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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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최영돈은 1897년 1월 16일 경상북도 고령군 안림면(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향리에서 수학한 후 대구부로 유학하여 계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김천군 소재 진명학교의 교사로 재직했다. 그러다가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3.1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김태연(金泰淵)·허철(許喆)·김종수(金琮洙) 등과 은창서(殷昌瑞)의 집에서 만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그들은 1919년 3월 24일 오후 4시 기독교도들과 함께 김천군 개령면 동부동 마을 근처의 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4월 15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태형 90대를 받았다.
1921년 2월, 최영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공채 모집에 호응하여 활동하다가, 동지 이현수(李賢壽)가 1923년 1월 9일 자수하여 그 사실이 밝혀지면서 1월 24일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다시 체포되었지만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공소 유예되었다.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지속했다고 하나 이에 관련한 기록은 미비해서 알 수 없다.
8.15 광복 후 고령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5년 2월 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최영돈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