상으로 백업, 대타 요원을 전전하다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고 2020년 현재 독립 리그를 전전하고 있다. 아직 24세이긴 하지만 독립리그 기록도 썩 좋지는 않아서 일본프로야구에서 보기는 어려울 듯.
2020년 11월 성남고등학교 3학년 이준명[51]오릭스 버팔로즈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합격 시 4년 만에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 대한민국 선수가 나올 것으로 보였으나 이렇다 할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으며 오릭스 구단 공홈의 선수 명단에 없는 것을 봐서는 입단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3. 역사



3.1. 프로야구 창설 이전


[image]
호레이스 윌슨(Horace Wilson)
1872년 제1번 중학(第一番中学)[52]미국인 교사인 호레이스 윌슨에 의해 처음 일본에 전파된 야구는, 1878년 일본 최초의 야구팀인 니이바시 아스레틱 구락부(新橋 アスレチック 俱樂部)[53]가 창단되면서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야구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것은 1896년으로 다이이찌(第一) 고교가 미국인이 이끈 요코하마 아스레틱 구락부(橫浜 アスレチック 俱樂部)를 이기면서 였다. 일본인이 미국인을 꺾었다는 자긍심이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났고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 야구가 크게 성장하게 된다.
1920년, 일본 최초의 프로야구팀인 합자회사 일본 운동 협회(合資会社日本運動協会)가 창단되며 일본의 야구 리그 창설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한다. 이듬해에는 덴카쓰(天勝)) 야구단도 문을 열었다. 두 팀은 맞대결을 벌이는 대신 중국, 만주, 대만 등지를 돌면서 도장 깨기를 하고 다녔다.
그러다 두 팀은 1923년 6월 21일 경성(서울) 만철(滿鐵) 운동장에서 처음 맞대결을 벌였다. 일본 프로야구가 서울에서 시작했던 셈이다.#
그러나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 운동 협회와 덴카쓰 야구단[54]이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일본 프로야구리그 창설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일어나니 그것이 바로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의 방일이었다.

3.2. 일본직업야구연맹 시절


1934년 요미우리 신문일본에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선수단을 초청하여 전일본군(全日本軍)과 경기를 치른 것을 계기로 요미우리 신문은 전일본군을 모체로 하여 도쿄 교진군(東京巨人軍, 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창단하게 된다. 그 후 1936년 당시 요미우리 신문사의 사장인 쇼리키 마츠타로의 주도로 오사카 타이거스(大阪 タイガース, 현 한신 타이거스), 나고야(名古屋, 현 주니치 드래곤즈), 다이도쿄(大東京, 후에 쇼치쿠 로빈스와 합병), 나고야긴코(名古屋金鯱), 도쿄 세네터즈(東京 セネターズ), 한큐(阪急, 현 오릭스 버팔로즈)가 리그에 참가하여 일본직업야구연맹(JBL; Japanese Baseball League, 후에 일본야구연맹으로 개칭)을 결성한 것이 일본프로야구의 시초다.
그 후 1937년 고라쿠엔 이글스, 1938년 난카이(南海, 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새로 참가하게 되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미국과의 관계가 험악해지면서 한큐군을 제외한 대부분의 야구단의 영어 이름이 일본식으로 바뀔 정도인 데다가, 유니폼도 군복으로 입을 정도로 리그 유지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국 패전위기로 치닫게 된 1945년에는 일본프로야구가 아예 열리지 않게 되었다가 종전 후 1946년에 다시 재개되었다. 1946년 골드스타(후에 마이니치 오리온즈로 흡수)와 세네터즈(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합류하게 되며 양적 팽창을 거듭하였다.

3.3. 양대리그 출범


신생팀이 늘어나면서 양적 팽창을 하던 일본프로야구는 마이니치 신문이 프로야구 참가를 확정하면서 동종업계 라이벌인 요미우리 신문과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당시 난카이 호크스(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벳쇼 다케히코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요청으로 인해 이 팀에 입단하게 되면서 요미우리와 그 외 구단의 신경전이 극도로 치달은 데다가(일명 벳쇼 빼내기 사건), 요미우리가 신규 구단 창단에 인색한 태도를 보이면서 결국 1950년 일본야구연맹이 해체되고 2리그로 분열되어 새로 구단 창단을 반대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사카 타이거스(현 한신 타이거스)[55], 주니치 드래곤즈, 다이요 훼일즈(현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주도로 센트럴리그를 결성하고, 반대편의 마이니치 오리온즈(현 치바 롯데 마린즈)와 벳쇼 다케히코 빼내기 사건의 피해자인 난카이 호크스 주도로 퍼시픽리그를 결성한다.
1950년 당시 센트럴리그 쪽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사카 타이거스(1961년부터 한신 타이거스로 변경), 주니치 드래곤즈(도중에 51-53시즌동안 나고야 드래곤즈가 되었다가 54시즌 이후로 다시 원상복귀), 타이요 로빈스(후에 영화사인 쇼치쿠와 제휴하여 쇼치쿠 로빈스가 됨), 다이요 훼일즈, 히로시마 카프(1968시즌부터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변경), 고쿠테츠 스왈로즈(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니시닛폰 파이어리츠가 있었으며, 반대편인 퍼시픽리그는 니시테츠 클리퍼스(1년 뒤 니시테츠 라이온즈로 변경), 킨테츠, 한큐 브레이브스(현 오릭스 버팔로즈), 마이니치 오리온스, 난카이 호크스, 다이에이 스타즈, 도큐 플라이어스(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있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구단이 난립하다보니 재정적인 문제로 수많은 구단이 운영포기를 선언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니시닛폰 파이리츠가 1년만에 니시테츠 클리퍼스(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합병되는 것을 시작으로, 1954년에 퍼시픽리그에 가입한 다카하시 유니온즈는 1955년 연필회사인 톰보[56] 스폰으로 톤보 유니온즈로, 1956년 다시 다카하시 유니온즈가 되다가 1957년 다이에이 스타즈와 합병되어 다이에이 유니온즈로, 1958년 마이니치 오리온즈와 합병하여[57] 다이에이마이니치(다이마이) 오리온즈(현 치바 롯데 마린즈)가 되는 등 5년 연속으로 구단명이 바뀌는 소동이 일어난 것. 정말 정신없이 10여년 동안 통합이 이루어졌다.
1953년 센트럴리그 쇼치쿠 로빈즈도 후에 다이요 훼일즈와 합병하면서 현재의 12개 구단으로 정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0년대 이전까지 각팀들의 흥망성쇠를 간단히 정리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1990년대 - 세리그에서는 히로시마의 몰락이 있었지만, 여전히 강팀으로 자리잡은 주니치야쿠르트의 약진, 요코하마의 갑툭튀 등 요미우리를 견제할 팀들이 있곤 했다. 파리그에서는 세이부가 여전히 막강한 전력으로 다른 팀들을 압도하는 가운데 스즈키 이치로오릭스 블루웨이브가 대항마로 떠오르기도 했다. 한편 난카이는 다이에 호크스로 이름을 바꾸면서도 90년대 후반까지 비밀번호를 찍다가 1999년에 이르러서야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암흑기를 벗어난다.

3.4. 2000년대


2005년 퍼시픽 리그의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와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합병하여 오릭스 버팔로즈가 되었는데, 당시 NPB를 주도한 요미우리 자이언츠 회장인 와타나베 츠네오가 이 외에도 세이부 라이온즈치바 롯데 마린즈와 합병하여 10개팀으로 줄이고 단일리그로 환원할 계획을 세우면서[58] 선수협의회[59]가 이에 반발, 2004년 9월 18일과 19일 이틀 간 사상최초로 파업을 하면서(일명 공백의 2일) 일본프로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게 되었다. 결국 NPB는 이 계획을 백지화하고, 대신 라쿠텐이 프로야구에 뛰어들면서 도호쿠 지방을 연고(정확히는 미야기센다이)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창단하게 된다.
당시 신흥 인터넷 기업이었던 라이브도어가 참여 계획을 세웠으나 라이브도어의 NTV 주식매수 및 주가조작건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라쿠텐으로 갔는데, 그 후 라이브도어는 각종 비리로 인해 사이트 자체는 망하지 않았지만 NHN(현 네이버)에 인수되어서 호흡기 신세가 되었다. 만약 골든이글스가 라이브도어로 갔다면[60] 재정이 불안정해 해체된 대만프로야구 팀 꼴이 났을 것이다. 이러한 리그 신생팀 참여 과정의 임팩트 워낙 컸기에 '신규참여'가 일본 10대 유행어 중 하나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열리지 않았던 양 리그 간 교류전이 2005년부터 열리게 되는데 그 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 간의 실력차가 극명히 드러나면서 '인기의 센트럴리그', '실력의 퍼시픽리그'란 이미지가 더욱 강해지게 된다. 2010년 교류전에서는 상위 6개 팀이 전부 퍼시픽리그 팀이 되는 일도 벌어졌다.
퍼시픽리그 사무국 측의 적극적인 마케팅 투자(공식홈페이지를 통한 6개 구단 전경기 인터넷 경기 중계, 팬서비스 투자 확대, 통합 마케팅전략 수립 등)로 인기 격차는 예상보다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거기에 각 구단마다 지역명을 붙이고, 현지 언론에서도 지역명 부착 구단에 한해 지역명을 꾸준히 표기해주며 '우리 동네 야구팀'이라는 애향심까지 더해진 상황이다.[61]
예외적으로 일본프로야구에서 지역명이 없는 팀은 단 세 팀이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주니치 드래곤즈, 오릭스 버팔로즈가 지역명 붙이길 꺼리는 팀. 요미우리[62], 주니치[63]야 일본프로야구 초창기부터 확고한 자리매김을 한 팀이니 굳이 연고지명을 붙일 필요가 없고[64], 오릭스는 2005년 오릭스가 킨테츠 버팔로즈를 흡수합병하며 사실상 재창단되어 족보가 거시기한데다, 오사카와 고베를 오가며 시즌을 보내고 있어서 연고지명을 붙이지 않는다.[65][66] 참고로 언뜻 보기에 지역명이 없는 듯한 한신 타이거스의 경우 포항제철 아톰스 같이 기업명에 지역명(오사카(大阪)에서의 한(阪), 고베(神戶)에서의 신(神)[67])이 있는지라 자동 부착한 셈이다.
이와는 별도로 그동안 정규리그 1위팀에게만 주어졌던 일본시리즈 진출팀을 퍼시픽리그는 2004년, 센트럴리그는 2007년부터 플레이오프 제도인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도입하여 정규리그 상위 3개팀까지(소위 A클래스)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일본시리즈 진출팀을 놓고 겨루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정규리그 1위가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나오게 되자 퍼시픽리그는 2006년, 센트럴리그는 2008년 리그 1위 팀에게 플레이오프에서 1승 어드밴티지를 주는 제도로 바뀌게 된다.
특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이 플레이오프 제도의 대표적인 희생자. 정규리그 1위를 하고도 일본시리즈에 올라가지 못하는가 하면 2006년부터 1승 어드밴티지가 주어졌을 때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정규리그 2위, 3위를 차지하곤 했다. 근데 사실 소뱅이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경기하는 거 보면 심하게 못한다. 팀 전체가 플레이오프 울렁증이 있는 듯. 다행히도 2011시즌에는 극복하고 일본시리즈를 우승하였다. 2018년에는 팀 역사상 최초의 업셋까지 성공.

3.5. 2011 시즌


2011 시즌은 전체적으로 일본프로야구 역사에 좀 특이한(?) 시즌이었다. 2011 시즌은 3월에 일어난 도호쿠 대지진의 여파 때문에 시즌 개막이 보름 정도 늦춰졌으며 그 때문에 플레이오프나 일본시리즈 같은 중요한 경기들이 다 미뤄지면서 일정 자체가 보름씩 다 늦춰졌다. 특히 일본시리즈는 11월 12일부터 시작인데, 11월 중순이면 돔구장이면 몰라도 야외구장에서 할 경우에는 매우 추울 것으로 예상되었을 정도. 참고로 2010 시즌의 경우 일본시리즈는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이 되면서 10월 30일부터 11월 7일까지 진행되었다. 하지만 주니치 드래건스랑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붙게 되어 돔 경기장에서 일본시리즈를 진행하는 바람에 추위 걱정은 없었다.
또한 다른 지진 여파의 안 좋은 점으로는 일부 용병(요미우리의 브라이언 배니스터, 치바 롯데의 '''김태균''', 요코하마의 브렌트 리치, 라쿠텐의 후안 모리요 등)이 지진이나 방사능 때문에 퇴단한 점. 이들 중 김태균과 후안 모리요는 계약 해지를 구단이 받아들여주었고, 배니스터와 리치는 일본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아 제한 선수로 묶였다. 결국 배니스터는 쿨하게 은퇴를 선언했으며[68], 현역 연장 의지를 보였던 리치는 7월에 뒤늦게 일본에 입국하면서 복귀하게 되었다. 그러나 8경기에 선발등판해 1승 7패로 털리면서 시즌 종료 후 바로 방출되었고, 은퇴할 때까지 마이너리그만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지진의 여파, 대체로 원자력 발전소 가동 중단으로 인한 전력난 때문에 2011 시즌 몇가지 규칙이 새로 생겨서 변수가 생겼는데,
1. 4월, 5월에는 도쿄 전력, 도호쿠 전력 영향하에 있는 구장에서는 낮경기가 진행되었고 5월 3일까지는 돔구장에서 경기조차 못 했다. 이로 인해 도쿄 돔을 홈으로 쓰는 요미우리는 야마구치 현 우베에서 개막전을 치러야 했다.
2. NPB 공인구를 반발력이 낮은 미즈노사의 통일구라고 불리는 공으로 교체.
3. 경기 시작 후 3시간 30분이 지나면 새로운 이닝에 들어갈 수 없다.
1번의 경우에는 늘어난 낮경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을 제대로 못한 선수들이 많았고, 돔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구단의 경우 아예 돔구장에서 경기를 못 열었으니 불편했고. 특히, 라쿠텐 같은 경우엔 연고지 센다이가 워낙 개막장이 된 상황이라 시즌 시작 후 약 보름동안 아예 다른 구장을 빌려가며 경기를 벌여야 했다. 결국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오릭스 버팔로즈의 동의를 받고 홋토모토 필드 고베를 임시로 홈으로 써야 했다.
2번 때문에 큰 변화가 나타났는데, 쉽게 말해 투 고타 저의 시즌이 되어 버렸다. 너무 타자가 홈런을 치기는 어렵고 안타를 쳐도 어거지로 치게 되면서 타율 3할이 넘는 타자가 가뭄에 콩 나듯이 나오고 말았다. 이전까지 NPB에서는 각 구단마다 사용하는 공이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사무국에서 정한 일정 품질기준을 통과한 여러 제조사의 공들을 각 구단이 구매해서 사용할 수 있었는데, 즉 홈구장의 구단별로 사용하는 공이 달랐다는 이야기였다. 공인구를 바꾼 이유는 중구난방인 공인구 상황을 통일시켜[69] 기록의 신뢰성과 전력 평준화를 실현하고 국제대회에서 사용하는 공을 국내에서 쓰게 함으로써 국제대회 적응을 위해서였는데, 너무 반발력이 낮은 탓에 결과가 참담했다. 그래도 여름을 기점으로 인해 더워진 날씨와 체력저하로 투수들이 투구에 고생하는 것과 더불어 공에 익숙해진 타자들이 맹타를 휘둘려 어느 정도 타격 페이스는 많이 회복되었다...지만, 결국 양대리그 12팀 합쳐서 3할 타자가 9명 밖에 안 나왔을 정도로,근래의 시즌에 비하면[70] 투 고타 저임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3번의 경우에도 큰 변수가 되었던 것이, 3시간 30분이 지나고 정규 9이닝을 채우게 되면, 새로운 이닝를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연장을 가지 않거나 가더라도 10회까지만 하는 경우가 많았고 11회까지 가는 것도 드물다 보니 12회까지 가서 무승부가 나는 경우는 정말 희귀한 경우였다. 덕분에 '''승패랑 관계없는 무승부가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9월 초경에 발표된 일본야구기구에 따르면 CS(클라이맥스 시리즈)와 일본시리즈는 이런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연장은 12회까지, 일본시리즈 연장은 15회까지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다시 말해 시간제한 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리. 참고로 동북지역에 걸려 있는 전력 사용 제한령은 9월 9일을 기점으로 해제되었다.
여담이지만 시간 이닝 제한은 한국에서도 2004년까지 적용했다가 실패한 규정이다. 야구팬이라면 잘 알겠지만 이 시즌 한국시리즈에서는 이 시간 제한 룰 때문에 무승부가 3번이나 나왔고 덕분에 사상 최초로 8차전도 아닌 9차전에 가서야 결판이 났다. 당연히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고 다음해 바로 폐지되었다.
더불어 2011년 시즌 종료 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모기업이 TBS 테레비방송국 에서 모바일 게임 업체인 디엔에이(DeNA)[71]로 변경되면서 팀명이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로 바뀌어 2012년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3.6. 2012 시즌


2012년 시즌도 미즈노사의 통일구를 계속 사용하며 끝나지 않는 전력난 때문에 3시간 30분 룰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2011년 시즌처럼 답답한 투고타저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 타자들이 통일구에 대해서 많이 적응했다는 점이었다. 2011년 시즌 막판에서야 통일구에 적응해서 어느 정도 타자들이 공을 많이 쳐낼 수 있었다.
센트럴리그에서도 선발투수 예고를 시행한다. 반대했던 한신이 찬성으로 급선회하면서 양대리그가 전면 시행하게 되었다.
2012년 4월부터 대한민국 스포츠토토에서도 일본 프로야구에 베팅할 수 있게 되었고, 7월에는 일본의 스포츠토토 운영기관인 NAASH(일본스포츠진흥센터)가 일본프로야구, 스모를 토토 베팅 대상에 포함할 것을 검토한다고 발표하였다. 2012년 현재 일본의 스포츠토토에서는 베팅 대상이 축구 하나였다. 시행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2012년 8월 초 시점에서 센트럴리그, 퍼시픽리그 각 리그 내의 팀 간 전력격차 가 드러났다. 센트럴리그는 1위와 6위 간의 게임차가 27게임(특히 1위와 3위 간의 게임차가 14게임)으로 전력격차가 극심했던 반면, 퍼시픽리그는 1위와 6위 간의 게임 차가 10게임으로 즉 전력평준화가 더 잘 되어 있었다.

3.7. 2013 시즌


시즌 초반부터 '저번 시즌이랑 똑같은 통일구인데 공이 더 잘 뻗는 것 같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장타나 홈런이 지난 시즌에 비해 비교적 많이 나왔고, 선수들의 체감상으로도 다른 공처럼 느껴졌다고. 이에 대해 '타자들이 통일구에 적응하였다', '통일구로 인해 타자들의 기술이 향상됐다'는 등의 분석이 나왔지만, 시즌 중반 무렵에 접어들어 '''진짜로 공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밝혀져버렸다. 기존에 사용하던 통일구가 기준수치에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고, 이에 일본야구기구가 미즈노에 통일구의 미세조정을 요구했던 것.
문제는 공이 바뀌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난 이후로도 '''진상이 드러나기 전까지 협회가 '통일구는 변경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어째서 거짓말을 한 것이냐부터 시작해서 이 사실을 특정구단(주로 요미우리라든가)에게만 알려 부당한 이득을 취득한 것이 아니냐는 등의 논쟁, 심지어 사무국에서 이 사실을 고의로 커미셔너에게 은폐해 특정 구단에 친화적인 커미셔너로 수장을 갈아치우려 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는 등 파문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뭐, 말이 그렇지 대부분의 구단은 공이 잘 나는 것 같다는 추측이 나올 무렵부터 공의 반발력 테스트라든가 성분 분석 등으로 공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
그리고 왕정치가 갖고 있던 일본프로야구 홈런 기록인 55개가 9월 15일, 블라디미르 발렌틴에 의해 49년 만에 깨졌다. 한경기에서 56, 57호를 연타석으로 쏘아올리며 일찌감치 기록을 2개나 갱신하면서 이승엽이 2003년 기록한 아시아 기록인 56개도 10년 만에 깨지고 말았다. 60호까지 기록하면서 아시아에서 최초로 시즌 60홈런을 달성하였다.

3.8.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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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 80주년
이번 시즌 역시 초반 몇 경기를 치른 직후부터 장타가 잘 나온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조사 결과 예상대로 공인구보다 반발력이 높은 위반구가 사용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작년에 같은 문제로 크게 데인 협회가 이번에는 빠르게 조사에 들어가 분석결과를 내놓았지만, 어차피 시즌이 시작된 이후에 발표한 꼴이라 욕을 먹기는 마찬가지. 게다가 어째서 공이 바뀐 것인지는 협회조차 알지 못한다고(…). 일단 제조업체인 미즈노 쪽의 미스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일본 시리즈 우승은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돌아갔는데, 소프트뱅크의 우승이 결정된 일본 시리즈 5차전의 마지막 장면이 다소 논란이 되었다. 소프트뱅크가 1점차로 앞서 있는 9회초 한신의 공격. 만루, 원아웃 상황에서 한신의 타자인 니시오카가 1루 측 땅볼을 치고, 이게 홈에서 포스아웃을 당한 뒤 1루로 달리던 니시오카의 등에 송구가 맞는 바람에 수비방해로 간주되어 아웃되며 묘한 병살(…)이 나와버린 것. 니시오카가 파울라인 안쪽을 달렸기에 룰상으로는 아웃인 게 맞지만, 일본 최강을 가리는 순간치고는 너무 얼빠진 결말이었다는 평이다.
또한 일본 시리즈에 진출한 소프트뱅크와 한신 양팀에 각각 한국선수인 이대호오승환이 소속되어 있어 타자와 투수로서 일본 시리즈에서 맞대결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결국 기대됐던 맞대결은 한 번도 성사되지 못했다.

3.9. 2015 시즌


센트럴리그에서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야마다 테츠토, 퍼시픽리그에서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야나기타 유키가 각각 트리플 쓰리[72]를 달성했다. 두 팀은 두 타자의 맹활약을 앞세워 모두 리그 우승을 달성하고 2015년 일본시리즈에 진출한다. 2010년 한신 타이거스맷 머튼이 달성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아키야마 쇼고가 216안타를 치며 경신하는 등 타격 기록이 풍성하게 나왔던 해. 교류전에서는 예년처럼 퍼시픽리그가 강세를 보였다. 센트럴리그는 교류전에서 퍼시픽 리그 팀들에 승을 빼앗긴 팀들이 많은데다가 요미우리의 약화, 전반기 1위였던 요코하마가 최종 순위에서 꼴찌를 차지하는 꼬락서니를 보여주는 등의 상황들이 겹쳐, 7월 며칠 한정으로 '''전 구단 5할 승률 미만'''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역사적인 대혼전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2015년 일본시리즈는 다수의 예상대로 퍼시픽 리그를 정복한 소프트뱅크가 압도적인 전력의 두께를 과시하며 다소 가볍게 우승하였다. 소프트뱅크는 구단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리그 우승+일본시리즈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으며, 소프트뱅크의 4번을 맡은 이대호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

3.10. 2016 시즌


센트럴 리그에서 최하위로 예상되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Baysball'이라 놀림받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가 밑에서 치고 올라오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성공하였다. 전통의 강호팀으로 취급받았던 한신 타이거스주니치 드래곤즈는 5~6위에서 허우적거리고, 2015년 센트럴 리그 우승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뒤늦게나마 정신 차렸으나 티켓을 놓치고야 말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만 2위 경쟁을 하며 어찌어찌 체면을 지켰다.
반면 퍼시픽 리그는 지난 시즌 가을야구에 진출했던, 이미 시즌 초부터 강호로 불렸던 팀들이 A클래스에 무난하게 안착했다. 그런데 전반기에 압도적으로 양민학살을 하며 1위를 달리던 소프트뱅크가 후반기에 페이스가 쳐지면서 니혼햄에게 추월당한 것이 이변이라면 이변. 참고로 11.5경기차를 뒤집은 건 1996년 이후로 20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또한 2016년 시즌은 역대 최고 관중이 입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NPB 홈페이지 통계에 따르면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 12개 구단은 858경기에서 2498만 1514명을 동원했다. 경기당 2만 9116명으로 역대 최다 관중이다.#
포스트시즌에 대한 내용은 일본프로야구/2016년 포스트시즌 참고.

3.11. 2017 시즌


센트럴 리그는 작년 우승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전통의 명문 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FA로 3명을 영입했지만 구단 수뇌부의 불통과 타카하시 감독의 감독운영으로 13연패를 기록, B클래스를 기록했다.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가 시즌 마지막 교진과의 접전 끝에 클라이맥스 막차를 탔으며 한신 타이거스가 선전하며 2위를 기록했다. 이와중에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또하나의 역대급 시즌을 기록했는데 종전 구단 역사상 시즌 최다패 94패를 넘어 '''96패'''를 기록했다.
퍼시픽 리그는 지난 시즌 리그,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추락, 초반부터 삽질에 삽질을 보여주며 치바 롯데 마린스와 꼴지경쟁을 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시즌 중반까지 선두경쟁을 벌였지만 시즌 중반 두 팀간 시리즈에서 라쿠텐 스윕패를 당하며 승차가 벌어지더니 3위까지 추락하였고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2위를 차지했다. 시즌 후반까지 A클래스 확정이 나지 않았던 세리그와는 달리 시즌 중반 3위 세이부[73]와 4위 오릭스와의 승차가 엄청나게 벌어지면서 A클래스가 확정, 2-3위경쟁, 탈꼴찌경쟁의 리그가 되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야쿠르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역대급 시즌을 기록했는데 퍼시릭리그 사상 역대 4위에 해당하는 시즌 94승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2017 시즌은 2016 시즌을 뛰어넘는 역대 최고 관중이 입장해 2500만명이 입장했다. NPB 홈페이지 통계에 따르면 센트럴리그가 14,024,019명을 동원했다. 2017 시즌 최다 관중팀은 한신 타이거즈로 3,034,626명이 입장했다.

3.12. 2018 시즌


2018시즌부터 그 동안 실시여부를 두고 논쟁이 오가던 두 가지 제도의 도입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하나는 고의사구 신고제도로 KBO 리그와 마찬가지로 이번 시즌부터 도입되며 NPB내에서의 명칭은 '''"신고경원(申告敬遠)"'''이다. 또 하나는 비디오 판독[74]의 확대로 과거 홈런타구에 대해서만 비디오 판독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을 확대하여 비디오 판독의 요구범위를 KBO 리그 수준으로 확대했다. 운영방식은 초기 KBO 리그 방식처럼 현장의 심판들이 모여서 구장 내의 판독실에서 TV 중계화면의 리플레이 화면을 통하여 판정을 내린다. 비디오 판독의 요구에 대해서 미국에서는 "챌린지(challenge)"라는 명칭을 쓰는 반면 일본에서는 요구를 의미하는 '''"리퀘스트(request)"'''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했으며 비디오 판독을 요구할 때는 감독이 나와서 손가락으로 화면을 의미하는 직사각형을 그리는 것으로 사인을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심판판정의 권위에 대해서 극단적인 보수성향을 보이는 일본프로야구에서 비디오 판독제도의 확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원로급 야구인들의 반발이 심한 편으로 장훈 옹 등은 틈만나면 비디오 판독 무용론을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 시즌이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비디오 판독을 통한 판정의 번복률은 전체 요구의 40%를 좀 밑도는 수준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비디오 판독을 둘러싸고 각 팀의 성향도 드러났는데 일단 롯데이구치 타다히토 감독은 비디오 판독 요구를 남발(...)하는 것으로 드러났고 , 요미우리타카하시 요시노부 감독은 12개 구단 중 최하위의 번복률로 안그래도 까이는 데 또 까일 거리가 하나 늘어났다. 오릭스후쿠라 준이치 감독은 12개 구단 감독 중에 유일하게 번복률이 50%를 넘으면서 매의 눈을 가진 감독으로 재평가 받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시즌이 끝난 후 살펴보니 번복률은 33% 수준으로 내려갔고, 가장 비디오 판독 요구를 남발한 감독은 요코하마알렉스 라미레즈 감독. 무려 52번이나 요구했다. 근데 번복률은 29%로 전체 11위. 요미우리의 타카하시 요시노부보다도 낮다(...)[75] 라미레즈만큼 비디오판독을 남발했던 롯데의 이구치 타다히토는 50번의 판독을 요구했는데 34%의 번복률로 그럭저럭 괜찮았으며, 번복 횟수는 17회로 제일 많았다. 정말 의외인 것이 이 시즌 가장 매의 눈을 자랑한 감독은 44%의 번복률을 기록한 한신카네모토 토모아키. 가장 보는 눈이 없었던 감독은 닛폰햄쿠리야마 히데키 감독. 25%의 번복률을 기록했다. 그 외에 번복률이 높았던 팀으로는 주니치(42%), 오릭스(41%)가 있으며 낮았던 팀으로는 요미우리(30%), 라쿠텐(31%), 히로시마(32%)가 있다.
센트럴 리그에서는 작년의 전력에서 큰 변화가 없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1강, 요코하마 DeNA한신 타이거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3중, 주니치 드래곤즈야쿠르트 스왈로즈가 2약으로 분류되고 있고. 퍼시픽 리그에서는 역시 작년의 전력을 그대로 유지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1강,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오릭스 버팔로즈라쿠텐 골든이글스가 3중, 치바 롯데 마린즈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2약으로 분류되며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리그우승은 히로시마와 소프트뱅크가 가져갈 것이다"라는 예상이 전체적으로 돌았으나...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이 팀 빼고는 두 리그 전부 다 치열한 순위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7월 9일 기준으로 센트럴 리그는 2위 요코하마 ~ 6위 주니치 사이에 3게임차 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대혼란을 겪는 중.
8월 4일 기준 센트럴리그는 2위 요미우리와 6위 요코하마 사이에 아직도 3게임 차밖에 안 난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우승은 사실상 기정사실화에 나머지 5팀이 모두 2위를 차지할 수 있는 대혼전. 작년의 센트럴리그가 주니치와 야쿠르트가 시작하자마자 나가리가 된 것과 비교하면 정말 치열해졌다.[76]
8월 4일 기준 퍼시픽리그는 1위 세이부와 2위 닛폰햄의 경기차가 2.5경기라서 두 팀끼리 천상계 싸움을 하고 있다. 그 밑으로 3위 롯데부터 5위 오릭스까지의 경기차가 3.5경기라 롯데와 0.5경기 차로 4위인 소프트뱅크까지 3팀이서 3위 한 자리를 놓고 싸우는 중이며, 사실상 B클래스 확정이긴 해도 5위 오릭스와 2.5차, 3위 롯데와 6경기 차인 6위 라쿠텐이 감독 교체 이후 상승세를 타고 실날같은 희망을 노리고 있다. 작년의 퍼시픽리그가 전반기에 사실상 A클래스가 모두 결정된 걸 생각하면 퍼시픽리그 역시 작년에 비해 더 치열해진 셈.
그러나 8월 20일... 퍼시픽 리그는 결국 세이부 독재 체제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1위 세이부가 2위 닛폰햄과 6.5경기를 벌려놓으며 1위 다툼을 하고 있고 소프트뱅크는 승차 9로 3위를 지키고 있는 실정이다. 라쿠텐은 1위와 18경기(...)차를 벌려지며 압도적 꼴찌를 하고 있고, 소프트뱅크와도 9경기 차이기에 사실상 올해는...
포스트시즌의 경우 센트럴 리그는 히로시마가 가볍게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였으나 퍼시픽 리그 우승팀인 사이타마 세이부가 2위팀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에게 무참히 짓밟히며 업셋을 허용하였다. 그리고 사상 최초의 후쿠오카 vs 히로시마 일본시리즈에서는 타선 유지력은 밀렸으나 적재적소의 적시타를 쭉쭉 뽑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가 우승하여 어드밴티지 포함한 클라이맥스 시리즈 출범 이후 최초로 2번 시드로 우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하나 놀랄 일이 있는데, 2018 시즌 경기당 관중 수가 29,785명으로 집계되면서 메이저리그를 앞지르고 세계 프로야구 평균 관중 1위에 등극했다. MLB 2018 시즌 평균 관중 수는 28,830명. 심지어 MLB는 실집계를 하지 않는 리그라 실제 관중 수 차이는 더 벌어질 수 있다. 일본프로야구는 미국에 비해 대중교통 구장 접근성이 훨씬 높은데 , 당장 다저 스타디움만 봐도 교통체증으로 인해 7회말 이후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다.

3.13. 2019 시즌


센트럴리그는 2019 시즌 전 절치부심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DeNA가 1998년 리그 우승 이후 21년만에 정규 시즌을 2위 이상의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2019년 클라이맥스 시리즈/센트럴 리그 마지막 자리를 놓고 치열한 각축전 끝에 한신이 히로시마를 가까스로 따돌리며 포스트시즌 막차를 탔다. 한신은 그 기세를 몰아 1회전에서 업셋에 성공하며 라이벌 요미우리와 2회전에서 만났으나 무릎을 꿇었다.
퍼시픽리그는 정규시즌 종료 직전까지 향방을 알 수 없었던 상황에서 세이부, 소프트뱅크, 라쿠텐이 1~3위를 차지하며 2019년 클라이맥스 시리즈/퍼시픽 리그행 열차를 탔다. 소프트뱅크는 1회전 1차전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했으나 2,3차전을 연거푸 승리하며 천적 인 세이부를 2회전에서 상대하게 됐다. 그러나 매의 군단은 적지에서 4연승 스윕을 기록하며 세이부에게 2년연속 업셋패라는 굴욕을 안겨주었다.
2000년에 두 팀은 일본시리즈에서 만나서 거인이 4승 2패로 승리하였다. 19년만에 재회한 이번 시리즈에서 소프트뱅크는 4연승 스윕으로 복수에 성공했고 2011년부터 불과 8년만에 센트럴리그 팀들을 일본시리즈에서 모두 올킬하는데 성공했다.[77]

3.14. 2020 시즌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 도쿄 올림픽이 1년 뒤로 연기됐고, 개막을 무려 세 차례나 연기하였다.[78] 또한 J리그도 5월 재개 계획을 백지화했고, 사이토 아쓰시 NPB 커미셔너는 “143경기를 줄이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가치를 훼손한지 않는 선에서 논의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그리고 실제로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 간의 교류전 없이 120경기짜리 시즌을 진행하게 되었다.[79][80] 2020년 3월 27일, 유망주 투수 후지나미 신타로 등을 포함한 한신 타이거즈 선수들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관련기사 또한 6월 초 사카모토 하야토와 오오시로 타쿠미[81]가 확진 판정을 받았으나 이미 확진되었다가 완치된 상황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82][83] 그 후 두 선수는 10일간의 입원치료를 거치고#[84] 2군에서 연습시합도 진행하면서 개막에는 늦지 않게 돌아왔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홈경기 중계를 담당하는 G+티비채널에서는 인공지능 포수시스템을 도입했다.관련기사(일어주의)관련영상(일어) 7월 10일 부터 5000명, 8월 1일부터 구장 수용인원의 50%정도의 관중 입장을 허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관련기사 5000명 제한입장 계획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지만 50%입장계획은 코로나의 확산으로 인해 좀 더 미뤄지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중에 소프트뱅크 호크스 소속 선수인 하세가와 유야가 확진판정을 받아 8월 2일 세이부와의 경기가 취소된 적이 있었다.# 9월 19일부터 구장 규모의 50%까지 관중 입장을 허용했다. 日야구 관중 50% 입장 허용…도쿄돔 5000명에서 1만9000명으로 시즌이 한창 진행중이던 9월 26일에 한신 타이거스 소속 선수 7명이 지침을 어기고 회식을 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되기도 했다. 시즌 막바지로 가던 10월 5일에 치바 롯데 마린스소속의 이와시타 다이키코로나 19확진을 받았고# 그로 인해 구단에서 총 13명이나되는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 그런 와중에도 11월 2일부터 전 구장의 정원의 80%를 채우는 실험을 강행했다.도쿄돔 3만 관중 들여 ‘코로나 실증 실험’? 올림픽이 뭐길래
2020 시즌 센트럴 리그 우승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달성하며 일본 시리즈 진출을 확정하였고, 퍼시픽 리그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치바 롯데 마린스가 각각 1, 2위를 해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에 성공하였다.
그 후 퍼시픽 리그에서만 성사된 클라이맥스에서는 두 경기 모두 롯데가 예상 외의 선전으로 5년 주기설 하극상을 실현시키는가 했으나 2010년대 후반 들어 호크스에게 장착된 '''가을야구 DNA'''의 힘으로 전 경기 역전패를 당해 올해에도 호크스가 가볍게 CS 상대를 즈려밟고 일본시리즈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일본시리즈, 바로 지난년도의 요미우리VS소뱅이라는 각 리그를 대표하는 최강팀들의 대결에서 충격적인 스윕패로 광탈한 요미우리가 과연 작년의 치욕을 청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로 인해 여러 기대를 모았던 시리즈였지만,
정작 모두가 목격한 실상은 '''지난 년도의 참사가 양반으로 보이는, 작년의 참사를 넘어 15년 전의 33-4 사건과 진지하게 비견될 70년 NPB 역사상 길이길이 남겨질 대참사였다.[85]'''
이후 이 시리즈를 계기로 그냥 모르는 척 쉬쉬하던 퍼시픽 - 센트럴의 수준 차이가 '''진지하게 주요 쟁점으로 심각하게 논의되기 시작하고 있다.''' 이 충격의 해당 일본시리즈가 종료됨과 동시에 일본의 모든 스포츠 신문사와 칼럼에서 양 리그의 심각한 수준 차이와 지명타자 제도에 관한 글을 쏟아내리고 있으며 NPB의 '''현역''' 감독과 선수들도 이 사안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요코하마 감독직을 은퇴한 알렉스 라미레스 전 감독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센트럴리그는 퍼시픽리그에 비해 최소 5년 뒤쳐져있다" 라고 발언했고, 올 시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2위의 쾌거를 달성한 다르빗슈 유아예 특집 영상을 제작해 파리그와 비교되는 센트럴리그 구단들의 쪼잔한 마음씨와 의식 등을 이유로 들어 퍼시픽리그의 독주를 2005년부터 이미 예상할 수 있었다고 신랄하게 깠다.[86]
[image]
사실 몇 년 전부터 이번 시즌의 성적 전망을 물으라면 대부분 '올해도 소프트뱅크가 우승할까 말까'의 식이였어서 많이 눈치채지 못하는 식이였지만, 이전부터 유명했던 양 팀의 교류전 성적뿐만 아니라 '''일본시리즈 결과조차''' 이미 센트럴리그가 '''2013년부터 퍼시픽리그한테 8년 연속으로 내주는 상황이다.''' 그나마 가장 최근의 우승인 2012시즌의 요미우리조차 오심 논란이 뒤따르는 우승이였던 실정이고... 이대로 21, 22시즌에도 일본시리즈 우승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센트럴리그의 일본시리즈 10연패로''' 과거 1965년부터 1973년까지 퍼시픽리그가 9년 동안이나 JS 우승을 가져오지 못했던 '''50년 전 기록보다 더한 치욕을 뒤집어쓰기 직전이다.'''[87] 센트럴리그가 본인들의 의식과 실력을 키워 이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NPB의 큰 갈림길이 될 듯.

4. 팀


[image]
정확히는 한신 타이거스는 오사카시가 아닌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위치해 있다.
※ 괄호 안은 일본시리즈 우승 횟수, - 뒤는 일본에서 줄인 표기[88]와 TV 중계나 언론 매체 등에서 쓰이는 한글자 약호(한자 혹은 가타가나와 영문 한글자 표기). 한자 혹은 가나 표기는 모기업 명에서, 알파벳 표기는 팀 닉네임에서 따왔다. 알파벳 표기는 과거 스타디움 히어로를 해본 사람이면 상당히 눈에 익을 것이다. 회사명 자체로는 해당 구단이 리다이렉트되지 않지만, 일본 현지 중계에서도 공식 사용하고 비교적 지칭하는 대상이 명확한 지역명+기업명 구조 이름은 리다이렉트되어 있다. 다만 중계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히로시마 도요로는 리다이렉트할 수 없다.
'''센트럴 리그(Central League)'''
팀명
일본시리즈 우승
약칭
약호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5회
東京ヤクルト
ヤクルト
ヤ, S[89]
요미우리 자이언츠
22회
巨人[90]
巨, G[91]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2회
横浜DeNA
DeNA
De(...)[92], DB[93]
주니치 드래곤즈
2회
中日
中, D[94]
한신 타이거스
1회
阪神
[95], T[96]
히로시마 도요 카프
3회
広島[97]
広, C
'''퍼시픽 리그(Pacific League)'''
팀명
일본시리즈 우승
약칭
약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회
東北楽天
楽天
楽, E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3회
埼玉西武
西武
西, L
오릭스 버팔로즈
4회
オリックス
[98], B[99]
치바 롯데 마린즈
4회
千葉ロッテ
ロッテ[100]
[101], M[10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1회
福岡ソフトバンク
ソフトバンク
[103], H[104]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3회
北海道日本ハム
日本ハム
[105], F[106]
'''해체된 팀 '''
팀명
일본시리즈 우승
약칭
약호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0회
大阪近鉄
近鉄
近, Bu[107]

4.1. 16개 구단으로 확대?


현재 일본프로야구는 양대 리그제를 실시하여 각각 6구단씩 총 12구단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4구단을 늘려 16구단 체제로 하자는 떡밥이 살포되었고, 최대 정당인 자민당에서는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정부가 구단 신설을 지원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보도에 따르면 자민당은 현재 프로구단이 없는 시즈오카현, 시코쿠 지방(도쿠시마현·가가와현·에히메현·고치현)[108], 오키나와현, 호쿠에쓰(北信越) 지방[109]을 새 구단의 근거지 후보로 예시하고 정부에 지원책 검토를 요구하기로 했다고 한다. 실제로 제시된 지역들은 위에서 언급한 지방구장 경기가 열리는 곳들이기도 하다.[110]
사실 현 12개 구단 체제에서 4개의 신생 구단이 추가로 참여하는 안은 아베노믹스 때문에 뜬금없이 나온 것이 아니다. 이미 2004년 선수회의 파업과 단일 리그 개편안 철회 이후 전문가들이 일본프로야구 활성화 방안으로 거론했던 대안 중 하나였다. 그런데 당시 라쿠텐라이브도어 간 '신규 참여' 쟁탈전 때 선수단 운영비용에 관한 우려도 있었던지라 운영비용과 창단준비에 큰 부담이 있는 NPB 신생 팀 창단보다는 독립 리그 운영 쪽으로 선회를 했고,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시코쿠),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조신에츠·호쿠리쿠 지방), 베이스볼 퍼스트 리그(칸사이 지방) 등의 독립 리그이다.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나온 리그 확장안과 독립 리그가 설립된 지역과 일치하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하다.
현재 일본 프로축구 리그인 J리그 디비전 1도 18구단이나 있다. 또한 일본 인구의 절반 이하인 한국에서도 2015년부터 KBO 리그가 일본프로야구(12구단)에 필적할 수준인 10구단 체제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논의되고 있지 않지만, 만약 2군 전용 팀인 상무 피닉스 야구단경찰 야구단도 1군 팀을 운영하게 할 경우[111] 현재 일본프로야구와 구단 수가 같아진다. 그렇다면 일본프로야구가 구단 네 개 정도 더 늘리는 것이 절대 무리가 아니라는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게 엄청난 고정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정부 지원책만 가지고 기업들이 쉽게 구단 창설에 뛰어들지 미지수이다. 또한 한국프로야구에서도 1군 구단 수를 9~10구단으로 늘릴 때 논란이 되었듯이, 갑자기 구단 수를 늘리면 리그 전체의 질적 하락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당연히 제기되고 있다.[112] 그리고 과연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바라는 지역에 구단이 들어설 것인지도 미지수이다. 한국도 구단 수를 늘릴 때 가까운 곳에 연고(1군의 제1 홈구장 기준) 구단이 없던 강원도·전라북도·제주특별자치도가 아니라 인근에 기존 팀들이 있던 경상남도 창원시[113](NC 다이노스)와 경기도 수원시[114](kt wiz)가 연고지로 선정되었다. 인구가 적어 관중 동원력이 떨어지는 지역에 구단을 세우는 것은, 구단을 세우려는 기업도 꺼리고 협회도 꺼리기 때문.[115] 결국 이래저래 정말로 16구단 체제가 출범하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여담으로 대만에서는 한 정치인이 대만 프로야구 리그의 팀을 2개로 통폐합한 뒤 일본프로야구에 가입시키자는 주장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해당 문서 참고.
현재 알비렉스 니가타가 NPB에 진출한다는 소문이 있다.[116] 그리고 2018년 7월에 일본 최대 패션몰 조조타운 창업자 마에자와 유사쿠[117]가 프로야구에 진출을 선언하면서 16구단 확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2020년 현재 조조타운 쪽에서는 프로야구 진출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 그러나 니이가타, 오키나와, 시코쿠, 시즈오카 총 4팀을 더 창단해서 16구단 체재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현재 오키나와의 경우는 이미 NPB 참가팀 확대를 노리고 만든 독립 구단 류큐 블루오션즈가 있는 상태. 다만 코로나로 인해 기업들이 단체로 박살이 나면서 한동안은 더 요원해질 것으로 보인다.

5. 시즌 운영



5.1. 일본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정식 명칭은 신인선수 선택회의(新人選手選択会議). 드래프트 회의(ドラフト会議) 등으로도 불린다. 일본프로야구가 일본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만큼 신인드래프트 회의 또한 상당한 인기를 차지한다. 2013년에 열린 2014 신인드래프트의 경우에는 1천명의 관람객과 22.6%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고교, 대학 졸업 예정 선수들이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 되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신청한 선수에 한해서만 드래프트가 진행된다.[118][119]
일본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방식은 정말 독특한데, 1965년 처음 도입된 후 여러 차례의 변경을 거쳐 현재와 같은 제도로 정착했다. 초창기에는 프로야구 입단의 메리트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한 아마추어 야구인들이 많아 입단 거부가 매우 흔했고[120] 두 자릿수 지명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래프트로 재미를 못 본 팀들을 구제하기 위해 드래프트 외 입단과 연습생 입단 제도도 존재했으나, 일부 팀들이 이 제도를 드래프트 경쟁을 우회해 우수한 유망주를 사전 확보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면서[121] 1990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122] 1993년부터 2006년까지는 대학/사회인 선수 한정으로 한 구단 당 2명까지 선수 스스로 특정 구단 입단을 확정하고 지명권을 더 소모하는 식의 '역지명' 제도(2001년부터 '희망 입단 범위')가 존재하기도 했다. 프로야구 선수의 직업 선택 자유를 존중하자는 주장[123]에서 도입되었지만 유망 선수에 대한 뒷돈 제공이나 자금력이 풍부한 구단에 대형 유망주가 몰리는 등 전력균형상 문제가 발생했다는 비판이 많았고 결정적으로 2004년 드래프트에서 이치바 야스히로라는 대학 투수에게 여러 구단이 '영양비'라는 명목으로 뒷돈을 제공한 것이 폭로되면서 범위가 1명으로 축소된 끝에 끝내 폐지되었다. 이후 2005년 육성선수 제도 도입, 2005~07년까지 따로 진행되던 대학·사회인 드래프트와 고교 드래프트가 2008년 다시 통합되는 등의 변화를 거친 끝에 현재와 같은 형태로 정착했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으로는 전 세계 어떤 종목에서도 보기 힘든 방식인 '''1라운드 지명권 추첨제'''가 있다. 1978년부터 도입된 일본프로야구 드래프트의 가장 특징적인 제도이다. 12개 프로구단은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한 모든 참가자중, 지역, 전시즌 성적 그딴거 무시하고 아무나 1명을 선택하게 된다. 이때 지명팀이 점찍은 선수에 다른 팀이 지명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해당 구단이 단독 지명권을 가지게 되며, 2팀 이상이 1명의 선수를 지목했다면 이때부터 '''운에 맡기는 추첨식을 시작한다.''' 지명한 팀들끼리 나와서 제비뽑기를 하며, 이중 당첨된 구단이 해당 선수에 대한 지명권을 가지게 된다. 이후 추첨에서 탈락한 구단들은 다른 선수를 지명할 수가 있는데 이때 또다시 2팀이상 지명한 선수가 등장하면 또다시 지명한 팀들끼리 조추첨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1989년 드래프트에서 세이부 라이온즈(시오자키 테츠야 지명), 주니치 드래곤즈(요다 츠요시 지명), 히로시마 도요 카프(사사오카 신지 지명), 요미우리 자이언츠(오오모리 타케시[124] 지명)를 제외한 8개구단이 모두 노모 히데오를 1라운드에 지명하였고 추첨 결과,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가 그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1989년 드래프트에서 나온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유이한[125] 1990년 드래프트때 나온 8개구단 동시지명.
비교하자면 한국프로야구의 경우에는 1라운드는 지역별 우선지명권이 존재하며, 메이저리그는 전시즌 성적 역순으로 지명하는데 일본 프로야구는 그런거 없이 추첨운 하나에 드래프트 지명의 승패가 갈린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드래프트 상위픽 지명을 통한 리빌딩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편이고, 마켓 사정상 리툴링 케이스가 많이 보인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매년 신인드래프트는 상당히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특히 여러 구단이 노릴만한 특출난 신인이 나오는 해는 그 선수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될지에 관심을 가지는 팬들이 많고, 최고의 신인을 우승팀이라고 무조건 하위팀에게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운만 좋으면 노려볼 수 있는 강렬한 도박성과 내심 원하던 팀이 아닌 엉뚱한 팀이 교섭권을 가져가는 경우 뭐라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표정을 짓는 선수의 모습, 그리고 그 선수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어떻게 결정을 내릴지 등등 화제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시청률이 본업인 야구경기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모든 팀이 1라운드 지명을 마칠때까지만 적용되며 2라운드부터는 메이저리그나 한국프로야구와 마찬가지로 성적별 역순을 진행하게 된다.[126]
하지만 마냥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닌데, 막강한 인기와 (뒷돈 제공까지 가능한) 자본력을 갖춘 빅마켓 팀들이 대형 유망주들을 독점하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 "요미우리 아니면 프로야구 안한다!"라고 지명을 거부하는 상황도 벌어지는데, 대표적인 선수가 도하 참사 당시 오승환을 털어먹었던 초노 히사요시[127]하라 타츠노리 감독의 조카인 스가노 토모유키[128]가 있다.[129] 때문에 드래프트 본연의 취지인 전력 균형 달성에 방해가 된다는 비판이 있다.
1라운드를 둘러싼 밀당이 어떻게 작동하는 지의 예로 2017년 드래프트의 키요미야 코타로라는 대형 신인의 케이스가 있다. 일본 럭비계의 레전드이자 대학, 실업팀 감독을 역임한 아버지를 둔 스포츠 엘리트 집안 출신으로 도쿄의 야구 명문고 와세다실업고(오 사다하루의 모교)를 나와서 1학년 때인 2015년 여름 고시엔에서도 팀의 4강 진출에 공헌하고 고교 3년 통산 111홈런을 기록하는 등 홈런타자 후보생으로서 야구팬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벌써 전구단 지명이니 최소 10구단 지명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상황. 다만 종목은 다르지만 스포츠계의 레전드 아버지를 둔 덕분에 아버지의 간섭이 여간 심한게 아닌데 "우리 아들을 믿고 맏길만한 시스템과 육성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구단의 지명은 거부하겠다.", "우리 아들은 메이저리그를 지망하고 있기 때문에 포스팅을 허용하지 않는 구단의 지명은 사양하겠다.", "만약 맘에 들지 않는 구단이 지명할 경우 프로 입단을 거부하고 아들은 와세다 대학에 보내겠다."[130] 등등 엄포를 넣어댔다. 아직 프로에 발도 들여놓지 않은 신인이 이렇게 고자세로 나오는 경우도 드문 일이고 웬만한 신인 같으면 이딴 소리를 하고 있으면 구단 측에서도 기존 선수들과의 팀워크를 고려해서 "그럼 즐"하고 관심을 끌 상황인데 장타 포텐셜 + 화제성, 스타성 풍부라는 점에 이끌린 구단들이 기요미야 부자를 일부러 찾아와서 "그럼 저희구단의 시스템과 육성계획을 소개할 테니 한번 들어보시죠"하면서 무려 10개구단이 고등학생과 학부모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벌써부터 팀 시스템이 망가진 주니치나 롯데, 훈련시설이 열악한 세이부, 신인들의 무덤이자 포스팅은 죽어도 허락하지 않는 요미우리 등이 지명하는 경우 입단을 거부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등 여러가지로 화제몰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10월 중순 들어와서는 거의 매일 어느 팀이 지명할까 가지고 스포츠 뉴스에 나오고 있는 중이다. 드래프트를 몇 시간 앞두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감독은 키요미야 지명에 대한 추첨을 성공하게 해 달라고 메이지 신궁까지 참배했다고 한다(...)[131]
닛칸스포츠의 예상에 따르면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치바 롯데 마린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13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총 7개 팀이 키요미야를 1차지명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언급된 7개팀이 모두 1차지명했고[133] 추첨을 통해 '''대어가 나오면 지명거부한다 해도 지명하는''' 홋카이도 닛폰햄이 제비뽑기에 성공해 교섭권을 획득! 이미 메이저로 가겠다는 오오타니를 설득해 일본을 대표하는 훌륭한 선수로 육성시킨 전례가 있으며 선수의 해외진출에 적극적인 닛폰햄 구단[134]이기에 무난하게 입단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드래프트 2라운드는 퍼시픽리그 꼴찌 롯데부터 지명을 시작하여 센트럴리그 1위 히로시마가 제일 마지막에 지명한다. 3라운드는 히로시마부터 시작하여 롯데까지 지명. [135]
그리고 각 팀별로도 드래프트에 따른 색깔이 존재하는데, 좀더 자세한 설명을 보고 싶은 야구 팬들은 관련 글을 참조.
위 좌표에 올라온 글은 닛폰햄 얘기밖에 없다(...) 그 외에 롯데같은 경우는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많이 날리는 수비력 좋고 주루센스가 좋은 똑딱이 타자나 사회인 야구, 대학 야구를 경험한 베테랑 투수를 1차지명자로 선호한다. 최근 지명 기록을 보면 2009년 오기노 타카시, 2010년 이시미네 쇼타, 2011년 후지오카 타카히로, 2012년 마츠나가 타카히로, 2013년 이시카와 아유무, 2014년 나카무라 쇼고, 2015년 히라사와 타이가, 2016년 사사키 치하야 2017년 야스다 히사노리인데 2011~2013년과 2016년에는 사회인 야구나 대학야구 출신의 베테랑 투수를 뽑았고, 2009, 2010, 2014, 2016년에는 수비력이 좋고(외야로 뽑은 오기노와 이시미네는 모두 중견수가 가능한 선수이다.) 주루플레이가 능한 똑딱이 선수를 뽑았다. 그러나 2017년에는 롯데답지 않게 진퉁 슬러거 스타일의 야스다 히사노리를 지명. 참고로 고교생/대학생 드래프트를 따로 하던 제도가 폐지된 이후 롯데는 단 한 번도 고졸 투수를 1차지명한 적이 없다가 2019년 드래프트에서 처음 사사키 로키를 지명. 그리고 롯데도 닛폰햄만큼은 아니지만 유명한 선수를 선호하기 때문에 경합을 피하려고 좀 덜 유명한 선수를 선회지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외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육성선수 드래프트를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식 선수보다 육성선수를 더 많이 지명하는 해도 수두룩하다. 반대로 앞에서 언급한 치바 롯데 마린즈는 8명을 지명한 2008년 이후 육성선수 드래프트에서 거의 0~2명 수준밖에 지명하지 않았다.
돈지랄로 유명한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정식 선수랑 육성선수 모두 많이 뽑는다. 그리고 닛폰햄은 특이하게 2017년까지 육성선수는 절대 뽑지 않았다. 팀 최초의 육성선수가 2018년에 등장했으니. 그리고 드래프트와는 상관없지만 요미우리와 주니치, 히로시마, 소프트뱅크는 외국인 육성선수를 많이 데려오는 편이다. 대체로 도미니카 공화국카리브해 국가들에서 메이저 경험이 없는 젊은 선수들이 이런 경로로 들어오는데 특히 히로시마는 90년대에 이미 도미니카 공화국 현지에 야구 아카데미를 세워 싼 값에 외국인 선수를 자체 수급하고자 노력해왔다.
요코하마의 경우 DeNA시대, 엄밀히 말하자면 나카하타 키요시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대어급 선수가 있으면 일단 찍고 보는 스타일에 가까웠다. 다만 첫 추첨에서 교섭권을 얻은적이 거의 없었고 하즈레 추첨에선 그나마 조금 재미를 본 편. 알렉스 라미레스 감독 시대엔 초창기까지만 하더라도 대어급 선수를 지명했지만 2017년 드래프트부터는 추첨을 회피하기 위해 하즈레픽~2라운드픽 정도로 예상되는 선수 혹은 1라운드 지명감이면서도 상대적으로 화제성이 떨어지는 선수를 1라운드부터 단독으로 지명하는 노선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위키백과
드래프트 특성상 꼭 상위픽이라고 성공하고 하위픽이라고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치바 롯데 마린즈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후쿠우라 카즈야'''는 1993년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로 지명되었는데, '''이 해에 7라운드 지명에 참여한 구단은 치바롯데 딱 한 곳'''이었다. 즉 전체 최하위 픽이었던 셈. 하지만 그 해에 뽑힌 입단 동기 7명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프로 생활을 해오면서 롯데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136]
또한, 투수 상위픽의 경우 고시엔 지역예선, 본선에서 선수가 투구수 제한이 없어서 혹사당한 경우가 많아 지명 후 1~2년 내에 수술대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다. 사이토 유키, 츠지우치 타카노부[137], 안라쿠 토모히로 등의 사례가 2000년대 들어 속출하고 있어서 아예 일본 프로야구 팬들도 고교, 대학 시절 혹사당한 투수는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2년 정도는 재활 및 조정기간으로 보는 중. 2018년 고시엔에서 돌풍을 일으킨 요시다 코세이도 고시엔 전경기-대표팀을 거친 혹사 때문에 2019년 6월 12일 1군 콜업을 앞두고 우려가 나오고 있다. 타자 상위픽의 경우도 알루미늄 배트로 인한 타격인플레로 인해 나무배트에 적응하지 못하는 케이스가 늘어나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고교야구부도 장타 양산을 위해 웨이트트레이닝 및 기술훈련 및 나무배트 병행 훈련 등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일본프로야구의 또 다른 차이로는 드래프트에 지명되지 못한 선수들 중에서 입단 테스트를 통해 구단이 눈여겨보지 않던 선수를 육성선수로 뽑는 KBO 리그와는 달리, '''구단이 눈여겨보지 않던 선수들을 불러모아 드래프트 전에 지명권을 걸고''' 입단 테스트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구단이 이러는지는 미지수이나 종종 이런 일이 있다. 보통 프로 구단의 스카우터들이 지명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선수들 중에서 지원을 받아[138]서 테스트를 한다. 히로시마, 요미우리, 오릭스의 사례를 보면 타자 기준 1차로 50미터 달리기와 원투[139] 기록을 측정하여 여기서 합격한 사람들에게 직구와 변화구 등 배팅 테스트를 시킨다. 여기서 합격한 선수들 중에서 드래프트날 지명받게 된다면 입단 테스트 최종 합격(...) 육성선수도 자유계약이 불가능하고 드래프트 지명으로 뽑아야 하기 때문에 입단 테스트에 합격해도 드래프트날 지명을 받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이런 식으로 프로에 입단한 케이스로 신성현이 있다.[140]
일반적으로 드래프트에 참여하는 선수는 고졸, 대졸, 사회인, 독립리그, 해외파 정도로 나뉜다.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사회인야구의 존재, 그리고 독립리그 출신도 드래프트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141], 마지막으로 해외파가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비율은 한국보다 훨씬 낮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고졸, 대졸, 사회인[142], 독립리그 정도. 이 중에서 한국과는 달리 대졸 출신이나 사회인야구[143] 출신을 더 선호한다. 군 문제가 없는 것도 있지만 아마야구의 육성능력도 좋아서 대학야구, 특히 6대학리그 등 수준이 높은 대학리그를 폭격한 선수는 데뷔 1년차부터 즉전감으로 씹어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 반대로 고졸 유망주는 한국과는 달리 즉전감이 되주지 못하고, 엄청난 초고교급 선수도 보통 2년차 이후부터 활약한다. 따라서 리빌딩을 해야 하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면 대졸, 대졸사회인을 더 선호한다.[144] 독립리그 출신의 경우는 99% 원석 취급이기 때문에 고졸이든 대졸이든 대부분 육성선수로 입단하며 정식으로 지명받는 선수도 보통은 최하위픽이다. 그리고 아주아주 드문 케이스로 준경식, 연식 야구부, 소프트볼부 출신의 선수나 '''아예 야구랑 비슷하지도 않은 다른 종목을 했던''' 선수, 야구부를 그만두고 일반 학생으로 학교를 다니다가 뒤늦게 도전한 선수 등의 사례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물론 이런 케이스는 하위픽이나 육성선수로 주로 지명되고, 지명 후에도 빠르게 정리당하는 경우가 대부분.
일반적으로 대졸의 경우는 한국이랑 똑같은 나이에 입단을 하며 대졸+사회인 테크를 거친 선수는 보통 한국 나이 26살에 입단을 한다. 사회인야구에 진출한 선수는 2년 후 드래프트부터 신청이 가능하다는 규정 때문.[145] 고졸+사회인 테크를 거친 선수는 한국 나이 23살부터 입단할 수 있으나 보통 이 경우는 입단하는 시기가 천차만별이다. 또한 대졸+사회인 테크를 거친 선수 중에서도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물먹었다든지[146], 원래는 그냥 기업팀에 머무르며 야구를 그만두고 취직할 생각을 하다가 뒤늦게 두각을 보이면서 뒤늦게 프로팀을 꿈꾼다든지[147], 프로팀의 계약금 제의가 맘에 안들어서 지명 거부를 계속해왔다든지 하는 이유로 인해[148] 한국 나이 27, 28, 극단적으로는 '''30대가 넘어서''' 입단하는 경우도 있다.[149][150] 대신 이렇게 늦은 나이에 입단하는 선수들은 즉전감이 되지 못하면 그냥 말짱 꽝. 육성선수는 물론이고 지배 등록된 정식 지명자도 즉전으로 활약해주지 못하면 2~3년만에 잘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위픽도 얄짤없는 경우가 많다.
종종 막장 드래프트가 터지면 팬들 사이에서도 멸칭이 붙으면서 놀림감이 되곤 한다. 고졸 자포자기 지명(2011년 요코하마)[151], 즉시전력외(...) 지명(2014년 주니치)[152], 도호쿠부흥지명(2011년 야쿠르트)[153], 진짜 즉시전력외 지명(2014년 야쿠르트)[154]
항목이 있는 드래프트는 해당 항목 참고.

5.1.1. 육성선수 드래프트


12구단 합쳐서 지명자가 120명이 안 될 시, 드래프트로 육성선수를 뽑을 수 있다. 다만 12구단 합쳐서 지명자가 120명이 되려면 평균 10라운드까지 지명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10라운드까지 내려가는 팀이 한 팀도 없는 경우가 많아서 매년 육성선수 드래프트까지 진행하게 되므로 육성선수 드래프트도 사실상 매년 진행된다고 봐야 한다.[155] 이것도 NPB가 KBO와 다른 것이, NPB에서는 지배 선수로 지명한 선수는 일단 무조건 지배 선수 엔트리에 집어넣는다. 정규 드래프트 지명자라고 해도 하위픽은 일단 육성선수로 넣어놓는 KBO와는 다르다. 그리고 육성선수로 뽑힌 선수도 소액이나마 계약금을 준다. 이것도 한국과의 차이점. 다만 지배 선수와 비교하면 계약금이 현저히 적다. NPB는 신인선수들의 계약금이 KBO에 비해서 어마어마하게 많다. 1차지명에 해당하는 1라운더는 거의 대부분 1억 엔을 안겨주고, 하위픽도 1천만엔은 안겨주는 편이라 어지간한 KBO 상위 지명자와 비슷하다. 그러나 육성선수에게는 200~300만 수준의 KBO 하위픽과 비슷한 계약금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 KBO와 다르게 계약금을 주기라도 하는것부터 더 좋은 대우긴 하지만.
선술했지만 육성선수로 많이 선호되는 선수들은 주로 독립리그 선수들이나 당장의 실력은 부족하지만 싹수가 보이는 고졸/대졸 선수들이 많다. 그렇다보니 조금 써보고 답이 안 보인다 싶으면 빠르게 방출하는 경우가 많아서 육성선수 출신으로 대박난 케이스는 드물다.
실제 예시를 들자면 2017년 드래프트에는 9라운드에서 요코하마가 야마모토 유다이[156]를 지명한 것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육성선수 드래프트가 진행되었는데, 이 해의 육성선수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가 8라운드(!)까지 지명하면서 최고로 많이 지명했고, 닛폰햄과 야쿠르트는 한 명도 뽑지 않았다.[157] 여담으로 소프트뱅크는 드래프트 5라운드까지만 지명하고 패스했는데 육성선수 드래프트에서는 6라운드까지 지명하며 '''육성선수를 더 많이 뽑았다'''. 육성선수 드래프트까지 포함한 최후의 지명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육성선수 8라운드 지명자 아라이 소타.[158]
정규 드래프트와 뽑는 순서는 똑같으며, 1라운드부터 지명 포기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서 아예 안 뽑는 경우가 많고, 뽑는 구단도 1~2명만 뽑는 경우가 많다. 보통 소프트뱅크와 쿄진의 경우는 지배 선수마냥 5라운드고 6라운드고 뽑지만 타 구단은 일찍 끝내곤 한다. 다만 2019년 드래프트에서 오릭스가 8명을, 2008년 드래프트에서 롯데가 8명을 지명하는 등 평소에 육성선수를 조금 뽑던 구단이 무더기로 뽑는 경우도 있다.
KBO 리그처럼 지배 선수가 기량 부족이나 1시즌 이상의 긴 재활에 들어가서 육성선수로 전환되는 경우가 있다는건 공통점이고, 용병도 육성선수로 영입할 수 있다는 것은 차이점이다. 자세한 정보는 육성선수 문서를 참고.
육성선수 출신 최초의 신인왕은 2007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뛴 좌완 구원투수 야마구치 테츠야 였으며, 다음 해 같은 팀 소속의 외야수 마츠모토 테츠야가 육성선수 야수로는 최초로 신인왕을 차지했다. 야마구치는 2009년 홀드왕을 차지하며 육성선수 드래프티 최초의 타이틀 홀더도 되었다. 육성선수 출신으로 최초로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는 2011년 치바 롯데 마린즈의 외야수 오카다 요시후미오릭스 버팔로즈의 내야수 아롬 발디리스 였으며 최초로 규정이닝을 채운 선수는 2012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뛴 좌완투수 야마다 히로키였다. 호크스는 2010년대 유난히 육성선수로 재미를 많이 봤는데 리반 모이넬로, 센가 코다이, 카이 타쿠야, 이시카와 슈타, 마키하라 타이세이, 슈토 우쿄 등 뛰어난 기량의 선수들을 다수 배출했다.
2020년 드래프트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무려 12라운드까지 육성선수를 뽑았고, 12구단 전원이 육성선수를 1명 이상 뽑았다. 12구단 전원이 육성선수 드래프트에 참여한 것도 사상 최초.

5.2. 페넌트레이스교류전


페넌트레이스는 2015년부터 팀당 143경기를 소화한다. 14시즌까진 144경기 체제였다. 같은 리그 팀과는 25경기씩 토탈 125경기를 치르고, 나머지 18경기는 다른 리그와 교류전(3연전*6팀, 홈팀은 홀/짝해마다 바뀐다.)을 치른다. 덕분에 오히려 KBO 리그보다 1경기가 더 줄어들게 되었다(!). KBO의 경우는 128경기 체제였다가 2015년 kt wiz가 참가하며 144경기로 늘었기 때문.
원정경기 이동 시 센트럴리그신칸센을 이용해서 다니는 반면, 퍼시픽리그는 일본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센트럴리그의 경우 모든 팀이 도카이도 - 산요 신칸센 연선에 붙어 있는 반면, 퍼시픽리그의 경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는 저 멀리 삿포로가 연고지이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후쿠오카에 연고지가 있어 신칸센 이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의 경우 신칸센이 후쿠오카까지 들어가지만 4시간의 벽 때문에 오릭스 원정 외에는 전부 비행기로 때우고 있고, 니혼햄은 아예 신칸센을 탈 기회도 없다. 삿포로까지의 홋카이도 신칸센 개통은 2031년으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류전은 2005년 처음 시작되었으며 2005, 2006년은 36경기씩(6팀*3연전*홈&어웨이) 치러졌으나 센트럴 리그 5개 구단의 반발로[159] 2007년부터는 24경기로 축소되었다. 그러고도 2연전 체제라서 중간중간 이동일 및 휴식일이 너무 많고 기간에 비해 경기소화가 적으며 너무 늘어져서 관중들의 흥미가 반감된다는 이유를 들어서 2015년부터 다시 18경기로 축소하였다. 사실 이것도 교류전의 결과가 2연전 체제와 잦은 휴식 때문에 에이스급 투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고 이들을 집중 투입할 수 있는 퍼시픽리그에게 유리하게 나왔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대세이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의 통합전적은 압도적으로 퍼시픽리그 소속구단들이 우세하다. 2009년을 제외하고 시즌당 리그별 승수가 퍼시픽리그가 센트럴리그를 앞지른다. 양 리그간의 차이를 짚어볼 수 있다.
2020년은 코로나 19로 인해서 16년 만에 교류전이 중지되었다.

5.3. 비디오 판독


NPB는 비디오 판독 도입이 매우 늦은 편이다.[160] 그나마 실시하는 비디오 판독의 경우도 홈런 / 파울, 2016년부터는 홈 충돌 방지 판정에서나 사용했으며, 각 팀의 홈 경기장이 아닌 지방구장 경기에서는 사용 자체가 불가능했으나 2016년이 되어서야 가능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오심도 굉장히 많아서 일부 일본 팬들은 바다 건너에서 실시하는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자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2014년엔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한신 타이거스끝내기를 맞고 진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오심이 발생한 적이 있어 논란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이승엽이대호도 홈런 하나씩을 손해 본 적도 있었다.
2017년 닛폰시리즈 2차전에서는 이 비디오 판독으로 인해 승부가 뒤바뀌었다. 그날 따라 비디오 판독이 2번이나 일어났다. 비디오 판독이 가능한 케이스가 딱 두 상황인데 그 두 상황이 모두 일어난 것. 첫번째는 소프트뱅크의 홈런/파울 판독으로 파울->파울. 두 번째는 소프트뱅크 주자의 홈에서의 태그아웃/세이프 판독으로 태그아웃->세이프. 참고로 이때 태그아웃이 되었으면 요코하마와 3대3으로 동점이었는데 세이프로 바뀌는 바람에 4대3으로 역전승에 성공하였다.
이와 관련한 논의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2018시즌부터 비디오 판독을 판정에 이의가 있을 때 실행하게 된다. 아직은 시설이 미비한 관계로 KBO 리그가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TV 중계 화면에 의존한 비디오 판독이 진행된다. '챌린지'라는 미국식 용어가 너무 도전적이라는 이유로 '리퀘스트'라는 보다 '공손한' 용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5.4. 지방구장 경기


일본프로야구는 각 팀들의 홈구장 주변 연고지 혹은 연고지 외 지방의 구장에서 치르는 일명 '출장시합'이라는 홈경기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 있다. 출장시합은 세가지의 종류가 있는데 연고지 내 기존 홈구장외의 야구장에서 홈경기 개최, 연고가 없는 제3지역에서 홈경기 개최, 다른 구단들의 홈 구장에서 홈경기(!) 개최가 있다. 이러한 출장경기는 연고지 밀착, 옛날 홈구장, 시장 확대 등 여러 이유로 치뤄진다.
연고지 내의 타 구장 홈경기의 사례로는 홋카이도 연고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홋카이도 시리즈(아사히카와, 오비히로, 하코다테 등), 후쿠오카 연고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규슈 경기(키타큐슈, 구마모토, 가고시마 등), 사이타마 연고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오미야 경기가 있다. 매년 고정으로 열리는 구장[161]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구장이 더 많기 때문에, 그리고 올해 했다고 다음 해에도 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매 시즌 일정표에서 이를 찾아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비슷한 예로 KBO 리그삼성 라이온즈포항이나 롯데 자이언츠울산, 한화 이글스청주 등이 있다.
연고가 없는 제3지역에서 홈경기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마츠야마, 시즈오카, 후쿠시마 경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오키나와 경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기후 경기 등이 있으며 한 해에 같은 구장에서 서로 다른 팀의 홈 경기가 열리는 사례도 있다. 2012년의 경우 4월 21일, 22일에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의 홈 경기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도호쿠 라쿠텐의 2연전이 가고시마(21일), 구마모토(22일)에 열렸는데 4월 25일, 26일에는 요미우리의 홈 경기로 요미우리-요코하마 DeNA의 2연전이 구마모토(25일/우천취소), 가고시마(26일)에서 열렸다. 또한 아키타에서는 5월 12, 13일엔 도쿄 야쿠르트의 홈 경기로 도쿄 야쿠르트-요미우리 2연전이 열렸고 8월 28일에는 요미우리의 홈 경기로 요미우리-주니치 경기가 있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오키나와에서 첫 정규시즌 경기가 6월 26일, 27일 요코하마 홈경기로 요코하마 DeNA-도쿄 야쿠르트의 2연전으로 나하에서 개최되었다. 윗 문단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올해 열린 제3지역 경기가 다음 해에도 열린다는 보장이 없다. 이해하기 쉽게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의암 야구장이나 제주 야구장에서 KBO 1군 경기가 치뤄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이것을 능가하는 '''다른 구단의 홈 구장에서''' 홈 경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해당 지역의 팬들과 연고이전 이전의 팬들을 위해 치루는 이유가 크다. 대표적으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도쿄돔[162] 경기,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교세라 돔 오사카 경기가 있으며, 한신의 교세라 돔 오사카 경기[163], 2017년 일정에서 소프트뱅크의 홈경기를 도쿄돔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요미우리는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열렸으며[164], 심지어 1999년에 오릭스 블루웨이브 같은 경우에는 호크스와의 홈경기를 호크스의 홈인 후쿠오카 돔에서 치른 적도 있었다(...).[165] 2008년과 2012년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가 교류전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와 치르는 홈경기를 호크스의 텃밭인 규슈의 키타큐슈(2008년, 2012년)와 오이타(2008년)[166], 나가사키(2012년)에서 치르기도 했다. 2016년 4월 19일부터 20일까지 요미우리는 규슈 출장으로 각각 구마모토와 가고시마에서 주니치와의 홈 경기를 개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구마모토 대지진으로 인하여 두 경기가 모두 취소되고 정작 자신들의 홈 구장인 도쿄 돔에서는 라쿠텐과 오릭스의 경기가 개최되는 묘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른 팀의 프랜차이즈 보호구역에서 경기를 개최할 경우 그 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167]
또한 야구에서도 일본과 대만이 워낙 각별한 사이인지라 2002년에는 다이에와 오릭스가 대만에서 정규시즌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168] 그러나 장거리 원정에 지친 선수들의 불만으로 그때 한해 치르고는 그만 뒀다. 또한 이승엽이 치바 롯데에 소속되어 있던 2005년에는 롯데 측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와의 경기를 문학과 사직에서 한 경기씩 치르는 계획도 추진했으나 흥행 가능성의 문제를 들어서 취소되기도 했다.
기후 나가라가와 구장 개장 첫 장외홈런을 친 장종훈, 오비히로에서 홈런을 친 이대호를 제외하고 일본에 진출했던 한국인 타자들은 지방구장에서 홈런을 친 적이 없다.
이런 지방경기들은 우천취소 등이 일어날 시에는 제1구장 경기로 바뀐다. 따라서 지방구장 경기를 보러 가려는 팬들은 주의할 것. 또한 2020년에는 코로나 19로 개막이 연기되었는데, 6월 이후의 지방구장 경기도 상당수가 미리 취소되었다.
대표적 지방경기로는 아래와 같이 있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교세라 돔 오사카 - 칸사이권 팬들을 위해 매년 1~2회 개최
  • 한신 타이거스 : 교세라 돔 오사카 - 고시엔 기간 및 홈 개막전 개최, 머스캣 스타디움 - 매년 1~2회 개최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키타큐슈 시민구장 - 매년 2회 개최, 교세라 돔 오사카 - 난카이 호크스 시절 팬들을 위해 개최, 도쿄돔 - 도쿄 팬들과 모기업 사원들을 위해 개최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도쿄돔 - 도쿄 팬들을 위해 매년 10회 이하 개최[169], 홋카이도 시리즈(아사히카와, 하코다테 등) - 홋카이도 지역 팬들을 위해 개최. 2020년은 아사히카와, 오비히로, 쿠시로. 그러나 코로나 19로 전부 무산.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도호쿠 지역 팬들을 위해 순회하며 실시된다. 2020년은 아키타와 아오모리. 그러나 코로나 19로 전부 무산.
  • 오릭스 버팔로즈 : 홋토모토 필드 고베 - 블루웨이브 팬들을 위해 매년 20회 이하 개최하며, 매년 8월 고시엔 기간에는 교세라돔을 임대해서 쓰는 한신 구단 때문에 아예 임시홈구장이 된다. 지방구장 경기 중에서 가장 많이 경기가 열리는 곳이다.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오미야에서 매년 3경기를 치른다. 군마에서도 지방경기를 한다. 도쿄 돔에서 홈경기를 하기도 한다. 2020년에는 오미야 3경기, 군마 1경기, 도쿄돔 1경기. 단 코로나 19로 오미야 2경기와 군마 경기, 도쿄돔 경기는 무산.

5.5. 올스타전


경기는 매년 2~3경기를 치른다. 경기수는 매년 시즌 일정을 정할 때 마다 새로 정하므로 무슨 규칙이 있어서 어떨때는 2경기 어떨때는 3경기 이런식으로 정해져 있는건 아니다.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에 3경기를 치르고 해당 수익금을 일본올림픽대표팀의 후원금으로 기부한 경우도 있다.
또한 각 포지션별 올스타 투표는 별 차이가 없지만, 투수부문에서는 선발-중간-마무리로 나눠 투표한다.
KBO와는 다르게 후보에 없는 선수도 투표가 가능하며, 포지션을 맞춰서 투표할 필요도 없다. 예를 들면 윌린 로사리오를 '''유격수'''로 투표할 수도 있다(...) 또한 1일 1투표라서 한 명이 여러 표를 행사할 수 있다.

5.6. 외국인선수


일본에서 외국인 선수를 스켓토(助っ人)라 부른다. 즉, 직역하자면 도우미 정도의 의미. 한국에서 용병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일본프로야구 초창기부터 외국인선수 제도를 뒀는데, 한국프로야구 초창기에 재일교포 선수들이 활약했던 것과 유사하게 일본프로야구 초창기에도 주로 일본계 미국인들이 활약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요나미네 카나메. 1950년대에는 나이 등의 이유로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이 미약해진 니그로리그 출신 선수들이 일본으로 진출하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주로 마이너리그 출신 선수들을 영입했다.
현재 일본프로야구는 '''구단이 보유할 수 있는 외국인선수는 육성선수를 포함하여 인원제한이 없다'''. 즉 팀에 자금만 넉넉하다면 굳이 출전을 안시키더라도 무제한으로 보유하여 2군에 등록해놓고 필요할때마다 1군에 콜업해서 쓰는 것이 가능하다. 단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는 만큼 국내 선수의 보유 한도가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즉시 전력감에 치중하는 한국과는 달리 육성형 선수나 보험용 계약도 많은 편이다. 이 때문에 외국인선수 교체도 무제한이라서(KBO 리그는 팀당 한 시즌 2번) 즉전감으로 데려온 선수라고 해도 좋지 못한 성적을 보일 경우, 한국처럼 잠깐 2군에 보냈다가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하지 않고 칼같이 2군에 박아 버린 후에 새 선수를 물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몇몇 국내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KBO 리그를 거치지 않고 미국에 진출했다가 MLB의 벽에 막힌 선수들이 일본으로 가면 주전 자리를 쉽게 차지할 거라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1군에는 최대 4명까지 등록할 수 있으며 투수 4명, 타자 4명의 조합만 불가능하다'''. 즉, 투수를 3명을 등록하면 투수 등록이 더 이상 불가능하며, 반대로 타자 3명을 등록했으면 타자를 더 등록할 수 없다. 코로나 19로 인해 2020년에 한해서 1군에는 5명까지 등록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이때 4명까지만 경기에 출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불펜 용병을 쓰거나 용병 타자가 2명 이상인 팀들은 2019년까지의 KBO 리그만큼은 아니지만 애로사항이 생기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용병 타자 2명, 용병 선발 1명, 용병 불펜 2명을 1군에 등록시킨 팀이 있다고 가정할 때 용병 선발이 출전하는 날은 용병 불펜과 용병 타자 중 한 명을 제외시켜야 한다. 거기다가 불펜진 얇아서 용병 불펜 둘이 각각 8회 셋업과 마무리를 맡는 팀의 경우라면 용병 타자를 빼야할지 고민이 생기기 마련. 실제로 2019년 삼성이 용병타자 2명을 썼기 때문에 용병선발이 나올 때마다 타자 둘 중 하나를 강제로 휴식시켜야만 했다.
거기다가 투타를 각각 2~3명씩 등록하는 경우는 아무 제한이 없지만, 투수 4명/타자 1명의 조합이나 그 반대의 조합으로 외국인 선수를 등록시킨 경우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무조건 4:1 조합으로 가거나, 외국인 쿼터를 스스로 4명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독소조항이 있다. 만약 투수 4명/타자 1명으로 외국인 등록을 이미 해버린 팀이 타자를 2명 1군에 올리고자 하면 외국인 쿼터를 4명으로 축소하여 투수 2명/타자 2명으로 등록하는 방식밖에 할 수 없다. 다만 투수 4명/타자 1명인 팀이 투수 1명/타자 4명으로 바꾸는 것은 가능한 듯.
참고로 육성선수의 경우 만 26세 이상인 선수는 매년 3월 말일까지만 지배 등록이 가능하다. 그 시기를 넘기면 그 시즌에는 계속 육성선수로 남아 있어야 한다.
또한, 특정 조건을 만족한 외국인 선수는 국내 선수로 취급되어 외국인 선수 제한에서 제외된다.
  • 1. 일본프로야구에서 8년간 뛰며 FA 자격을 얻은 선수.
대표적인 선수로는 알렉스 라미레스, 터피 로즈, 알렉스 카브레라, 호세 페르난데스,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있다.[170]
  • 2. 일본 국내에서 고교 이상의 교육과정을 이수했고, 드래프트 신청 직전의 교육기관이 일본 국내 정규교육기관이며 드래프트를 거친 경우.
이 예의 대표적인 선수로는 장훈이나 김일융등의 재일교포 선수들[171], 대만 출신의 요다이칸,(후쿠오카제일고-닛폰햄) 한국에서 태어나고 야구를 시작했다가 일본으로 야구유학을 가서 이에 해당하는 경우로는 2008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김무영(하야토모고-후쿠오카경제대-후쿠오카 레드와블러스)[172]신성현(교토국제고)[173], 브라질 출신의 루시아누 페르난두(하쿠오대[174])가 있다. 2017년에는 키수 데수자 펠리페라는 브라질 출신 선수가 오릭스 버팔로즈에 육성선수 4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 3. 일본 내의 대학에서 4년 이상 재학한 선수
대만 출신의 타이호 야스아키(나고야상과대학-주니치), 브라질 출신의 라파엘 페르난지스(하쿠오대학-야쿠르트)가 있다.
  • 4. 일본에 5년 이상 거주 한 후, 사회인 야구 팀에서 통산 3년 이상 재직한 선수.
일본계 브라질인 타마키 시게오(미츠비시자동차 카와사키-히로시마)가 있다.
  • 5. 항목 3, 4의 필요한 연수에 미치지 못했지만 드래프트를 거쳐 입단 후 학교의 재학 기간과 일본 프로 야구의 재적 기간을 합쳐 5년 이상 경과한 선수.
주니치에 잠시 몸 담았던 송상훈이 있다.

5.6.1. 2021년 시즌 외국인선수


NPB는 외국인 육성선수도 있다보니 육성선수를 구별하기 위해 정식 선수에게만 볼드체를 씌움. 일본 국적이 아니면 모두 표기하되, 제한에 걸리지 않는 선수는 취소선 표시.
국내 야구팬의 시선으로 본다면 매년 일본에서 실패한 용병이 2~3명씩 다음 해나 다다음 해에 한국으로 오기 때문에 이 중 몇 명은 분명히 2020, 2021년 KBO에서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름 정도는 훑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175]

5.6.1.1. 센트럴리그

'''아시아선수제외'''
  • 요미우리 자이언츠 : 루비 데 라 로사(투수, 도미니카 공화국), 크리스토퍼 메르세데스(투수, 도미니카 공화국), 이스라엘 모타(외야수, 도미니카 공화국), 레이민 라모스(투수, 도미니카 공화국),앙헬 산체스(투수,도미니카 공화국), 젤러스 휠러(3루수, 미국),에스타미 우레냐(내야수, 도미니카 공화국), 치아구 비에이라(투수, 브라질), 에릭 테임즈(1루수, 미국)
  • 한신 타이거스 : 제프리 마르테(1루수, 도미니카 공화국), 제리 샌즈(외야수, 미국),존 에드워즈(투수, 미국), 조 건겔(투수, 미국), 로베르토 수아레스(투수, 베네수엘라), 멜 로하스(외야수, 도미니카 공화국), 라울 알칸타라(투수, 도미니카 공화국)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알버트 수아레스(투수, 베네수엘라), 스캇 맥거프(투수, 미국), 호세 오수나(내야수, 베네수엘라), 도밍고 산타나(외야수, 도미니카 공화국), 사이 스니드(투수, 미국), 릭 밴덴헐크(투수, 네덜란드)
  •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 에드윈 에스코바르(투수, 베네수엘라), 네프탈리 소토(1루수, 푸에르토리코), 케빈 샤켈포드(투수, 미국), 마이크 피플스(투수, 미국), 레미 콜데로(투수, 도미니카 공화국),타일러 오스틴(내야수, 미국),스탈린 콜데로(투수, 도미니카 공화국),프레디 데 로사(내야수, 도미니카 공화국)
  • 주니치 드래곤즈 : 에니 로메로(투수, 도미니카 공화국) 다얀 비시에도(1루수, 쿠바), 라이델 마르티네스(투수, 쿠바),아리엘 마르티네스(포수, 쿠바), 야리엘 로드리게스(투수, 쿠바)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알레한드로 메히아(내야수, 도미니카 공화국), 헤로니모 프랑수아(투수, 도미니카 공화국),에마일린 몬티자(투수, 도미니카 공화국),알프레도 메나(투수, 도미니카 공화국),테일러 스콧(투수, 미국),로베르토 콜니엘(투수, 도미니카 공화국), 케빈 크론(1루수, 미국), 도비다스 네브라스카스(투수, 미국)

5.6.1.2. 퍼시픽리그

'''아시아선수제외'''

5.7. 포스트시즌



5.7.1. 클라이맥스 시리즈


일본 프로야구에서 가을 야구인 플레이 오프는 클라이맥스 시리즈(Climax Series)로 불린다.
퍼스트 스테이지(1회전)에선 3전 2전승제로 하고 파이널 스테이지(2회전)에서는 1위팀과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승리한 팀이 7전 4승제로 붙는데, 1위팀에게 1승 어드밴티지를 주기 때문에 1차전을 이미 이긴 것으로 간주하여 실제로는 6전 게임이 된다.[176] 그리고 '''원정팀 경기장에 가서 경기를 하지 않는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모든 경기를 순위상 높은 순위에 있는 팀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한다.''' 일정상 유리하고. (이동일 하루를 빼지 않는다.) 야구가 홈팀 어드밴티지가 큰 스포츠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긴다면 9회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모로 순위 좋은 팀이 유리한 규정. 그리고 혹여나 무승부 경기가 나와서 동률이 되어버리면 그냥 순위높은 팀이 진출한다.
사실 센트럴 리그에서 교류전(인터리그)와 더불어 플레이오프제를 도입하는데 굉장히 심하게 반대를 했는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보수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규시즌 1위팀의 상징성이나 특권이 없어지므로써 야구의 순수성을 파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플레이오프제를 도입하는데 동의하면서 거기에 정규시즌 1위팀에게 유리한 조건을 달은 것이다. 어쩌면 이게 당연한 얘기일 수 있다.
연도별, 리그별, 스테이지별 결과는 해당 문서 참조

5.7.2. 일본시리즈


일본 선수권 시리즈(일본 시리즈)는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7전 4전승제로 일본시리즈에서의 홈 어드밴티지는 홀수해에는 퍼시픽리그, 짝수해에는 센트럴리그 팀에게 주어진다. 참고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일본 시리즈에서는 15회까지를 연장으로 사용한다.

6. 2군 운용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마이너리그, KBO 리그KBO 퓨처스리그처럼 2군이 활성화 되어 있다. 일본프로야구의 2군도 2개의 리그로 나뉘어 져있으며 각각 이스턴리그, 웨스턴리그로 나눠서 구성되어 있다. 이스턴리그는 센트럴 리그에서 운영하며 웨스턴리그는 퍼시픽 리그에서 운영하지만, 소속팀은 1군의 소속 리그와는 별개로 구성되어 있다. 2005년에 창단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2군이 이스턴리그에 참가하면서 이스턴리그는 7개팀, 웨스턴리그는 5개팀이 운영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프로야구/2군 문서 참조.

7. 응원 문화


응원가의 특징에 대한 서술을 참고하려면 일본프로야구/응원가 문서를 참조.
한국과 대만과는 달리 11구단에 사설 응원단이라는 구단 서포터즈가 존재한다.[177] 이들은 보수를 전혀 받지 않으며 전국에 지부를 두고 각 구단의 응원을 주도한다. 즉, 순수히 돈을 쓰기만 한다.[178] 야구 중계 보면 나팔 소리가 들릴 텐데, 이 소리가 바로 사설응원단이 내는 소리다. 단, 22시 이후엔 야외 구장과 도쿄 돔에서는 악기 소리를 낼 수 없으며, 라쿠텐 생명 파크는 트럼펫조차 못 들고 온다. 단, 미야기에서 홈팀에 한해 앰프는 사용. 22시 제한은 유효. 구장 자체 문제가 얽힌 라쿠텐을 제외하면[179] KBO처럼 앰프를 쓰지 않는다. 다 트럼펫을 분다. 위의 라쿠텐도 홈에서나 앰프 쓰지 원정에서는 다 트럼펫을 분다.[180] 응원주도만 사설응원단이 할 뿐, 외야석에 가서 응원참여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응원석은 한국과는 달리 외야석이다. 원정 팀만 외야석에서 응원하는 대만과는 달리 홈 팀도 외야석이다.[181] 보통 원정석은 반대편 외야석 전체를 원정석으로 주지않고 일부 좌석에 한해 제공하며 원정팬이 많이 오는 팀이 상대팀이면 반대쪽 외야 응원석을 통째로 넘겨 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182] 각 팀 응원석에 타팀 유니폼을 입은 팬이 간다면 해당 팀 근처로 강제 이주시키거나 경기장에서 쫓아낼 수 있다. 물론 홈팀 유니폼을 입고 원정팀 응원석에 가는 것 역시 입장을 거부당하거나 쫓겨난다.[183] 즉, 타팀팬 친구와 응원하러 가면 서로 떨어져 앉아야 한다는 것. 이는 국내 축구는 물론, 배구, 농구와 비슷하다.[184]
이걸 보면 축구 K리그같이 외야만 응원하고 내야는 조용히 보냐 물을 텐데, 구단마다 다르다. 어느 구단들은 내야석에서도 응원가를 부르며 응원하는 구단도 있고, 어느 구단들은 조용히 야구관전만 하는경우도 있다. 응원은 사설 응원단만 주도 및 시행하고, 비서포터즈에게 강요할 수 없으며, 비서포터즈는 응원 주도 못하게 규칙으로 정해놨다. 일반석에서 자발적으로 삼~구삼진! 외쳤다가 바로 쫓겨날 수 있다는 것. 주도만 하지 말랬지 서포터즈 응원에 동참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185]
사설응원단은 개인정보를 다 모아서 구단에 허가서와 함께 제출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공인 사설응원단으로써 응원이 가능하다. 이런 철저한 관리는 일본 야구계가 소요 사태로 홍역을 치른 바 있고, 검은 안개 사건도 겪은 데다 서포터즈에 조직폭력배가 가담한 적도 있어서 재발 방지와 빠른 처벌을 위해 정착한 것이다.
그러나 사설응원단이 아직도 야쿠자와 결탁하거나 팬과 친목질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는 일본프로야구 내에서도 비판받고 있다. 야쿠자 문제는 일본과 국내 현실이 달라 먼 나라 이야기지만 팬과의 친목질은 NPB 뿐만 아니라 J리그는 물론 당장 바다 건너 K리그 서포터즈도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이긴 팀은 二次会(니지카이)라고 해서 응원석에서 뒤풀이 비슷하게 응원가를 잠깐 부르는 것이 있다. 팀마다 다르지만 이날 승리에 큰 공헌을 한 선수의 응원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승리 전용 응원가나 과거 재적했던 선수들의 응원가를 부르기도 한다. 진 팀 응원석에서는 응원단이 마무리 멘트만 하고 바로 해산. 그래서 홈 팀이 지면 정말 다 빠져나간 조용한 구장 한 구석에서 소수의 원정팬들만 응원가를 열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한국처럼 선수 개인 응원가가 존재한다. 이것은 애초에 일본이 원조다. 그러나 한국인들 중 일부가 일본야구 응원가는 다 똑같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팀 응원가랑, 아직 전용 응원가를 못 받은 선수 때 나오는 범용 응원가, 득점권 상황에서 부르는 전용 응원가인 찬스 테마를 듣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거기다가 응원단이 공식인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186] 잡다한 지역 경기 전용 응원곡[187]도 많아서 응원가가 생각보다 많이 복잡하다. 가사의 경우 당연히 일본어지만 용병 국적에 따라 외국어가 들어가기도 한다. 영어는 물론 쓰이고, 중남미 용병도 많이 와서 스페인어도 많이 쓰이는 편이다. 한국 용병이 있을 때는 한국어도 사용했다. 이승엽 응원가 등.
한국에서는 이런 문화를 지양하고 있다. 반일감정이 원인이 아니냐 하겠지만 사실은 그 이전에 KBO에서 홍역을 치른 요소들이 몇몇 있는데 그게 일본 프로야구 문화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에 그런 것이다. 먼저 사설 응원단부터 말하자면 한국에서는 히어로즈 사랑 영원히가 초대형 민폐를 끼친 적이 있다. 이 이유로 한국 프로야구 팬덤은 서포터 집단에 매우 적대적이고, 서포터즈 존재와 개념을 용인하는 구단 팬층은 단 하나도 없다. 그리고 상대를 무찌르자는 응원가는 일본에 몇몇 있지만 한국에서는 고래사냥 하나로 설명이 다 된다. 일본에서는 "이거 봐라?" 하며 맞응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거품 물고 상대 구단에 항의한다.[188]

8. 참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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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신인 일본야구연맹 설립년도. 일본프로야구기구는 1950년 설립.[2] 당연히 독립리그들은 일본야구기구와는 독립되어 있다. 편의상 NPB를 일본프로야구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일본에 프로야구가 NPB밖에 없는 건 아니다. 사회인 야구를 총괄하는 일본야구연맹도 독립리그를 프로야구로 취급한다. 한국으로 치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프로야구로 취급하는 셈.[3] NPB의 총재(커미셔너)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커미셔너와는 달리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은 인물들이 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NPB의 총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이가 다름아닌 와타나베 츠네오(渡辺恒雄) 요미우리 신문 전 회장일 정도로 리그를 기획한 요미우리 신문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시대의 흐름에 매우 뒤쳐지는 보수적인 리그 운영을 일관하고 있다.[4] 앞에서 얘기한 토요타(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미쓰비시(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닛산(요코하마 F. 마리노스), 파나소닉(감바 오사카)은 야구단이 없는 대신 축구단을 소유하고 있다.[5] 요미우리 신문도 프로화를 겨냥해 만든 축구팀인 베르디 가와사키를 1998년까지 운영했다. J리그 출범 이후 팀명에 모기업명을 배제하고 연고지를 반드시 표기하도록 규정했는데, 요미우리 신문이 이를 무시하여 축구단 운영에 손을 뗀 것이었다. 당시 요미우리 신문은 "기업명 거르고 연고지를 넣으라고? 그럴 거면 우리 팀 운영 안 한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베르디 가와사키는 도쿄도 이전 전까지 한번도 로고에 가와사키를 명기하지 않았다.[6] 지역명도 적극적으로 붙이고 불리긴 한다. 이유는 간단히 연고지 내 확고한 팬층 확립.[7] 야구 말고도 한국 전 종목이 (단, 축구는 국내대회 유니폼으로 한정) 그렇다. 로마자 마킹은 서울 이랜드, 2009년 한화 이글스, 2018년 강원 FC, 2019년~2020년 대구 FC 정도를 빼고는 찾기 힘들다.[8] 대만의 경우 이전 서술에 로마자 마킹이 기본이라고 하였으나 2017년 이전까지는 전부 중국어 마킹만 썼다. 공교롭게 2017년 팀 인수(푸방), 외국인감독 선임(중신), 유니폼 교체(퉁이)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우연히 로마자마킹이 대세가 됐을 뿐. 중신은 당시에도 올드유니폼을 많이 입었는데 중국어 마킹이었고 라쿠텐(구. 라미고)은 단 한 번도 로마자 마킹을 쓴적이 없으며 재창단한 웨이취안도 중국어마킹을 쓰고 있다. 현재는 푸방만 로마자 마킹을 하고 있으며, 퉁이는 원정에만(얼트 제외) 로마자 마킹을 하고 있다.[9] 2018시즌 종료후 가장 높은 평균관중 현황을 보자면 호주 풋볼 리그(36,687명 / 호식축구)가 가장 높으며 바로 그 다음이다. NPB 바로 아래로 호주 빅 배시 리그(26,528명 / 크리켓), 중국 슈퍼 리그(24,107명 / 축구) 등으로 나열되어 있다.[10] 세계 기준으로는 호주 프리미어 리그와 일본프로야구가 4위~5위에 나란히 나열되어 있다. 1위는 미국 내셔널 풋볼 리그(67,100명 / 미식축구), 2위는 독일 분데스리가(44,646명 / 축구), 3위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38,297명 / 축구). 그렇다.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평균관중이(28,830명) 일본프로야구에 밀린다.[11] NTV가 요미우리의 경기를 전경기 중계해주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상파 채널의 중계는 줄어든 게 맞지만 위성 채널 및 인터넷의 발달로 오히려 원하는 사람들은 각자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전 경기를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요미우리 및 요미우리가 소속된 센트럴리그에 소속된 팀이나 TV중계를 볼 수 있었고 퍼시픽리그 경기 중계는 정말 가뭄에 콩나듯이 했다. NTV가 중계하는 시절에는 전 경기 중계라고 해도 3~4회부터 중계를 시작하거나 7~8회쯤에 중계를 끊는 일도 비일비재하여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한 중계도 많았다.[12] 폭스스포츠 일본프로야구 홈페이지. 시청률이 낮아졌다면 이런 스포츠 방송국이 프로야구 중계권을 구입할 리가 없을 테니, 일본프로야구의 인기가 떨어졌다기보다 시청 환경이 더 좋아졌다는게 맞는 말이다.[13] 센트럴리그 관중통계퍼시픽리그 관중통계를 참조.[14] 한국말로 하면 카프여자, 카프녀.[15] 오릭스 버팔로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16] KBO 리그는 게다가 고화질에 무료다.[17] 여기에 교류전도 요미우리, 한신 주최 경기를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월정액 결제로 추가요금이 없다.[18] 2015년 기준으로 20경기 서비스 예정이다. 1게임당 324엔.[19] 그러나 일부 구단 경기는 중계권 확보 관계로 일부 지역에서 볼 수 없다.[20] 독특한 문제점은 일본사회의 특성상 중년이 되면 당연히 봐야 할 스포츠같은느낌이라는 것이다.[21] 1위는 프로레슬링. 프로레슬링은 젊은 팬층뿐만 아니라 뇌진탕 등 각종 부상으로 인해 선수층의 이탈 또한 심각한 상황이다.[22] 후루타 아츠야는 2017년 TV 아사히의 GET SPORTS에서 집계담당 직원이 관중석을 쓱 둘러보고 "어 3만 8천 명이네" 식으로 관중수를 집계했다고 고백하였다.[23] 이것도 생각해볼 문제인 것이 위에도 말 했지만 이건 주로 NTV에서 중계해주던 요미우리 경기의 시청률이 떨어진 영향이 크다.[24] 정작 비인기 팀들의 대결이라던 이 해의 일본시리즈는 7차전까지 가면서 게임을 거듭하면서 상승추세를 보여 7차전 시청률은 수도권에서는 21%, 주니치의 본거지인 나고야권에서는 35%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다.[25] 특히 TV 아사히 계열국이 아침방송에서 많이 한다.[26] NPB는 2004년 이전까지는 유료 실관객을 집계하지 않았다. 실관객 집계가 처음 이뤄진 2005년 관중은 센트럴리그가 15.2%, 퍼시픽리그가 22.8% 감소했었다. 이전 집계의 신빙성은 떨어진다.[27] KBO산하 마케팅 담당 업체. KBO가 비영리 단체이기에 영리적인 활동을 목표로 설립.[28] 반대로 일본에서도 한국의 야구장 마케팅을 배워 가고 있는데, NC 다이노스의 홈구장인 마산 야구장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지바 롯데 구단 관계자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역으로 일본야구기구와 닛폰햄, 지바 롯데, 소프트뱅크가 kt wiz의 홈구장인 수원 kt 위즈 파크에 IT 신기술 마케팅 벤치마킹 목적으로 방문하는데, 실제로 라쿠텐은 KT에서 워터페스티벌을 배워가기도 했다.[29] 그러나 라쿠텐은 홈구장 이름이 너무 자주 바뀐다는 평가를 팬들에게 듣고 있으며 '명명권의 남용'으로 비판받기도 한다.[30] Zombie Nation의 kernkraft 400. PSV의 골송으로도 사용되고 있다.[31] 인플레이 시 중계카메라는 보통 포수 뒤쪽에서 화면을 비춰주지만 일본은 1루 쪽에서 비춰주기 때문에 상당히 불편한 시야에서 플레이를 봐야한다. 상당히 멀리서 비춰주기 때문에 경기 몰입감이 떨어지고 우익선상 타구는 아예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이외에도 홈런성타구가 나오면 지나치게 그 타구만 비춰주는 등 중계화면에 있어서는 리그 수준에 비례해 상당히 질이 떨어진다.[32] 예외적으로 요미우리, 한신, 오릭스는 홈경기 중계 시 포수 뒤편에서 비춰준다. 하지만 이것도 전담 채널에서 중계를 해 줄때의 얘기고 NHK 같은 공중파중계나 지방 출장 경기는 얄짤없이 1루쪽에서 플레이를 봐야한다.[33] 참고로 아프리카 TV에서 본사 측이 직접 중계권을 사서 오승환과 이대호의 일본 경기를 중계해준 적이 있었다. 나름 해설도 있었으나 해설의 퀄리티는 아무래도 좀 떨어졌다. 이 방송은 오승환과 이대호가 미국으로 가면서 자연히 사라졌다.[34] 2006년에는 독일에서 열린 월드컵이 있었지만 애초에 방송 시간대가 달랐다.[35] 문제는 KBO 리그를 자사 계열사로 돌려서 중계하는 등의 막장 행보를 보였고 심지어 녹화중계를 하는 등 KBO 리그 팬덤에게 엄청난 욕을 먹었다. 2007년에 이승엽이 2군에 가 있음에도 꿋꿋히 요미우리 중계를 우선시하는 바람에 결국 KBO 측이 "너네 중계권 압수함"이라고 칼을 뽑아들기도. 결국 2012년 ESPN 제휴 이후 일본 프로야구 중계를 그만두고 KBO 리그에 집중하며 게임스탯, 4D 리플레이, FreeD 등 최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등 중계퀄리티가 대폭 향상되었다.[36] 한신의 공식 영상제작회사인 Tigers-AI 화면을 받아서 중계 컷본을 올렸다.[37] 라쿠텐TV연계가 아닌 공홈으로 들어갈 것.[38] J스포츠 온디맨드, 라쿠텐TV, 교진의 GLS, 야쿠르트/세이부의 후지TV 온디맨드, 한신의 토라TV 등[39] 과거 교진의 경우 국외 중계전용 서비스가 있었으나 2017년 1년 시행에 그쳤다.[40] 경남권에서는 스카이라이프급 안테나로도 수신가능하다. 수도권은 100cm 이상을 권장.[41] 목금 한정[42] 참고로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은 왕정치가 가지고 있다. 야구에서 중요한 기록이 홈런, 안타, 승리 기록인데 기록을 세운 사람이 순수 일본인이 아니라는 건 흥미로운 사실.[43] 김경홍, 장훈 등은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성장한 케이스.[44] 그래도 트위터에서 공식적으로 자신을 대한민국 국적이라 밝히는 등 자각은 한다. 여담으로 이 선수는 팀 동료와 같이 나온 사진 기사에서 LG팬 취급받은 양석환과 비슷하게 잡지에 실린 야쿠르트 멤버들의 모임 사진(정확히는 야마다 테츠토가 팀 동료들과 유흥생활 하던 장면을(...) 잡지 기자에게 걸린 것이다.)에서 '''야마다 테츠토의 지인'''으로 나온 적이 있다(...)[45] 경찰 야구단 입대 과정에서 특혜 논란을 빚었고 2차지명 참가 때도 미국행 가능성을 흘리는 등 이래저래 말이 많았다.[46] 하재훈은 2017년에 드래프트 참가 유예기간 관련해서 야쿠르트와의 계약 이전(정확히는 마이너리그 FA 자격을 얻은 시점)으로 유예기간이 소급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근거로 법정에서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는데, 그런 논리대로라면 '''일본프로야구는 프로야구도 아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성립하게 된다. 결국 1년 더 참고 2019년도 신인 지명에 나오게 된다.[47] 취업비자와 병역 문제를 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리그에서 모셔갈 정도의 선수면 비자는 구단에서 알아서 해 주고 국가대표에 안 뽑히는 게 이상하기 때문에 병역 또한 진작에 아시안게임 등으로 병역특례를 받으니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거니와 애시당초 일본 구단들도 멍청이는 아니라서 역대급 유망주가 아닌 이상 병역 문제가 해결 된 선수 위주로 영입을 하는 편이다. 실제로 여태까지 일본에 진출했던 선수들은 병특이 됐건 면제가 됐건 병역 문제를 진즉에 해결을 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김무영은 병역 사항에 대해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고 이대은은 일본 진출 당시 미필이었다.)[48] 게다가 고교야구의 경우 언어 및 문화, 학업 문제도 있고 한국 고교야구보다 똥군기 문제가 심각하여 유망주들도 아예 일본 야구유학을 기피하기도 한다. [49] 거기서 살아남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100만 달러 이상 계약금을 받고도 성장이 더디거나(박효준) 끝내 도태된 경우(권광민)도 있기 때문.[50] 다만 이 선수도 대놓고 한국 이름을 쓰는 재일교포라는 말도 있다.[51] 드래프트 미지명자. 고등학교 통산 15경기 25이닝에서 ERA 2.88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초등학교 때까지 약 8년 가량 일본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 진학 대신 뛸 팀을 찾다가 일부 대만 선수들처럼 일본 구단에 유학가는 길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대만에는 일본 학원야구를 안 거쳐서 용병으로 뛰어야 함에도 일본 직행을 노리는 선수가 천관위양야오쉰 등 꽤 있으나, KBO에서는 조성민 정도밖에 없었다.)[52] 현재의 도쿄대학.[53] 구락부는 클럽(Club)을 의미하는 단어로 일본어로는 쿠라부(クラブ)라 읽는다. 과거 한국에서도 사용했다.[54] 일본 역사상 두번째 프로야구팀.[55] 라고 써져 있지만 사실 타이거스는 찬성파였다. 그러나 퍼시픽에 들어가면 오사카-자이언츠 라이벌전이라는 흥행카드가 사라지니까 센트럴 리그에 참여했다. 자이언츠 역시 타이거스전의 중요도 덕에 센트럴에 참가하게는 해줬지만 아무래도 마이니치 참가를 인정한 타이거스니만큼 결코 좋은 시선으로 볼 리가 없다.[56] 모노 연필과 잠자리 지우개로 유명한 그 톰보가 맞는다.[57] 다이에이 측이 캐삭빵 걸었다가 7위 찍은 덕에 합병되었다.[58] ONE OUTS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온다. 연재 당시에 단일리그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인 듯 하다.[59] 후루타 아츠야는 이 때 선수협의회장으로서 일본프로야구가 12구단 체제를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60] 2004년 당시 라이브도어가 제시했던 구단명은 '피닉스'였으며, 라이브도어 신구단 프로젝트 무산 이후에도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인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2006년 라이브도어 주가조작 사태 이후로 데꿀멍.[61] 그러나 국내 언론에서는 팀명에서 지역명을 쏙 빼고 호칭하기 때문인지 한국 야구팬 다수가 일본도 지역명이 맨 앞에 오는 일이 거의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62] 이 팀은 요미우리라고 불리기 싫어하는 팬들 덕에 모기업명인 요미우리 표기조차 자제하는 편이다. 간략 표기도 巨人으로 하고 YOMIURI는 원정 유니폼에도 팔뚝에만 박혀있는 신세라 사실상 Giants Baseball Club이다. 도쿄 요미우리 자이언츠 해도 좋겠지만 그건 모기업이 싫어한다. 하지만 2001년까지는 원정유니폼의 가슴팍에 GIANTS도 YOMIURI도 아닌 본거지인 TOKYO를 붙이고 다녔다. 홈 유니폼에는 가슴에는 GIANTS, 팔뚝에는 YOMIURI. 특히 원정 유니폼은 YOMIURI도 씹고, 팔뚝에도 GIANTS라고만 박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유니폼만큼은 프로다운 간지나는 모습을 유지했으나 구단주 와타나베 영감때문에 쓸데없이 YOMIURI를 강조하면서 오히려 팬들의 반발을 샀다. 그리고 요미우리는 90년대까지는 미국 언론에는 Tokyo Giants(예전 팀명인 도쿄교진군의 직역)로 소개되었다. 2000년대 중 후반에 이르러서야 Yomiuri Giants로 표기하는 매체가 늘어났다.[63] 주니치도 1951년부터 1953년까지는 나고야 드래곤즈라는 이름을 썼었다.[64] 사실 '주니치' 자체가 '중부일본'의 약자인 '중일'의 음독이어서 도카이 지방을 포괄하는 의미도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주부라고 말하지 주니치라고는 안 하니 지역명 미부착 취급.[65] 비슷한 맥락에서 지역 정착을 위해 '인천 SK'를 내세운 SK 와이번스는 명목상 인천·경기·강원 연고를 보유하고 있었던 데다가 그룹 역사상 수원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에도 단 한 번도 수원 경기를 치르지 않았다. (사실 지역 연고 밀착을 위해 '인천 SK' 구호를 강조하다 보니 수원 홈 경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지만.) 그러나 의외로 오릭스 구단주는 자이언츠와는 달리 팀명에 지역명 넣을 생각은 있다고 한다.[66] 그리고 오릭스 버팔로즈의 모기업 오릭스는 1964년 오사카에서 오리엔탈리스로 창업했지만 8년만에 본사를 도쿄로 옮겨 향토기업이라고 보기 애매하다.[67] 효고현 남부 지진, 케이한신 공업지대, 한신칸 모더니즘 등 회사와 비교적 무관한 것에도 쓰는,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이다.[68] 이 때문에 요미우리의 2011 시즌은 망했고, 두산 베어스더스틴 니퍼트를 잡을 수 있었다. [69] 공격력을 높이고 싶은 구단은 반발계수가 높은 공을 쓰는 식이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미즈노사의 공이 반발력이 좋다는 것이 알려지며 여러 구단들이 경쟁적으로 이 공을 도입해 리그 전체적으로 홈런 갯수가 급증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흔히 '래빗 볼 시대'라고 불린다. 공교롭게도 2011년부터 도입된 통일구의 제조사도 미즈노인데 이번엔 너무 반발계수가 낮은 게 문제가 되었다.[70] 2010년에는 양대리그 12팀 합쳐서 3할 타자가 20명 이상 나왔고 2009년에도 15명 이상 나왔다.[71] 한때 한국에서 다음-모바게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현재는 결별.[72] 3할-30홈런-30도루.[73] 시즌 중반 세이부가 3위였다.[74] 일본에서는 리플레이 검증(リプレイ検証)라고 한다.[75] 타카하시는 딱 30%.[76] 교류전에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승률 1위를 찍는 대이변을 거두면서 최약체에서 갑자기 올라온게 크다.[77] 진기록으로 2010년대에 올라간 6번의 일본시리즈에서 모두 다른 센트럴리그팀을 만났다. 같은 기간 동안 4승0패, 4승1패, 4승2패, 4승3패 등 승리의 수를 모두 기록하였다.[78] 3월 20일 개막 - 4월 10일 개막 - 4월 24일 개막 - 6월 19일 개막.[79] 올스타전 또한 미개최하였다.[80] 대신 팀간 연습경기 일정을 교류전 위주로 편성하였고, 룰은 퍼시픽 룰을 따라 지명타자 제도를 사용하였다.[81] 둘 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82] 때문에 당장 요미우리의 연습경기는 중단됐지만 리그 6월 19일 개막은 강행할 가능성도 꽤 있다.[83] 6월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3번의 연습경기 중 2경기만 취소하였고, 그 후위 일정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84] 그 여파로 한동안 사카모토 하야토 대신 유아사 다이가 주전 유격수를 보게 되었다.[85] 사실 소프트뱅크의 승리 자체는 이미 리그우승을 거의 확정지은 시점에서 요미우리의 시즌 후반기 계속된 침체와 파리그 CS에서 이어진 소뱅의 기세로 인해 대부분이 예상하던 사안이기는 했다. 야구 해설진과 전문가들도 대다수가 소프트뱅크 승을 예상했고 심지어 요미우리 OB인 관계로 어거지로 요미 승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던 해설자도 '''스가노가 3번 등판해 등판 경기를 모두 승리한다는 전체 하에''' 시리즈 4-3 진땀승을 얘기했었을 정도였으니. '''다만 설마설마 하던 2년 연속 피스윕만은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을 뿐...'''[86] 해당 영상에 의하면 왕조를 현재진행형으로 수립 중인 소프트뱅크로 대표되는 퍼시픽리그 팀들은 같은 리그의 경쟁팀 선수라도 서로 웨이트 트레이닝과 보충제 섭취법 등의 팁을 공유하는 식으로 리그 전체적으로 다같이 성장하자는 의식이였지만, 센트럴리그 팀들은 자신의 홈구장 경기인 기간 중엔 상대 팀 선수들에게 웨이트룸도 사용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직접 볼 것.[87]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이 기록은 당시 V9왕조 시대로 역대 NPB 최강의 팀이였던 그 당시의 요미우리가 세리그였어서 그런 거지 절대로 세리그가 대단한게 아니다. [88] 대부분 전자의 KBL식 표기를 많이 하지만, NHK 같은 일부 방송사는 뒷쪽 표기를 한다.[89] 모기업 야쿠르트의 약호와 합쳐 YS라고 하기도 한다. 구단에서도 약호를 YS로 하는 편.[90] 거인 또는 자이언츠가 맞는 표기지만 한국에선 요미우리라고 쓴다. 한국에도 거인이 있어서 헷갈리기 때문인 듯. 일본 현지에선 그냥 교진군이라 부른다.[91] 모기업 요미우리의 약호와 합쳐 YG라고 하기도 한다.[92] 이게 각 구단의 한자 혹은 가타카나 표기에 준하는 약호이다. 한글자도 아니고 두글자이지만 D는 주니치와 구별이 안되기 때문에 De로 쓴다. 그리고 공식 표기가 영문이기 때문에 따로 가나로 표기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통일(?)을 위해 간혹 ディ로 표기하는 곳도 있다. DeNA가 구단을 인수하기 전의 기호는 다이요 훼일스 시절에는 洋, W로 초창기에 오늘날 치바 롯데 마린스의 전신 구단 중의 하나인 다이에이 스타즈(大映スターズ), 그리고 다이에이와 마이니치가 합병한 다이마이 오리온스(大毎オリオンズ)도 大자로 시작했기 때문에 구별을 위해서 뒷글자를 사용했다. 다이에이, 다이마이는 각각 映, 毎를 사용. 이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시절엔 横를 사용.[93] 이건 '''D'''eNA '''B'''ayStars에서 따온 것으로 각 구단의 알파벳 한글자에 준하는 표기이다. 후술하겠지만 한큐가 이미 B 한 글자 표기를 가져갔으므로 처음으로 베이스타즈를 썼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시절에는 YB를 썼고, 그 이전 다이요 훼일스 시절엔 고래의 영어명 첫글자를 따 W를 약호로 사용했다. 그리고 오릭스가 과거 약호인 B로 돌아가면서 디엔에이는 2019년부터 유일하게 약호가 두 글자인 팀이 되었다.[94] 모기업 주니치 신문의 약호와 합쳐 CD라고 하기도 한다. 공식 팀 약호도 CD로 되어 있다. [95] 과거 한큐 브레이브스가 존재하던 시절에 각각을 구분하기 위해서 뒷글자로 표기했고 한큐 브레이브스라는 이름이 사라진 후에도 정착이 되어서 그대로 쓰고 있다.[96] 모기업 한신 전기철도의 약호와 합쳐 HT로 부르기도 한다. 구단 공식 약호도 이것.[97] 모기업 마츠다 자동차의 옛 이름인 도요공업의 도요(東洋)는 붙이지 않으니 주의. 단, 드래프트 회의에 한정해서만 広島東洋라고 표기한다.[98] 한큐시절의 한자 1글자 표기는 한큐의 '큐'에 해당하는 急[99] 다른 B로 시작하는 구단들이 한큐보다 늦게 B로 시작하는 팀명을 썼기에 한큐가 B 한 글자 표기를 선점하였고, 오릭스 버팔로즈가 한큐 브레이브스의 공식 후신이므로 한 글자 B 표기를 쓰는 데 아무 문제 없다. 블루웨이브 시절 약호는 BW, 2005년부터 2018년까지의 약호는 Bs.[100] 반면 한국의 롯데는 공식 표기로 부산 롯데 절대 안 쓴다. 일본의 롯데라면 몰라도 한국 롯데 표기로 KBL식 표기 쓰지 않도록 조심.[101] 한자의 '입 구'자가 아니라 가타카나의 '로' 자다.[102] 롯데 오리온스 시절의 약호는 O. 연고지인 치바와 모기업인 롯데의 약호까지 합쳐 CLM 으로 칭하기도 한다.(치바 연고 초창기 때 이렇게 했다.)[103] 난카이시절에는 南, 다이에 시절에는 ダ로 표기.[104] 모기업인 소프트뱅크의 약호와 합쳐 Sh 라고 하기도 한다.(구단 공식 약호도 이것) 다이에 시절엔 연고지 후쿠오카와 모기업 다이에의 약호와 합쳐 FDH라고 하기도 했다.[105] 닛타쿠홈 시절부터 사용했으며, 팀이 닛폰햄으로 넘어가도 바뀌지 않았다. 토큐와 토에이 시절엔 東.[106] 플라이어스 때부터 사용한 약호이며, 팀명이 파이터즈로 바뀌어도 유지했다.[107] 위에서 말한 대로 B를 한큐 브레이브스가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에(킨테츠의 창단 초기의 팀 명칭은 킨테츠 펄스였다.), 두 글자로 표기해서 구별.[108] 그러나 시코쿠는 교통접근성이 카가와 빼고는 불편하여 타카마츠시와 가까운 오카야마현도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109] '''호쿠'''리쿠(도야마현·이시카와현·후쿠이현)+'''신'''슈(나가노현)+조'''에츠'''(니가타현).[110] 그러나 16구단 확대의 최대 변수 중 하나가 이들 도시 광역권의 인구 감소이다. 오키나와현은 인구 감소 문제가 덜하고 야구 인기가 좋으나 교통 접근성, 여름 기후, 제2차 세계대전 및 일본 복귀 이후 고질적인 빈곤 문제 때문에 프로 팀 만들기는 언감생심인 상황. 게다가 오키나와는 B리그 류큐 골든킹스가 인기를 얻으면서 프로야구팀 유치론도 쏙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시즈오카의 경우 비행기편이 좋지 않다. 퍼시픽리그의 경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있다 보니 삿포로 이동에 애로사항이 매우 큰 상황. 물론 이 경우는 비행기 이동이 없는 센트럴리그에 넣어버리면 되지만... 그 외에도 니가타도 사토자키 토모야 유튜브에 의하면 니가타에 자리잡은 구단은 시즌 20경기 이상 원정을 다니면 적자를 보게 생겼다고 하며, 여기도 니가타에서 센다이를 가는 편이 V자로 돌아가야 하는 등 교통편이 좋지 않은 문제가 크다.[111] 다만 이것은 예산 문제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 경찰청 산하 스포츠 팀들은 대체 복무 폐지로 사라질 예정. 군경팀이 1군에 참여하는 특수한 리그는 중국 농구 협회S리그, NCAA의 사관학교팀 등 전 세계적으로도 극히 특수한 케이스.[112] 재정운영 측면에서 오릭스의 미야우치 요시히코 오너도 한때 10구단 체제를 지지하면서 NPB 연결재무제표가 적자라는 점을 지적하여 비슷한 발언을 했으나 지금은 12구단 체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에서는 롯데 자이언츠장병수가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가 부실한 수비의 대명사인 '꼴데 수비', 8888577, 특정팀 상대 한 시즌 1승 15패라는 롯데 자이언츠의 저질 경기력 및 부실한 선수 대우와 엮여서 프로야구 팬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고, 프런트에서 물러난 뒤 다시는 야구계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다만 롯데 자이언츠 팬들을 중심으로 일각에서 장병수 재평가 움직임도 있긴 하지만 장병수와 롯데 프런트의 삽질이 워낙 커 드립성 평가에 그치고 있다.[113] 인근 지역의 팀: 롯데 자이언츠(부산광역시).[114] 인근 지역의 팀: LG 트윈스·두산 베어스·넥센 히어로즈(서울특별시), SK 와이번스(인천광역시).[115] 물론 정부 지원이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기업들로서는 정부 지원이 언제까지 있을지 확실치 않으니 그 문제까지 고민을 할 것이다.[116] 알비렉스 니가타는 축구말고도 농구 팀, 육상 팀, 레이싱 팀을 소유하고 있으며, 심지어 해외에도 축구 구단을 소유하고 있다. 원래 알비렉스 니가타도 니가타 알비렉스라는 야구구단을 소유하고 있지만 마이너한 독립 리그 소속이였고, 그리고 니가타 알비렉스는 독립리그에 뛰는 무명 선수를 훈련시켜서 NPB소속 각구단에 이적을 많이 시켜서 일본에서는 야구사관학교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렇니 NPB와 교류가 많아질 수 밖에 없고, 그리고 NPB에 진출하면 당연히 NPB 측에서는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117] 일론 머스크스페이스X가 세계 최초로 민간인을 에 보내는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로 선정된 바로 그 인물이다.[118] 대학 또는 사회인야구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올림픽위원회가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한 취업사이트를 만들고 기업들도 운동선수들을 많이 채용하는 상황에서 굳이 프로야구 안 해도 먹고 살 길이 많기 때문. 오히려 명문대의 경우 일반 직장에 다니는 게 기대연봉이 훨씬 높다. 아울러 한국처럼 모든 선수가 엘리트 선수가 아니고 취미 활동으로 야구를 하는 선수들이 많으며 이들 절대 다수의 궁극적인 목표는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 본선 출전이지 프로 진출은 부차적인 문제다.[119] 그래서 정말 특이케이스로 야구부를 탈퇴했지만 대학은 중퇴하지 않고 일반 학생으로 대학을 다니다가 4학년 때나, 졸업한 이후에 뜬금없이 드래프트에 신청하는 케이스도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2017년 요코하마 육성선수 드래프트 1라운더 카사이 타카마사. 이 선수는 와세다대학 스포츠과학부긴 했지만 특기자가 아닌 일반 입시로 입학한 케이스였고, 입학 이후 야구부에 뒤늦게 들어갔다가 경직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틀만에 때려친 선수였다. 그리고 야구동아리에서만 뛰어오다가 4학년 때 학교를 다니면서 독립리그 생활을 시작하여 그 해 바로 프로 지명을 받았다. 심지어 2019년에는 개막 1군 로스터에도 들어갔다. 이런 케이스의 선수 중 가장 잘 풀린 케이스.[120] 1967년 도쿄 오리온즈(현재의 치바 롯데 마린즈의 경우는 12명을 지명했는데 6명이 입단을 거부했다(...) 이들 중 몇 명은 그 후에 프로에 진출했으나, 1968년 드래프트로 주니치에 입단해 골든글러브 4회, 베스트나인 2회, 통산 200홈런을 기록했던 시마타니 킨지를 제외하곤 모두 프로에서 실패했다. 참고로 시마타니는 67년 드래프트 입단 거부가 3번째 입단 거부였으며, 67년 드래프트에서는 3라운드였으나 68년 드래프트에서는 9라운드까지 밀려나버렸다. 참고로 시마타니의 주니치 입단동기가 무려 '''호시노 센이치'''와 명구회 회원인 오시마 야스노리가 있다.[121] 1968년, 대형 투수 유망주이던 김일융장명부가 당시 '일본 국적자'만이 드래프트 대상이 된다는 제도상 헛점을 이용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의해 드래프트 번외로 입단한다던가 하는 사례가 있었다. 이외에도 번외 입단 출신의 유명 선수로 에모토 타케노리, 니시모토 타카시, 마츠나가 히로미, 아키야마 코지, 기무라 타쿠야(야구선수), 이시이 타쿠로, 오노 유타카 등의 명선수들이 있었다.[122] 단 특별 예외사례로 미국에서 고등학교-대학 야구를 경험한 후루카와 유이치('조 후루카와')란 선수가 장기간 해외 체류 등의 사정을 이유로 사무국의 특별 승인을 얻어 1992년에 드래프트 번외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한 적이 있다.[123] 에가와 스구루 사건 참고.[124] AKB48오오모리 미유의 아버지. 하지만 2군 본즈의 오명을 쓰고 방출되었다가 긴테츠에서 은퇴하자마자 요미우리 구단직원으로 채용되어 현재도 재직중이다. 스카우트로 사카모토 하야토를 발굴한 바 있다.[125] 다른 한번은 이듬해인 코이케 히데오가 8개팀 동시지명을 받았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까지는 마지막 8개구단 동시 지명. 여담으로, 코이케는 노모와는 다르게 평범한 선수로 은퇴했다. 다승왕 1회를 수상했는데 이게 커리어유일 두자릿수 승수.[126] 리그 순서는 당 시즌 교류전 성적 상위 리그 부터 지명한다. 즉 2라운드는 상위리그 6위=>하위리그 6위=>상위리그 5위=>하위리그 5위 순으로 진행되고 3라운드는 반대로 진행된다.[127] 니혼대 출신으로 닛폰햄이 1차로 지명권을 따냈지만 "꺼져 요미우리 아니면 안가."하고 사회인야구팀인 혼다로 갔다 2년후 지바 롯데가 2라운드에서 그를 픽하자 이번에도 "꺼져 난 요미우리 아니면 안가."하고 계속 사회인야구 노망주로 남았으나(...) 결국 2009년에 요미우리에 입단에 성공하여 센트럴리그 신인왕을 받았다. 물론 이렇게 지명거부 당하면 그 픽은 그냥 '''하늘로 날라가는 거다.''' 1픽에서 지명거부를 당하는 손해를 감당할 여력이 없어서 보통은 다들 요미우리 눈치를 보는 편. 하지만 간혹 용자가 되는 팀도 있긴 있다.[128] 2011년 드래프트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지명했으나 입단을 거부하고 1년을 미국에서 쉰 뒤 기어코 요미우리에 단독 지명되어 프로에 입단했다.[129] 다만 특이케이스로 키무라 유타(2008년 드래프트 롯데 1라운더)처럼 ''롯데가 아니면 가지 않겠다''는 이유로 2006년 드래프트에서 요코하마에 3라운드에 지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입단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 이 선수는 고교 시절 세이부에게서 270만엔을 영양관리비라는 명목으로 받아먹었고, 고3때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도 1라운드로 지명해주겠다고 했으나 오매불망 롯데만을 바라왔기 때문에 사회인야구를 거쳐 2008년 롯데에 지명받고 입단하게 된다. 그러나 프로에서 8년간 47경기에 등판하여 통산 1승만 거두고 은퇴. 참고로 고향도 쿄진 텃밭인 아키타현이라서 치바랑 전혀 상관없는 선수였는데도 롯데 입단을 강력하게 원했다(...) 다만 롯데라는 팀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선수 본인이 도쿄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이 매우 강했고 무조건 퍼시픽리그 팀으로 가고 싶어했기 때문에 도쿄에서 가장 가까운 퍼시픽리그 팀인 롯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130] 키요미야 코타로의 아버지도 와세다 대학 출신으로 모교 감독까지 역임했다.[131] 이래놓거 지명에선 떨어졌다. 그런데 키요미야를 포기하고 두번째로 지명한 무라카미 무네타카가 키요미야보다 훨씬 대박이 나면서 해피엔딩. 거기다가 무라카미도 3구단 경합이라서 여기서도 추첨을 해야 했었다.[132] 이 팀은 대어가 나오면 무조건 지명한다. 메이저 직행한다고 하든 대학을 간다고 하든 요미우리 아니면 안 된다고 하든...[133] 이 해 드래프트에서 요코하마 DeNA만이 아즈마 카츠키를 단독지명한 것이 유일한 단독지명이었다.[134] 사실 기요미야의 아버지가 제시한 조건을 100% 충족하는 곳이 닛폰햄이다.[135] 드래프트 2라운드의 시작리그는 당해 교류전성적이 우세한 리그에 우선권을 주는데 퍼시픽리그가 우위를 점해 롯데가 가장 먼저 지명을 하게 된 것이다.[136] 이 해 드래프트를 보면 오히려 1억 7천만엔이나 안긴 1차지명자가 제일 폭망했으며, 후쿠우라를 제외하고 가장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해 온 선수는 마츠이 카즈오였고 6라운드 지명자였던 오노 신고 또한 2013년까지 가늘고 길게 선수생활을 이어갔다.[137] 츠지우치의 경우 이 중 가장 선수 커리어가 비참하게 끝났다.[138] 비선출도 지원 가능하다. 이 좌표에 나온 일본인은 비선출로 보이는데 히로시마 도요 카프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입단 테스트에 참가했고, 요미우리의 테스트는 1차를 합격해서 2차 테스트까지 응시했다고 한다. 결과는 2차에서 광탈했지만.실제 비선출 일본인의 프로구단 입단 테스트 지원사례 [139] 영어가 아니라 한자 遠投. 즉 롱토스.[140]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입단 테스트에 참가했는데 53명의 참가자 중 홀로 합격하여 최하위픽으로(지배 4라운드)지명받았다.[141] 한국의 경우는 지명이 안 돼서 독립리그로 진출한 선수는 자유계약으로 영입할수 있다.[142] 사실 사회인도 고졸로 3년만 뛰고 바로 프로에 가는 선수와 고졸로 4년 이상 오래 뛰는 선수, 대졸로 사회인야구에서 뛰는 선수의 차이가 좀 난다. 그러나 독립리그는 어차피 주로 육성선수로 픽하다보니 대졸과 고졸의 차이가 적다.[143] 주로 기업팀에서 실업야구를 해 온 선수. 그러나 종종 클럽팀에서 야구를 한 선수도 있다. 단 한국의 사회인야구에 대응하는 쿠사야구(이쪽은 공도 연식공이지만) 출신은 일본에도 사실상 없다.[144] 고졸 자포자기 지명 소리를 듣는 2011년 요코하마, 스카우터가 코시엔에서 움직이지 않았냐(...)는 소리를 듣는 2019년 한신의 공통점은 KBO마냥 1명 빼고 다 고졸로 지명을 했다는 점이다.[145] 따라서 군 문제 때문에 나이가 많이 들어 서비스타임이 짧아져서 대졸을 한국이 기피한다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일본의 대졸사회인 선수는 한국의 대졸+상무 테크를 거친 선수랑 나이상으로 차이가 없기 때문. 물론 상무를 못 가고 현역, 공익으로 가는 선수도 있기에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상무나 예술체육요원이 아니면 일본과 달리 대졸 야구선수들은 큰 손해를 보는 게 맞다.[146] 이시카와 아유무 같은 케이스. 대졸+사회인이었는데 사회인 2년차 때 드래프트에서 미지명을 당해서 그 다음해에 입단했다.[147] 2016년 롯데 5라운드 지명자 아리요시 유키. 빠른년생이라 한국나이 28살에 프로에 입단했다.[148] 요즘은 야구선수들이 프로야구만큼 성공할 길이 없어서 이런 선수가 드물지만, 1980년대 초까지의 일본 경제의 전성기 시절에는 사회인야구 기업팀에 있다가 은퇴 후 모기업에서 근무하는 것을 포함하여 프로에 가지 않아도 진로가 상당히 많았기에 지명을 4번이나 거부한 선수도 있었다.[149] 한국 나이 30대에 프로에 입단한 선수로는 라쿠텐의 쿠사노 다이스케 등이 있다.[150] 당장 2020년에 열린 드래프트에서도 오릭스가 1992년생을 지명했다. 2021년에 입단하는 선수이니 한국 나이 30세로 프로에 진출한 것.[151] 9명 중 8명을 고졸로 뽑아놓고 이중 4명 빼고는 다 방출당했다. 심지어 4명 중 2명은 각각 트레이드와 방출로 팀을 떠났다가 뒤늦게 재입단한 케이스라 실제로 버틴 선수는 딱 둘. 그나마도 스타플레이어는 없다. 거기다가 1라운더는 1군 기록 없이 칼방출을 당한 후 독립리그에서 ERA 7점대를 찍었다.[152] 즉전감을 뽑겠다고 9명 전원을 대졸, 사회인, 독립리그 출신으로만 뽑았는데 5년만에 4명이 나가리. 심지어 1라운더는 3년만에 방출당했다(...)[153] 드래프트 지명자 6명 중 4명을 도호쿠 쪽 팀 선수로 지명했다. 그리고 7년 만에 모두 방출당하면서 빠르게 전멸했다.[154] 주니치보다 한술 더 떴다. 즉전감이 필요하다고 7명 중 6명을 대졸, 사회인 선수로 지명한 후에 '''3년 만에 5명을 방출시켰다.''' 이 5명은 전부 즉전감으로 뽑은 선수였으며 유일하게 뽑은 고졸 선수도 5년만에 방출당하면서 2020년 현재는 2라운더 카자하리 렌 만이 남았다가 그 카자하리도 2020년 방출당하면서 6년 만에 죄다 방출당했다.[155] 2019년까지 드래프트가 진행된 2020년 기준 마지막으로 지명된 10라운더는 2016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10라운드 지명을 받은 니시구치 나오토. 전체 역사로 따지면 1965년 드래프트에서 히로시마의 18라운드 지명을 받은 시모무라 에이지가 최하위 라운드 지명자이다.(이 선수는 결국 위장 오더로 3경기에 이름을 올린 것 외에 경기 출전 없이 은퇴했다.)[156] 山本祐大. 전체 82위 지명.[157] 닛폰햄은 12구단 중 육성선수를 가장 터부시하는 구단이다. 2019년에야 처음으로 육성선수 제도를 이용했다.[158] 전체 114위, 육성선수 32위 지명.[159]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다양하다. 기간이 너무 길다는 등의 이유 등을 대고 있지만 속내는 ' 요미우리와 시합이 줄어든다 → '''입장 수입금 및 (다른 경기보다 높은 중계권료를 받는 요미우리 전의) 중계권료 감소'''[160] 다른 리그보다 더 심하게 심판의 권위를 유난히 존중한다는 이유라는 오해가 있었지만 메이저 리그내셔널 풋볼 리그(NFL)에서는 비디오 판독을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특히 NFL은 럭비에 영향을 받아서 심판에게 감히 대든다는 상상도 할수가 없기 때문. 그리고 심판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당연히 하는데 그 실수를 바로 잡는 것이야말로 심판의 신뢰와 권위를 살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는 NPB 사무국과 방송사, 구단 등의 보수적인 자세와 비용이 가장 큰 이유였다.[161] 홋토모토 필드 고베, 키타큐슈 시민구장[162] 2003 시즌 종료 후 삿포로로 연고지를 이전하기 전까지 고라쿠엔 구장 시절부터(1964년) 요미우리와 홈구장을 40년 동안 같이 사용했다.[163] 이건 이유가 워낙 유명하다.[164] 칸사이 지역에도 요미우리 팬들은 꽤 있다. 요미우리의 교세라 돔 홈 경기 개최는 이러한 칸사이 지역 팬들을 위한 배려 비슷하게 행해지는 연례행사 같은 거다. 2020년 일본시리즈도 일정상 도쿄 돔을 쓰지 못해 교세라 돔 오사카를 임시 홈 구장으로 쓸 예정이다.[165] 당연히 경기는 호크스의 선공으로 치러졌으며 유니폼도 호크스가 원정 유니폼, 오릭스가 홈 유니폼을 입고 했다. 단 덕아웃은 양 팀이 하던대로 호크스가 1루, 오릭스가 3루 덕아웃을 사용했다. 이해하기 쉽게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KIA 타이거즈가 입장수입을 노리고 LG 트윈스와의 홈 경기를 잠실구장에서 개최하면서 선공은 LG가, 후공은 KIA가 하면서 덕아웃만 평소 쓰던대로 KIA가 3루 LG가 1루쪽을 쓰는 광경을 상상하면 된다.[166] 참고로 이 경기에선 소프트뱅크 선발투수였던 릭 구톰슨이 교류전 사상 처음으로 투수로서 장외홈런(...)을 기록하며 소프트뱅크가 6:2로 이겼다(7회 강우콜드).[167] 이건 지역보호권이라고 해서 명문화 되어 있다. 이 때문에 2022년 이후 닛폰햄이 신구장으로 떠나가는 삿포로 돔 관계자들이 야쿠르트 경기를 유치하는 것을 검토하려다 닛폰햄, 야쿠르트 팬들에게 뭐하는 짓이냐는 소리를 들었다. 실제로, 삿포로는 닛폰햄이 홋카이도로 오기 전까지 요미우리의 홈경기가 치러지기도 한 곳이라...[168] 오쿠다 히데오의 에세이집 '야구장 습격사건'에 여행기가 실려있다.[169] 닛폰햄 구단 측에선 이 경기로 시즌권도 판다.[170] 이승엽도 2011시즌이 끝나고 8시즌을 채우게 되어 이 자격을 얻을 수 있었으나 삼성으로 복귀했다. 다만 저 8시즌은 1군에서 특정 일수 이상 등록이 돼있어야 하는 것이라 이승엽이 그걸 다 채웠는지는 알 수 없다. 발렌틴도 2015년에는 몇 경기 못 나와서 9년만에 얻었다.[171] 사실 장훈 옹 이전에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일본프로야구 초창기의 대스타이자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통산 300승 투수였던 빅토르 스타르핀러시아 태생이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 혁명을 피해 일본으로 망명하여 일본에서 학창생활을 보내며 정착했다. 일본프로야구의 모태가 됐던 전일본군(全日本軍)의 일원으로도 활약했으니 무국적자이긴 하나 사실상 일본인이나 다름없었다 (러시아 혁명으로 소련이 들어섰으므로, 구 러시아 정부 소멸로 인한 무국적자가 됨). 다만, 이와 같은 사례가 정식 규정으로 생기게 된 계기는 장훈 옹이나 김일융 사례가 최초였다.[17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지명되어 줄곧 뛰다가 2015시즌을 끝으로 방출된 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이적.[173]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지명되었으나 1군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방출되었고 고양 원더스를 거쳐 한화 이글스에 입단 후 2017년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에서 뛰고 있다.[174]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지명[175] 2017년 일본에서 뛰었던 용병 선수 중 18년에 KBO와 계약을 맺은 선수는 지미 파레디스가 있다. 2018년 일본에서 뛰었던 용병 선수 중 19년에 KBO와 계약을 맺은 선수로는 조 윌랜드, 카를로스 페게로가 있다. 2019년 일본에서 뛰었던 용병 선수 중 20년에 KBO와 계약을 맺은 선수로는 데이비드 뷰캐넌이 있다. 21년에는 히로시마에서 뛰었던 피렐라가 삼성과 계약했다.[176] 즉 , 시즌 1위팀이 6차전까지 가서 이긴다면 최종 전적은 4승 3패가 되는 것이다.[177] 예외가 라쿠텐. 라쿠텐 역시 원래는 사설 응원단이었으나 몇 년 전부터 프로 응원단장인 진 토시오가 응원을 맡게 되고 기존의 홈 사설 응원단들이 해체되면서 센다이의 응원단은 구단에서 만든 응원단이 되었다. 단 라쿠텐도 홈구장 응원단이 구단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지 원정 응원단은 사설이긴 하다. 다만 진 토시오가 원정가서도 응원주도를 하는 걸 보면 커넥션은 돼 있는 듯.[178] 그래서 일본프로야구 응원단 대부분이 따로 생업이 있거나(이 경우 보통 일찍 퇴근하거나 프리랜서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간혹 한가한 대학생들도 껴 있는 듯하고.) 돈 많은 백수들이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 응원단에는 일본시리즈 시간과 근무시간이 겹치자 직장을 때려친 사람도 있다고 한다.)[179] 한국에서 응원단 활동을 했던 진 토시오가 도입했다.[180] 라쿠텐의 문화는 대만이랑 비슷하다. 대만은 홈은 앰프 원정은 트럼펫이다. [181] 단, 마츠다 줌줌 스타디움은 원정석을 3루 내야상단석으로 제공하는데 내야석 위에 스탠드를 설치해서 일부 혹은 전석을 원정 응원석으로 쓰는 방식. 특이 사례로 ZOZO 마린 스타디움 4층 내야석 1루 방향 끝쪽 구역은 내야석이지만 일어나서 하는 응원이 허용된다. 심지어 특별한 날에는 아예 내야 응원석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표를 판다.[182] 예시로 2019년 4월 2일 메트라이프 돔 세이부VS롯데 전. 이날 1루 외야 응원석은 100% 원정팀인 롯데 팬만 들어갈 수 있었다.[183] 단 이런 빡빡한 규정은 응원석에 한한 것이다. 홈 응원석이 아닌 일반 내야석이나 박스석 등의 경우는 원정팀 유니폼을 입어도 어그로를 끌거나 하지 않는 한 큰 문제는 없는 듯.[184] KBO 리그는 원정팬을 위해 일정 범위까지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다. 또한 응원석에 상대팀 유니폼을 입고 들어가는 것도 눈치는 보여도 아예 금지는 아니다. 그래서 가끔 시비가 붙기도 하지만(...)[185] 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응원석에 가면 서포터즈는커녕 팬클럽에 가입 안 한 사람조차도 그냥 다 응원 할 수 있다. 응원을 주도하고 북치고 트럼펫을 부는 건 다 서포터즈인 건 맞는다. 그러나 그들이 주도하는 응원에 동참하는 건 응원석 표를 구해서 응원석에 가기만 하면 된다.[186] 라쿠텐 홈 응원단은 기존 응원단들이 죄다 해체되는 바람에 구단 공식 응원단이라고 불러도 되는 수준이다. 나머지는 구단에 허가를 받은 사설 응원단이지 공식은 아니다. 한국처럼 프로 응원단을 하는 사람도 끽해야 롯데 응원단장이었던 진 토시오 한 명 외에는 유명한 사람이 없다. [187] 지역별로 찬스 테마가 다 다르다든가... 심지어는 1년에 한두 번 부를까 말까한 제3구장 전용 응원가도 있다![188] 반대로 견제구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는 야유조차 하지 않는데(롯데는 제외. 다만 여기도 잠깐 견제응원을 했지만 마지막으로 응원을 한 2019년 기준 견제응원 없이 그냥 야유만 한다. 그러고도 타 팀 팬들에게 종종 욕을 먹는 판.), 한국에서는 엄청난 야유와 함께 견제 응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