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10미터 앞
''사실은 반드시 가공이 필요해.
사람들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바라보니까."
1. 개요
안녕 요정의 등장인물이었던 다치아라이 마치가 기자가 되고 난 후의 이야기를 그린 베루프 시리즈의 첫 단편집으로 다섯 개의 단편과 추가로 수록된 단편 하나를 합해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2015년 12월 25일 도쿄소겐샤에서 간행되었으며 한국에서는 2018년 8월 29일 정식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기본적으로는 전작인 왕과 서커스에서 5년이 지난 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나 단편마다 시간대는 제각각이다. 게다가 등장하는 인물도 주인공인 다치아라이 마치를 제외하고는 단편마다 겹치는 인물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 특징. 그러나 공통적으로 '''기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안녕 요정의 후일담도 나오기 때문에 기존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부제는 '''How Many Miles to the Truth.''' 진실로 도달하기까지의 거리라는 뜻으로, 본 단편 전체를 아우르는 타이틀이기도 하다.
2. 수록 단편 소개
2.1. 진실의 10미터 앞
<미스테리-즈!> vol.72 (2015년 8월) 수록. 고령자들을 위한 이동판매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었던 신흥기업 '''퓨처 스테어'''가 파산에 이르렀다. 사장인 이치다는 책임을 떠안았지만 일각에서는 사기꾼 취급을 받고, 기업의 홍보담당자이자 그의 여동생인 마리 또한 타격을 받는다. 이전에 마리를 취재했던 다치아라이 마치는 마리가 전화 한 통을 남기고 모습을 감췄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마리의 여동생의 전화 기록을 토대로 그녀를 찾는다. 녹음된 내용을 기반으로 추리를 한 끝에 마리가 어디 있는 지를 알아낸 그녀는 직접 그곳으로 향하고, 이윽고 10미터 남짓한 거리를 두고 진실에 다가서게 된다.
다치아라이 마치가 프리랜서가 되기 이전, 아직 신문기자로 활동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 시간대는 왕과 서커스의 조금 전으로, 본래는 장편소설의 제1장으로 쓰일 예정이었으나 완성 이후 살펴보니 하나의 완전한 구성을 띠고 있어서 잘라냈다고 작가가 밝혔다. 저널리즘에 관한 해답을 찾지 못한 듯한 다치아라이의 사고가 그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후일담에서 작가가 말하길, 가장 우여곡절을 겪은 단편이라고.
2.2. 정의로운 사나이
역에서 발생한 투신 사망 사고로 인해 열차 운행이 전면 중단된다. 호기심에 사고 현장에 얼굴을 들이미는 사람들과 예정이 늦어졌다고 알리는 전화 소리로 혼잡한 와중에 젊은 르포라이터가 현장에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시체에 다가가 취재를 시작하는데...
<유리이카>2007년 4월호 수록. 작가가 다치아라이 마치를 주인공으로 쓴 첫 작품으로, 때문에 베루프 시리즈의 실질적인 첫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안녕 요정의 등장인물 중 한 명[1] 이 본 단편에 등장하며, 그녀를 옛날 별명인 '센도'로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잡지판 제목은 '실례, 보기 흉한 모습을'(「失礼、お見苦しいところを」)이었다가 바뀌었으며, 내용에도 상당 수준 개고가 있었다. 후반부 묘사가 3인칭 시점에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뀌면서 모리야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게 되었고, 다치아라이와 모리야가 알고 지냈다는 세월이 줄어들거나 둘의 관계가 보다 건조하고 업무와 관련된 것으로 바뀌는 등의 변화가 눈에 띈다.
2.3. 고이가사네 정사
<미스테리-즈!> vol.26 (2007년 12월) 수록. 미에 현에서 일어난 고등학생 남녀의 심중사건.[2] 두 사람이 사망한 곳의 이름을 따서, 이 사건은 '고이가사네 정사'로 불리게 된다.[3] 자살 건을 맡게 된 기자 쓰루 마사타케는 그의 현지 취재 코디네이터를 맡은 다치아라이 마치를 따라 죽은 학생들의 담당 교사를 인터뷰하고 그들이 자살을 생각하게 된 동기를 유추해 본다. 그리고 그들이 죽기 직전 노트에 남긴 살려달라는 말과 함께 독을 입수한 경로를 토대로 그녀는 뜻밖의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로 위의 정의로운 사나이와 마찬가지로 단행본에서 꽤나 개고되었다. 잡지판에서는 서술자인 쓰루 마사타케가 다치아라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거는 묘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두 사람이 같이 술을 마시는 과정에서 다치아라이가 결혼 후 이혼했다는 것이 반지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나며, 그 상대는 안녕 요정의 주인공 모리야 미치유키라는 단서가 잡지판 '실례,보기 흉한 모습을'과 이 단편에서 주어진다. 하지만 단행본에서는 반지 부분이 삭제되고 츠루와의 관계도 순전히 사무적인 것으로 바뀌었으며 모리야와의 관계에 대한 묘사도 드러나지 않는다. 요네자와 작가가 '안녕 요정'의 후일담으로서의 작품과 기자 다치아라이 마치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선을 긋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개고했다고 한다.
2.4. 이름을 새기는 죽음
<미스테리-즈!> vol.47 (2011년 6월) 수록. 이웃집 노인의 죽음을 목격한 중학생 '''히노하라 쿄스케'''는 기자들에게 끈질긴 취재를 당함과 동시에 모르는 사람에게서 죽음을 방치했다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온갖 괴로움을 겪는다. 사태가 어느 정도 일단락된 후 그의 앞에 나타난 인물은 프리랜서인 다치아라이 마치. 그녀는 노인의 일기에 쓰여 있던 '''이름을 남기는 죽음'''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어보고 노인의 죽음에 대해 질문한다. 그의 죽음에 죄책감을 갖고 있던 쿄스케는 잘 모르겠다고 얘기하면서도, 그녀가 죽은 노인의 아들을 취재할 거라는 얘기를 듣고 자신도 같이 갈 수 있겠냐고 묻는다. 인터뷰 내용, 생전 노인이 투고했던 신문 사설과 그가 죽기 전 취한 행동을 토대로 '''이름을 남기는 죽음'''이 무슨 뜻인지 그들은 이윽고 깨닫게 된다.
무뚝뚝하게만 보였던 다치아라이 마치의 다정함을 엿볼 수 있는 점이 특징. 자기 때문에 노인이 쓸쓸하게 죽은 거라고 마지막까지 죄책감을 가지는 쿄스케를 안타깝게 여기고 충고해주는 그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2.5. 나이프를 잃은 추억속에
8월 7일. 이탈리아 기업에서 근무하는 비즈니스맨 슬로보단 요바노비치는 약속된 장소에서 다치아라이 마치와 만난다. 옛날 자신의 여동생과 친분이 있었던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찾아온 그는, 왜 여동생이 유독 그녀를 칭찬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되어 관광을 포기하고 그녀의 직업 현장을 동행하기로 결심한다. 이윽고 찾아간 곳은 살인 현장. 미성년자가 3살 짜리 조카를 무참히 살해한 참혹한 사건의 현장이었다.
현장을 탐색하는 그녀에게 요바노비치는, 옛날 자신들의 국제적 상황을 왜곡했던 기자들을 떠올리면서 저널리즘에 대해 묻고, 그녀는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얘기한다. 진실이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 기대하고 절망했던 경험이 있던 그는 그녀 또한 일개 기자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에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실망이 커지던 찰나에 그녀는 살인사건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얘기하고, 그는 그제야 여동생이 그토록 그녀를 칭찬했던 이유를 깨닫게 된다.
안녕 요정의 후일담. 후일담이라고 해도 안녕 요정과 본 단편의 시간 차이는 15년이나 된다. 그나마 전작과 관련된 내용으로, 오빠 슬로보단의 회상으로부터 생전에 마야가 일본인 친구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왕과 서커스에서 저널리즘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던 모습과 달리, 여기서는 자신의 해답을 멋지게 보여주고 있는 점이 특징으로, 기자로서의 다치아라이 마치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유실히 보여준다.
여담으로 이 작품은 불가능 범죄가 계속 일어나는 가마쿠라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일본의 여러 미스테리 작가들이 집필한 단편집인 '거리에서 수수께끼가 기다리고 있지만(街角で謎が待っている がまくら市事件)'에 먼저 수록되었다.
2.6. 줄타기의 성공 사례
태풍 12호가 나가노 현 남부를 강타하고 그에 따른 피해도 점차 커져만 갔다. 실종된 이들의 사망이 거의 확실시 되어가는 와중에 유일하게 생존이 확인된 '도나미 부부'. 더 이상의 비극을 맛보고 싶지 않았던 전국의 사람들이 부부가 구조되기를 절실히 바라고, 며칠 뒤 구조대원들의 노력 끝에 가까스로 도나미 부부가 구조된다. 구조대원 중 한 명이었던 오오바는 자신이 판매하던 콘푸레이크로 인해 도나미 부부가 버틸 수 있었음을 뉴스로 전해 듣고 내심 기뻐하던 와중, 대학 선배였던 다치아라이 마치를 만나게 된다. 도나미 부부에게 물을 것이 있어서 왔다는 그녀는 부부에게 콘프레이크에 관해 묻고, 당황한 부부의 입에서 구조되기 전까지 그들이 어떻게 버텨냈는지 그 전말이 드러나게 된다.
단편집이 만들어지면서 추가된 미수록 단편. 주목할 점은 단편집의 첫 작품인 '진실의 10미터 앞'과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등장인물이 노인 분들을 위한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 대표적인 예. 때문에 이 단편을 '진실의 10미터 앞'과 대칭되는 이야기로 보기도 하며, 마지막에 그녀가 가고 싶은 장소가 어디일지 이를 기반으로 추측하기도 한다.[스포일러]
[1] 정황상 안녕 요정의 주인공이었던 모리야 미치유키로 보인다.[2] 일본에서 심중(心中)이라는 단어는 마음 깊은 곳이라는 의미와 함께 '''남녀가 합의 하에 동반자살을 하거나 청탁살인을 함'''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3] 일본어로 '고이'는 사랑이나 연심, '가사네'는 이어지다, 포개지다라는 뜻이 있어 지명과 사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스포일러] 진실의 10미터 앞과 외줄타기의 성공률의 결정적인 차이는 희극과 비극의 차이에 있다. 진실을 쫓는 과정에서 전자는 결국 마리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으나, 후자에서는 콘푸레이크에 관한 토나미 부부의 진실을 기사로 작성하면서 부부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는 데에 성공했다. 다치아라이는 '''자신의 일이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아서 성공률은 언제나 절반'''이라고 얘기하고 있으니, 전자는 외줄타기에 실패한 셈이고 후자는 성공한 셈. 때문에 마지막에 그녀가 '가고 싶은 장소가 있다'고 한 것은 어쩌면 마리가 자살한(외줄타기에 실패했던) 장소로 자신의 실패를 되돌아보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