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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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공산주의자. 한국의 항일운동가.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최영춘은 1904년생으로 알려졌지만 출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그는 1923년경 용정 대성학교를 졸업한 후 북만주 일대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전개하다 귀국했다. 1928년 8월경 조선의 독립과 신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재건의 사명을 띠고 소련으로부터 파견된 고광수와 함께 함남 북청(北靑)에서 활동하였다.
1929년 11월 하순경 박원병(朴元秉)·이의종(李義鍾)과 더불어 당의 재조직을 협의하고, 1930년 2월 원산(元山)에서 전선대회(全鮮大會)를 개최하기로 하고 각각 담당구역을 정하였다. 1930년 6월 29일 함주군 흥남읍(興南邑)에서 진형수(陳炯洙)·이문홍(李文弘) 등과 조선공산당 조직준비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조선운동에 대한 모든 방침을 검토하여, 기존의 공청조직을 해산하고 20세 이상을 당원으로 편입시켜 활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이후 함남지역에서 당 재건 준비조직인 조선공산당 함남간부기관을 결성하였다. 책임비서 강진, 조직부 최영춘, 선전부 이문홍으로 결정하였다. 이들은 흥남조선질소비료회사(興南朝鮮窒素肥料會社)내에 세포를 조직하였다. 이후 최영춘은 ‘ml당 공판에 대한 감상’과 신흥(新興) 장풍탄광동맹(長豊炭鑛同盟) 파업사건에 대한 격문을 작성하여 함남 일대에 배포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후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기다렸다. 동아일보 1931년 4월 23일과 25일자 기사에 따르면, 그는 도중에 급성폐렴으로 보석(保釋)되어 고향에서 치료 중 1931년 2월 23일 오후 8시경 고향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3. 기타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최영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