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고등학교

 



'''동래고등학교''' 東萊高等學校
'''DONGNAE HIGH SCHOOL'''
[image]
'''교훈'''
힘기르고 뭉쳐서 내일의 일꾼 되자
<colbgcolor=#057cb5>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개교'''
1898년 9월 1일
'''소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285번길 22 (칠산동)
'''교장'''
제 30대 진병화
'''성별'''
남자고등학교
'''학생 수'''
867명 (2019년 8월 5일 기준)
'''교직원 수'''
71명[1](2019년 8월 5일 기준)
'''운영형태'''
공립
'''교조'''
까치
'''교목'''
소나무
'''교화'''
국화
'''웹 사이트'''

[image]

''''달려온 100년! 빛내는 100년!''''

'''동고 정신'''

1. 개요
2. 역사
2.1. 연혁
3. 학교 상징
3.1. 교표
3.2. 교목, 교화, 교조
3.4. 동고야
4. 특징
4.1. 교복
4.2. 위치
4.3. 장학금
5. 운동부
5.1. 축구부
5.2. 테니스부
5.3.
7. 학교 생활
7.1. 일과
7.2. 학교 규정
7.3. 등/하교 시간
7.4. 면학 분위기
7.5. 동래고에서의 1년
7.5.1. 3월
7.5.2. 4월
7.5.3. 5월
7.5.4. 6월
7.5.5. 7월
7.5.6. 8월
7.5.7. 9월
7.5.8. 10월
7.5.9. 11월
7.5.10. 12월
8. 출신 인물
9. 사건사고
10.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10.1. 버스
10.2. 지하철
11. 여담
12. 관련 문서


1. 개요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에 있는 공립 일반계 고등학교이다.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시행 전에는 경남고등학교, 부산고등학교와 더불어 3대 명문 공립 남고였다.

2. 역사


1898년 9월 공립 동래부학교로 설립되었으며, 1916년 10월 5일 사립 동래고등보통학교로 개칭되었다. 1922년 4월 24일 관립 동래고등보통학교로 개칭되었으며, 1923년 4월 2일 현 교지로 이전하였다. 1925년 4월 1일 동래 공립 고등보통학교로 개칭되었으며, 1938년 4월 1일 동래 공립 중학교로 개칭되었다. 1951년 9월 1일 중, 고등학교로 분리되었으며, 동래고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2019년 현재 설립일 기준 121년이나 되는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121년의 역사를 자랑한다고 하지만, 2019학년도 신입생은 98회인데, 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사립에서 관립으로 바뀐 입학생부터 동래고의 동문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2.1. 연혁


[image]
2020년 2월 11일 제96회 졸업생(324명)을 배출했으며 졸업생 누계인원은 36,509명이다. 같은해 4월 16일 제99회 238명이 입학했다.

3. 학교 상징



3.1. 교표


[image]
교표는 벌로 부지런하게 일하자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교표가 생각보다 많은곳에 쓰이는데 교기에도 벌이 들어가며 교복에도 벌 표식을 달야야 하며
매점에서는 벌 뱃지를 판매하고 원한다면 이 뱃지를 사서
교복에 달고 다닐 수 있다.

3.2. 교목, 교화, 교조


1. 교목: 소나무로 강인한 의지와 씩씩한 기상을 상징하며, 국가의 유능한 인재인 동량 양성을 의미한다.
2. 교화: 국화이다. 격정과 고통을 견디어 낸 성숙한 인간의 인고와,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를 상징한다.
3. 교조: 까치이다. 반가운 소식을 알려 주는 길조로, 은혜를 아는 의로운 삶의 자세와 좋은 인연을 맺어 주는 다리를 상징한다.

3.3. 교가


1절
푸른 하늘 은하수 파도 소리에
씩씩하게 자라는 남쪽의 아들
열어라 눈부신 지혜의 등창
맹세하여 빛내리 동중의 전통
-
2절
아침 안개 저녁비 모진 바람에
참을 찾아 달구는 영원의 젊음
불러라 벅차는 영광의 노래
날 기르는 요람터 망월의 언덕
-
'''-1948년 이주홍 작사 박용식 작곡'''
1절
태백산의 정기를 받아 우리기상 이루어지고
동해바다 거친 파도에 사나이의 뜻이 자란다
받으리라 화랑의 정신 비취리라 이겨레의 앞길을
우리들은 조국의 아들 배달 혼의 계승자일세
망월대 아래 모인 우리 학우 시련에 이겨서
나아가자 배움의 길 한걸음 또 한걸음
동고 동고 우뚝하다 그 전통
동고 동고 빛내어라 그 이름
-
2절
우렁차게 노래 부르자 젊은 피의 뛰노는 가슴
양양하다 우리의 앞길 샘솟는 우리의 희망
잊을쏘냐 청춘의 큰 뜻 저 하늘에 아로새긴 맹세를
우리들은 세기의 아들 새 역사의 창조자로세
망월대 아래 모인 우리 학우 시련에 이겨서
나아가자 배움의 길 한걸음 또 한걸음
동고 동고 우뚝하다 그 전통
동고 동고 빛내어라 그 이름
-
'''-1952년 김소운 작사 김동진 작곡'''
1절
우람히 굽이쳐온 아세아의 거창한 얼이
여기 장산 기름진 벌끝 그 염원을 이루었나니,
갸륵할 손 어진 겨레의 슬기받아 일어선자 동고는
정의와 인도의 횃불 우렁차게 솟쳐올렸네.
망월대 위에 걸린 하늘 휘영청 푸르고,
사나이의 벅찬 뜻은 멀고도 높거니
동고, 동고, 거룩하다 그 이름,
동고, 동고, 빛내리라 영원히
-
2절
창망히 굴러넘는 태평양의 짙푸른 꿈이,
여기 동해 드맑은 변죽 그 보람을 거두었나니,
갸륵할 손 젊은 세기를 주름잡아 가꿔낼 자 동고는
자유와 평화의 깃발 눈부시게 치켜올렸네.
망월대 위에 걸린 하늘 휘영청 푸르고,
사나이의 벅찬 뜻은 멀고도 높거니
동고, 동고, 거룩하다 그 이름,
동고, 동고, 빛내리라 영원히
-
'''-1960년 유치환 작사 김동진 작곡'''
해방되고 3년 후인 1948년, 한국어로 된 교가가 처음 탄생하게 되었는데, 동래고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이던[2] 이주홍선생[3]이 작사하였고, 경남상고의 음악교사로 재직중이던 박용식선생이 작곡하였으며, 성악가 정복갑이 강당에서 발표회를 가진 후 3년간 불리게 되었다.
이후, 좌익단체에 연루된 박용식 작곡가로 인해 1952년, 수필가인 김소운이 작사하고 김동진이 작곡한 새 교가로 바뀌게 되었다.
현재의 교가는 작사가 김소운필화사건에 연루되면서[4] 새로운 교가 제정을 요구 받았으며, 청마 유치환 선생이 1960년 작사를 요청받고 이에 가사를 바꾸게 되면서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다.[5](동래고등학교 재경총동창회)

학교 행사를 포함하여, 대부분 1절만 부르고 2절을 부르는 경우는 드물다. 후렴 부분이 다소 높다.
신입생 OT에서 다음에 후술할 응원가와 함께 필수로 외워야 한다.[6]
하지만 주요 행사를 제외하고는 교가를 부를 일이 거의 없다. 동고야를 더 자주 부른다.

3.4. 동고야


(전체 차렷 동고야 준비) 어이

(동고야 준비됐나?)) 됐다 (됐나?) 됐다 (됐나?) 됐다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시작!)

"태백산과 동해수의 젊은 정기 망월대에 모인 세기의 왕자"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붉은 피는 이 가슴에 불타 오고 의기 충천 우리 용사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동고 넋에 당할자 그 누구냐 랄라" (랄라) 랄라 (랄라) 랄라 (아싸랄라) 랄라

"힘쓰자 우리 동고 백전백승 야!"
(~)는 선창, 나머지는 후창이다. "~"는 가사, 나머지는 후렴구라 보면 된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학교 운동선수들이 한국말로 된 응원가가 필요하다고 요청하여 부산진 청년회의 노래 가사를 바꾸고 미국 딕시랜드의 곡을 편곡하여 만든것이 학교 운동가 NO1. "동고야"이다. 최초의 동고야를 들어보면 현재의 동고야와 살짝 다른것을 느낄 수 있다.
교가보다 더 자주 부른다. 동래고등학교의 응원가이다. 교내 행사가 있거나 수련회, 수학 여행, 수능 응원 등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사실 노래라고 하긴 뭐하지만 아무튼 많이 부른다. 입학전 OT에서 교가와 함께 반드시 외워야하는 요소였다. 2019년 기준 교가는 OT에서 군봉관(체육관)에 불러모아 연습시킨다.[7]선창자는 절대로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생목으로 선창을 해야하기 때문에 보통 한번 하고 나면 목이 나가곤 한다. 반장은 2주 동안 매일 점심, 저녁시간에 학생회실이나 군봉관 뒤에서 후창과 선창 연습을 한다. 가끔 학교 행사에 선배가 오면 같이 따라해주곤 한다. 1학년 수련회는 지리산으로 가는데 산 정상에서 반장들끼리 동고야를 부르는 것도 전통이라 카더라.
매 기수마다 템포가 다르다. 점점 빨라지는 기수들이 있는 반면 느려질 때도 있다. 동고의날에 강당에서 동고야를 하면 재학생들의 동고야 템포와 졸업생 선배님들의 템포가 다른것을 볼 수 있다.
템포가 극단적으로 빨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수능응원날이다. 수험생을 길게 붙잡아둘수도 없고 춥고 힘들기 때문에 빨리 하고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작용해서 그렇다.

4. 특징



4.1. 교복


2019년 기준 동복은 스쿨룩스에서 하복은 런던베이직에서 공동구매를 진행했다.
동복은 푸른색 와이셔츠에 낵타이와 조끼가 있으며 재킷은 짙은 그레이색 컬러의 4버튼 스타일이다.
하복은 흰색 와이셔츠[8]에 검은색 바지를 입는데, 반바지와 긴바지중 선택이다.[9]
동복의 푸른 와이셔츠 때문인지 다른학교 학생들이 버스 운전기사, 경찰복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4.2. 위치


대부분 산 중턱에 위치한 타 부산 시내 학교들과 달리 평지 대로변 사이 골목에 학교가 위치해 접근성이 상당히 좋다. 학교 앞 30초 거리에 부산 도시철도 4호선 낙민역과 버스 정류장이 존재한다.[10] 더 밑으로 걸어내려가면 동해선 광역전철 동래역이 위치해 있다. 단 충렬대로의 특성 상 교문이 충렬대로 바로 앞쪽으로 나 있지 않고 옆 골목길인 충렬대로285번길에 있기에 조금 둘러와야 한다.[11] 따라서 충렬대로 연선 낙민역 3번 출구 부근에 사람만 통행할 수 있는 작은 쪽문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는 학생들이 많은 듯 하다.

4.3. 장학금


학교알리미 기준 374,517,080원인데 이는 타 일반고에 비해 월등히 많은 금액이다. 그 이유로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학교이기에 동창회의 지원이 많기 때문이다.

5. 운동부



5.1. 축구부


김호, 김호곤, 최용수, 윤성효 등을 배출한 축구부는 1912년 만들어져, 지금껏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지역 명문 축구부이기도 하며 개성고등학교, 부경고등학교와 함께 부산 3대 고교 축구부로 잘 알려져 있다.
근래 동래고 축구부 출신에는 올림픽 대표팀 골키퍼 이창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뛰었던 부산 아이파크의 공격수 이정협 등이 있다.
다만 이 둘은 부산 아이파크와 유스 계약을 맺던 시절 배출한 선수이며, 유스 계약을 해지한 뒤, 다시 학원 축구 체제로 전환된 요 근래에 들어서는 다소 전국대회 성적이 저조한편.
2015년, 당시 3학년에 재학중이던 이래준이 자유신인선발을 통해 포항 스틸러스와 프로 계약을 맺으며 다시금 K리그 프로선수를 배출하는데 성공했다.

5.2. 테니스부


1981년 대만국제주니어선수권대회(18세부) 남고부 3위 (구자열)

'''1995년 홍콩국제주니어선수권대회(18세부) 남고부 우승 (김동현)'''

2009년 호주오픈국제주니어대회 남고부 8강 (정석영)

2010년 태국국제써키트대회 남고부 준우승 (정석영)

1958년에 부산에서 최초로 창단된 고교 테니스부인 동래고등학교 테니스부는 부산의 전통적인 남자 테니스의 명문으로 전국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부산에서 가장 높은 국제대회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는 동래고등학교의 아성에 도전하는 사립학교 남자 테니스부가 여러개 존재했으나 사립학교 테니스부들이 재정난으로 해체 크리를 당하는 와중에서도, 동래고등학교의 테니스부는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꾸준히 롱런하면서 2015년 현재도 남산고등학교 여자 테니스부와 더불어 부산 고교 테니스의 양대산맥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 외에 뿌리가 같은 중학교인 동래중학교 역시도 남자 테니스부를 운영하고 있는 부산 대표 테니스 명문으로[12], 부산의 남자 테니스에서 동래중→동래고 테크트리는 정석으로 자리잡고 있다.

5.3.


롯데 자이언츠의 심장과도 같은 박정태, 롯데 자이언츠한화 이글스 등을 거친 문동환 그리고 롯데 암흑기 시절을 지탱했던 박지철 등 쟁쟁한 선수들을 배출하기도 한 야구부가 존재했지만 1998년 IMF가 터진후 해체가 선언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동래고등학교 야구부 항목으로.

6. 학교 시설


1964년에 학교 건물[13]에 큰 화재가 나 1966년(1차), 1968년(2차)에 학교 건물을 재건축했는데 그 이후로 쭉 쓰고 있다. 중간에 본 학교 건물과 이어지는 신관을 짓기는 하였으나 학교 시설은 타 학교에 비해 많이 노후하다. 그러나 학교에 건물이 5개[14]나 되며, FIFA 규격 축구장과 4개의 테니스 코트로 인해 학교 부지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자세한 내용은 동래고등학교/시설문서 참고

7. 학교 생활



7.1. 일과


'''시간표'''
'''등교'''[15][16]
~08:10
'''자습/조례'''
08:10~08:40
'''1교시'''
08:40~09:30
'''2교시'''
09:40~10:30
'''3교시'''
10:40~11:30
'''4교시'''
11:40~12:30
'''점심시간'''
12:30~13:30
'''5교시'''
13:30~14:20
'''청소'''
14:20~14:40
'''6교시'''
14:40~15:30
'''7교시'''
15:40~16:30
'''보충수업[17][18](자율)'''
16:40~17:40
'''석식시간'''
17:40~18:40
'''야자1차시(자율)'''
18:40~19:50
'''야자2차시(자율[19])'''
20:00~21:00
'''야자3차시(자율[20])'''
21:10~22:00
'''추가 자율학습(자율[21])'''
22:10~23:00

7.2. 학교 규정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학교인지라 반삭(통칭 달머리)을 강제해 왔으나, 09년 교칙 개정을 통해 두발 길이에 대한 규제는 비교적 자유로워진 편이다. 다만 염색, 파마 등이 자유롭게 허용된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며 오직 길이만 비교적 자유로워진 것이다.
교내에서 휴대전화를 비롯한 각종 전자기기는 소지가 가능하다. 단 수업시간, 보충시간, 야쟈시간에는 전원을 종료한채 보관해야되며 이를 어길시 벌점이 가차없이 부여된다.[22] 보충과 야간자율학습시간에 인터넷 강의를 위한 목적으로 전자기기를 활용할 수 있고 반드시 이어폰을 사용해야 한다. 또한 야자시간에 음악을 듣는 것 까지는 허용이 된다고 한다.

7.3. 등/하교 시간


등교 시간은 오전 8시 10분까지이며[23] 등교하고 중앙현관으로 들어오면 등교체크기가 있는데 여기에 학생증을 찍는 시간을 기준으로 지각을 체크한다. 학생증을 들고오지 않았다면 수동으로 학번 입력하고 출석을 체크할 수 있다. 2019년 기준 8:10 이후 등교시 1차지각 8:30분 이후 등교시 2차지각으로 분류한다. 1차지각은 벌점이 없으며 부모님께 메시지가 가며 담임선생님이 확인이 가능하다. 2차지각은 가차없이 벌점이 부여되니 주의하여 빨리 집에서 나오자. 생각보다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에서 동래고등학교까지 거리가 꽤 있다 [24]
학생증만 리더기에 체크하면 지각처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빨리오거나 기숙사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해 학생증을 대신 찍어주는 행위가 있었는지, 학생증 부정사용시 벌점이 매우 강력하니 주의하자.
하교시간은 4시 30분 부터 보충과 야자를 선택 안한 사람이 하교한다. 방과후만 신청한 학생은 5시 40분[25] 야자를 신청한 사람은 9:00[26]에 하교할 수 있다.

7.4. 면학 분위기


면학 분위기가 저해된 부산 시내 타 고등학교에 비하면 부산에서 우수한 학군으로 평가받는 4학군 소속 덕택에 그래도 분위기가 괜찮은 편이긴하나, 15학년 입학생 기준으로 야간자율학습 참여 여부도 본인 선택이기 때문에[27] 예전의 동래고 이미지와 달리 많이 자유로워졌다. 여름, 겨울 방학 보충수업도 본인 선택에 12시30분이면 마친다. 정확히 말하면 공부 하는 학생과 안하는 학생의 구분이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고로 상위권과 하위권의 성적 편차도 큰 편. 그렇지만 상위권 학생들의 분투로 매년 꾸준히 서울대학교 입학생을 4~5명씩 배출하고 있다.

7.5. 동래고에서의 1년


2014년까지는 입학 경쟁률이 '''20~30:1'''을 상회할 정도로 특목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산시내 중학생들이 상당히 선호하는 학교임을 알 수 있다.[28] 지옥의 OT를 끝내고 입학식을 치룬 신입생들은 반에 들어오는 교사들마다 수시로 대학가야한다고 말하면서 내신성적을 강조한다는 걸 알아 챌 것이다. 하지만 같은 학군 내의 다른 국·공립고등학교들(금정고, 충렬고, 내성고, 사직고, 부산사대부고 등)보다 내신 경쟁이 심해서 수시로 대학가기가 힘들 수도 있어서 현재는 예전보다는 선호도가 많이 줄었다. 실제로 주변 공립 고등학교들보다 학생들에게 더 많은 스펙을 쌓도록 대회나 자율동아리 등에 참여하라고 권한다.

7.5.1. 3월


신입생들이 입학하기 직전 2학년들은 3.1절 기념행사에 동원되어 동래여고 학생들과 함께 한복을 입고 동래시장에서 행진하며 '''대한독립 만세''' 하며 만세 삼창을 한다. 이는 꽤 지역 이슈라 당일 KNN 뉴스에서 매년 이에 대해 보도한다. 입학식 당일 신입생들은 본관 옆 공원에 있는 항일운동기념탑에 묵념하고 후관 1층에 위치한 역사관을 둘러보게된다. 역사관에 가면 백발의 역사관장이 계신데 학교 선배님이시다. 방송부원 및 편집부원 모집공고가 뜨며 일반동아리를 만들 수 있는 시기이다. 부산 전 곳에서 학생들이 입학하는지라 신입생 간의 사이는 타 학교보다 서먹할 수 있지만 되도록 빨리 친해지도록하자. 2학년들은 무려 3월 말에 수도권으로 수학여행을 간다.
입학 후 첫 주에는 학생회가 선생님 대신 1학년 자습 감독을 하기도 한다.

7.5.2. 4월


학생부종합전형을 대비하는 학생에게 무척 중요한 시기이다. Bee탐구대회라는 일종의 소논문대회와 자율동아리 신청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교내경시대회가 이즈음에 열린다.

7.5.3. 5월


어버이날을 기념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직접 부모에게 감사편지를 쓰도록 한다. 편지는 학교로고가 인쇄되어 있는 편지봉투에 담아진 후 집으로 발송된다. 체육대회가 이달에 열린다. 대부분 남고가 그렇겠지만 체육대회 당일에 실시되는 축구, 농구 결승전에 참여하기 위해 모든 반이 목숨을 건다.

7.5.4. 6월


교내지리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은 부산지역 지리올림피아드에 참여한다.

7.5.5. 7월


1.2 학년들을 대상으로 한 진로 체험의 날이 이달에 있다. 이 날은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사전에 학생 본인이 신청한 장소에 가면 된다. 기말고사 바로 직후에 가는 지라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활동에 임할 수 있다.

7.5.6. 8월


얼마 주어지지도 않는 여름방학을 보내고 난 후 뜨거움의 절정인 8월 중순에 학교에 가야 한다.

7.5.7. 9월


3학년들이 수시원서를 작성하기 바쁜 시기라 이달에는 교내행사가 없다. 3학년 담당 선생님들께서 가장 힘들어하시는 시기이다.

7.5.8. 10월


이 달 중순부터 1학년들은 아침 일찍 수능응원을 가기위해 점심시간, 저녁시간마다 학생회 간부들로부터 불려와 운동장 옆 농구코트에서 동고야를 강제로 연습하게 된다.
1.2학년들은 한글날 기념 백일장에 참여할 수 있다.
독후논술 대회 또한 이달에 열린다. bee탐구대회 최종심사일이 이달에 있다. 팀원들은 선생님들 앞에서서 프리젠테이션을 해야한다. 대학 조별과제랑 다름없는 수준.
본인이 원하면 학생항일운동기념 마라톤 대회에 참여할 수 있다.

7.5.9. 11월


1학년들은 수능 당일 새벽에 3학년들이 시험치러가는 학교에 반마다 배정되어 악을 써야 한다. 무조건 타학교 응원단보다 목소리가 커야한다. 이에 대한 보상은 아무것도 없지만 대부분의 1학년들이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간다. 학생회와 1학년 반장을 포함한 몇몇 학생들은 수능응원 전날부터 해당 학교 앞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논다. 다른 학교와의 자리 싸움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잘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꽤 재밌게 놀 수 있다. 오들오들 떨면서 밤을 지새웠지만 졸업하고보니 이만한 추억이 없다.

7.5.10. 12월


1.2학년들은 학예회에 참여할 수 있다.
금연포스터 대회, 교내 수학.과학 체험전 등 또한 참여 할 수 있다.
동래고 학생회 회장, 부회장 선거와 간부단 선출이 이달에 있다.

8. 출신 인물



9. 사건사고


[image]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29]

OME'''

해당 사진은 무려 2015년도에 촬영된 사진으로 '''학생회가 학생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ㅡ15년도는 몰라도, 16년도부터는 학생회가 학생들 상대로 저런 행위는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있다.[30]

시대가 시대인만큼 구시대적 행태이자 잘못된 전통을 지양해야함을 학생회도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래고 OT는 부산 4학군내에 거주하는 일반계고에 진학하고자 하는 중학생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데, 한 겨울 체육관 안의 딱딱하고 차가운 나무바닥에 원산폭격을 자행하는 괴상한 악습이 있었다.[31] 당시에는 재학생, 선생님들 모두가 그냥 동래고 만의 나쁜 악습이겠지 라고 이에 대해서는 방관하거나 당연하다싶이 여겼다. 어째 생각난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씩 악습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렇다해도 부당한 악습에 이미 익숙해졌을뿐더러 학생회로부터 세뇌아닌 세뇌되었기에 악습에 대해 부당하다고 여기는 재학생들은 사실 얼마 없다. 만약 있다면 '''동래고 전통의 군대식 문화'''로 할 뿐이다. 최근 학생회가 학생 간의 소통을 늘리는 정책을 펴 나아지고 있는 편이나 여전히 수능 응원(수능 전날 출정식), 개교기념식 행사, 3.1절 기념 만세삼창 등의 이유로 학생회 간부들이 하급생을 소환하여 응원가 연습을 시킨다는 이유로 가혹행위를 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재학생들은 이런 행위를 정당시하거나 당연하다싶이 생각하면 절대 안된다. 2016년도 당시엔 선생님, 간부 등 학교 윗선들이 방관하고 있었으나 이미 누군가가 교육청가혹행위 관련 건으로 민원을 넣어 2016년 상반기에 부산광역시교육청 장학사가 직접 학교를 방문한 일이 있다. 이것은 이미 학교 외부에 가혹행위 사실이 알려졌음을 의미한다. 자칫하다가 위 문제가 언론에 의해 보도되어 사회적 이슈가 되면 학교 평판이 실추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ㅡ가혹행위의 경우 학생회가 학생들을 상대로 체벌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행위의 경우 적폐가 맞으며, 반드시 사라져야할 행위였다. 그렇기 때문에 16년도부터 학생회가 노력하여 올해 2018년도에는 완전히 사라졌 다. 요즘은 옛날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보장하여 행사불참을 원하는 학생들의 경우 그 의견을 존중해주는 편이다.
다행히 작년 2017년 OT에서는 체벌은 없었고 학생회 간부들이 말로만 야단치는 정도로 그쳤다.[32] 분위기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학생회 간부들이 오히려 잘한다고 칭찬과 격려를 해주기도 하였다. 마지막엔 물과 목캔디를 나누어주며 훈훈한 마무리를 지었다.

2018년 OT에서도 학생회 간부들이 약간 군기 잡고 매우 훈훈하게 끝났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OT가 취소되었다.
2016학년도 입학생(00년생)들은 입학할 즈음에 개성공단이 터져서 교복을 받지 못해 일부 학생들이 사복차림으로 등교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10.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10.1. 버스


충렬대로 바로 옆에 학교가 있는지라 경유하는 시내버스 노선들이 상당히 많으며 동래고등학교(낙민역) 버스 장에서 하차하면 바로 도착한다.
  • 경유하는 시내버스
    • 29번
    • 31번
    • 43번
    • 44번
    • 49번
    • 52번
    • 57번
    • 73번[33]
    • 100번
    • 110-1번
    • 129-1번
    • 144번
    • 148번
    • 200번
    • 210번
    • 307번
    • 506번
    • 1002번[34]

10.2. 지하철


  • 대부분 산 중턱에 위치한 타 부산 시내 학교들과 달리 평지 대로변 사이 골목에 학교가 위치해 접근성이 상당히 좋다. 학교 앞 30초 거리에 부산 도시철도 4호선 낙민역과 버스 정류장이 존재한다.[35] 더 밑으로 걸어내려가면 동해선 광역전철 동래역이 위치해 있다. 단 충렬대로의 특성 상 교문이 충렬대로 바로 앞쪽으로 나 있지 않고 옆 골목길인 충렬대로285번길에 있기에 조금 둘러와야 한다.[36] 따라서 충렬대로 연선 낙민역 3번 출구 부근에 사람만 통행할 수 있는 작은 쪽문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는 학생들이 많은 듯 하다.

11. 여담


  • 운동장에서 트랙을 사용해 걷기를 하는 아주머니를 포함해 외부인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드는 편이다. 학교 측에서도 운동하러 오는 주민들을 따로 제재하지않는다. 때문에 학교 내부의 벤치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여러 명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정규수업이 끝날때 쯤 출근해 야간근무 이후 다음 날 아침까지 근무하다 퇴근하는 학교 수위가 한 분 있는데 교실 내에서 공놀이를 하는 학생을 발견하면 가차없이 공을 압수해서 돌려주지 않았다. 어쩔때는 그냥 가위로 찢었다고 한다. 축구공, 농구공, 배구공은 물론이거니와 야구공, 테니스공, 탁구공등 바닥에 튀기기만 하면 뺏어간다. 예전까진 교칙이 그러했으나 이젠 공을 가지고 놀아도 교사들에게 걸리지 않는 이상 별 문제가 없다.
  • 더군다나 '면학실'이라는 간판을 붙여놓은 장소가 두 군데가 있기는 하나 칸막이 없는 긴 일자식 책상에 의자 몇개 갖다 놓은 실정이라 사실상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으며 학생 대부분이 그냥 반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해야한다. 3학년 한정으로 상위권 학생들은 빈 교실에서 한데 모여 자습을 한다. 2016년 1학년들 중 모의고사 성적이 높은 학생 30명은 1학년 3반을 정독실로 마련하고, 나머지 야자를 매일하는 학생들은 면학실과 소강당에서 자습을 하는데 정독반 옆반인 1학년 4반이 매일 야자를하지는 않는 학생들이 자습하는 반이어서 정독반이 정독반 같지 않다. 6월부터 4반에서 야자를 실시하지 않게 되었다...가 다시 실시하였다.
  • 학교의 상징 중 하나인 을 본따 똥파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 교사들의 연령대가 대체로 많이 높은편이다. 근래들어 젊은 교사들이 몇 명 있긴 하지만 여전히 교사들의 연령대는 높다. 그 이유는, 동래고가 4학군에 편성되어있는데다 아주 좋은 입지에 위치해서 이 있어야 올 수 있기 때문.
  • JTBC 주말 드라마 12년만의 재회 : 달래 된, 장국의 주연들의 어린 시절 다니던 학교의 배경이 되어 주요 촬영 장소로 사용되었다. 운동장, 교실, 교무실, 화장실, 강당, 급식실 등 학교 시설이 다 등장한다.
  • 학교 근처에 태백관[37]과 부광반점이라는 유명한 중국집이 두 군데가 있다. 둘다 양이 푸짐하고 맛도 괜찮다. 실제로 점심, 석식 시간에 가보면 동래고 학생들이 몇 명있다.
  • 근처에 동래시장[38]이 있기 때문에 값싸고 맛있는 집이 많다. 동래시장 안에 닭강정 집이 하나 있는데 가격대비 양이 진짜 많다. 치킨 한 마리 가격으로 3명이 먹을 정도. 다들 대형마트에 익숙한 것이 사실이지만 가끔씩 돌아다녀보는걸 추천한다.
  • 학교 근처에 광도한의원이라는 한의원이 있는데 원장이 동래고 출신이라 동래고 학생에 한해 무료로 진찰을 해준다고 한다. 참고로 이 사람은 매년 학교에 장학금도 기부한다. 모교 사랑이 대단한 듯.
  • 본인이 이 학교 교감이라고 주장하며 수 년째 창원 가는 표값을 구걸하는 남수꾼노포역연산역 등지에 출몰하기도 한다. 실제로 교감인 적이 있기는 했는지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현재는 아니니 주변에 낚이는 사람이 없도록 주의하자.
  • 2024년에 학교 건물이 현 위치에서 새로 신축될 예정이라고 한다. #

12. 관련 문서



[1] 교직원, 행정실, 급식실 전체[2] 당시 이름은 동래중학교[3]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 문학관이 있다.[4] 1952년 베네치아국제작가회의 참석 이후, 일본에서 이승만 정권을 비판한것이 문제가 되었다.[5] 여담으로 김소운은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였다는 이유로 5.16군사쿠데타 이후인 1965년도가 되어서야 한국으로 귀국을 하게 되었다. 이 때, 유치환 선생은 문단 선배인 김소운이 작사한 교가의 가사를 바꾼것이 미안하여 학교당국에 본래의 가사로 되돌리는것을 부탁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뒤에 김소운이 이 소식을 전해듣고 유치환 선생에게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6] 타 학교에 비해 교가가 긴편이다.[7] 이후 동고의날 전 2주정도 점심시간동안 추가 연습이 있다. [8] 무늬 없이 올 화이트이다.[9] 물론 두가지 다 구매 가능하다.[10] 따라서 지각이 임박한 등교 시간대에는 낙민역과 버스 정류장에서 학생들이 학교 교문 앞까지 전력질주를 한다 카더라.[11] 충렬대로는 향시 교통 체증으로 헬게이트가 열리는 지역이다.[12] 이쪽은 동래고등학교 보다는 늦은 1965년 부터 운영하고 있다.[13] 이때까지만 해도 일제강점기1923년에 만들어진 목조 건물을 사용했다. 놀랍게도 이 당시 목조건물의 설계도는 현재도 남아있으며, 인터넷에서 설계도 일부를 찾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일제강점기 시절에 촬영된 구교사 사진이 있는데, 흑백사진이기는 하지만 일제강점기 사진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질이 좋다.#[14] 본관, 동고관, 망월학사, 우정학사, 군봉관[15] 생각보다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에서 동래고등학교까지 거리가 꽤 있다 (네이버 지도 기준 버스정류장에서 동래고 까지 도보로 5분 정도[16] 1학년은 학생증이 나오는데 1달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1달간은 체크가 되지 않는다.[17] 공립학교이므로 강제하지 않으며 방과후 수업 or 자습이 가능하다.[18] 이거 참여안하면 야자참여가 불가능하다.[19] 1학년은 2차시가 마지막이다.[20] 3학년은 이 시간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많으며 입시 준비를 해야하는 3학년 특성상 자율이라 하기엔 애매하다.[21] 선택이며 강제가 아니기에 이 시간까지 남아서 자습하는 경우는 극히 적다.[22] 횟수에 따라 부모님에게 문자도 가니 주의[23] 2017년 2학기부로 등교시간이 20분 연기되었으며, 그 전까지는 7시 50분까지였다. 밤늦게까지 야자에 공부하랴 아침잠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등교시간이 연기된 셈이다.[24] 네이버 지도 기준 버스정류장에서 동래고 까지 도보로 5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25] 석식을 신청했다면 다 먹은후 하교하게 되니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26] 심야야자를 하는 사람은 10:00 or 11:00[27] 정확히는 부모 동의를 요함이라고는 하지만 학생 본인의 의견과 교사의견으로 주로 결정한다.[28] 이로 인하여 학생들의 거주 지역 분포가 다양한 편이다. 동래구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남학생들의 1지망이 동래고였으며, 연제구, 금정구, 심지어 해운대구 반여동, 재송동, 반송동 일대, 북구 만덕동, 덕천동 일대 학생들에게도 동래고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실제로 한 학년당 적게는 2~4명, 많게는 약 10명의 학생들이 타 학군인 북구에 거주한다.[29] 그 유명한 동래고 오리엔테이션 되시겠다. 엎드려뻗쳐 하고 있는 학생들은 모두 예비 신입생들로 푸른 코트를 입은 자기보다 고작 1살 많은 학생회 선배에게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가혹행위(선배가 엎드린 학생에게 발로 신체를 가격 하는 것 등)를 당하고 있다.[30] 그러나 2016년에 부산광역시교육청 민원/장학사 방문 사태를 봐서는 최소한 2016년 까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갈굼이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31] 다행히 2016년에는 없었다고 한다. 개성공단 사건과 작년의 극심한 똥군기로 인해 2016년 동래고 1학년생은 상대적으로 을 빨고있다.[32] 하지만 선생님이 학생에게 야단치는 것이 정상이지 학생이 같은 학생한테 야단치고 혼내는 것은 결코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33] 오전 3회 동래롯데백화점 지선 한정. [34] 동래한양아파트 정류장 승하차.[35] 따라서 지각이 임박한 등교 시간대에는 낙민역과 버스 정류장에서 학생들이 학교 교문 앞까지 전력질주를 한다 카더라..[36] 충렬대로는 향시 교통 체증으로 헬게이트가 열리는 지역이다.[37] 여기가 바로 선천적 얼간이들에 나오는 쌍봉탕수로 유명한 곳이다.[38] 수안역 부근에 위치하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