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코 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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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카라코 쇼지(辛香 将司)
나이
38세
출신지
?
자격
장려회 3단

1. 개요


용왕이 하는 일!의 등장인물.
아카시 키요시[1]&오이시 미츠루&나타기리 진과 동갑내기 겸 장려회 입회 동기로 14세란 어린나이에 장려회 3단에 오르는 등 4명 중에서 프로 입단이 가장 가깝다는 평을 받았'''었'''다. 그러나 3단 리그에서 매번 미끄러지는 바람에 약 10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고, 결국 프로 입단 나이 제한인 26세를 넘겨버려 장려회에서 퇴회한 경력이 있다.[2] 6권에서 "미츠루한테 목이 따였다."라며 이 때의 상황을 설명하는 걸 보면 26세가 되던 해 3단 리그 최종국에서 라이벌인 오이시에게 패한 것과 동시에 꿈이 와르르 무너진 듯.
찰진 칸사이벤이 특징으로 작중 언급에 따르면 기풍은 전형적인 응수형 타입.

2. 작중 행적


첫등장은 6권. 위에 언급된 3단 리그 돌파 마지막 기회를 날려서 장려회를 나오고 약 10년 간 사회생활을 하며 그럭저럭 살았지만, 쇼기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있던터라 아마추어 쇼기대회에 꾸준히 참가하며 다수의 우승을 기록하며 나이에 상관없이 장려회에 다시 입회할 수 있는 편입시험에 응시한다.[3]
편입시험 당일, 장려회에서 가장 유명한 회원인 소라 긴코가 시험관으로 나서게 되는데, 대국직전 어떠한 제안을 하여 긴코의 멘탈을 흔들어 놓는다. 그것은 바로 대국에 쓰는 쇼기말을 '''자신이 장려회에서 퇴회할 때 받은 쇼기말'''로 써도 되겠냐고 요청한 것. 장려회 퇴회의 아픈 기억을 상징하는 물건이라 대부분의 퇴회한 회원들은 이걸 멀리하는데[4] 이걸 굳이 꺼내온건 목숨을 걸 각오로 임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고 이 '''집념이 실린 장외전술'''에 긴코는 짓눌리고 만다. 이후 대국 자체는 스킵되어 묘사되지 않았지만, 결과는 '''카라코의 승리로 끝나 장려회 3단으로 복귀'''한다. 참고로 이 대국을 본 야이치의 언급으론 사저답지 않게 제실력을 못내고 그냥 완패했다고.
이후 소라 긴코쿠누기 소타가 장려회 3단 승단을 놓고 맞붙은 2단 리그의 최중요 대국이 열리며[5] 관서쇼기회관이 떠들썩해진 가운데, 컴퓨터를 잘 쓸 줄 몰라 인터넷 중계를 못보니 직접 보려고 기사실에 나온 오이시 미츠루에게 아는척을 하며 나타나 함께 지켜보게 된다. 이때 긴코를 응원한다는 식으로 잡담을 하는데, 자신이 쉽게 꺾은 상대라 다음 번에도 이길 자신이 있으니 3단에 올라와 승수셔틀을 해줬으면 한다고. 또한 구글의 알파고를 예로 들며 자신의 쇼기의 신은 쇼기 분석 프로그램이라고 하거나 명인도 십중팔구 쇼기 프로그램에는 패할 거다, 연맹 내의 역학 관계에 대해서도 자기는 츠키미츠 회장 말고 꼬리 칠 대상이 있다[6]는 식으로 마치 악역 같은 대사를 쉴새없이 쏟아냈다.[7][8]
한참동안 등장이 없다 10권 시점에서 개막되어 한창 진행중인 제63기 장려회 3단 리그에서 오랜만에 근황이 언급된다. 실력자답게 10회전 기준 9승 1패를 기록, 쿠누기 소타(10승 0패) - 카가미즈 히우마(9승 1패)에 이은 3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카가미즈와 성적은 똑같지만 편입시험으로 들어온터라 이번 기엔 내부순위가 낮아서 3위인데, 이대로라면 프로 입단을 충분히 노려볼만한 호성적이다.
12권에서 카가미즈와 사카나시의 대화를 통해 관서장려회의 기틀을 닦은 대선배로 불린다는 사실이 언급된다. 최신 쇼기이론과 비교하면 구닥다리 소리를 듣긴 하지만, 그가 적극적으로 사용한 방어중심의 끈질긴 기풍이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와 '카라코 이론'이라 불리고 있다고.
그리고 장려회 퇴회 후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의 과거가 자세히 다뤄지는데, 고등학교 진학까지 포기하고 쇼기에 매진해왔기 때문에 학력미달(중졸)로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하기가 어려워 일종의 비정규 용역일로 근근히 버텼다고 한다. 곤약 제조공장 같은 쉽게 접하기 힘든 일도 해봤다는데, 이 당시엔 쇼기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관련 이야기를 듣는 것도 싫어 쇼기계 관계자들과 일부러 연락을 끊고 일에만 집중했다.
그러던 어느날, 일하던 청소업체 간부가 그의 이력서를 보고 장려회 출신이니 어느 병원에서 어린이들을 상대로 쇼기 강사일을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위에 언급된대로 쇼기를 멀리하려고 노력 중인터라 꺼림직하게 생각하는데, 주업무인 청소일이 끝나면 남는시간에 해달라는 조건이였고 추가적인 수입도 버는 것이니 마지못해 응하게 되는데, 난치병이 걸린 아이들이 쇼기를 배우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트라우마를 극복함과 동시에 열정적으로 가르치게 된다. 그러나 꼬마 제자들이 대부분 병을 이기지 못해 사망하고, '''유일한 생존자인 소라 긴코'''가 아픈 몸을 이끌고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장려회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곤 자신도 다시 한번 프로기사의 길을 목표로 정진해보자는 결심을 한다. 이후 아마추어 대회에 적극적으로 나가 다수의 우승을 차지하고, 위에 언급된 편입시험을 치뤄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정리하자면, 위에 언급된 악역스러운 모습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고, 실제로는 쇼기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데다 긴코가 쇼기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를 제공해준 굉장히 선한 사람. 그래서인지 긴코의 3단 리그 마지막 대국이 이례적으로 TV 중계가 되도록 손을 써주었고,[9] 심장병이 발동해 각혈하며 상태가 안좋은 그녀가 적절한 치료를 빠르게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데 일조했다.
다만, 아쉽게도 연패를 많이 당하며 순위가 밀려 올해 3단 리그 돌파는 실패. 쿠누기 소타에게 승리했지만, 소라 긴코/사카나시 스미토 같은 다른 강자들에게 패하면서 5위 이하의 성적을 낸듯 하다.

[1] 소아과 의사 선생님으로 소라 긴코의 주치의. 오이시가 '나보다 재능이 더 앞서는 천재라 3단 리그에 올라가면 반드시 프로기사가 될 거물'이라 평할만큼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지녔지만, 쇼기로 사람에게 상처주는 것 보단 치유하는 일을 하고 싶다며 장려회 3단이 되자마자 퇴회하고 의대에 들어가 의사가 되었다.[2] 공식전 8연승 혹은 3단 리그에서 통산 8패 이하의 패배를 기록할 경우 30세까지 연장이 가능하다는 예외규칙의 적용도 못받을 걸 보면 성적이 그닥 안좋았을 가능성이 높다.[3] 작중에서는 수 십년만의 3단 편입시험이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2007년에 신설되어 지금까지 쭉 유지되고 있는 제도로 아마추어 쇼기대회에서 일정 수 이상 우승한 사람에게 시험을 볼 기회를 주어 합격할 경우 3단 편입을 인정한다. 참고로 이 제도를 통해 3단 리그에 편입해 프로기사가 된 인물은 이마이즈미 켄지 四단 1명밖에 없을만큼 문턱이 상상 이상으로 높다.[4] 버리거나, 어디에 짱박아 둬서 절대로 꺼내보지 않는다고. 아예 수령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어느새 퇴회할 때 쇼기말을 주는 풍습이 사라져 버렸다고.[5] 누가 이기던 간에 최초 수식어가 붙는다. 긴코는 여성 최초 / 쿠누기는 초등학생 최초 겸 최연소.[6] 12권에서 긴코의 3단 리그 마지막 대국이 이례적으로 TV 중계가 되도록 협회 간부들을 설득한걸 보면 협회의 상층부와 선이 있는 건 사실로 보인다. 새로운 스승을 맡아준 사람이 관동 출신의 협회 이사라고.[7] 하지만 이후 쿠즈류 야이치나 쿠누기 소타 등은 이미 생각 자체가 쇼기 프로그램과 거의 동일하다는 말이 있으므로 결국은 카라코가 아무리 용을 써도 이 둘은 능가하지 못한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8] 사실 야이치나 소타만 해도 쇼기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제위 오키타 등도 컴퓨터 쇼기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이상 카라코만의 장기라고 보긴 어렵고 정황상 자기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동기 오이시 미츠루를 도발하기 위해 한 말일 가능성도 있다. 작중 오이시는 컴맹이기 때문.[9] 최초의 여성 프로기사가 탄생하는 순간을 생방송으로 내보내면 큰 흥행이 될거라며 연맹 간부들을 설득한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