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영

 

1. 개요
2. 작가가 된 배경
3. 작품목록
3.1. 장편소설
3.2. 소설집
4. 수상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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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1년 서울특별시에서 출생했으며,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바늘>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천운영은 2000년대 초 등단시절부터 이미 많은 평론가들 입에 오르내렸을 정도로 여성 미학의 선구자라는 평을 받는다. 신체 한 쪽이 불편한 여인들을 앞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이어가거나, 원초적인 감성, 폭력성에 대비 같은 서사를 보여줌으로서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등 신선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단문을 주로 사용해 문체가 간결함에도 불구하고 묘사가 퍽 그로테스크한 탓에 천운영 특유의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를 잘 나타낸 작품이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2. 작가가 된 배경


한양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천운영의 자취방엔 친구들이 저녁마다 들러서 국수를 말아먹었다고 한다. 천운영의 할머니는 '애들 교육은 못 시켜도 이웃에 떡은 돌렸을 정도'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천운영은 그런 할머니의 성격을 물려받아 사람들에게 음식 해 주고, 이것저것 챙겨 주는 것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고. 그래서 천운영은 현재 마포구에 스페인 식당까지 개업하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 탓에, 천운영은 처음엔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신방과에 진학) 그러나 기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뚜렷한 사회 문제 인식'이 아니라 토익이나 토플 따위였기에, 천운영은 학교 수업에 집중하기 보단 맨 뒷자리에 앉아 있다 출석만 부르고 도망가곤 했다. 단, 이것은 천운영이 학교 교육에 반항했다기 보다는 노태우 정부에 반항했다가 더 맞을 것이다. 바야흐로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 군이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고 사망하던 참사가 있던 시절이었다. 천운영은 수업을 듣기보단, 손목에 청 테이프를 차고, 옆구리엔 대자보를 끼고 다녔다.
한양대학교 4학년 때, 천운영은 평론수업을 듣게 됐고, 그 수업에선 김영삼 정부의 금융실명제 실시에 평론을 써 오라는 과제가 있었다. 그때 천운영은 평론을 논설문의 형식이 아니라 현실을 빗댄 이야기를 써서 제출했는데, 교수가 천운영의 평론을 재미있게 읽고 차라리 소설을 써 보라고 한마디 권유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한마디가 천운영의 머리를 뜨겁게 했다. 천운영은 이 한마디에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처음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결국 천운영은 한양대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수학했다.[1] 천운영은 서울예대 수업시간에 모르는 작가의 이름이 나오면 몰라도 아는 척하며 메모했다가, 저녁에 서점에 들러 그 작가의 책을 모조리 읽어 버렸다고. 서울예대 재학 시절, 천운영은 생애 최초로 '쥐덫'이라는 단편소설을 썼는데, 당시 그 글을 읽은 학교 친구으로부터 이미 김소진이란 작가가 비슷한 설정과 제목으로 '쥐잡기'라는 글을 썼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고 한다. 천운영은 쥐잡기를 읽고 선점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진짜 작가가 쓴 소설과 자기 글이 이 정도로 차이가 나는구나 생각했다고. 그러면서도 더 많은 책을 읽어야겠다고 반성했다고 한다.[2]

3. 작품목록



3.1. 장편소설


  • 잘 가라, 서커스 (2005)
  • 생강 (2011)

3.2. 소설집


  • 바늘 (2001)
  • 명랑 (2004)
  • 그녀의 눈물 사용법 (2008)
  • 엄마도 아시다시피 (2013)

4. 수상목록


  • 2003년 신동엽 창작상
  • 2004년 올해의 예술상

[1] 편혜영이 자신이 나온 서울예대를 추천했다.[2] 천운영은 김소진 10주기 때, 여러 작가들과 직접 고인의 무덤에 찾아가, 무덤 앞에서 김소진의 등단작인 '쥐잡기'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