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니키다 돗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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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작품 목록
4. 기타
5. 출처


1. 개요


国木田独歩
1871년 8월 30일 ~ 1908년 6월 23일
쿠니키다 돗포(国木田 独歩)는 일본의 문호이다.

2. 생애


1871년 치바현 초시에서 무사였던 아버지와 여관 하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때 아명은 가메키치. 이후 테츠오로 개명했다.
하지만 돗포가 태어났을 당시 아버지는 이미 가정을 꾸린 사람이었고 1874년에 조모의 사망으로 잠시 가족을 두고 효고현으로 갔다가, 초시에 있던 돗포와 돗포의 어머니를 불러 함께 생활하였다. 이후 1876년에 본처와 이혼하고 돗포의 어머니를 본처로 삼았으나 돗포는 13세때 적자로 올라가기 전까진 호적 상엔 양자로 올라가 있었다.
그러다 부친이 행정관의 관료가 되어 야마구치 현으로 이주했으며 그곳에서 근무지 이동에 따라 지방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85년에 야마구치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학제 개혁으로 중퇴하였고 도쿄로 상경해 법관 학교를 다니던 중, 1889년에 도쿄전문학교[1]에 영어보통학과에 입학했다. 1년 뒤 1890년에 영어정치학과로 전과. 하지만 1891년에 학교를 중퇴하고 야마구치 현으로 내려와 사숙을 하며 영어 및 작문, 수학을 가르쳤다. 1년 뒤 일가가 야나이로 이주하는 바람에 사숙은 폐쇄됐다. 익년에 돗포는 자유사에 입사했으나 2개월만에 그만둬야했다. 그후 오이타 현의 사이키의 쓰루야 학관에서 교사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1894년엔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종군기자로 참전하여 기사를 냈고, 1년 후 일본으로 귀국한 후 종군기자 만찬회에 들렸다가 만난 여성인 사사키 노부코에게 호감을 품게 된다. 둘은 주변의 반대를 부릅쓰고 결혼하였으나 가난한 생활을 못 견디던 노부코의 가출로 반년 만에 이혼했다. 그러나 돗포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는데 바로 1897년에 노부코는 돗포의 딸을 낳았고 그 딸은 다른 집에 입양됐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걸 전혀 몰랐다가 그 일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1897년부터 '겐 노인'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1898년에 무사시노를 발표하였고 이듬해 8월 1년간 교제하던 에노모토 하루코와 결혼하였다. 하지만 집필로는 돈을 벌수 없었기에 호치신문사에 입사했다. 그런 와중에도 틈틈히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 '죽음', '두 소녀', '사슴사냥', '강 안개'등의 단편 소설들을 발표했다.
1901년, 민세이신문사에 편집장으로 입사하고 단편집 무사시노를 간행했으나 주목은 받지 못했다. 게다가 하필 신문사주였던 정치인이 피살되는 바람에 담당하던 신문이 폐간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
신문이 폐간한 뒤에 1902년 처가에 아이와 아내를 맡겨놓은 채 가마쿠라에 홀로 칩거하며 집필에 집중하였는데, 이 시기에 돗포는 '순사', '도미오카 선생', '그림의 슬픔', '소년의 비애', '가마쿠라 부인, '주중일기'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2월에 도쿄로 다시 올라와 동양화보에 창간 편집을 하고나서 뒤를 이어, 돗포사를 설립했는데 돗포사는 1906년 파산하고 만다.
게다가 또다른 불행이 찾아왔는데 1906년에 폐결핵 징후가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1908년, 병의 악화로 병원에 입원했으나 바로 그 해 6월 23일에 37살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3. 작품 목록


  • 겐 노인(1897)
  • 무사시노(1898)
  • 잊을 수 없는 사람들(1898)
  • 교외, 소춘, 두고 온 선물(1900)
  • 쇠고기와 감자(1901)
  • 가마쿠라 부인(1902)
  • 운명론자, 여난(1903)
  • 봄새(1904)
  • 궁사(1907)
  • 폭풍- 유일한 장편 소설이자 미완성 유고작.

4. 기타


  • 전처인 사사키 노부코는 쿠니키다 돗포와 이혼한 뒤에도 여러 스캔들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그 중 유명한 사건이 하나 있는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약혼자를 만나러 갔다가 배의 사무장과 염문을 일으켜 미국으로 가지 않고 그대로 귀국하였던 사건이었다. 당시 약혼자의 친구였던 소설가 아리시마 타케오는 사사키 노부코를 모티브 삼아 '어떤 여자'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쿠니키다 본인도 그녀와의 일을 소재로 쓴 자전적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그 작품이 바로 <가마쿠라 부인>이다.
  • 한국의 근대 소설가들에게도 평가가 좋은 일본 작가였다. 소설가 이광수는 돗포의 작품만은 늘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 바 있었고, 소파 방정환 역시 개벽에 실린 수필에서 돗포의 작품을 애독했다고 적었다. 시인 김억은 쿠니키다를 보고 '우리 문단에 영향을 많이 준 작가'라고 말했고 최서해 역시 단편집을 즐겨보며 문체를 좋아한다고 했을 정도.

5. 출처




[1] 현재의 와세다대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