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리아 폰 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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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작곡 특징
4. 주요 작품
4.1. 오페라
4.2. 교향곡&관현악
4.3. 협주곡
4.4. 기타
5. 기타


▲ 오페라 《마탄의 사수》(Der Freischütz) 中 서곡.[1] 연주는 The National Philharmonic of Russia.

1. 개요


Carl Maria von Weber, 1786년 11월 18일 ~ 1826년 6월 5일 (향년 39세)
독일의 낭만파 작곡가로, 오페라 '마탄의 사수'로 독일 낭만파의 문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2. 생애


베버는 1786년 극단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아버지와 그의 두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부터 병약했던 그는 골반에 문제가 있어 4살때까지 걷지 못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음악을 배웠지만, 그보다는 아버지를 따라 극단을 구경하며 얻은 극과 음악에 대한 경험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후 10세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고, 요제프 하이든의 동생 미하엘 하이든에게 작곡법, 대위법을 배운 후, 13세에 첫 가극을 작곡하면서 작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한편 1804년에는 독일 브레슬라우[2] 극장의 악장으로 취임을 하고 지휘 분야에서도 독일 곳곳의 극장들을 전전하면서 활동한다. 한편 20살 때 쯤에 초산을 포도주로 잘못 알고 마셔서 성대가 상해 목소리가 작아져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1811년, 2곡의 클라리넷 협주곡과 바순 협주곡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1812년에는 교향곡 1번과 피아노 협주곡을, 1813년에는 교향곡 2번을, 1815년에는 호른 협주곡을 연이어 발표하였고, 1819년에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무도에의 권유'를 발표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으니….
1821년, 그가 작곡하여 베를린에서 초연한 오페라 '마탄의 사수'는 대성공을 거두고, 내용과 음악 모두 혁신을 보여 이후 낭만파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같은 해에 발표한 '피아노 협주 작품 F단조'역시 호평을 받고, 이후 협주 작품(Konzertstück)라는 형식을 많은 작곡가들이 사용한다.
그러나, 이어 발표한 오페라 '오이리안테'는 흥행이 영 좋지 못 하였고, 이로 인한 충격으로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었다. 이후 런던에서 다시 의뢰가 들어와 그의 마지막 오페라 '오베론'을 작곡하지만, 초연 준비 중 극장 관계자와의 마찰이 심하였고 이로인해 건강은 더더욱 악화되어 4월 12일 초연을 마친 후 그곳에서 6월 5일에 세상을 뜬다.[3] 이때 나이는 겨우 39세였다.

3. 작곡 특징


피아노 기법상 상당히 혁신적인 작품들을 많이 발표했고(그의 콘체르트스튀크와 무도회의 권유, F단조 피아노 협주곡이 유명하다), 표제 음악으로의 길을 어느 정도 예견하였다.
한편 마탄의 사수를 비롯한 그의 오페라는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의 효시격인 작품들로 모차르트에서 시작되어 바그너로 이어지는 독일오페라의 계보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4. 주요 작품



4.1. 오페라




오베론 중 "Sieh, die Meermädchen!... O wie wogt es sich schön"
마탄의 사수 중 Jägerchor
  • 아부 핫산
  • 마탄의 사수
  • 세마리 핀토[4]
  • 오이리안테
  • 오베론

4.2. 교향곡&관현악



교향곡 1번
  • 교향곡 1번 C장조
  • 교향곡 2번 C장조
  • 축전 서곡 E장조

4.3. 협주곡




피아노 협주 작품 F단조
클라리넷 협주곡
  • 피아노 협주곡 1번 C장조
  • 피아노 협주곡 2번 E플랫장조
  • 피아노 협주 작품 F단조
  • 바순 협주곡 F장조
  • 클라리넷 협주곡 1번 F단조
  • 클라리넷 협주곡 2번 E플랫장조
  • 클라리넷 소협주곡 E플랫장조
  • 콘체르트스튀크

4.4. 기타




무도에의 권유
피아노 소나타 Op.39
  • 무도에의 권유[5]
  • 미사 1번 Eb조
  • 미사 2번 G조
  • 칸타타 '전쟁과 승리'[6]
  • 피아노 소나타 1번 C장조 Op.24[7]
  • 피아노 소나타 2번 A플랫 장조 Op.39
  • 피아노 소나타 3번 D단조 Op.49
  • 피아노 소나타 4번 E단조 Op.70

5. 기타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친구였다. 베토벤의 방 안이 온통 악보와 옷으로 어질러져 있으나, 테이블에는 악보 용지 한 장과 끓는 커피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부인인 콘스탄체 베버와 사촌지간이다.

[1] 한글 찬송가에는 이 선율이 "내 주여 뜻대로" 로 차용되기도 하였다. 개신교 신자라면 아마도 익숙한 선율일 것이다.[2] Breslau, 2차 대전 이후 오데르-나이세 선이 그어지면서 슐레지엔 지방이 폴란드로 넘어가 현재는 브로츠와프(Wrocław)라는 폴란드식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중앙역에서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고등학교 건물 벽면에 베버 기념판이 세워져 있는 등 폴란드로 도시가 완전히 넘어간 상황에서도 베버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건 아니다.[3] 오베론은 초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초연 자체는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베버는 이런 인기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죽었다.[4] 미완성작. 후에 구스타프 말러가 완성한다.[5] 원제는 '화려한 론도'이고 피아노 독주곡이었다. 그러나 이후 엑토르 베를리오즈가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였다.[6] 워털루 전투승리 기념 헌정곡이다.[7] 마지막 4악장 론도가 무궁동 형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