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축구인)/선수 경력

 



1. 개요
2. 클럽


1. 개요


축구선수 최강희(축구인) 시절이 주제인 문서다.

2. 클럽



2.1. 프로 출범 이전


대학으로 곧바로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실업리그 한일은행 축구단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병역의 의무로 지금의 상무역할의 육군 축구단에 입대한다.

2.2. 포항제철 아톰즈 (1983)


1983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임대로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포항에서는 부상으로 3경기 출장으로 그치고 만다.

2.3. 현대 호랑이/울산 현대 호랑이 (1984~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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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현대 호랑이 창단멤버
포항에서 1시즌을 보내고 이듬해 1984년 현대자동차에서 태동한 현대 호랑이로 이적하며 창단멤버가 되었다.
최강희는 현대 호랑이의 주장을 역임하기도 하였으며 1991년 은퇴 할때까지 현대 호랑이에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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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로얄즈 선수와 경합을 하고 있다.
선수 시절에 강인한 체력으로 필드를 누비던 그는 이른바 스태미나의 화신으로 추앙을 받았다. 예를 들어 지금의 전북현대 최철순 선수와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뛰어난 활약으로 1985년 아디다스컵을 우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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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수상으로는 1986년 프로축구선수권대회[1] MVP를 받았고[2], 1985년, 1986년 1988년 수비수로서 3차례 베스트일레븐, 1991년에 미드필더로서 1차례 베스트일레븐을 지내며 총 4차례 베스트일레븐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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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현대 선수시절
1991년 현대 호랑이의 감독으로 취임한 차범근과 갈등을 빚은 끝에 1992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3]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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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서울올림픽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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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카타르아시안컵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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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한일정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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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90년 월드컵 대표로 소개되는 최강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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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멤버들이 이회택 감독에게 전술지시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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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에서 훈련중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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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 황선홍 선수의 골을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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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에서 이탈리아로 출국하는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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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월드컵 벨기에전 선발 라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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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전, 헤딩 클리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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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월드컵 스페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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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선수와 수비벽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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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관 선수의 골에 기뻐하고 있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뛰었다.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7세이던 1986년에 리그컵 격인 프로축구선수권대회 MVP로 선정되고, 28세이던 1987년에 1988 서울 올림픽 대표 선수로 선발되면서부터였다. 이후 1989년 한일정기전등 꾸준히 대표팀에 선발되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어 월드컵 조별예선 3경기에 모두 풀타임 출장했다.

[1] 리그컵에 해당하는 대회[2] 이전에는 K리그 최초의 수비수 MVP라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리그컵에 해당하는 프로축구선수권대회의 MVP였고, 리그 MVP는 이흥실 단독수상이었다. 이는, 당시 신문기사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여러 사이트에서 프로축구선수권대회와 당시 K리그의 명칭이었던 축구대제전을 혼동하여 공동 MVP로 오기하였다.[3] 독일식 선수단 관리시스템을 적용하려는 차범근 감독과 갈등이 생겨 일찍 현역생활을 마감했다고 한다. 최근까지 서로 감정이 담긴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2015년 K리그 올스타전에서 차두리 선수가 강력하게 의지를 피력하며 팀최강희의 선수가 되고, 최강희 감독의 어깨를 주무르며 팀최강희 주장이 되는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아버지 세대의 앙금을 어느정도 봉합하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