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판 왕조

 



1335년의 일 칸국의 분열과 해체 이후 1335 ~ 1357년까지 아제르바이잔타브리즈 일대를 다스린 국가. 잘라이르 왕조를 털어먹으며 성장했으나 재미있게도 그에게 흡수되며, 신기하게도 추판 조가 내정간섭을 했던 이란 중남부의 인주 왕조와 존속 기간이 같다.
1. 성립 배경
2. 승리와 쇠퇴
3. 멸망


1. 성립 배경


창시자 아미르 추판의 조상은 테무친 (칭기즈 칸) 의 목숨을 구해준 타우치우트 부족의 소르킨 시라의 후손이라고 전해진다. 그는 일 칸국의 전성기를 이끈 가잔 칸의 휘하 장수로 활약했다.
이후 추판 부족은은 일 칸국의 명문가가 되었다. 다만 아부 사이드 칸의 견제를 받은 아미르 추판이 1327년에 숙청을 당하며 힘을 잃는 듯 하였으나 그의 딸 바그다드 하툰이 아부 사이드 칸의 황후가 되며 그 위세를 회복하였다.
1335년에 아부 사이드 칸이 자손 없이 사망하면서 일 칸국은 분열되었고, 그녀는 다음 칸인 아르파 케운에게 처형당했고, 그도 1336년에 살해 당하며 일 칸국의 해체는 확고해 졌다.

2. 승리와 쇠퇴


추판 왕조의 실질적 건국자인 아미르 추판의 손자 하산 쿠첵은 부족을 모아 독립을 한 후 일 칸국의 수도였던 타브리즈의 수복을 노린다. 1338년과 1340년,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아제르바이잔 원정에서 잘라이르 왕조에 승리를 거둔 그는 잘라이르 조의 꼭두각시인 무함마드 칸 (1336 - 1338) 을 제거하고 그 지역을 점령하여 근거지로 삼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원정을 준비하느라 부족 통합에 실패한 그는 1343년에 암살당한다. 이미 부족 내에 잘라이르 조랑 내통자도 많았으니.. (비록 잘라이르 조가 아제르바이잔을 잃었지만 이라크를 바탕으로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의 사후 추판 조는 1343 - 1345년간 내분에 휩쌓였고, 승리하고 내전을 종식시킨 마렉 아시라프는 1347년, 바그다드를 공격하는 강수를 두나 잘라이르 조에게 패배하고 1350년에는 인주 왕조도 공격하나 성공하지 못하고 서로 국력만 나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3. 멸망


게다가 1350년 즈음부터 페스트가 유행하여 인구가 줄었고, 쇠퇴의 조짐이 역력하던 와중인 1357년, 쟈니 벡 칸이 이끄는 킵차크 칸국의 군대에게 멸망에 이르렀다.
비록 킵차크 군대는 캅카스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 아제르바이잔 통치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후퇴하여 이듬해인 1358년에 후퇴하였으나, 1360년에 잘라이르 조의 전성기를 이끌 우웨이스 1세에게 마렉 이시라프의 아들 티무르타스의 잔당도 분쇄되고 그도 죽으며 완전히 정복되어 가계까지 끊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