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대

 


※ 두 사람 모두 한자 이름이 '''崔孝大''' 이며 경상북도 울진군 출신의 강릉 최씨 종원이다.
1.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독립운동가
2. 대통령표창이 추서된 독립운동가


1.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독립운동가


[image]
성명
최효대(崔孝大)
일본식 성명
武山孝大
이명
최충순(崔忠淳)
본관
강릉 최씨#
생몰
1907년 4월 27일 ~ 1979년 3월 20일[1]
출생지
강원도 울진군 원남면 금답동
(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최효대는 1907년 4월 27일 강원도 울진군 원남면 금답동(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에서 최현한(崔鉉漢)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27년 3월 울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 원남면 지도원, 사방공사(砂防工事) 지도원으로 근무했다.
1938년 4월 12일 그는 임시헌·남원수·노하순·전찬문(田燦文)·장세전 등 울진지역 인사들과 준향계(準香契)를 조직하였다. 준향계는 '계' 모임으로 위장되었으나 실제는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하여 소규모의 조직으로 운영되었다. 최효대는 당시 계원 중에서 가장 연장자였으므로 계장(契長)의 직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계의 결성 이후 그들은 여섯 차례의 회합을 가지면서 이두연·주영석·주예득(朱禮得) 등 새로운 사람들을 참여시켜 조직을 강화하는 한편 반일 선전활동을 확대해 나갔다. 그러다가 준향계는 1943년 3월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조직이 와해되었는데 이때 그도 검거되었다.
1944년 7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공소가 기각되었으며,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해 10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옥고를 치르던 중 8.15 광복을 맞아 석방되었다.
이후 평범하게 지내다가 1979년 3월 20일 별세하였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2. 대통령표창이 추서된 독립운동가


성명
최효대(崔孝大)
본관
강릉 최씨
생몰
1892년 12월 28일 ~ 1952년 2월 15일
출생지
강원도 울진현 원남면 최촌
(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 최촌)[2]
추서
대통령표창
최효대는 1892년 12월 28일 강원도 울진현 원남면 최촌(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 최촌)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1일 울진군 원남면 장날에 남광호·최현탁(崔鉉卓)·윤병관(尹炳寬)·최중모(崔重模)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여 최중모(崔重模)·남재량 등과 함께 매화리 장터에서 100여명의 시위군중을 모아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해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울진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개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52년 2월 15일 별세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 1916년 4월 27일에 태어나 1978년 6월 21일 별세했다는 기록도 있다.#[2] 강릉 최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최중모최황순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