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기

 


1. 개요
2. 설명
3. 관련 항목


1. 개요


《'''가락국기'''》(駕洛國記)는 《삼국유사》에서 인용된 가야, 정확히는 금관가야에 관한 사서다. 신라 중~말기 기록인 개황력 등을 참고해서 쓴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초기인 문종 때 금관지주사(金官知州事)가 썼다고 알려져있으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2. 설명


文廟朝 大康年間 金官知州事文人所撰也 今略而載之

문종 때인 대강(大康) 연간[1]

에 금관지주사(金官知州事) 문인[2][3]이 지은 것이다. 지금 간략히 하여 그것을 싣는다.

삼국유사》 가락국기 각주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삼국유사》를 쓰면서 가락국기에 있는 가야의 시조 수로왕과 왕비 허황옥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오고, 그 후대의 은 이름과 재위시기만 옮겨놓은 다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는 식으로 처리해버려서 사실상 실전되었다.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
내용이 손실된 것도 문제지만, 남아있는 부분을 따져도 사료로서의 사실(史實) 정확성이 확실히 담보되진 않는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 실제 백제삼서, 일본세기를 인용해 제작된 일본서기나 기록이 아닌 고고학으로 보는 가야의 모습과 상충되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가뜩이나 남은 게 없는 가야의 역사인지라, 가야의 초기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다. 그나마 《삼국사기》보다는 가야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다.
나무위키에 등재된 가야의 왕사에서 금관국 왕사의 기록들이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가락국기의 전부라고 볼 수 있다.

3. 관련 항목



[1] 1075년 ~ 1084년[2] '문인이었던 금관지주사'가 쓴 것이냐, 아니면 '금관지주사에 속해있던 문인'이냐, 의 두 가지 해석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해석은 후자.[3] 이 문인의 정체도 의견이 분분하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숭선전신도비문(崇善殿神道碑文)』에 따르면 고려 문종대에 지금주사(知錦州事)를 지냈던 김양일(金良鎰)이 수로왕릉을 보수하러 왔고, 그와 관련된 비석을 세웠다는 기록이 나와는데, 이를 근거로 김양일이 지은 것이 아니냐 설이 있으나 주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