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커스
チェッカーズ(THE CHECKERS)
1983년부터 1992년까지 활동한 일본의 남성 7인조 락/보이밴드로 후쿠오카 현 구루메 시에서 결성하였다.
일본에서 신인 시절부터 인기가 장난 아니여서 일본의 비틀즈로 불리기도 한다.[1]
1983년에 발매한 첫 싱글 '꺼끌꺼끌한 마음의 자장가(ギザギザハートの子守唄)'는 발매 당시 큰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다.[2] 그러나 1984년 1월에 발매한 '눈물의 리퀘스트(涙のリクエスト)'[3] 가 무섭게 인기몰이를 하며 주간 오리콘 차트 2위, 동년 연간 오리콘 차트에서는 4위, TBS 더 베스트 텐에서는 무려 '''7주 연속 1위'''[4] 에 연간 랭킹 '''2위'''를 기록했다.[5] 그러자 데뷔 싱글이 주간 오리콘 차트 8위, 연간 오리콘 차트 20위, 더 베스트 텐에서는 5위를 기록하는 등 역주행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전세역전한 체커스는 이를 기회로 삼아 더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1984년 5월에 발매한 '슬퍼서 질투'(哀しくてジェラシー[6] )는 주간 오리콘 차트에서 첫 1위에 66.2만장이 팔렸고, 동년 9월에 발매한 '별빛의 스테이지(星屑のステージ)'는 60.4만장, 11월에 발매한 '줄리아의 상심(ジュリアに傷心[7] )'은 역대 최다 판매량인 70.3만장을 기록하고 더 베스트 텐 통산 8주 1위를 기록했다. 더 베스트 텐의 경우, 1984년도에 22주[8] , 1985년도에 16주[9] 1위 기록을 세웠고, 계속해서 오리콘 주간 차트 1위의 기록을 세우는 등 일본내에서 비틀즈에 맞먹는 인기를 자랑했다. 일본 남자 아이돌 시장의 절대강자인 쟈니스 사무소가 긴장했을 정도였고, 실제로 1984년과 1985년에는 쟈니스 아이돌의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김부용의 원 히트 원더가 될뻔한 <풍요속의 빈곤>이 본 밴드의 노래 [Jim&Janeの伝説] 를 표절했다고 한다. 이후 줄리아에 상심이라는 노래는 컨츄리꼬꼬가 <Oh, My Julia>라는 제목으로 정식 번안하기도 하였다.
1. 개요
1983년부터 1992년까지 활동한 일본의 남성 7인조 락/보이밴드로 후쿠오카 현 구루메 시에서 결성하였다.
일본에서 신인 시절부터 인기가 장난 아니여서 일본의 비틀즈로 불리기도 한다.[1]
2. 역사
2.1. 예상 외로 뜨는 따끈한 신인, 체커스
1983년에 발매한 첫 싱글 '꺼끌꺼끌한 마음의 자장가(ギザギザハートの子守唄)'는 발매 당시 큰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다.[2] 그러나 1984년 1월에 발매한 '눈물의 리퀘스트(涙のリクエスト)'[3] 가 무섭게 인기몰이를 하며 주간 오리콘 차트 2위, 동년 연간 오리콘 차트에서는 4위, TBS 더 베스트 텐에서는 무려 '''7주 연속 1위'''[4] 에 연간 랭킹 '''2위'''를 기록했다.[5] 그러자 데뷔 싱글이 주간 오리콘 차트 8위, 연간 오리콘 차트 20위, 더 베스트 텐에서는 5위를 기록하는 등 역주행을 시작했다.
2.2. 일본의 비틀즈, 체커스
순식간에 전세역전한 체커스는 이를 기회로 삼아 더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1984년 5월에 발매한 '슬퍼서 질투'(哀しくてジェラシー[6] )는 주간 오리콘 차트에서 첫 1위에 66.2만장이 팔렸고, 동년 9월에 발매한 '별빛의 스테이지(星屑のステージ)'는 60.4만장, 11월에 발매한 '줄리아의 상심(ジュリアに傷心[7] )'은 역대 최다 판매량인 70.3만장을 기록하고 더 베스트 텐 통산 8주 1위를 기록했다. 더 베스트 텐의 경우, 1984년도에 22주[8] , 1985년도에 16주[9] 1위 기록을 세웠고, 계속해서 오리콘 주간 차트 1위의 기록을 세우는 등 일본내에서 비틀즈에 맞먹는 인기를 자랑했다. 일본 남자 아이돌 시장의 절대강자인 쟈니스 사무소가 긴장했을 정도였고, 실제로 1984년과 1985년에는 쟈니스 아이돌의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3. 체커스의 구성원
- 후지이 후미야(藤井郁弥[10] ) : 리드보컬, 1962년 7월 11일생.
- 타케우치 토오루(武内享) : 기타 파트이자 리더, 1962년 7월 21일생.
- 타카모쿠 요시히코(高杢禎彦) : 사이드 보컬(주로 저음담당), 1962년 9월 9일생.
- 오오토이 류지(大土井裕二) : 베이스 담당이자 서브 리더, 1962년 11월 2일생.
- 츠루쿠 마사하루(鶴久政治) : 키보드 담당이자 사이드 보컬, 1964년 3월 31일생.
- 토쿠나가 요시야(徳永善也) : 드럼 담당, 1964년 6월 7일생, 2004년 8월 17일에 암으로 사망, 향년 40세.
- 후지이 나오유키(藤井尚之) : 색소폰 담당, 1964년 12월 27일생. 후지이 후미야의 동생
4. 90년대 한국 가요와의 연관성
김부용의 원 히트 원더가 될뻔한 <풍요속의 빈곤>이 본 밴드의 노래 [Jim&Janeの伝説] 를 표절했다고 한다. 이후 줄리아에 상심이라는 노래는 컨츄리꼬꼬가 <Oh, My Julia>라는 제목으로 정식 번안하기도 하였다.
[1] 이게 어느정도 였냐면 오리콘 1위 여러번 찍은건 기본에 체커스 멤버들을 주연으로 한 영화도 몆 편 나왔을 뿐더러 아이돌 최초로 도쿄돔 공연 까지 했을정도다. 1992년 해산할때까지 꾸준한 인기를 얻었고 해산 후 리더였던 후지이 후미야는 솔로 데뷔해서 여러 히트곡들을('''싱글곡들 중 'TRUE LOVE'는 더블 밀리언이다.''') 냈다. 그리고 체커스가 워낙 잘나가서인지 일본 굴지의 남자아이돌 기획사인 쟈니스는 위기 의식까지 느꼈었고 체커스 해산 후 쟈니스는 타 소속사 남자 아이돌 그룹이 뮤직 스테이션등 음악 프로에 출연하는걸 견제시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2] 훗날 진나이 토모노리의 원맨쇼 개그에서 등장하게 된다.[3] 이때 작가진이 나카모리 아키나의 '''少女A'''의 작가진이다!![4] 당시 더 베스트 텐이 가진 파급력은 웬만한 음악 프로그램 이상이었기 때문에 베스트 텐 1위는 곧 정상에 올랐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다.[5] 더 베스트 텐 연간 랭킹은 빌보드처럼 순위에 진입한 모든 곡의 통산 득점을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히트한 노래보다 엔카처럼 오랜 기간 순위권에 있는 곡들이 유리했는데, 연간 2위라는 건 그만큼 오랜 시간 사랑 받았다는 의미.[6] ジェラシー. 즉, jealousy는 질투를 의미한다.[7] 여기서 傷心은 영어 Heartbreak로 읽는다.[8] 3월 5주~5월 2주(7주 연속), 5월 5주~6월 4주(5주 연속), 9월 3주~11월 1주(7주 연속), 12월 1주, 12월 3주~4주(2주 연속).[9] 1월 2주~2월 1주(5주 연속), 4월 3주~5월 4주(6주 연속), 7월 4주~8월 3주(4주 연속), 11월 4주.[10] 지금은 후미야 부분만 가타카나로 바꿔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