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사자형뚜껑 향로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60호'''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
靑磁 獅子形蓋 香爐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분류'''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청자
'''수량/면적'''
1점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고려시대(12세기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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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3. 기타
4. 바깥고리
5. 국보 제60호


1. 개요


靑磁 獅子形蓋 香爐.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는 12세기 경 고려 공예의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상형(象形) 고려청자 향로로, 향로의 뚜껑에는 사자 모양의 조각이 올라가 있다.[1]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의 출토지 혹은 입수 경위 등의 관련 정보에 대해선 딱히 전해지는 바가 없어 정확한 제작시기 등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본 향로의 제작 수준이 뛰어나고 외형이 아름다워 국보 제65호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와 함께 고려청자의 명품 향로 유물 중 하나로 꼽히며, 12세기 전반의 청자의 유행 양상을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된다.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는 1962년에 국보 제60호로 지정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 내용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는 전체 높이 21.2㎝, 향로 입지름 16.3㎝의 향로로, 아마도 제작 시기는 고려청자 제작 기술이 절정을 이루었던 12세기 무렵일 것으로 추정한다. 본 향로는 전체적으로 고려청자하면 떠오를 특유의 녹청색의 비색과 은은한 광택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향을 피우는 부분인 몸체와 사자가 올라가 있는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급스럽지만 전반적으로 단정하다는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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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사자형뚜껑 향로의 뒷부분. 사자가 한 쪽으로 치우쳐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사자의 입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서, 향로 몸체에 향을 피우고 몸체 위에 뚜껑을 덮으면 화로의 향이 사자의 입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다. 다만, 사자가 뚜껑의 정중앙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약간 좌향에 쏠려 있는데 이와 같은 모습이 된 것은, 유약으로 붙일 때 미끄러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고, 혹은 시각적 변화에서 오는 조형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기도 하며,[2] 또는 향로에 실제로 향을 피웠을 때 그 연기의 방향을 조정하기 위함일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3] 사자의 전체적인 형상은 오른 앞다리를 여의주 같은 구형 물체에 얹은 채로 대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인데, 그 디테일들이 매우 섬세하게 조형되었다. 부릅뜬 사자의 눈과 향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살짝 벌어진 입 안에 있는 이빨들[4], 들창코처럼 상당히 들려 있는 코, 사자의 귀, 턱 밑에 붙어 있는 수염과 목덜미를 덮고 있는 소용돌이치며 곱슬거리는 갈기, 사자의 네 다리와 그 발에 달린 발톱, 그리고 등을 덮고 목덜미까지 치켜 올린 넓고 기다란 꼬리까지 해서 어느 하나 빠진 것이 없다. 이와 같은 사자 형상은 12세기의 청자 조형의 유행 양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사자형은 송나라에서도 극찬받았다고 전한다.[5][6]
향로가 만들어진 단계는 대략 다음과 같다고 추정한다.

1. 향로 뚜껑에 한 단을 만들어 사자를 올린다.

2. 단의 가장자리에는 여의두문, 측면에는 초화문을 음각한다.

3. 향로 몸체의 여백에는 구름문을 음각한다.

향로의 몸체는 단순한 편인데, 여기에는 짐승 얼굴 모양이 조각된 다리 3개가 붙어 있어 발이 3개가 달린 삼족 향로라 할 수 있다. 다리는 음각으로 구름 무늬를 새긴 몸통을 떠받들고 있고, 이 몸통 안에서 향을 피운다. 몸통의 위로는 주둥이가 넓게 벌어진 턱받침이 있는데 여기에도 구름 무늬 5개를 새겨놨다.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에 대해 더 전해지는 자료는 없어 추정이지만,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일대에 있는 고려청자 도요지들[7]에서 본 향로와 같은 상형 향로의 파편이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 도요지들 가운데 하나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청자의 조형 수준이 높은 것으로 보아, 향로의 제작 시기는 고려청자 제작이 전성기를 이루었던 12세기일 것으로 추정한다.[8]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는 유약이 벗겨진 부분이 군데군데 존재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대단히 좋고, 당대 고려의 격조 높은 미적 감각과 절정에 오른 고려의 청자 제작 수준을 보여주는 공예품으로서의 가치를 높게 인정 받아,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60호로 지정되었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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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 보통우표[9]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는 2009년 11월 17일에 발행된 1000원권 보통우표의 도안으로, 2021년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다.

4. 바깥고리



5. 국보 제60호


고려 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향로로, 높이 21.2㎝, 지름 16.3㎝이다. 향을 피우는 부분인 몸체와 사자 모양의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체는 3개의 짐승모양을 한 다리가 떠받치고 있는데, 전면에 구름무늬가 가늘게 새겨져 있다. 몸체 윗면 가장자리에도 세 곳에 구름무늬를 배치하였다.

뚜껑은 대좌에 앉아있는 사자의 형상이며, 대좌에는 꽃무늬를 시문하였다. 사자의 자세는 뚜껑의 왼쪽에 치우쳐 있어 시각적인 변화에서 오는 조형효과를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사자는 입을 벌린 채 한쪽 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 앞을 보고있는 자세이며, 두 눈에 검은 점을 찍어서 눈동자를 표현했다. 사자의 목 뒤쪽과 엉덩이 부분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털이 표현되었고, 꼬리는 위로 치켜올려 등에 붙인 모습을 하고 있다.

유약의 색은 엷은 녹청색으로 광택이 은은하다. 구조적으로 보면 몸체에서 피워진 향의 연기가 사자의 몸을 통하여 벌려진 입으로 내뿜도록 되어있는데, 아름답고 단정하여 이 시기 청자향로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12세기 전반기에 비취색의 청자가 절정에 달하였을 때 이와 같이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본뜬 상형청자가 많이 만들어졌다. 특별히 사자향로는 중국 송나라 사람들이 극찬을 하였을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다.


[1] 다만, 여기서 묘사하는 사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실제 사자와는 다른 모습인데, 불교의 영향을 받은 사자의 형상이다. 이는 불교 경전을 통해서 사자의 존재는 전래됐지만, 호랑이와는 달리 한반도에 사자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사자의 모습을 구현한 것이다.[2] 출처 : 두산백과 -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3] 출처 : 유홍준(2014): 유홍준의 국보순례. (주)눌와. p.112-114[4] 윗니, 아랫니, 송곳니까지 만들어놨다.[5]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6] 북송사신 서긍(徐兢)이 저술한 고려도경에서는 사자 향로를 들면서 '최정절(最精絶)'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출처 : 두산백과 -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7] 陶窯址=요지 또는 가마터[8]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9] 2009년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