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꼬이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작위'''
준덕후(俊德侯)[1], 충국공(忠國公)[2]
''''''
찐(Trịnh, 鄭/정)
''''''
꼬이(Cối, 檜/회)
'''생몰년도'''
????년 ~ 1584년
'''재위기간'''
1570년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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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트남 남북국시대 찐씨 정권의 제2대 국왕. 묘호, 시호는 없으며, 휘는 정회(鄭檜). 정검의 장남이다.

2. 생애


세조 정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570년, 정검이 죽자 장남 정회에게 왕위를 넘겨준다는 유명(遺命)에 따라서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무능하고 주색만 일삼아 동생 정송과 대립하였다.
같은 해 8월, 동생 정송이 반란을 일으킨 동시에 막 왕조가 정검이 죽은걸 알고서 막 왕조의 황족 막경전(莫敬典)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정회는 막경전에게 패배하여 막 왕조로 영토로 끌려갔고, 그 곳에서 충양후(忠良後), 충군공(忠郡公)에 봉해졌다.
1584년, 정회는 막 왕조의 땅에서 사망하였다. 막조는 그의 시신을 후여조로 반환했고 동생 정송이 형의 시신을 안정군(安定軍)의 안산(安山) 오른쪽에 안장한 후, 주군인 여세종에게 그의 죄를 사면할 것을 청했으며 세종은 정회를 달의공(達義公)에 추증하였다.
[1] 찐씨 정권, 즉위 전 작위.[2] 막 왕조 작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