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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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예술대학교, SEOUL INSTITUTE OF THE ARTS''''''융합창작의 메카'''
'''예술의 서울''', '''서울예술대학교'''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 138(예장동 8-19)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예술대학로 171(고잔동 640)에 소재한 3+1년제 예술계 사립 전문대학.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셀 수 없이 많은 예술인을 배출한 명문 예술사학이다. 2022년 '''창학 60주년'''을 맞이하며, 약칭으론 '''서울예대''', '''서울예전'''[9] 이 있다.
2. 소개
'''1962년 동랑 유치진 선생[10] 이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인 드라마센터'''와 그 부설 연극아카데미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반세기를 이어온 대한민국 굴지의 예술메카이자 한국 종합예술의 산실이다. 대한민국 건국과 더불어 불어닥친 정신문화의 빈곤을 타개하고 우리예술의 맥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인들을 널리 배출해 왔다. ‘우리민족 예술혼과 전통의 세계화’라는 창학이념을 바탕으로 글로벌 예술인재 양성을 위하여 현장중심의 예술창작 교육을 실현해 왔으며, 한류(K-Wave)의 산실로 성장해 왔다.
2008년부터는 ‘전문학사과정(3년제)’과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1년제)’이라는 이원(3+1 체제) 학위 프로그램을 완비하고, 유럽의 도제식 실기 교육인 컨서버토리(Conservatory)와 미국의 실 용주의에 입각한 이론과 현장 중심 교육인 스쿨(School)시스템의 장점을 살려 우리만의 특성화 된 인스티튜트(Institute) 체계의 전문 예술 창작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서울예술대학교는 계열간, 장르간, 전공간 연계⋅순환⋅통합으로 예술 창작의 계열은 넓히고 전공은 심화하는 융합교육을 실시한다. 그리고 예술창작기초학부를 따로 두어 예술이론을 포함 한 인문학, 교양, 교직 등의 교과과정을 통해 서울예대인의 예술창작 기초소양을 교육한다.
'''전문학사학위(Associate Degree In Arts)'''는 공연학부(연극, 무용, 연기 전공), 영상학부(영화, 방송영상, 디지털아트 전공), 음악학부(한국음악, 실용음악 전공), 문예학부(문예창작, 극작 전공), 디자인학부(시각디자인, 사진, 공간디자인 전공), 커뮤니케이션학부(광고창작, 예술경영 전공), 6개 학부 15개의 전공으로 운영된다.
전문학사학위는 3년간 예술의 분야별 기본소양과 기능 완성을 목표로 현장 중심의 기술 습 득 교육을 강조합니다. 전공별로 창작기초를 다진 뒤 제작실습을 통해 창작 방법을 익히고 공 연과 전시를 통해 전공 기술의 연마를 확인합니다. 동시에 다양한 산업 분야와 연계한 현장 실 습을 통해 직업교육을 강화시키고 있다.
전문학사학위과정과 학사학위과정의 유기적인 연계ᆞ순환ᆞ통합 교육을 통해 의과대학과 부 속병원의 관계처럼 안산캠퍼스에서는 전공별 스튜디오와 예술공학센터, 창작실습지원센터를 중 심으로 예술과 과학을 접목한 창작교육을 실시하며, 교육현장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남산캠퍼스 의 「문화예술산업융합센터」와 「동랑센터(드라마센터)」를 통해 발표되고, 문화예술 산업계로 보급된다.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Bachelor of Fine Arts)'''은 연극, 무용, 연기, 한국음악, 실용음악, 극작 (공연극본창작), 예술경영 전공이 서로 연계·순환·통합하는 공연창작학부와 영화, 방송영상, 디지 털아트, 문예창작, 극작(영상극본창작), 시각디자인, 사진, 공간디자인, 광고창작, 예술경영 전공이 서로 연계·순환·통합하는 미디어창작학부 2개 학부로 운영된다.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은 1년간의 전공 심화 교육의 ‘예술창작 전문교육’ 과정이다.
개인별 지도교수와 함께 도제식 전공연구(Graduation projects / Individual studies)를 통해 전공을 심화하고, 학부와 전공 간의 벽을 넘어 다른 전공과의 팀티칭 융합교육(랩·스튜디오·프 로덕션 중심의 창작-LAB・Studio・Production)을 통해 창작의 지평을 넓히고 있습니다. 이로써 전공의 새로운 응용으로 계열은 넓히고, 창작을 통해 자신의 전공분야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민족문화예술 창달과 전문예술인력 양성이란 이념은 “창조적 예술인 양성을 위한 전문화된 예술교육 조직”을 경영, 영위함으로서 실천될 수 있다. 동랑예술원은 예술가와 도제, 예술가와 사회 등 예술 촉매자, 예술 진흥자의 역할을 수행해 나가기 위하여 예술활동 현장과 예술교육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전문화된 예술교육 조직을 형상화시켜 가고 있다. 이를 통해 교육현장과 예술현장이 융합됨으로써 사회가 요청하는 예술 각 분야의 예술기능인부터 예술가·장인을 배출해내고자 하는 것이다.
2001년 안산캠퍼스가 조성되어 대학의 교육공간이 학교법인의 문화운동공간과 분리되면서 서울예술대학교의 구 캠퍼스인 남산공간은 이를테면 의과대학 부속병원의 기능과 바우하우스 같은 기능을 합친 ‘예술센터’의 기능을 확대하여 재학생의 현장프로덕션, 졸업생의 인턴십과 예술활동, 대학과 사회의 교류센터, 대학의 산업협동 현장, 학교법인의 예술사업 활동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안산캠퍼스와 상시 초고속 전산망을 구축하여 두 공간간의 고유 기능들을 교환함으로써 교육 시너지 효과를 얻도록 하였다.
학교법인 동랑예술원은 공연예술단체 운영과 드라마센터 등 예술공간 운영, 문화·예술산업을 목적사업으로 하는 문화·예술기업을 경영함으로써 학교에서 배출되는 예술인의 프로모션, 예술 예비인재의 도제 훈련, 학습자의 전문창작실습 참여 등의 기회를 제공하고, 동시에 새로운 소재, 기법, 인력 등을 경영에 흡입, 활용하는 산학일체의 교육사업 및 예술사업을 실현하여 이를 통한 유·무형의 수익을 학교로 환원하도록 하고 있다.
2.1. 설립자
'''동랑 유치진 선생은 서울예술대학교를 설립한 교육자,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다.'''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14년 통영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18년 졸업하였다. 1921년 동경 도요야마(풍산) 중학교에 편입해서 1925년 졸업하였다. 다음 해인 1926년 동경 릿쿄대학 예과를 거쳐, 1927년 영문과에 입학하여 1931년 졸업하였다. 로망 롤랑의 「민중예술론」을 읽고 연극에 뜻을 두고 귀국하여, 1931년 7월 서항석(徐恒錫)‧이헌구(李軒求)‧이하윤(李河潤)‧장기제(張起悌)‧정인섭(鄭寅燮)‧김진섭(金晉燮)‧함대훈(咸大勳)과 함께 극예술연구회를 조직했다. 고골리의 「검찰관」에 출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희곡·창작·연기·연출·평론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면서 극예술연구회를 주도하였다.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삼일극장에 「빈민가」를 공연하였고, 주영섭과 이해랑 등이 주도한 동경학생예술좌의 창립을 후원해 「소」를 초연했다. 극작가로 등단한 것은 희곡 「토막」부터였다. 이후 극예술연구회 시기(1931~1939)에 70여 편에 달하는 연극비평과 희곡비평, 시론, 연극계결산, 희곡창작법과 영화계에 대한 조언 등을 발표하였다. 희곡으로 「빈민가」(1935), 「소」(1935) 등이 대표적인데, 이 가운데 농촌 현실과 식민지 현실을 다루었다. 1940년 12월 조선연극협회 이사에 취임하면서 일제에 협조하였다. 1941년 2월 부여신궁 조영공사에 근로봉사하였으며, 3월 조선연극협회 산하 극작가동호회 회장에 피선되었다. 7월 조선연극협회와 조선연예협회로 양분된 공연예술단체를 통합하여 결성한 조선연극문화협회에서 상임평의원에 임명되었고, 12월 영화기획심의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43년 4월 조선문인보국회 이사로 임명되었고, 6월 조선문인보국회 소설희곡부 회장이 되었으며, 10월 조선문인보국회 주최한 결전소설과 희곡 공모 심사원으로 위촉되었다. 1944년 6월 조선문인보국회 극문학부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인 1944년 11월과 1945년 2월 조선연극문화협회 주최 일어극 각본 공모 심사원으로 위촉되었다. 해방 후 1947년 2월까지 은둔생활을 하다가 1947년 한국무대예술원 초대원장으로 취임하였다. 1948년 서울시 문화위원으로 피선되었다. 1949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56년과 1957년 구미와 동남아를 순방하면서 세계 연극 흐름을 시찰하였다. 1960년과 1961년 대외활동에 전념하여 동국대학교에 연극영화학과를 창설하여 초대 학과장을 맡고 전국극장단체협의회장과 문교부 대학교수자격심사위원에 위촉되었고, 동경에서 열린 아세아영화제 국제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62년 드라마센터를 건립하여 한국연극연구소와 연극학교, 연극아카데미''' 등 부설기관을 만들었고, 같은 해 전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초대 회장과 예술원 부회장에 피선되었다. 1963년 동경아세아영화제 국제심사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4년 극단 드라마센터를 창설하였다. 1971년 한국극작가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1974년 2월 10일 사망하였다.
동랑 선생은 침체된 민족예술의 발현을 시대적 소명으로 자각하여 평생을 문화 예술계와 연극계에 헌신하였다. 1931년에 창립한 극예술연구회를 통해 민족 예술의 토대를 다지고, 1962년에 드라마센터와 한국연극연구소 및 부설 연극아카데미를 설립하여 한국 연극의 장을 새롭게 열었으며 서울연극학교, 서울예술전문대학 시절을 거쳐 오늘의 서울예술대학교가 있게 하였다.
학교재단인 동랑예술원, 동랑레퍼토리극단과 동랑청소년극단, 동랑청소년종합예술제와 동랑청소년예술캠프, 동랑체 등에 사용된 동랑은 유치진 선생의 아호이다.
2.2. 상징
서울예술대학교 심볼마크
심볼마크는 서울예술대학교를 집약적으로 상징하는 시각물로서 아이덴티티 시스템의 핵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기본 요소이다.
서울예술대학교의 심볼마크는 조상의 미학적 숨결이 살아 있는 백제 금관식 왕비관의 고유문양에서 착안하여 현대와 전통의 융합을 외곽의 어눌함과 날렵한 곡선을 이용하여 포지 네가티브로 표현하였다. 또한 '''불꽃과 날개를 하나로 조합하여 진정한 예술혼을 불태우며 꿈을 향해 비상하는 서울예대인의 모습을 이미지화''' 하였다. 주색인 붉은 색은 예술의 극치와 무한한 '''열정'''을 의미 한다
2000년부터 서울예술대학교 국영문 Logo와 서울예술대학교 앰블럼을 사용하였으며, 동랑체를 사용하고 있다.
아래 이미지는 서울예술대학교 로고의 변천사를 나열한다.
3. 역사
- 1964년 한국연극아카데미를 폐지하고 서울연극학교(2년제 초급대학)를 설립하여 연극과, 영화과, 음악무용과를 설치했다.
- 1973년 서울연극학교를 폐교하고 서울예술전문학교로 인가받아 연극과, 영화과, 라디오TV과를 설치했다.
- 1978년에는 서울예술전문대학으로 개편되어, 초대학장으로 유덕형 교수가 취임했다. 이때부터 서울예대의 황금기가 시작되는데 서울예대 출신의 연예인 대부분이 이 당시 서울예전 출신이다. 지금도 명성이 이어지고 있지만 서울예전때는 거의 모든 방송국을 서울예전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는 방송국 하나가 파업해도 방송은 돌아가지만 서울예전 출신들이 파업하면 우리나라는 방송을 할수 없다." 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 1987년에는 서울예술대학교의 자랑인 실용음악과가 증설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실용음악과는 탑에 위치해 있으며 많은 실용음악계통 학생들이 진학하고 싶어하는 과이다. 또한 실용음악과가 4년제에도 많이 생겨났지만 서울예대의 입지와 파워는 지금도 확고하다.
- 1988년에는 광고창작과가 개설 되었다. 전공과목 교수님들과 광고업계의 유명 인사들이 이론과 실무를 병행한 교육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며, 많은 졸업생들이 광고를 비롯한 방송/연예/영화/IT 등 관련 미디어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타 대학 졸업생들이 다시 입학할 만큼 인기도 높고 학생들의 수준도 높다.
- 1998년에는 서울예술전문대학에서 서울예술대학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 2000년도에는 안산캠퍼스가 완공되었고 2001년 남산캠퍼스의 협소함을 해결하고 4년제 대학교의 개편을 위하여 경기도 안산시로 이주해오게 된다. 서울예술대학교는 비로소 명동에 위치한 남산캠퍼스와 안산에 위치한 안산캠퍼스의 이원화 캠퍼스로 더 좋은 환경을 가지게 되었다.
- 2002년 연극과 영화과 방송영상(구 방송연예)과 실내디자인과 3년제로 개편.
- 2008년에는 전 학사를 3년제, 4년제로 개편하게 된다.
- 2013년 1주기 <대학 기관평가인증> 획득
- 2013년 제27회 <인촌상 교육부문> 수상
- 2013년 교육부 <학사학위 우수 대학> 선정
- 2014년 교육부 <특성화 대학 육성사업> 선정
- 2014년대한민국 <참교육대상 예술부문> 수상
- 2015년 교육부 <특성화 대학 육성사업 1차년도 매우 우수대학> 선정
- 2015년 학부제 개편 및 전공신설, 총 6개학부 15개전공으로 편성
- 2016년 교육부 <특성화 대학 육성사업 2차년도 우수대학> 선정
- 2017년 교육부 <특성화 대학 육성사업 수행대학> 선정
- 2018년 교육부 <특성화 대학 육성사업 수행대학> 선정
- 2018년 교육부 대학도서관 평가 1위 <교육부 장관상> 수상
- 2019년 2주기 <대학 기관평가인증> 획득
4. 학제
서울예술대학교는 3년제와 4년제 예술대학으로 3년제 전문학사 과정과 4년제 학사학위 과정으로 나뉜다.
학사학위 과정은 전문학사 과정을 마친 후 지원할 수 있으며, 서울예술대학교에서 학사학위 과정을 이수한 자에 한해 정규 4년제 예술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만든 학위 제도이다.[13]
전문학사 과정에는 6개 학부 아래 15개 전공이 개설되어 있다. 60년 역사 속에 수많은 졸업생들이 배출되어 서울예대파를 형성하고 있다.
4.1. 학사학위 과정
3학년까지 마친후 바로 전공심화과정으로 1년을 공부하면 4년제 학사학위[14][15] 를 받을 수 있다. 현 서울예술대학교의 학사학위 과정의 학부로는 공연창작학부와 미디어창작학부가 있다.
- 공연창작학부
공연예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연극, 무용, 음악 등의 많은 전공들을 하나로 통합한 학부이다. 연극전공, 연기전공, 무용전공, 실용음악전공, 한국음악(구 국악)전공, 예술경영(공연콘텐츠기획)전공, 극작(공연극본)전공이 속해 있다.
- 미디어창작학부
문자, 이미지, 영상들의 다양한 미디어 예술 분야를 통합한 학부이다. 문예창작전공, 시각디자인전공, 공간디자인(구 실내디자인)전공, 광고창작전공, 영화전공, 방송영상(구 방송연예)전공, 사진전공, 디지털아트전공, 예술경영(영상콘텐츠기획)전공, 극작(영상극본)전공이 속해 있다.
학사학위 과정의 경우 공연창작학부와 미디어창작학부를 합쳐 '''116명'''을 매년 뽑고 있는데[16] , 학교 전체에서 3학년이 모두 몇 명인가 생각해보면, 많은 인원을 뽑는 건 절대 아니다. 2018년에 재정지원 제한대학 유형 1에 선정되면서 학사과정 모집이 일시적으로 중지되었으나, 동문들과 재학생들, 안산시민들의 탄원서로 학사과정 모집중지가 해제되었다. 그러나 모집 인원 수는 120명에서 100명으로 줄어들었다.
2020년, 서울예대가 재정지원 제한대학 유형 1에서 벗어나면서 학사과정 모집 인원 수가 100명에서 116명으로 늘었다 참고 요망.
4.2. 전문학사 과정
14개 학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2015년부터 학과 통폐합에 따라 과가 없어지고 6개 학부 아래 '15개 전공'으로 대체되었다. 각 전공 아래 세부전공이 있는 방식이다. 예술창작기초학부는 교양강의를 위한 학부로 학생은 없고 교직원만 소속되어있다.
4.2.1. 공연학부
- 연극전공 (THEATRE)
前 연극과. 대한민국 연극사의 시작이자 유구한 역사와 동문을 보유한 서울예대의 설립 목적.
실제로 우리나라의 많은 연예인들이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이다. 예로 신구, 김지운, 양택조, 박건형, 독고영재, 임동진, 한인수, 이휘향, 김학철, 양희경, 조성하, 유동근, 박영규, 선우재덕, 김규철, 서승만, 장제욱(89학번), 장진, 김현철, 황정민, 김수로, 임형준, 김민교, 박상면, 정웅인, 이철민, 임원희, 류승룡, 이병진, 최성국, 신동엽, 안재욱, 우희진, 고호경, 홍록기, 표인봉, 정성화, 최양락, 배동성, 이영자, 김생민, 이휘재, 송은이, 김한석, 표영호, 백재헌, 예재형, 이상준, 원기준, 류승수, 정재영, 이종혁, 이필모, 이천희, 박희순, 방은희, 라미란, 손병호, 장영남, 조정석, 박상원, 윤진서, 송창의, 지일주, 유해진, 성지루, 김효진, 최종원, 전무송, 최종환, 남경주, 정은표, 강혜정, 김명민, 김응수, 마야, 허준호, 김희원, 고창석, 반효정, 장항준, 장현성, 이세진, 김진수, 김나운, 류담, 김혜옥, 김준희, 송채환, 조재윤, 민지환, 김원해, 정정아, 엄효섭, 정동환, 김정균, 심태윤, 장용, 조미령, 김영민, 임대호, 문천식, 권혁수, 이정은, 김준현, 장원영, 이용, 이희도, 임미숙, 정원중, 정형석(성우 겸 배우)[17] , 진태현, 차지연, 한상규, 임화영, 이승준, 한영애, 이기영, 홍지민, 배해선, 김홍표, 윤지혜, 신은정, 김우형, 서동수, 남경읍, 정해균, 김병옥, 김혜림, 박혁권, 배성우 ,이동휘 쇼호스트 정윤정, 김영훈, 김형진#s-2 등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6.25 전쟁이 끝난 후 좀 살 만해질 무렵 연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에 응해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학교가 서울예대와 서라벌예대였다. 당시 서울예대는 연극 중심이었고 지금처럼 종합예술대학이 아니었다. 그때 연극으로 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덕분에 서울예대의 명성이 아직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18] 대학 창학과 동시에 교내에 최초로 설립된 과이며, 서울예술대학교의 설립 목적.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각 과의 연기전공이 통합되기 전 가장 많은 연기전공이 있던 학과이다. 또한 가장 먼저 설립된 학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단결력이 뛰어난 학과 중 하나이다. 때문에 매우 엄격한 분위기가 잡혀있다.[19] 서울예대의 상징이자, 각 대학 연영과를 대표하는 롱코트 과복(일명 돕바)의 시초이기도 하다.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전통적으로 흰색과 은색.[20]
실제로 우리나라의 많은 연예인들이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이다. 예로 신구, 김지운, 양택조, 박건형, 독고영재, 임동진, 한인수, 이휘향, 김학철, 양희경, 조성하, 유동근, 박영규, 선우재덕, 김규철, 서승만, 장제욱(89학번), 장진, 김현철, 황정민, 김수로, 임형준, 김민교, 박상면, 정웅인, 이철민, 임원희, 류승룡, 이병진, 최성국, 신동엽, 안재욱, 우희진, 고호경, 홍록기, 표인봉, 정성화, 최양락, 배동성, 이영자, 김생민, 이휘재, 송은이, 김한석, 표영호, 백재헌, 예재형, 이상준, 원기준, 류승수, 정재영, 이종혁, 이필모, 이천희, 박희순, 방은희, 라미란, 손병호, 장영남, 조정석, 박상원, 윤진서, 송창의, 지일주, 유해진, 성지루, 김효진, 최종원, 전무송, 최종환, 남경주, 정은표, 강혜정, 김명민, 김응수, 마야, 허준호, 김희원, 고창석, 반효정, 장항준, 장현성, 이세진, 김진수, 김나운, 류담, 김혜옥, 김준희, 송채환, 조재윤, 민지환, 김원해, 정정아, 엄효섭, 정동환, 김정균, 심태윤, 장용, 조미령, 김영민, 임대호, 문천식, 권혁수, 이정은, 김준현, 장원영, 이용, 이희도, 임미숙, 정원중, 정형석(성우 겸 배우)[17] , 진태현, 차지연, 한상규, 임화영, 이승준, 한영애, 이기영, 홍지민, 배해선, 김홍표, 윤지혜, 신은정, 김우형, 서동수, 남경읍, 정해균, 김병옥, 김혜림, 박혁권, 배성우 ,이동휘 쇼호스트 정윤정, 김영훈, 김형진#s-2 등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6.25 전쟁이 끝난 후 좀 살 만해질 무렵 연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에 응해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학교가 서울예대와 서라벌예대였다. 당시 서울예대는 연극 중심이었고 지금처럼 종합예술대학이 아니었다. 그때 연극으로 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덕분에 서울예대의 명성이 아직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18] 대학 창학과 동시에 교내에 최초로 설립된 과이며, 서울예술대학교의 설립 목적.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각 과의 연기전공이 통합되기 전 가장 많은 연기전공이 있던 학과이다. 또한 가장 먼저 설립된 학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단결력이 뛰어난 학과 중 하나이다. 때문에 매우 엄격한 분위기가 잡혀있다.[19] 서울예대의 상징이자, 각 대학 연영과를 대표하는 롱코트 과복(일명 돕바)의 시초이기도 하다.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전통적으로 흰색과 은색.[20]
- 무용전공 (DANCE)
前 무용과. 현대무용파트, 한국무용파트, 실용무용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무용학과가 많이 개설되지 않은 현 국내 대학실정에서 상당히 빛을 발하는 과. 무용수, 안무가, 댄서를 배출하고 있는 학과. 춤 선이 예쁜 탓인지 예쁜 남자 분들이 많으며 연기전공 못지않은 외모를 소유하고 있는 전공.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분홍색.
- 연기전공 (ACTING)
前 연기과. 2007년에 신설된 과. 과거 연극과, 영화과, 방송영상과(구 방송연예)에 세부전공으로 설치되어 있던 연기 전공이 통합되어 설립된 과로 연기 위주의 제작수업을 진행한다. 세 개의 과의 연기전공이 통합된 만큼 인원도 가장 많다. 전공 특성상 적극적이고 자유분방해서 서울예대 곳곳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연극, 영화, 방송영상(구 방송연예)과와 협업수업이 많이 이루어진다. 단결력이 뛰어나고, 인원이 많아 체육대회에서 항상 높은 성적을 거머쥐는 편. 특히 특유의 응원이나 열정연기!라는 구호가 매우 큰 특징이다.[21] 동문으로 정욱진, 김슬기, 이이경, 박서준, 박진주, 이엘리야, 신유아, 홍아름, 허민진, 박보미, 설인아, 윤소호, 한재석, 솔빈, 장규리, 조병규, 옥진욱 등이 연기과 동문이다.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주황색.
4.2.2. 영상학부
- 영화전공 (FILM)
前 영화과. 많은 영화감독들을 배출해낸 과. 이곳에서 한국영화아카데미 즉 KAFA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꽤 된다.[22] 예로 7번방의 선물 이환경 감독. 폰, 가위의 안병기 감독,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 연애의 목적, 관상의 한재림 감독, 연애의 온도의 노덕 감독, 젊은 날의 초상의 곽지균 감독,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 등 무수히 유명감독들이 서울예대 영화과 출신이다. 또한 영화사 청어람 대표인 최용배 대표도 영화과 출신이다. 평론가로는 유명한 박평식 평론가가 있고, 연예인으로는 손예진, 김하늘, 한혜진, 정유미, 김민종, 이준기, 박상민, 정우, 신대철(시나위), 장혁, 장윤주, 김성원, 윤용현, 서지석, 박희진, 임지은, 정성모, 최재원, 한은정, 한정수, 황규영, 이시은, 김호진, 유호정, 김영임 등을 배출한 과.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초록색.
- 방송영상전공 (BROADCASTING)
前 방송연예과.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방송연예과가 전신이다. 2006년까지 방송연예과의 이름으로 입학하였고 2007학번부터 방송영상과로 입학하였다. 연극이 쇠퇴하고 방송문화 활성화에 따라 부흥한 과로, 연극과 다음으로 영화과와 라디오/TV(방송영상(연예))과가 개설됐다. 방영 전공 역시 학교의 자랑거리. 발랄하고 학생들의 끼가 많은 과. 입학식 때나 체육 대회 때 연기전공과 기 싸움을 해도 밀리지 않는 과 중에 하나. 그래서 그런지 연예인 중 서울예대 방송영상(구 방송연예)과 출신도 상당하다.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어 넓은 분야로 활용이 가능한 미디어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과인만큼 학교 내에서 연극과/연기과 못지않게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방송영상(구 방송연예)과 동문들이 개그맨, 배우, 탤런트, MC, 가수, 성우, 등 각계각층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그 예로 개그/MC에는 이성미, 김지선, 김용만, 양원경, 유재석, 최승경, 정성호, 컬투의 김태균, 김경욱, 김태환, 가수에는 장필순, 조갑경, 하수빈, 황혜영(투투), 이성욱(R.ef), 문희준(HOT), 고지용(젝스키스), 박준석(태사자), 장윤정, 채연, 성민(슈퍼주니어), 김형중, 원종희, 채동하(SG워너비), 임윤택(울랄라세션), 이지연, 조민아(쥬얼리), 배우에는 전도연, 최명길, 구혜선, 채림, 홍은희, 이상아, 예지원, 최민수, 최재성, 신하균, 차태현, 정일우, 박선영, 유건, 이동건, 길용우, 윤유선, 선우은숙, 김유미, 전미선, 온주완, 박철, 정상훈, 한상진, 김정현, 이창훈, 송은채, 강성연, 이시언, 박주미, 김지연(1968), 전소니, 김명수, 최자혜, 송보은, 한수아, 신승환, 조명진, 강은비, 임지연, 송송이, 손정민, 손소영, 오희원, 문지인, 박잎선, 현우, 설정환, 이상봉(패션디자이너), 김청경(스타일리스트), 김선호, 성우로는 이채진, 전태열, 서혜정, 강희선, 이선, 신성호, 손원일, 강수진, 백승철(KBS 성우), 쇼핑호스트로는 이고운영 하도성 이승진 등 많다. 또 최대 뮤직비디오 제작사인 쟈니브로스의 김준홍 홍원기 대표도 방송영상(구 방송연예)과 출신이다.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황금색.
- 디지털아트전공 (DIGITAL ARTS)
前 디지털아트과. 인문학 성향의 인터렉티브아트전공(I.A)과 이공계열 성향의 크리에이티브테크놀러지전공(C.T)으로 나누어져 있다. 14개의 과 중에서 가장 성적 반영 비율이 높은 학과. 특히 C.T는 성적반영비율(특히 수학)이 높다. 3D 그래픽 디자인부터 프로그래밍, 게임엔진, 로보틱스, 프로세싱 등 디지털미디어(특히 컴퓨터)에 관련된 교육이 주를 이룬다. I.A는 그래픽과 디자인 등을 중심으로 부가적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우며 C.T는 프로그래밍을 중심으로 부가적으로 그래픽과 디자인을 공부한다. 커리큘럼은 게임개발에 집중되어있지만 실제로는 학교 특성상 타과 수업을 이수하고 방송 쪽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어서 이 학과에 지원하겠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것. 또한 다른 학교의 유사 학과들과 달리, 수학을 별개의 과목으로 빼서 심도 있게 배우지 않는다는 점이 특이하다. 여담으로 예대 내에서 덕력이 높은 과 중 하나이다.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흰색.
4.2.3. 음악학부
- 한국음악전공 (KOREAN TRADITIONAL MUSIC)
- 실용음악전공 (APPLIED MUSIC)
前 실용음악과. 1987년 대한민국 최초의 실용음악과 개설. 엄청난 경쟁률과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하는 전공.[26]
보컬부터 싱어송라이터, 기악(드럼,베이스,기타,피아노,관악 등), 작곡, 전자음악, 음향디자인, DJ 등 모든 전공이 세분화되어 있다.
보컬(여자)의 경우 적게는 300:1부터 많게는 400:1도 가뿐히 뛰어넘는다., (2015년 수시 노래 경쟁률 437:1). 실음과 동문으로는 김범수, 김연우, 조장혁, 박선주, 더레이, 신용재, 이기찬, 신윤철, 조정치, 유지(1991), 임세준, 이진아, 박영신, 박기영, 임정희, 실리카겔(밴드), 문희옥, 김정애(에코), 디어클라우드, 딕펑스[27] , 임현제(혁오), 심재현(쏜애플), 김정우(톡식), 박태희(YB), 빅브레인, 임도혁[28] , 김나영, 웰던 포테이토, 레어 포테이토, 정키, 멜로망스, 양다일, 전상근, SURAN, 이보람, 적재, 하현상, 이무진 등 대한민국 넘버원이라고봐도 무방할 정도로 음악의 신들이 모여 있다. 노래가 들리는 곳이면 어디든 악기와 함께 고개를 흔들며 리듬 타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29]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흰색.
보컬부터 싱어송라이터, 기악(드럼,베이스,기타,피아노,관악 등), 작곡, 전자음악, 음향디자인, DJ 등 모든 전공이 세분화되어 있다.
보컬(여자)의 경우 적게는 300:1부터 많게는 400:1도 가뿐히 뛰어넘는다., (2015년 수시 노래 경쟁률 437:1). 실음과 동문으로는 김범수, 김연우, 조장혁, 박선주, 더레이, 신용재, 이기찬, 신윤철, 조정치, 유지(1991), 임세준, 이진아, 박영신, 박기영, 임정희, 실리카겔(밴드), 문희옥, 김정애(에코), 디어클라우드, 딕펑스[27] , 임현제(혁오), 심재현(쏜애플), 김정우(톡식), 박태희(YB), 빅브레인, 임도혁[28] , 김나영, 웰던 포테이토, 레어 포테이토, 정키, 멜로망스, 양다일, 전상근, SURAN, 이보람, 적재, 하현상, 이무진 등 대한민국 넘버원이라고봐도 무방할 정도로 음악의 신들이 모여 있다. 노래가 들리는 곳이면 어디든 악기와 함께 고개를 흔들며 리듬 타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29]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흰색.
4.2.4. 문예학부
- 문예창작전공 (CREATIVE WRITING)
前 문예창작과. 1976년 개설. 전국 문예창작과 중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인다.
시, 소설, 평론, 아동문학 같은 순수문학을 공부하며 상당수의 시인, 소설가들은 물론 방송, 드라마 작가들을 배출하였다. 출신 작가로는 신경숙, 하성란, 조경란, 편혜영, 윤성희, 정이현, 황선미, 강영숙, 장석남, 함민복, 백민석, 이병률, 이원, 이명행, 최규승, 김미월 등 작가들과 파리의 연인,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상속자들, 시크릿가든, 신사의 품격, 태양의 후예, 도깨비의 김은숙, 서울의 달의 김운경, 그들이 사는 세상의 노희경, 쩐의전쟁의 이향희 등의 드라마 작가들을 포함하여 40년이 넘는 역사 속에 지금까지 수많은 문인들을 배출하고 있다. 과거 교수로는 최인훈, 오규원, 한강, 김혜순 등이 있다. 학교 내에서는 극히 드물게 선후배와 학번제 같은 전통으로부터 자유롭고 매우 조용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또한 타 학부, 전공과는 다르게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심홍색. 가장 큰 행사로는 '문창인의 밤'이라는 연례 행사가 있으며, 주로 마동 예장홀에서 진행된다.
시, 소설, 평론, 아동문학 같은 순수문학을 공부하며 상당수의 시인, 소설가들은 물론 방송, 드라마 작가들을 배출하였다. 출신 작가로는 신경숙, 하성란, 조경란, 편혜영, 윤성희, 정이현, 황선미, 강영숙, 장석남, 함민복, 백민석, 이병률, 이원, 이명행, 최규승, 김미월 등 작가들과 파리의 연인,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상속자들, 시크릿가든, 신사의 품격, 태양의 후예, 도깨비의 김은숙, 서울의 달의 김운경, 그들이 사는 세상의 노희경, 쩐의전쟁의 이향희 등의 드라마 작가들을 포함하여 40년이 넘는 역사 속에 지금까지 수많은 문인들을 배출하고 있다. 과거 교수로는 최인훈, 오규원, 한강, 김혜순 등이 있다. 학교 내에서는 극히 드물게 선후배와 학번제 같은 전통으로부터 자유롭고 매우 조용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또한 타 학부, 전공과는 다르게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심홍색. 가장 큰 행사로는 '문창인의 밤'이라는 연례 행사가 있으며, 주로 마동 예장홀에서 진행된다.
- 극작전공[30] (PLAYWRITING)
前 극작과. 대한민국에서 '극작과'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와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단 두 곳뿐이었는데 백석예술대학교와 동아방송예대 역시 몇 년 전 개설 되었다. 극작과는 순수 문학이 아니라 드라마나 연극 같은 시나리오 위주의 극문학을 공부한다. 과거 학교가 남산에 있을 당시, 주간은 문예창작과, 야간에 극작과가 설치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015년도 신입생부터는 극작과와 문창과를 전문학사과정에서는 같은 문예학부로 묶었으나, 학사학위과정이 문예창작과는 미디어학부에 속해 있는데 반해 극작과는 공연학부에 속해있다. 교수님들도 다양한 장르의 작, 연출가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에 문창과는 시인, 소설가 출신 교수님들이 주로 많다. 즉, 같은 문학 계열이라도 적용되는 분야가 다르다는 것. 애당초 실기시험은 주어진 글제에 따라 글을 써내야 한다는 점에서 같지만 두 과가 서로 다른 능력을 요구하며 평가 기준도 다르다. 또 극작과는 문창과와는 달리 홀로 작품을 완성할 수 없다. 직접 쓴 공연대본(희곡, 뮤지컬, 막간극 등.)이나 영상대본(영화, (웹)드라마 등.) 을 시각화 시켜야 하기 때문. 그래서 반드시 연출이나 촬영스텝, 배우, 음악감독 등. 타 과의 협업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타 과의 제작수업은 물론 외부공연에 많이들 참여한다. 보통 작가를 하며 글(대본)을 쓰는데 그래서 발이 넓은 사람이 많다. 수업도 모든 과의 전공 수업을 거의 다 들을 수 있다.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창작물의 극을 쓴다. 그냥 원작이 없는 공연이나 처음 들어보는 스토리의 영상물이 보이면 극작과 학생의 창작물이라 생각하면 된다.출신작가로는 스토브리그를 쓴 이신화 작가가 있다.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파랑색.
4.2.5. 디자인학부
- 시각디자인전공 (VISUAL DESIGN)
前 시각디자인과.[31] 1975년부터 역사가 깊은 전공이다. 세부전공으로는 비주얼커뮤니케이션과 디지털커뮤니케이션이 있다. 주로 라동 3~5층을 쓰고있다. 2015년 부로 전공 설립이 된지 40주년이 되었고, 매년 졸업작품 전시회를 SM엔터테인먼트와 함께한다. 디자인과 치고는 학교내에서는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것 같지만, 의외로 디자인 학부 내에서 입지가 커서, 학부내 행정 등을 도맡아서 하고있다. 학부장도 시디교수가 도맡아서 한다. 참고로 예대의 상징인 불꽃마크를 디자인한 교수님이 재직중이다.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민트색.
- 사진전공 (PHOTOGRAPHY)
前 사진과. 예대생들 사이에서 창고라 불리는 라동 B1~1층을 쓰고있다. 세부전공으로 예술사진전공과 광고사진전공이 대략 1:1 비율로 나누어져 있으며, 소나무 사진작가로 유명한 배병우 교수[32] , KDK등, 유명 메이저 작가들이 교수로 있는 것이 특징이다. 라동 인근에서 크고 아름다운 사진기를 들고 배회하는 사람들을 본다면 십중팔구 사진전공 학생들이다. 동문으로는 신정환이 있다.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보라색.
- 공간디자인전공 (SPATIAL DESIGN)
前 실내디자인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립된 실내디자인학과이다. 미술계통 중에서는 명문이며, 서울예대에서 입지가 있는 과. 주로 라동 2~3층을 쓰고 있다. 동문으로는 배달의민족 CEO인 김봉진이 있다. 2021학년도를 기준으로 전공의 공식명칭을 '실내디자인'에서 '공간디자인'으로 변경하였다.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남색.[33]
4.2.6. 커뮤니케이션학부
- 광고창작전공 (CREATIVE ADVERTISING)
前 광고창작과. 크리에이티브한 광고인 양성이 교육 목표이며 줄여서 광창과 라고도 한다. 서울예대 내에서 가장 높은 내신과 수능등급을 자랑하며 실제로도 광창은 브레인 이라는 구호가 존재한다. 광고창작이라는 전공 답게 실제 입시 실기현장에서 PR이 이루어진다. 광고 동아리 소속 대학생들을 다룬 KBS 드라마 광끼(1999~2000)의 밑바탕이 된 곳이라 전해진다. 제일기획, 오리콤, TBWA등 광고사의 전,현직 전문가들이 교수를 맡고 있으며 이론 중심의 타 대학교 광고전공과 달리 아티피셜함이 접목된 브랜디드콘텐츠, 광고음악, 프로모션 기획마케팅 등 실무 위주의 교육으로 현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광고계 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연예기획사, 뮤직비디오, 잡지사 등의 업계 전반에서 동문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기업 내 마케팅 분야로의 진출도 활발하다. 광창과 동문으로는 남희석, 박은혜, 정혜영, 김경식, 조현민, 이은형, 지조, 영화감독 이해영, 이해준, CF 감독 박영준, 박찬도, 수요일, 이승주 카피라이터 차정환, YG 기획이사 김성훈 등이 있다. 예술경영전공과 마찬가지로 대학 내의 모든 과와 유기적으로 활발한 협력을 진행하며, 과 특성상 조별 프로젝트 수업이 타과에 비해 많은 편이다. 여담으로 타 학교와 공모전 등으로 활발하게 교류하며 동아리 참여율이 매우 높다.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빨간색.
- 예술경영전공 (ARTS MANAGEMENT)
2003년 연극과, 영화과, 방송영상(구 방송연예)과에 각각 세부전공으로 분리되어 설치되었었다. 당시는 학부 전공제가 아니라 모든 과가 단일 학과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예술경영전공이 2015년 학과제 개편으로 하나로 통합되어 별개의 학과로 독립하였다. 예술경영 내에서도 '공연콘텐츠기획', '영상콘텐츠기획' 전공으로 나눠져 공연기획 및 미디어기획, 예술분야 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주로 배운다. 또한, 대학 내의 모든 전공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점이 큰 특징이다.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공연장, 공연기획사, 영화관, 영화제작사, 방송, 엔터테인먼트 등에서 졸업생들(연극과, 영화과, 방송영상과 예술경영 전공 졸업생)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뮤지컬이나 연극,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예술분야로 진출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 학과이다. 광고창작전공과 같은 학부로 각종 행사와 수업을 같이 진행한다. 전공 트레이드 컬러는 진주색.
4.3. 동랑청소년종합예술제·캠프
동랑청소년종합예술제는 예비 예술가를 발굴할 목적으로 1962년부터 시작된 대회이다. 부문별로 뮤지컬, 연극, 문예, 광고, 영상, 국악, 사진, 무용이 개최되고 있다. 심사는 각 주관 학부 전굥교수들이 심사를 본다. 예술제에 참가하여 개인상을 수상한 사람한테는 해당부문 주관 학부(전공)에 지원시 가산점을 부여하는데, 동랑대상은 50%[34] 으뜸•버금상은 15%, 열심상은 10%의 가산점이 붙는다. 또한 부문별 동랑대상 수상자는 입학 시 한 학기 수업료[35] 전액을 면제해준다.
5. 학사 정보
5.1. 입시
'''예술대학교'''이다 보니 일반 대학들과는 다른 입시를 치르고 들어가야 한다. 특히 디지털 아트과는 해마다 시험방식이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항상 시험 방식에 대해 확인해야 한다. 서울예술대학교에서는 수능보다 중요한 것이 실기이기 때문에 영어 단어 한 개 더 외울 시간에 실기 연습 한 번 더 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학업을 필요 이상으로 등한시하고 실기에만 전력을 쏟지는 말기를. 높은 실기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주변에 서울예대 입시 학원들이 매우 많은데, 주로 실용음악 쪽 학원들이다. '서울예대 몇 명 합격!' 이런 글귀를 많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연기, 실음, 문창 등 서울예대 입시를 위한 학원이 곳곳에 분포해 있다.
높은 실기 반영률은 토 나올 정도의 경쟁률로 이어진다. 실용음악과는 초강세 학과로 경쟁률이 매년 갱신된다. 이 곳의 경쟁률은 전국 대학 기준으로도 최고치이다.[36] 서울예술대학교의 경우 치열한 입시 경쟁만큼, 예비순위 역시 지독하게도 빠지지 않는 편이다. 경쟁률이 심하게 높은 학과의 경우 예비번호 1번에게도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극작이나 예술경영과 같은 서울예대와 한예종에만 존재하는 학과는 경쟁률이 높지 않아도 예비 1번에게도 기회가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실기가 당락을 좌우하며 최소 10:1부터 400:1 혹은 그를 넘나드는, 피를 토하는 경쟁률을 자랑하다보니 재학생들의 실력은 확실히 검증되었다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즉 이 학교의 실기를 뚫고 들어온 사람은 사실상 이미 준프로라고 봐도 된다.
과거에는 수능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전형도 많고, 내신 실질반영비율도 16점대(!)로 정말 정말 낮았었다.[37] 정말 실기만 파면 5~7등급도 갈 수 있었던 대학...이었지만, 아 물론 그 정도라면 실기 성적이 극강으로 좋아야 한다. 막말로 신들린 수준의 재능 보유자라면 내신이 대수랴. 9등급과 별반 다르지 않는 수준임에도 유명 대학에 실기 합격한 사례는 일반 종합대 예술 전공에도 더러 있으니 특이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 실기 중심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2012학년도 정시 모집부터는 내신 실질반영비율이 총점의 33% 정도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실기만 파면 갈 수 있다는 말은 이제 옛 말이 된 셈(...) 사실 이는 다른 학교들의 예체능계 학과들도 마찬가지로, 실기 위주로 선발한 학생들에게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통 동점자에 한 해 내신 점수로 합격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실기를 씹어먹으면 붙을 수 있다. 어쨌든 실기 입학 학교니까 실기 능력이 좋아야 함은 당연하다.
실기 시험 시 문예창작과나 극작과, 광고창작과처럼 창의성을 요구하는 과의 경우에는 참으로 괴랄한 주제를 던져주는 경우가 허다하여 매년 실기 후에 원망과 탄식을 쏟아내며 시험장을 나서는 입시생들을 볼 수 있다. 다른 학교의 경우 누구나 무난하게 생각할 수 있는 주제를 주는 반면 서울예대는 웬만한 실력자가 아닌 이상 손도 댈 수 없는 악명 높은 문제들이 즐비하다. 예를 들어 '조개껍질을 눈에 박은 사람이 안개 속에서 오래된 철교를 부수는 소리'로 소설을 쓰라고 하라든가 '동물원에 갇혀 있던 말레이곰이 우리집에 찾아오고 난 뒤 상황'을 이야기로 쓰라고 하라든가. 심지어 손이 찍힌 사진 등을 제시하여 글을 쓰라고 하기도 한다.
인지도와 인기가 높은 학과는 갓 스무 살이 되는 학생들이 입학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실기 위주로 신입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실력을 쌓기 위해 재수 혹은 N수하는 경우가 많고, 다른 학교에 다니다가 혹은 사회생활을 하다가 예술에 눈을 뜨고 입학하는 경우가 많다.
5.2. 학비
'''전문대학 중에서 가장 학비가 비싼 학교이다.''' 한 학기 등록금이 400만 원대다. 기숙사까지 합하면 1년에 천만 원 가량. 그래도 재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의 종류가 많으니 조금은 안심해도 된다. 2012년 총학의 노력으로 등록금을 7% 인하했다. 그러나 2020년도 기준 학비는 동일하다. 2019년부터 시행되는 강사법을 비롯하여 변경되었지만, 타과수업보다 전공학점취득에 집중하여 전공에 집중할 수 있다.
5.3. 졸업 동문
예술대학교답게 출신 연예인들도 굉장히 많다. 때문에 연예계 진출을 노리고 입학하려는 학생들도 제법 있다고 한다.
5.4. 그 외
행정OT때부터 가르치고 행사때마다 부르는 예장가라는 노래가 있는데, 가사와 멜로디는 완벽하게 종로학원 원가.
봄에 신입생 단합을 위한 체육대회가 있는데 이 체육대회를 위해서 3주 전부터 학회 선배들이 새벽 5~7시에 1학년들을 불러서 연습을 시킨다. 일부 군기가 강한 과는 저녁 연습도 따로 시킨다. 얼차려와 구타는 10학번 이후로 사라진지 꽤 되었다. 기숙사생, 자취생, 안산주민이 아니면 새벽에 일어나느라 상당히 에너지를 뺏기기 때문에 교수들 사이에서도 반대의견이 상당하다고 한다. 다른 학교 재학생이나 졸업생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경악한다.
특수 교육으로는 멘토 시스템과 스토리텔링 연계과정이 있다.
멘토링 시스템은 일반적인 스터디 그룹과는 달리 가르치는 사람을 자의적으로 정해서 배울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는 가르치는 사람(tutor)과 배우는 사람(tutee)이 직접 학교에 신청하여 배울수 있는 시스템으로 교수 간, 교수-학생 간, 학생 간 등등으로 그룹을 정하여 학기마다 결과를 보고해야한다. 멘토1명당 멘티 5명까지 그룹을 만들수 있다. 만약 멘토링을 받고싶은데 멘토가 주위에 없다면 교수학습지원센터에 요청할 수도 있다.
스토리텔링 연계과정은 2012년부터 진행되었으며 대학 문예계열 학과(문예창작과, 극작과, 광고창작과) 및 관련 전공 교육과목 중 스토리텔링 관련 교육과목을 연계⋅통합한 교육과정으로 입학 후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다. 이는 거의 모든 학과의 학생들이 연계하여 수업을 받을수 있다.
재학 중 1회 한정으로 토익 점수가 700점이 넘으면 소정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소정 치곤 꽤 준다!!) 같은 장학금의 텝스 커트라인 점수는 토익에 비해 형편없이 높으므로 토익을 추천한다.
6. 캠퍼스
서울예술대학교는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 138 (예장동)에 위치한 동랑예술센터 즉 서울캠퍼스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예술대학로 171에 위치한 안산캠퍼스로 구성되어 있다.
안산캠퍼스 설립으로 인해, 서울예술대학교의 서울남산 동랑예술센터는 예술창작중심, 경기도 안산시의 대학본부는 예술교육전문공간으로 이원화되어 운영되어보다 효과적인 예술교육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6.1. 안산캠퍼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예술대학로 171(고잔동640) 에 위치한 서울예술대학교의 본교다.
안산캠퍼스는 1단계사업 완료 후 '''“한국건축문화대상(2001)”과 “한국건축가협회상(2002)”'''을 동시에 수상했다.
그리고 제2단계사업 완료 후에는 '''한국건축문화대상의 우수상(2007년), 경기도건축문화상(2009년)'''을 수상했다.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에 위치한 남산캠퍼스의 협소한 부지 문제와 학생 복지 및 수업 환경 개선, 4년제 승격을 위해 이곳으로 이전했다.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과 상록구 월피동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6.2. 남산캠퍼스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138(예장동8-19)에는 드라마센터를 중심으로 심재순관과 예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4년제 대학교 개편 및 부지 증축을 위하여 안산으로 캠퍼스를 옮기게 되었고, 남아있던 남산 캠퍼스는 부캠퍼스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워 이를 동랑예술센터라고 명명하게 된다. 현재 주로 공연 및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본교를 경기도 안산시로 이전하게 된 데에는 안산시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안산시는 80~90년대 당시 공단도시 이미지가 강했다. 이러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시정 사업으로 대학 유치, 녹색 도시 사업 등을 적극 추진했다. 그 중 '''예술대학의 명문으로 꼽히는 서울예술대학교''' 캠퍼스 이전 사업은 안산시가 어두운 도시 이미지를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외에도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학연산캠퍼스 특성화 사업, 근린공원 사업, 안산천 치수 사업 등을 활발히 추진하며 지금은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여담으로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의 원래 이름은 반월캠퍼스였는데, 이것은 반월공단에서 따온 것이었다. 실제로 남산캠퍼스에 가보면 알겠지만, 대학교라 하기 뭐할 정도로 부지가 굉장히 협소하다. 캠퍼스 이전 사업이 실제로 이행되기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다. 안산시는 고잔동과 월피동 사이에 위치한 광덕산 아래 부지를 통째로 학교측에 무상으로 제공하였다.
모든 전공이 2001년 이전하면서 본격적인 안산캠퍼스 시대가 열렸다. 그 전 세대인 20세기 학번 동문들은 지금의 남산캠퍼스(드라마센터, 심재순관, 예술관)를 비롯하여 명동 인근의 빌딩을 임대하여 강의실 이곳저곳을 오가며 강의를 들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특별시에 연고한 대학교는 박정희정부 이후부터 캠퍼스 확장 및 부지 증축이 상당히 까다로워졌다. 그 이유인즉슨, 서울특별시에 심각한 인구 밀집현상과 경제, 정치, 문화 산업이 전부 쏠려 있기 때문이다. 인서울 대학들이 용인시[38] , 수원시[39] , 안성시[40] , 세종특별자치시[41] 에 제2의 캠퍼스(분교, 이원화캠퍼스)를 설립하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 의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현재도 이러한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지방 분산화 정책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여담으로 중구에 위치해 있는 동국대학교의 경우, 남산 아래 장충동에 연고하고 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지가와 정부의 캠퍼스 확장 제한으로 인해 더 이상 건물을 짓지 못하고 있다.
서울예대 학생이라면 "서울예대는 왜 안산에 있어?"라는 질문을 한번쯤은 듣는다. 이 문서를 참고하여 학교가 어떠한 연유로 인해 남산에서 안산으로 이전하게 되었는지 설명하길 바란다.
남산캠퍼스는 '''공공극장 사유화 문제'''로 인해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드라마센터 건립과 개관 당시에 관하여 역사적으로 탈법적, 불법적 승인과 특혜가 있었다는 역사적 증명 자료가 쏟아지고 있지만 학교 측은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2009년부터 이어져 온 서울문화재단과의 임대계약을 학교 측에서 돌연 2020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이후 2020년 SM엔터테인먼트와 종로학원의 'SM Institute'에 심재순관을 임대하였다. 그 외 드라마센터를 비롯하여 다른 건물들은 학교법인 동랑예술원이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6.3. 드라마센터 사유화 및 친일 행적
필자 소개 - 김미도(연극평론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김숙현(연극평론가), 김옥란(연극평론가, 극동대학교 교수), 노이정(연극평론가), 이상우(연극평론가, 고려대학교 교수), 이정숙(경북대학교 초빙교수), 이진아(연극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시현(국제법연구자, 전 성신여자대학교, 건국대학교 교수)'''이곳에 작성된 모든 내용은 <유치진과 드라마센터, 친일과 냉전의 유산>(출판: 연극과 인간, 2019)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1. 드라마센터 재사유화 문제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이자 연극평론가 김미도 '''<드라마센터에 대한 논란과 쟁점>'''
문제의 발단은 학교법인 동랑예술원이 남산예술센터에 대하여 서울특별시와 맺고 있는 임대차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겠다는 통보였다. 남산예술센터는 2009년부터 서울시가 동랑예술원으로부터 임대하여 서울문화재단으로 하여금 위탁 운영하도록 해 왔다. 3년 단위로 계약이 갱신되어 2012년, 2015년 재계약이 이루어졌고 2018년 1월 1일부터는 이미 4차 위탁계약 기간으로 접어든 상태였다. 그런데 동랑예술원이 갑자기 남산예술센터를 서울예대의 교육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2018년 1월 학교법인 동랑예술원이 돌연 서울시와의 문화산업계약을 올해 말로 종료할 것을 요구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유치진이 불하받은 토지는 과거에 조선총독부가 있던 자리로 해방 후에는 국립과학관으로 사용되었다. 유치진의 자서전에서 스스로 밝힌 불하 과정만으로도 부정특혜 의혹이 상당히 제기될 수밖에 없다. 사적인 친분에 의해 허정, 이항녕, 오재경 등이 토지 불하 과정에 개입되었다 해도 토지 불하의 명분은 록펠러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수혜하는 '공적'인 이유였다.
'''"나는 우선 그들이 제공하겠다는 10만불을 염두에 두고 극장을 머리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10만불은 법인에게만 지급되는 것이라 하여 나는 부랴부랴 내가 살고 있는 갈월동 집과 처남 집 등 그밖의 부동산을 기부하여 1958년 8월 26일에 재단법인 한국연극연구소 유지재단이라는 것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유치진 구술, 유민영 정리)
즉 국가가 유치진 개인을 위해 국유지를 불하해 주었을 리 없고, 록팰러재단 역시 유치진 개인이 극장을 짓는데 막대한 공적 자금을 지원했을 리 없다. 동아시아 냉전 전략 속에서, 미국 문화 전파에 가교 역할을 하는 록팰러재단의 원조에 힘입은 드라마센터가, 범국가적인 혹은 범문화계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이루어졌다는 기록은 곳곳에 드러나 있다. 심지어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드라마센터 건립 과정에서 유치진의 사재가 투입되지 않았다면 완공되기 어려웠기에 서울예대 측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빌미가 되었다.
'''"드라마센터는 절대로 사유화되지 않습니다. 우선 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관절 그 건물이 사복을 채울 만한 건더기가 됩니까?"'''(1966년 9월 1일, 한국일보 기사)라는 변명이 무색하게 유치진은 드라마센터를 임의적으로 자신이 설립한 학교재단에 기부하여 사유화하기에 이르렀다.
1962년 드라마센터가 개관하기까지 미국 록펠러재단은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였는데 이는 '''유치진 개인을 위한 사적 차원이 아니라 한국연극의 발전이라는 공적 명분을 내세우며 이루어진 일이다.''' 다시 말해, 드라마센터의 건립이 범국가적인, 혹은 범문화적인 후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기록 또한 역사적 자료 곳곳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유치진은 총독부 부지를 불하받은 후, 이 땅을 1963년 '학교법인 한국연극연구원(현 동랑예술원)에 불법∙편법적으로 '증여'하여 국유재산을 사립학교인 서울예대의 사유재산으로 귀속시킴으로써 드라마센터의 공공성을 배반하기 시작했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재정경제위원장 이주일, 유원식 등 군사정부는 유치진에게 국유재산 매각대금의 납기를 '''무려 10년'''으로 연장하는 등 특혜와 은행 융자를 알선해주기도 하는 등 탈법행위를 저질렀다. 국세청에 남아 있는 매도증서에 의하면 재단법인 한국연극연구소 유지재단이 국가로부터 예장동 8-19번지(현 소파로138)의 땅을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한 시점은 1960년 9월 28일이지만 부지대금은 첫 불입금 1할만을 납입한 후, 1970년 9월 14일에야 완납된다. '''1963년 재단법인이 학교법인으로 드라마센터 건물을 기증할 때 대지는 재단 소유도 아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장동 8-19번지는 '''공공극장'''을 만들겠다는 거짓부렁에 의해 불하 허가받은 곳이다. 애초에 유치진은 한국연극의 중흥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내세우며 박정희 정부와 록펠러재단으로부터 거대한 자본을 후원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교묘한 수법으로 이를 사유화했다. 서울예대의 성장과정에서 드라마센터라는 부동산이 중요한 종자돈으로 기능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예대 측은 드라마센터의 공공성을 완전히 망각한 채 학교 부대시설로 방치해 오다 10년 전부터 서울시에 임대함으로써 극장의 공공성이 조금이나마 회복되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영구적으로 사유화하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이는 한국연극계의 간절한 염원을 모아 건립되었던 드라마센터의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다.
2. 노골적인 친일 행적 - 이진아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연극평론가) '''<대추나무> 개작 과정과 친일 행적 지우기'''
<대추나무>에서 <왜 싸워?>까지
<대추나무>는 해방 전 친일반민족행위자 유치진이 쓴 마지막 희곡으로 1942년 조선연극문화협회 주최의 제1회 연극경연대회 참가작이다. 유치진이 소위 '국민연극의 시대'라고 불리던 일제강점기 말기에 세 편의 친일희곡을 쓰는데, 그 첫 작품이 1941년 6월 현대극장 창립공연으로 무대에 오른 <흑룡강>이며, 이어 1942년 4월에는 <북진대>를, 같은 해 10월에는 <대추나무>를 써서 무대에 올린다. 유치진은 <대추나무>를 마지막으로 이후로는 희곡 창작을 접고 해방을 맞는다.
유치진은 1940년부터 적극적으로 국민연극론을 발표하였고, 아직 국민연극이 무엇인지 창작물로서 실체가 없던 시절 현대극장을 창립하고 '''<흑룡강>을 무대에 올리며 친일연극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그러한 과정에서 '국책연극의 예술성과 대중성의 문제'를 고민하기도 하였는데, 극이 국가의 정책과 목적에 적극적일수록 예술성과 멀어지고 그 결과 국민 대중으로부터 경원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러한 고민 속에서 쓴 작품이 <대추나무>이다. 실제로 앞서 창작한 친일 작품들과 비교하며 작가로서 꽤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대추나무> 발표 당시의 작극 메모에서 "졸작 <흑룡강>과 <북진대>를 과거의 작품으로 묻어버릴 수 있는 작극상의 새로운 이정표"를 찾고 시험해 보고자, 또 "잃어버린 시를 상기"하고자 이 작품을 쓴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인지 유치진은 앞의 두 작품과는 달리 <대추나무>에 대해서는 작가로서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해방 후 <흑룡강>과 <북진대>를 즉각 폐기한 것과는 달리 <대추나무>는 <불꽃>(1952년 작)과 <왜 싸워?>(1957년 작)로 두 번에 걸친 개작을 시도했으며, 1957년 <왜 싸워?> 발표 당시의 친일연극 논쟁과 이에 따른 상처에도 불구하고 작가 생전에 발간한 ⌜유치진희곡선집⌟(1959년, 선문각 발행)과 ⌜유치진전집⌟(1971년, 선문각 발행)에도 <왜 싸워?>를 당당히 포함시키고 있다. 또 작가는 '''자서전에서 일제 말에 쓴 친일 희곡이 평생 나를 괴롭혔다고 말하며, 때문에 "이때 쓴 작품들의 원고 뭉치를 곧바로 소각"했다고 술회하면서 이들 작품을 "나를 괴롭히는 망령"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7. 학교기관
7.1. 부속기관
부속기관으로는 예술정보센터, 교수학습지원센터, PACS역량개발센터, 취·창업지원센터, 장애·소수학생지원센터, 예비군대대, 학생상담센터, 창작·실습지원센터, 예술사회적책무센터, 전공심화과정지원센터 등
- 예술정보센터
- 교수학습지원센터
- PACS역량개발센터
- 취·창업지원센터
- 장애·소수학생지원센터
- 예비군대대
- 학생상담센터
- 창작·실습지원센터
- 예술사회적책무센터
- 전공심화과정지원센터
7.2. 부설기관
부설기관은 예술공학센터, 예술창조센터, 산학협력단, 문화예술평생교육센터, 예술한국학연구소, 조형예술연구소, 남북예술연구소, 문화예술산업융합센터, 학교기업, 연연생활관, 글로벌 컬처허브 LA ․ NY ․ ITA(스폴레토) ․ ID(반둥) 스튜디오 등이 있다.
- 예술공학센터
- 예술창조센터
- 산학협력단
- 문화예술평생교육센터
- 예술한국학연구소
- 조형예술연구소
* 남북예술연구소
남북 화해시대에 대비하여 민족 문화의 동질성 회복과 새로운 민족 문화창달을 위하여 남‧북한의 문화예술 연구와 교류에 관한 업무를 수행한다.
- 문화예술산업융합센터
- 학교기업
- 연연생활관
- 글로벌 컬처허브 LA ․ NY ․ ITA(스폴레토) ․ ID(반둥) 스튜디오
7.3. 기타기관
기타기관은 건설센터 및 글로벌캠퍼스추진단과 창학60주년기념사업단 등이 있다.
- 건설센터
- 글로벌캠퍼스추진단
- 창학60주년기념사업단
8. 교통
8.1. 버스교통
버스교통의 경우 학교의 위치가 안산시의 끝자락에 위치한 점 때문에 사실상 77번과 광명을 지나 신도림, 여의도까지 가는 320번이 전부이다.
학기중에는 중앙역 1번출구 앞에서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셔틀버스 운영 시각이 자주 변동되기 때문에 자세한 건 서울예대 홈페이지 참고. (일반적으로 오후 8시 40분 ~ 오후 11시) 이 외 시간에는 얄짤없이 77번을 타야한다.
- 서울예술대학교 정류장 : 77번, 20-1번 21번
학교와 가장 가까운 정류장이다. 중앙역에서 77번을 타고 올 때는 반드시 '''부곡동행'''을 탑승해야 한다. 사실상 77번 전용 정류장.
77번을 탈 때 주의해야할 점은 특히 하교할때 중학교,고등학교 학생들이 미리 타고 오기때문에 학생들로 미어터진다. 그리고 77번이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는데, 중앙역에서 예대로 갈때는 버스가 큰 길을 가다 U턴을 해서 다시 건너편으로 되돌아가기에 간혹 100원이라는 추가 요금이 붙는 경우도 있다. (물론 시간도 막힐때는 7분정도 추가로 소요된다)
그래서 왠만하면 중앙역 건너편 정류장에서 승차하는 게 보다 효율적이다. (다만, 이 방법도 지하보도를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 해야되기 때문에 체력 소진이 된다) 좋은 점은 77번의 행선지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77번 버스가 자주 오는 편이기는 하지만, 간혹 12분 이상 벌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고, 특히 중앙역 인근 교통은 출퇴근시간대에 매우 막히는 편이며, 등하교할때 5개의 동시신호 교차로를 통과해야하는 아주 비효율적인 예술대학로를 통과해야된다. (그래서 그 짧은 1.9km구간을 지날때 버스로 20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4호선 배차간격 또한 사당역을 넘어가면 배차간격이 거의 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기본 12분 간격이다. 심하면 이보다 더 많이 벌어질 수도 있어 지하철 앱으로 미리 도착정보를 확인해보자. 그래도 열차를 탈 때는 출퇴근시간대만 아니면 텅텅 비어가서 왠만하면 자리에 앉아서 갈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20-1번 버스와 21번 버스는 선부역 인근으로 가는 버스다. 서해선을 이용하여 부천.시흥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이 특징. 다만, 배차간격이 좀 넓은 편이기에 몇분 뒤에 도착하는지 반드시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 2021년 6월부터는 서해선이 일산역으로 연장되기 때문에 김포.고양.일산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특징. 2시간이상 걸렸던 통학시간이 대략 1시간 10분 내외로 단축될 예정이다.
- 라성빌라.고잔주공 7단지 정류장 : 320번, 99-1번, 70번, 33번
학교 인근 삼일로에 있는 정류장이다. 버스에서 하차 후 덕성초등학교 사거리에서 서울예대 방향으로 걸어오면 된다. 도보로 약 10분가량 소요된다.
다만, 걷는 걸 싫어한다면 여의도.신도림 등에서 320을 타고 있다면 라성빌라에서 내리지 말고 그 전의 정류장 (시낭운동장,부곡고등학교,성포중학고)에서 77번버스 혹은 21번 버스로 갈아타자. 갈아타서 서울예술대학 정류장에서 내리면 예대 정문 앞이다.
- 중앙초등학교.중앙주공2단지 정류장 : 700번'''(강남)''', 737번,'''(수원),(부평),(시흥)''' 707번, 110번, 909번, 11번 '''(수원)''' 8467번'''(성남),(군포)'''
학교와는 거리가 꽤 있는 정류장이다. 주로 서울이나 수원, 성남방향으로 가는 학생들이 주로 이용한다. 학교는 중앙주공2단지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바로 보이는 '''고잔주공9단지''' 정류장[42] 에서 77번을 타거나 예술대학로를 따라가면 도보로 15분, 마동이면 25분이 소요된다.
8.2. 철도교통
4호선 : 대외적으로는 4호선(=안산선) 중앙역을 이용할 수 있는데, 중앙역의 유상판매 부역명으로 서울예술대학교를 표기하고 있다.
배차 간격은 좀 넓은 편 : 6~15분 간격 [43]
수인분당선(4호선 일부 직결) : 2020년 9월부터 수인선이 연장되어 중앙역에서 수원과 인천, 용인, 분당 방향으로의 연결성이 개선되었다. (서현-중앙역 68분 소요)
다만, 수인분당선으로 통학하기 훨씬 좋아진 것은 사실이나 서울에서 올 때는 4호선을 이용하고 수원,분당쪽에서 올 때만 타는 것이 옳다고 본다. [44]
참고로 4호선은 10량 (1-1~10-4 승차위치) 하늘색/파란색 열차, 수인분당선은 6량 (1-1~6-4 승차위치) 노란색/파란색 열차.
서해선 : 2018년 6월 서해선이 개통되어 선부역도 중앙역과의 거리에 비해 크게 멀지 않은 거리에 있고, 20-1번 혹은 21번 버스를 타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만, 서해선 버스 모두 배차간격이 많이 넓은 편이기에, 위와 마찬가지로 앱으로 실시간 도착정보를 꼭 확인하길 바란다. 그리고 2022년 이후에는 보다 다양한 지역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이 이용할 거라고 본다. (일산,고양,김포,시흥,강서 등)
신안산선(예정) : 차후 신안산선이 개통할 경우 학교 인근에 성포역 이 생길 예정이고, 중앙역에서 신안산선으로 환승할 수도 있다. (대략 조감도를 보자면 중앙역 지하차도 안에 대합실을 신설할 예정이다) 여의도부터 중앙역까지 대략 30분정도 소요될 예정이다. (응 320 망했고)
다만, 학교 특성상 실습이 많기 때문에 늦게 작업(혹은 과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왠만하면 통학하는 것보다는 자취하는 것을 “매우” 추천한다.
9. 학생활동
9.1. 동아리
- 서울예술대학교/동아리 문서를 참조.
9.2. 입학식
서울예대의 입학식은 매우 화려하다. 화려하기보다는 쓸데없을 정도로 크게 벌인다. 입학식날은 안산시 축제라고 불릴 정도. 중앙역과 학교의 거리는 2.1km정도 되는데, 입학식날이 되면 아침 일찍 나와서 중앙역 앞에서 응원전을 한다. 학과마다 서로 경쟁하며 응원을 하고 학교까지 걸어서 시가행진(...)을 한다.[45] 춤추고 노래하며 서커스단이 된 기분으로 행진을 하는데 소음공해수준. 또한 행위예술, 노래, 코스튬 등등 선배들이 옆에서 같이 볼거리도 보여 준다.
레드카펫을 밟고 입학식이 시작되면 연예인 선배들과 각 과마다 성공한 선배들이 영상편지를 보내주고, 총 동문회장이자 연기과 교수 박상원이 나와서 연설도 한다. 많은 공연과 볼거리들을 보여 주고나면 맨 마지막은 실용음악과의 노래로 끝낸다. '''그리고 뒤풀이를 한다.'''
그러나 2018학번 신입생부터는 안 좋은 사건도 몇몇 있었고 외부 이미지를 고려하여 입학식을 간소화하였다. 중앙역부터 2km가량되는 거리를 행진하는 대신 학교 바로앞 광덕공원에서 출발하는것으로 시작해 학교를 한 바퀴 돌아서 운동장에 모여, 각 과별 슬로건 공개를 진행하고 레드카펫 밟기를 진행했다. 중앙역 행진이 부활할지는 아직 미지수.
2020년 현재, 앞으로는 매년 광덕공원에서 학교행진으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광덕공원에서 출발하여 정문을 통해 나동 뒷길로 텔동과 마동을 지나 운동장에 집결하여 입학식 메인 행사라고 볼 수 있는 현수막 하강식을 진행한다.[46] 이후, 레드카펫을 통해 중앙광장에서 입학식이 거행된다.
10. 자치기구
10.1. 총학생회
총학생회는 서울예술대학교 학생 전체를 대표하는 자치기구로써 창의, 협동, 성실의 학훈 아래 학교의 발전을 위해 매진하고 있으며 학사일정 및 자체기획한 학생행사를 충실하게 수행해 가고 있으며, 학교와 면밀한 협의를 통해 예대인의 권익 증진과 면학여건 개선을위해 배전의 노력을 더해갈 것이다.
2018년 제 56대 총학생회 '서행'
2019년 제 57대 총학생회 '부활'
2020년 제 58대 총학생회 '한결'
2021년 제 59대 총학생회 '청명'
10.2. 대의원총회
대의원 총회는 학생자치기구의 최고 심의의결기구로서 14개 학과에서 직접 선출된 각 학과, 학년대표 1명씩으로 구성되어 각 자치기구 사업 및 예·결산 심의, 집행부 인준, 학생복지 등의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해 나가고 있으며 예대인의 눈과 귀가되어 학교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10.3. 학보사
학보사는 대학의 건학정신을 구현하고 예대인의 창작 의욕과 학구열을 드높이며 대학문화 창달을 위한 폭넓은 지식과 교양을 증진, 건전한 학풍을 조성함으로써 학교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학보는 연8회(3·4·5·6·9·10·11·다음해1월) 발간되며 예대의 특성을 살려 예술과 문화 전반의 폭넓은 지식을 전달하는 학술정보지로서의 역할을 주로 담당한다.
10.4. 교지편집실
교지편집실은 서울예술대학교를 대표하는 교지 「예장」을 매년 1회 발행한다. 예장은 예대인들의 예술적 성과를 정리하여 상호교류의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교지편집위원회는 대학의 학훈 아래 예대인들의 대내외적인 예술탐구와 활동 및 성과를 「예장」에 담아 이를 객관화하고 예대인들의 상호 화합 및 평가, 재연구의 장으로써 역할을 다해가고 있다.
10.5. 동아리 연합회
동아리연합회는 "지향과 요구를 같이 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동아리들의 공동이익과 발전을 도모하고 우리대학의 특성 중의 하나인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여 예대만의 대학문화 창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11. 기타
11.1. 후문이
학교 후문에 서식하고 있는 길고양이인데, 예대인들의 사랑을 듬뿍받는 고양이다. 사실 원래 학교 근처에 자취하는 예대생이 길렀던 집고양이었으나, 잦은 가출로 인하여 길고양이가 되었다. 주로 낮에서 후문앞에 있는 후문이집에서 자고, 밤에는 학생들을 졸래졸래 쫓아가서 먹을것을 얻어먹는다. 가끔 가다 하교하는 자취생들을 뒤쫓아가 자취방으로 말도없이 들어오는데, 이 때는 잠만자고 아침에 문을 열어주면 나가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은 후문이보다 인근 광덕산에 사는 너구리가 더 많이 보이는 편이다.
11.2. 2018 재정지원제한대학 유형 1 선정
서울예술대학교는 2018년 9월 3일,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재정지원제한대학 유형 1'''로 최종 선정됐다. 이로 인해 내년부터 10%의 정원 감축을 해야 하고, 19학번부터 학자금 대출을 50% 제한받으며, 국가장학금 2유형 역시 제한받고, 정부 지원 역시 끊긴다.
작년, 11대 유덕형 총장을 비롯한 보직교수들이 입학 전형료를 자신의 주머니에 몰래 집어넣은 게 드러났다.
또한 유덕형 총장은 '총장 공관'을 산다는 명목으로 학교 재정 23억 원을 사사로이 사용해 고급 아파트를 구입한 적도 있었다.
이 외에도 음악학부 교수가 반대했음에도 총장의 말 한 마디에 수억 원에 이르는 인도네시아 악기를 구입한 사건이 있었고, 서울예대에서 터지는 각종 성추문 논란을 학교 측에서 묵인한 것까지 있었다.
학교 측에서는 대학 평가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시위를 반대했지만, 재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으며, 결국 총장이 사퇴했다. 이후 서울예대는 교육부 감사에서 이러한 것들이 문제가 되어, 2019년도 진단평가에서 재정지원제한대학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학교 운영진들의 방만한 경영과 비리, 학생들을 억압하던 행태들이 곪을대로 곪아 이같은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앞으로 학교 운영회 측에서 학생들이 입는 불이익을 어찌 처리할지 두고볼 일이다.
2020년에 해제되어 역량강화대학으로 지정되었다. 2021년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지켜보는 것이 관건이다.
11.3. 안산시 반값 등록금
윤화섭 안산시장은 2019년 4월 "안산시 대학생 본인 부담 등록금 반값지원"사업을 재정해 반값등록금을 시행한다고 하였다. 이는 지자체 중 최초 도입이다. 사실 실제로 진행될지는 미지수였으나, 2020년 실제로 집행이되었다. 현재로써는, 안산시에 주소를 두고있는 다자녀가정,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장애인 대학생 등에게 지급하였으나 단계를 거쳐 전체 대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확대할 방침이다.
[1] 2022년 창학 60주년을 맞이한다.[2] 제 13대 총장. 이전에 계원예술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3] 남산서울타워 바로 아래 자리하고 있다. 리라초등학교, 숭의여자대학교와 인접해 있다. 학교 교지 '예장'과 응원가인 <예장가>, 안산캠퍼스 마동에 위치한 공연장 '예장홀'의 이름 모두 이곳 '''예장동'''에서 온 것이다. 남산캠퍼스 입구에 위치한 심재순관과 한국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인 드라마센터는 예장동에, 뒤편에 위치한 예술관은 남산동에 소재한다. 참고로 심재순관과 드라마센터는 주로 연극과, 영화과, 방송연예(방송영상)과가 사용했으며, 예술관은 문예창작과, 응용미술(시각디자인)과가 주로 사용했다. 명동역 1번 출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4] 광덕산 아래 자리하고 있다. 남산캠퍼스의 협소한 부지, 학생 복지 개선 및 4년제 승격을 위해 2001년 이곳으로 이전해 왔다. 중앙역의 부역명이 서울예술대역이다. 하지만 학교까지의 거리는 약2km나 되어 사실상 도보로 이동하기엔 무리가 있다.[5] 2020년 보완평가로 재정지원제한대학 유형해지[6] 중앙에 위치한 건물이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대한민국 최초의 현대식 극장인 '''드라마센터'''. 왼쪽에 보이는 '''심재순관'''과 더불어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드라마센터 뒷편에 위치한 '''예술관'''까지, 20세기 학번들이 사용했던 캠퍼스이다. 현재는 동랑센터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학우들의 제작실습 및 졸업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학교생활은 안산캠퍼스에서 이뤄진다.[7] 천장에 작게나마 보이는 목조 자재는 1962년 개관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사진출처: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위 사진은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에 저작권이 있으며, 재단측에서도 사용출처를 밝혀달라고 하였기에, 사진출처 삭제를 금합니다. [8] 독일의 바우하우스를 오마쥬해 만들어졌다.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각 전공들이 사용하는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구조. 학교의 랜드마크이자 흔히 '''빨간다리'''라고 불리는 도서관(예술정보센터)이 보인다.[9] 서울예전은 과거 서울예술전문대학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아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별칭이다.[10] 동랑은 그의 아호이다.[11] 학교는 공식적으로 1962년도를 드라마센터의 개관과 함께 설립연도로 보고 있다.[12] 컬처혀브(CultureHub)사업으로 'Industrial Application'부문 선정, 국내 예술대학 중 유일.[13] 명목은 이러하나, 타 3년제 전문대학, 전문대학 3년 과정에 준하는 교육과정을 마친 이들도 지원이 가능하다. (4년제 대학 3학년 과정을 마쳤어도 가능하다는 이야기)[14]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학점은행제 과정이 아니라 학교 자체에 설치되어 있는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으로 3년제 전문학사 과정을 마친 이후 학사학위과정에 지원, '''합격'''하면 해당 과정을 이수할 자격이 생긴다. 3년제 전문학사학위를 취득한 후 1년제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을 이수하면 예술학사를 수여 받을 수 있는데 이 경우,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명의의 4년제 학사학위 취득 및 졸업이 가능하다.[15] 다만 원한다고 해서 모두 4년제로 진학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성적이 좋은 일부만 가능하며, 포트폴리오도 굉장히 잘 준비해야 한다. 4년제로 진학가능한 인원은 서울예대가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라 교육부해서 정해준 것이다.[16] 이는 교육부에서 딱 정해준 수이기 때문에 서울예대에서 마음대로 줄이고 늘릴 수 있는 게 아니다.[17] 각종 광고와 내레이션으로 유명하다. MBN 나는 자연인이다가 대표작. 배우 활동도 겸하고 있다.[18] 현재 서라벌예대는 중앙대에 통합되어 그 명성을 잇고 있다.[19] 그렇다고는 하지만 학생들의 주도 하에 많은 변화의 바람이 일어났다. 군기 담당이던 규율부장이 점차 약화되더니 15년도 2학기부터는 아예 사라지는 등, 이제는 최소한 인간관계에서의 예절과 극장에서의 안전 수칙을 제외하면 공적으로 체벌 혹은 기합을 주는 일도 사라졌다. 과거, 이런 구태가 심할 때는 방연과 신입생들이 기합 받고 있으면 연극과에서 "우리가 질 수 없지!"하는 정신 나간 논리로 중앙계단 앞에 신입생 전원을 소집, 보란 듯이 엎드려뻗쳐 시키는 수준이었다. 수십 년간 물려 내려온 인습이자, 더러운 폐단이었다.[20] 사실 전통이라기에는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과거 과복을 단체 구입하는 학과는 연극과(연기과 분과 전), 영화과, 방송연예과(現 방송영상) 정도였기 때문. 과거 해마다 변별력 없던 것을 2009년 안팎에 과별로 지정키로 협의한 것이다.[21] 이 응원구호가 재밌어서 따라하는 타 과생들이 적지 않다. [22] 영화 아카데미 16기 합격자 공개=신한솔(연세대) 권경원(서울대) 부성철(서강대) 봉근웅(연세대) 황태건(서울예대) 박경목(경북대) 이승민(단국대) 하연주(미국 캘리포니아대) 김경란(단국대) 권일순(단국대) 변승현(연세대·이상 연출분야) 임재수(서울과기대) 이종열(중앙대), 최주영(단국대) 최찬민(서울예대) 이형덕(중앙대·이상 촬영분야)[23] 국악과 → 한국음악과[24] KBS1에서 방영하는 <도올아인 오방간다>의 오방신[25] 유영석, 박미경 등이 학교 다닐 때는 실용음악과가 대한민국 어느 대학교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국악과 야간은 현재 실용음악과, 문예창작과 야간은 현재의 극작과였다.[26] 디시인사이드 악기 갤러리나 실용음악 입시생 카페 등으로 가보면 그 위상을 알 수 있다.[27] 드럼인 박가람을 제외한 세 명, 김태현(보컬), 김현우(키보드), 김재흥(베이스)만 해당된다.[28] 슈퍼스타K6에 나왔던 임도혁이다.[29] 기백 대 1에 달하는 경쟁률 탓에 다른 학과가 1-3일간 입시면접을 치르는 것에 비해 보통 일주일 단위로 실기면접을 친다. [30] 생소한 학과라서 대부분 문예창작과와 비슷한 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르다. 극작은 순수 문학이 아니라 드라마, 시나리오, 희곡 같은 극문학을 공부한다.[31] 응용미술과 → 시각디자인과[32] 배병우 교수는 수년전에 강의를 그만두고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으나, 2018년도에 미투사건이 터져 교수직을 내려놨다.[33] 근데 과잠로고는 하얀색이다. 왜죠? 색은 시멘트색이라고 장난삼아 이야기한다.[34] 단, 사진부문은 30%이다[35] 입학금 제외[36] 2013학년도 정시 기준 ▷ 보컬(남자)437:1 보컬(여자)306.5:1 작곡108.3:1 싱어송85.5:1 연주(드럼)92.5:1 연주(베이스)75.3:1 연주(기타)134.7:1 연주(피아노)58.4:1 연주(관악외)10:1 전자음악50.5:1 슈퍼스타K가 멀리 있는게 아니다. 어떻게 해도 경쟁률은 해가 지날수록 계속 올라간다(...)[37] 2009학번까지 수능미반영 전형이 존재하는 과들이 있었다.[38] 경희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가 있다[39] 성균관대학교가 있다.[40] 중앙대학교가 있다[41] 홍익대학교가 있다.[42] 올 때는 고잔주공5단지 정류장에서 하차한 후 역순 다만 시외버스는 별도의 정류장에서 정차한다.[43] 지하철어플로 로 열차 실시간 도착정보를 꼭 확인하길 바란다.[44] 또한, 배차기간이 4호선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실시간 도착정보를 잘 확인하고, 4호선과 혼선해서 타지말 것[45] 이 때는 경찰과 주민들이 도로 통제를 도와주기도(!!) 한다.[46] 2020년 입학식은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영상으로 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