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규영
1. 개요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동래 장터 3·1 운동을 주도하였다. 198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추경석 전 장관이 그의 자녀이다.
2. 생애
1901년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現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동래고등보통학교(現 동래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동래 장터 3·1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899년 3월 7일 4학년 재학생 김귀룡·엄진영·고영건 등이 수학교사 이환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추규영은 동급생인 서진랭·손영수·김기삼(1901)·정호종 등과 함께 의거에 참여하였다. 추규영은 3월 11일부터 13일 새벽에 걸쳐 고영건이 하숙 중이던 이한주(李漢周)의 집에서 500여 매의 독립선언서,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대형독립기 2개, 태극기 수백 본과 ‘오왕약살(吾王藥殺)’이라고 쓴 격문 수백 매를 제작하였다.
거사일인 3월 13일 오후 2시, 엄진영이 동래군청 정문(망미루)에 올라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를 신호로 추규영과 다른 주동 학생들은 만세를 부르고 행진하며,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격문을 군중에 배부하였다. 그러나 일본군과 기마경찰의 야만적인 발포로 시위는 중단되었고, 추규영은 동료 학생 23명과 함께 체포되어 부산감옥소에 투옥되었다. 이후,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1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77년 3월 24일에 사망하였다.
1986년 대통령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