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무공(통일왕조)

 


'''진(秦)나라 6대 국군
무공
武公
'''
''''''
영(嬴)
''''''
조(趙)
''''''
실전
'''아버지'''
진헌공(秦憲公) 영립(嬴立)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678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697년 ~ 기원전 678년
1. 개요
2. 재위 기간에 일어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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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춘추시대 진(秦)나라의 제6대 군주. 진 헌공(秦憲公)의 아들. 진 출자, 진 덕공의 형. 무공은 출자가 죽임을 당한 뒤 그 뒤를 이었다.

2. 재위 기간에 일어난 일


무공 원년(기원전 697년), 군사를 휘몰아 서융의 한 씨족인 팽희씨(彭戲氏)를 물리치고자 화산(華山)의 평양봉궁(平陽封宮)에 머물렀다.
무공 3년(기원전 695년), 무공은 출자를 죽인 삼보(三父)를 잡아다가 그 삼족을 멸했다.
무공 10년(기원전 688년), 규(邽)와 기(冀) 지역의 융족(戎族)을 토벌했다. 그리고 무공은 거기에 현을 설치했다.
무공 11년(기원전 687년), 두(杜) 땅, 정(鄭)[1] 땅에 현을 두었고 소괵(小虢)을 멸했다.
무공 20년(기원전 678년), 무공이 죽어 옹읍(雍邑)의 평양에 매장되었다. 그리고 진나라에서 최초로 순장이 시행되었는데, 순장을 당한 인원이 66명이었다. 무공에도 영백(嬴白)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영백은 군위에 오르지는 못하고 그 대신 평양 땅의 제후로 봉해졌다. 그 대신 진나라의 군위는 동생인 덕공이 이어 받아서 무공의 뒤를 이었다.
[1] 정나라의 초기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