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릉(개풍)

 

昌陵
개성특별시 남포리 예성강의 하구에 있는 영안성에 있는 태조 왕건의 부모 '''세조 왕륭'''과 '''위숙왕후 한씨'''의 무덤이다.세조 왕륭은 897년(진성여왕 11년) 음력 5월에 금성군에서 죽었는데, 영안성 강변에 있는 석굴에 장사지냈다. 부인 한씨도 후에 합장하였으며, 훗날 '''창릉'''(昌陵)의 능호를 올렸다.
1217년(고종 4년) 음력 3월 세조의 재궁을 임시로 봉은사로 옮겼다가 1276년(충렬왕 2년) 음력 9월 다시 창릉으로 이장하였다. 한편 1365년(공민왕 14년) 음력 3월에는 왜구들이 창릉에 들어가 세조의 어진을 탈취하였으며, 열흘 뒤에 영도첨의 이공수를 시켜 위패를 새로 봉안하게 하였다. 이어서 1392년(공양왕 4년) 음력 3월에는 창릉을 수리하였다. 창릉에는 능의 수비를 위해 산직장상 2명을 두었다.
북한의 보존급유적 제554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창릉이 있던 곳의 옛 지명은 창릉리, 창릉포였다. 또 이곳에서 북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벽란도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