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희왕

 


'''왕호'''
'''취희왕(吹希王)'''
'''별호'''
질가왕(叱嘉王) / 김희왕(金喜王)
'''시호(?)'''
혜왕(惠王)(?)[1]
'''성씨'''
김(金)
''''''
희(喜) / 취희(吹希) / 질가(叱嘉)[2]
'''왕후'''
인덕(仁德)
'''왕자'''
김질지(金銍知)
'''부왕'''
좌지왕(坐知王)
'''모후'''
복수(福壽)
'''생몰연도'''
? ~ 451년 2월 3일
'''재위기간'''
421년 4월 12일 ~ 451년 2월 3일 (29년)
1. 소개
2. 가실왕과의 연관성
3. 기록
3.1. 《삼국유사》 가락국기
3.2. 《삼국유사》 왕력


1. 소개


금관국 7대 왕. 질가(叱嘉)나 김희(金喜)라고 불리기도 한다. 김해 김씨 족보에는 혜왕(惠王)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31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왕비는 각간 진사(進思)의 딸 인덕(仁德)이고 사이에서 질지를 낳았다.

2. 가실왕과의 연관성


가실왕이 이 사람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 학자들이 가락국기의 내용을 무시하고 주장한 내용으로 취희왕과 아들인 질지왕, 손자인 겸지왕이 모두 가실왕과 동일인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가야금을 만든 시기도 이 시기일 것이라는 설이 제기된다. 두산백과나 위키백과에도 이 설을 따라 기재되어 있지만 가실왕은 우륵과 동시대 사람이고 우륵진흥왕과 동시대 사람인데 진흥왕의 재위 기간은 540년~576년이다.

3. 기록



3.1. 《삼국유사》 가락국기


질가(叱嘉)라고도 한다. 김씨이다. 영초 2년에 즉위해 31년 동안 다스리다가 원가 28년 신묘에 붕했다. 왕비는 진사 각간의 딸 인덕인데 왕자 질지를 낳았다.


3.2. 《삼국유사》 왕력


제7대 취희왕(吹希王)

김희(金喜)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좌지왕이다. 어머니는 복수(福壽)이다. 신유년(421년)에 즉위하여 30년 동안 다스렸다.

第七 吹希王

一云金喜 父坐知王 母福壽 辛酉立 治三十年


[1] 김해 김씨 족보에 기록된 시호.[2] 가(嘉)를 자획이 유사한 희(喜)로 치환하면 '질희(叱喜)'가 되는데, 이는 '취희'와 음이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