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학파

 


1. 개요
2. 상세
3. 이론
4. 관련 문서

케인스 경제학/Keynesian economics

1. 개요


'''...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1]

경제학 학파 중 하나. 다만 단순히 하나의 학파라고만 취급하기엔 그 영향력이 많이 큰 학파이다. 왜냐하면 케인스나 관련자들이 현대 거시경제학 분야 자체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네오케인지언, 뉴케인지언 등 오늘날 주류 경제학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학파의 상당수는 케인즈와 그의 사상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이론의 핵심을 간단히 말하자면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지면 정부가 개입해 수요를 창출시켜 해결하자는 것이다.

2. 상세


정부가 낡은 병에 지폐를 가득 채워 넣은 후 그것을 어느 폐광에다 묻어두고는, 기업들에게 마음대로 그 돈을 파 가도록 내버려 둔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부터는 모두 그 돈을 파내기에 혈안이 될 터이므로 실업이 줄어들고, 실질소득과 부도 증가할 것이다. 물론 이 방법보다는 그 돈으로 주택을 짓거나 하는 편이 더 현명하다. 그렇지만 최소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기존의 고전학파를 반박하고 나온 개념으로, 세이의 법칙을 굳게 믿던 고전학파와 달리 단기적으로는 시장경제가 불균형에 있을 수 있으며, 이 불균형을 (유능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고칠 수 있다고 보았다.
참고로 케인스학파도 고전학파의 테제를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시장 경제에 불균형이 있을 수 있다'라는 말은 곧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균형을 이룬다.'라는 뜻으로서,[2] 고전학파의 이론적 기반을 적극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장기 균형 상태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단기 상황에서 시장 균형을 위한 정부 개입을 옹호한 것이다. 물론 고전학파들도 케인스학파를 마냥 배척하진 않는다. 어느 학파나 마찬가지겠지만 정반합을 하는 것.
간혹 케인스 경제학이 정부의 개입을 주장했다고 해서 사회주의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사회민주주의혼합경제의 실현 방법으로 케인스 경제학을 채택한 것을 오인한 것이다. 케인스도, 사회민주주의자들도 순수 계획 경제를 배격했다.[3] 어찌보면 사회주의로부터 자본주의를 수호한 학파인 셈. 애초에 이들의 개념을 2차대전 전후 일본식으로 수정번역해 동북아에 퍼진 단어가 수정자본주의다.
케인스학파는 1930년대 이후 꾸준히 경제학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4] 다만 월가의 유명한 투자자 짐 로저스처럼 케인스학파의 경제 사상을 비판하는 인물도 엄연히 존재한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아닌 소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시장의 힘이 여전히 더 강하다고 보기 때문. 미국의 정치인 론 폴이나 작가 피터 쉬프 등도 이와 유사한 의견을 보인 바 있다.

물론 이는 본인의 정치적 입장이나 신념 등도 섞여있는 문제라 반박과 재반박이 오가는 꾸준히 반복될 문제긴 하다.

3. 이론


  • 수요는 스스로 공급을 창출하므로 유효수요[5]가 클수록 고용과 생산도 증가한다.
  • 케인즈 모형은 생산설비나 공급능력은 충분하나 유효수요가 부족한 경제이므로 케인즈 모형의 균형국민소득은 완전고용에 미달하는 과소고용국민소득이다. 실제 GDP ($$Y^*$$) < 잠재 GDP ($$Y_f$$)
  • 노동의 수요는 실질임금 $$(\dfrac WP)$$의 함수이나, 노동의 공급은 명목임금 ($$W$$)의 함수.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인한 경기침체기에 명목임금의 하방경직성 때문에 비자발적 실업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 총지출(AE)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 한계소비성향과 한계저축성향을 합하면 1이 된다.
  • 케인즈 모형에서는 한계소비성향(MPC) < 평균소비성향(APC)
  • 소비와 저축은 이자율$$(r)$$의 함수라기보다 국민소득의 함수이다.
  • 투자$$(I)$$는 기업의 투자의 동물적 감각과 이자율의 함수인데, 이자율은 투자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작으므로 이자율탄력성은 매우 작다.

4. 관련 문서



[1] 케인스의 시장 개입에 대한 관점을 가장 쉽게 정의하는 말. 장기적으로 보면 당연히 시장은 균형을 이루겠지만, 그걸 무작정 기다리다가는 모두가 죽고 나서야 시장이 균형을 이룰 것이라는 의미. 시장의 회복 기능에 모든 것을 맡기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는 고전학파를 비꼬는 말이다.[2] 애초에 시장이 균형 상태를 이룬 시점을 장기 상태라고 정의한다.[3] 케인스는 자유방임주의도 깠지만, 마르크스주의 역시 철지난 이념이라고 디스했다.[4] 20세기 후반 들어 소위 신자유주의(새고전학파)가 케인스주의의 대체재인냥 떠오르기도 했지만, 이것은 이데올로기적 철학성이 부각된 것으로, 현실 경제에서 특히 관료 사회는 시기나 성향에 따른 정도차가 있을 뿐 절대치로 보면 여전히 케인스학파의 위상이 압도적이다.[5] 구매력이 뒷받침이 되는 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