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이라 요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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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平義雄(こだいらよしお)'''"이렇게 평온하고 평화로운 날에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1905년 1월 28일 ~ 1949년 10월 5일 (44세)
1. 일본의 사건
코다이라 사건(코다이라 요시오 사건)은 일본에서 쇼와 20년(1945년)~쇼와 21년(1946년)까지 일어난 연속 강간 살인 사건이다. 그냥 단순히 코다이라 요시오라고 부르기도 한다.
범인인 코다이라 요시오는(1905년~1949) 일본의 범죄자이다.
이 사건은 전술한 코다이라 요시오의 이름을 땄으며, 잔악무도하기로 유명한 쇼와 시대의 사건이다.
2. 코다이라 요시오
코다이라 요시오는 코다이라 사건을 일으킨 일본의 범죄자이다. 1905년 1월 28일생.
어릴때부터 말더듬증을 앓았고, 1923년 입대하여 요코즈카 해병단에 들어갔다. 파전을 간 중국에서도 산모 살해, 부녀자 폭행 등의 사건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후 결혼했지만, 아내의 바람 사실을 알게 되자 격분하여 아내의 집을 습격, 철 몽둥이로 의부를 살해한 뒤 6명을 부상시켜 징역 15년형을 받는다.[1]
하지만 그 후에 7번의 강간 살인 사건을 저질러 사형을 선고받는다.
체포 후 공판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사형 판결 직후에도 난폭함을 잃지 않았지만 면회 온 아내가 자책감에 울며 고백한 것이나, 종교를 통해 점차 태도를 바꾸어갔다고 한다.전쟁 중에 나보다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평화로운 때에 나만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그리고 1949년 10월 5일 사행 집행 전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요시오의 유서에는 [저 때문에 돌아가신 모든 분들, 용서하실 수 없는 과거의 죄를, 오늘에서야 깊게 뉘우쳐 끝냅니다.] 라고 쓰여있었다고 한다.이런 차분한 날에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저는 장엄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청산하고 죽습니다. 오랫동안 신세 진 사람들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가족들은 부디 천명을 완수하시길.
3. 개요
태평양 전쟁말기~패전 직후의 도쿄에서 일어난 연속 강간 살인 사건.
범인은 젊은 여성에게 취업 알선 또는 식량 지원을 해 주겠다며 산속으로 끌고 가 강간 후 잔혹하게 살해했다.
스스로 산림으로 끌려간 여성들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겠지만, 당시는 패전 직후의 식량난 때문에 식량 지원과 취업 알선을 해주겠다는 제안은 거절할 수 없는 악마의 제안이었을 것이다.
이는 1년이나 지속되어, 1946년 8월 17일 7번째 희생자가 발생할 때까지 범인을 잡지 못했다.[2]
하지만 결국 살해 직전에 7번째 피해자 여성과 접촉했다는 것이 발각되어 경찰은 41세의 '''코다이라 요시오'''를 구속, 범인임이 밝혀졌다.
구속된 요시오가 다른 강간 살해 사건들도 자백하면서 사실상 요시오는 사형이 확정되었고, 1949년 10월 사형이 집행되었다.
4. 7번의 살해
첫번째 살인은 1945년 발생, 5월 25일 근무하던 해군 의량창의 여자 기숙사에 잠입해 21세 여자 대원을 강간 후 살인했다. 헌병대 수사에서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된 틈에, 퇴직 후 유유히 빠져나왔다.
두번째 살인은 1945년 6월에 일어났다. 도부선 신토치기역에서 31세 여성에게 농가에 안내하겠다며 데려가 3차례 강간 후 교살한 것이다.
여성은 현금 70엔과 손목 시계를 빼앗긴 채 9월 10일 발견되었다.
세번째 살인도 같은 해 7월에 일어났다. 고작 한달이 지나 다른 여성을 또 살해한 것.
이번에는 7월 12일, 시부야역에서 두번째 살인과 같은 방법으로 22세 여성을 끌어들인다. 여성이 가지고 있던 칼을 가지고 저항했지만, 요시오가 빼앗아버리고 그대로 강간 교살. 이번에도 현금 40엔과 손목시계를 빼앗았다.
'''같은 달 15일,''' 이케부쿠로역에서 또 같은 방식으로 21세 여성을 끌어내 강간 교살함으로 네번째 살인을 시행했다.
이번에는 현금 60엔과 나막신을 빼앗았다. 시신은 같은 해 11월 1일에 백골 상태로 발견되었다.
2달 뒤인 9월 28일에 도쿄역에서 농가 안내로 다섯번째 희생자인 21세 여성을 강간 후 교살한다.
현금 300엔과 물물교환용으로 들고 온 크레이프 옷을 가져가 유유히 현장을 벗어났다. 시신은 마찬가지로 11월 1일에 발견되었다.
여섯번째 살인이 일어난 3달 뒤 12월 29일에는 아사쿠사 카미나리몬역에서 21세 여성에게 농가에 안내하겠다며 토치기현의 산촌에서 강간 교살하였다.
현금 130엔과 지갑을 빼앗았다.
마지막 일곱번째 살인은 1946년 8월 6일, 취직 알선을 핑계로 6월 18일 말을 건 17세 여성을 강간 살인한 사건으로, 8월 17일에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 사건은 6월 대화한 피해 여성이 요시오와 주소를 교환한 사실을 8월 4일 그의 자택에 방문한 피해자의 어머니가 알아냈기 때문에, 일곱번째 살인을 마지막으로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