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1 Het Meisje me de Parel
The Girl with a Pearl Earring
1. 미술 작품
1.1. 특징
1.2. 기타
2. 소설
3. 영화


1. 미술 작품


[image]
작가
요하네스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연도
1665년 경
매체
캔버스에 유화
크기
39 x 44.5 cm
소장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그림은 여전히 강력한 신비를 내뿜고 있다. 소녀의 표정에 사로잡혀 소설을 썼지만, 나는 아직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결코 알지 못하기를 바란다.'''
-트레이시 슈발리에, <진주 귀고리 소녀> 소설 작가.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1] 의 걸작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작품으로, 유일하게 인물의 얼굴만을 클로즈 업 한 그림이다. 윤곽선 없이 부드러운 색조 변화로 리모델링한 이 작품은 마치 레오나드로 다 빈치가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려낸 모나리자와 닮았다고 하여 "네덜란드의 모나리자", "북구의 모나리자"라고 불린다. 출처 및 참고 - Nuffic Neso Korea
페르메이르 특유의 미묘한 빛의 표현, 단순하지만 조화로운 구성, 선명한 색채가 특징이다. 빛의 효과를 사용하여 두 번 이상의 붓터치로 그려진 진주는 왼쪽 윗부분이 밝게 빛나고 있으며, 아랫 부분은 하얀 옷깃을 반사하여 부드럽게 비추면서 맑고 투명한 느낌을 준다.
그림에서 머리에 터번을 두른 진주 귀고리의 소녀는 누군가를 보기 위해서 왼쪽 어깨를 틀어 고개를 돌리고 있다. 큰 눈동자와 관능적인 입술, 특유의 시선과 표정이 보는 사람에게 비밀스러움이 어우러진 신비감을 주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

1.1. 특징


작품 내외로 신비로운 그림. 이 그림엔 오직 "IVMeer"라는 서명만 있을 뿐, 년도가 기입되어 있지 않다. 작품이 의뢰에 의해 그려진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으며 만일 의뢰받은 그림이라면 누가 의뢰했는지도, 작품의 대상이 되는 소녀가 누구인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 사실 이런 그림은 트로니(Tronie)라고 해서 두상을 부각시켜 그린 바로크 시대의 초상화를 일컫는데, 이 그림도 트로니의 일종이다. 당대에는 이런 트로니가 많이 제작되었고, 주로 화가들이 연습 삼아 상상의 인물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그림도 이 중 하나다. 그러나 후술할 특징으로 인하여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다.
화가의 다른 작품과 온전히 구별되는 특징은 작품 내의 등장인물이 화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페르메이르의 다른 작품들은 그림 속에서 각자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화가 쪽으로 일절 시선을 주지 않는 반면 이 작품은 특별한 행동도 하지 않고 화가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을 뿐이다.[2] 또한 배경과 각 소품의 세밀한 묘사 역시 페르메이르 작품의 특징인데, 이 작품은 반대로 배경을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놓았다. 이러한 다른 작품과 구분되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만의 특징들 때문에, 작품 속의 소녀는 화가가 연정을 품은 여인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허름한 복장의 소녀가 값비싼 진주 귀고리를 차고 있다는 점도 상상을 자극한다. <진주 귀고리 소녀> 소설 작가인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이러한 상상에서 출발해, 이 소녀는 어떻게 해서 페르메이르의 모델이 되었는가를 생각했다고 한다.
미술사적인 의미를 가지고있는 작품인데, 당시 왕정의 입김이 강하던 중세, 다시말해 정해진 그림만이(종교위주) 허락됐던 시대에서 왕정이 쇠퇴하고 귀족들이 예술가들을 후원하게된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특징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예술가들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당시나 현재나 엄청난 가격을 호가하던 울트라마린으로 채색된것이 바로 이 작품인 것이다.[3]

1.2. 기타


작가 베르메르의 삶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거장이라고 하나 이는 사후 19세기 중반 즈음에야 인정받게 된 것이고, 당시엔 그다지 유명한 화가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평생을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델프트의 베르메르'라고 불리기도 한다.
2020년에는 현미경을 사용해 원본 작품을 촬영한 뒤 9100장의 사진을 연결하여 100억 화소짜리 사진을 만들었다.직접 보기

2. 소설


미국의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본 작품을 주제로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소설을 1999년 출간했다. 베르메르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고, 그림의 모델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어 상상의 나래를 펴기에는 오히려 유리했다고 한다.
소설의 설정상 그림의 모델은 베르메르의 하녀로 일한 '그리트'라는 이름[4]의 소녀이다.
델프트 출신의 소녀 그리트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하나씩 있는 맏이인데, 타일 제조 기술자로 일하던 아버지가 사고로 시력을 잃으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 화가 베르메르는 작업실을 청소할 하녀를 구하고 있었는데, 작업실 안의 모든 물건(특히 모델이 앉았던 자리, 그림의 배경 등 그림과 직결되는 요소들)을 청소 전과 똑같은 자리에 놓을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그리트는 시각 장애인이 된 아버지를 위해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놓으며 청소하는 습관이 있었으며, 미술 교육은 받은 적 없지만 색채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어 베르메르의 마음에 들어서 하녀로 채용된다.[5]
그러나 하녀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베르메르의 아내 카타리나와, 원래 있던 다른 하녀 타네커[6]는 그리트를 견제하고 탐탁찮게 여긴다. 베르메르의 딸들 중 하나인 코넬리아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리트와 충돌했으며, 이후 온갖 교활한 술수를 써서 그리트를 괴롭히고 주인에 밉보이게 하려 애쓴다.[7] 게다가 그리트의 여동생은 병으로 죽고 남동생은 집을 나가는 등[8] 갖은 어려움이 닥친다. 게다가 베르메르의 후원자 중 한 명인 반 라위번은 수시로 그리트를 성추행하는데, 그리트는 그의 심기를 상하게 할까 봐 저항하지 못한다. 그나마 그리트를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은 카타리나의 어머니 마리아와, 베르메르 부부의 장녀 매지, 그리고 베르메르의 친구인 반 레이원후크[9] 정도뿐이다.
이 와중에 그리트와 베르메르는 서로를 향해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10] 베르메르 집안과 거래하는 푸줏간의 아들 페터는 그리트를 짝사랑한다.
어느 날 베르메르는 그리트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한다. 그리트는 추문이 돌까 봐 두려웠지만 거절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 몰래 모델을 선다.[11] 모델을 세우는 동안에도 베르메르는 그리트에게 입술을 적시고 입을 벌리라든지, 그리트의 얼굴 선이 잘 보이지 않으니 모자를 벗으라든지 하는 요구를 한다.[12] 결국 그리트는 모자를 벗는 대신 머리에 천을 둘러 머리카락을 가리기로 했는데, 이 때도 수수한 갈색 천을 두르자 베르메르는 화사한 노란색과 파란색을 쓰라고 요구한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리트는 집안 사람들, 특히 카타리나가 자신이 모델을 서는 것을 알까 봐 초조한 나날을 보낸다. 베르메르 또한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듯 이 사실을 숨기려 한다.
급기야 베르메르는 그림의 구성을 완성하기 위해 그리트에게 카타리나의 진주 귀고리를 착용할 것을 지시한다. 그리트는 거부해 보았지만 결국 주인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마리아의 도움으로 귀고리를 착용하고 모델을 서서 그림을 완성한다. 그런데 그림이 완성된 직후 카타리나에게 발각되고, 질투심이 폭발한 카타리나는 그리트가 자기 귀고리를 훔친 게 틀림없다고 몰아세운다. 또한 남편이 자신을 그린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언급하며, 예술에 집착하느라 자신을 보지 않는 남편을 원망한다. 베르메르는 카타리나와 아이들은 자신의 예술 세계와 무관한 대상이라는 냉랭한 대답을 하고, 도둑 누명을 쓴 그리트를 위한 변호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리트는 소동 중에 베르메르의 집을 뛰쳐나온다.
10년 뒤, 그리트는 자신을 짝사랑하던 푸줏간집 아들 페터와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아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13] 그동안 그리트는 베르메르와 마주치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했고, 베르메르 집안도 그리트가 페터와 결혼하자마자 거래하는 푸줏간을 바꿔 버렸으며, 가끔 매지가 찾아와 소식을 전해 주긴 했지만 매지도 결혼을 한 이후 자주는 오지 않게 됐다. 그리트는 한동안 베르메르를 떠올리며 힘들어했지만, 결국 그가 자신보다 자신을 그린 그림을 더 사랑했다는 것을 납득했으며, 아이가 태어난 이후 더 이상 그를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됐다. 그렇게 살다가 베르메르가 큰 빚을 진 채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베르메르의 사망 소식을 듣고 두 달 뒤 타네커가 찾아와, 마님이 그리트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전한다. 그리트는 그게 큰마님 마리아를 말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가 보았더니 그리트를 찾은 사람은 작은마님 카타리나였다. 베르메르의 집안은 그가 큰 빚을 남기고 죽은 바람에 가세가 크게 기울었지만, 카타리나는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는 듯 좋은 옷을 입고 단장을 하고 있었으며, 베르메르의 친구였던 반 레이원후크도 유언 집행인의 자격으로 동석해 있었다.
그리트는 카타리나가 자신을 부른 이유가 페터네 푸줏간에 진 15길더의 빚을 청산하려고 돈이나 그림을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으나, 카타리나는 남편이 죽기 전날 그리트의 그림을 찾았고 그 때 걸었던 귀고리를 그리트에게 주라고 유언했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트는 잠시 망설이다 귀고리를 받아 나오면서 카타리나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낀다. 귀고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을 못 정하던 그리트는 골목의 전당포에 귀고리를 팔아 20길더를 받아 나오면서, 15길더는 페터에게 주고 남은 돈은 자신만 아는 곳에 숨길 것이며 자신은 드디어 자유를 얻은 것이라고 독백하며 진정으로 해방된 기분을 느낀다.[14]

3. 영화



'''제76회 아카데미 시상식 미술상, 촬영상, 의상상 후보작'''
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이며, 2003년에 개봉했다. 영화 제목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살짝 바뀌어 출시되었다. 귀걸이귀고리는 둘다 표준어가 맞지만, 번역을 하면서 위의 작품이 어떻게 표기되는지 확인을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다.
피터 웨버 감독이 제작하였고, 콜린 퍼스(베르메르)와 스칼렛 요한슨(그리트), 킬리언 머피(페터)가 출연했다.
잔잔하지만 색감이 굉장히 아름답고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섬세한 영화 음악이 영상과 매우 잘 어울린다. 하지만 책을 보고 난 사람들 사이에선 다소 아쉽다는 평가가 있다.
다음 영화 정보

4.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의 출연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복면가왕) 문서 참조.

[1] 실제 발음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에 가깝다.[2] 물론 이 작품 외에도 화가 쪽으로 시선을 주는 작품이 몇 점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러한 작품은 드물고, 시선의 묘사 또한 본 작품과는 많이 다르게 느껴진다.[3] 광물이 원료인 울트라마린 특성상 내광성이 높아 변색이 안 되어야 하는데, 두건의 푸른 색이 연한 푸른색이 된 것은 울트라마린 물감이 너무 비싸다 보니 흰색을 섞어 썼거나 섞은 물감의 성분이 변색해서일 것이다. 순수하게 청금석을 갈아 만든 울트라마린은 천 년, 만 년이 지나도 색이 변하지 않는다.[4] 여성 인명 '마르가리타'의 네덜란드식 애칭이다. 그리고 마르가리타는 진주라는 의미. 저자가 노리고 지은 이름일지도?[5] 그리트는 미술에 대한 감각을 타고난 것 같다. 이후 베르메르의 그림을 가족들에게 묘사할 때 그 색채에 대해 대단히 풍부하고 감각적인 표현을 구사하고, 나중에는 베르메르에게 작품의 화면 구성에 대한 조언까지 한다(모델이 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니 배경을 약간 흩뜨려서 동적 요소를 추가해 보라는 것). 베르메르는 하녀에게 한 수 배울 줄 몰랐다면서도 그 조언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카메라 옵스큐라' 장치를 그리트에게 보여주기까지 한다.[6] 베르메르의 또 다른 작품 중 하나인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모델이라는 설정이다.[7] 그리트가 남동생에게 선물받아 아끼던 물건을 부수고, 자기 할머니의 물건을 훔쳐 그리트의 소지품 사이에 넣어서 도둑 누명을 씌우려 들고, 그리트의 여동생이 죽었을 때 내가 더 이상 갖고 놀지 않는 인형이 있으니 동생에게 주라고 말하는 등. 정말 갖은 수를 써서 그리트를 정신적으로 몹시 괴롭힌다.[8] 코넬리아가 부순 그리트의 물건은 남동생이 만든, 그리트와 자신이 손을 잡은 모습이 그려진 타일이었다. 그런데 이 타일을 반으로 부숴서 남동생과 그리트가 갈라지게 됐고 그리트는 굉장히 속상해했는데, 나중에 동생이 가출했다는 것을 안 그리트는 코델리아가 부순 타일을 떠올리며 더욱 슬퍼한다. 이 남동생의 소식은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었고,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들을 둘 낳게 된 그리트는 한 아들에게 남동생의 이름을 붙인다.[9] 현미경을 발명한 것으로 유명한 그 인물이다. (옛날에는 '레벤후크'로, 요즘은 네덜란드어 원어 발음을 살려 '레이원후크' 또는 '레이우엔훅'으로 통칭된다) 그리트에게 '베르메르는 오직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작품들을 생각할 뿐 너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그림 속 여자들(=그림의 모델들)을 자기의 세계에 가둬 놓고 있으며 너도 그 속에서 길을 잃을 수 있다. 너 자신으로 남아 있도록 하라'는 지혜로운 조언을 해 주었다.[10] 작중 묘사는 연정인 듯 아닌 듯 모호하다. 정확히는, 그리트는 정말로 베르메르를 사랑했을 수도 있는데 베르메르는 그리트를 사랑했다고 보기에는 그를 너무 함부로 대한다. 베르메르 쪽에서도 어떤 의미로든 마음이 끌린 것은 맞으나 그리트의 처지를 조금도 배려해 주지 않는 것이다. 그리트를 모델로 그림을 그릴 때도, 작품의 구성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사회 통념상 그리트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들을 계속 하고 급기야는 카타리나의 진주 귀고리를 착용하라는 명령까지 내린다. 이는 자칫하면 그리트가 도둑으로 몰릴 수도 있는 정말 무리한 부탁. 그런데 그리트는 이틀치 봉급을 털어 정향유를 사서 귀를 뚫고 큰마님 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가며 귀고리를 가져다 착용할 정도로 베르메르의 요구들을 너무나 충실하게 따르며, 베르메르가 그림에 나오지 않는 오른쪽 귀에도 귀고리를 하라고 명령하자 "주인님이 달아주셨으면 한다"고 일종의 도발로도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을 한다. 후일 그리트는 '그는 항상 나보다 나를 그린 그림에 더 많은 애정을 기울였다'고 평한다. 정황상 그리트는 베르메르를 맹목적으로 사랑했고, 베르메르는 그리트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이상화한 뮤즈로서의 그리트를 동경한 듯하다.[11] 작중에서 '어느 집 하녀가 화가의 모델이 됐다가 임신을 했다더라' 하는 둥의 추문을 수군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하녀가 주인의 모델이 된다는 것 자체가 추문의 여지가 있는 일이었던 모양. 나중에도 그리트는 페터가 자신이 베르메르의 모델을 섰다는 걸 알까 봐 마음을 졸인다.[12] 이게 뭐가 무리한 요구인가 싶겠지만, 당시에는 여성이 외간 남자에게 머리카락을 보이는 건 순결을 잃은 것처럼 간주되어 몹시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고(그래서 그리트는 머리카락을 가리는 데 거의 강박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림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여성도 정숙하지 못하다고 여겨졌다.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이 현대보다 더욱 심한 시대였음을 기억하자.[13] 큰아들의 이름은 얀, 작은아들의 이름은 프란스이다. 얀은 베르메르의 이름이고(요하네스의 애칭) 프란스는 집을 나가 생이별한 남동생의 이름이다.[14] 남는 5길더를 결코 쓰지 못할 것이니 몰래 숨겨 두겠다는 구절 때문에, 과거에 대한 미련에 아직도 얽매여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리트의 심리 묘사를 보면 그쪽은 아니다. 일단 돈을 쓸 수 없는 이유는 당시의 5길더는 적은 돈이 아닌데 그 큰 돈의 출처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며(설명하려면 베르메르의 모델을 섰던 것부터 전부 다 털어놓아야 한다), 그 돈과 맞바꾼 귀고리에는 카타리나와 죽은 베르메르에 대한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들이 맺혀 있기 때문이지, 미련에 매여서는 아니다. 어차피 못 쓸 돈이고, 거기에 과거의 기억도 담겨 있으니, 자신만 아는 곳에 묻어 둠으로써 과거를 뒤로 하고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로 보면 적합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