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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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정치인으로, 독일연방공화국의 제10대 대통령을 지냈다.
2. 생애
2.1. 대통령이 되기까지
니더작센 주 오스나브뤼크에서 태어나 부모의 이혼으로 홀로 병든 어머니와 여동생들을 돌보았다. 김나지움 재학 중 청소년 조직 JU에서 활동하였고, 1975년 기독교 민주연합에 입당했다. 이 당의 청소년조직 SU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고, 1986년부터 2001년까지 오스나브뤼크 시의원에 재임했다. 1994년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했었고, 2003년 재도전하여 당선되었다.
2.2. 대통령 재임
2010년 6월 30일 대통령 보궐선거[1][2] 에서 요아힘 가우크와 대결 끝에 제 1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당일로 취임하였다.
하지만 2011년 말부터 니더작센 주지사 시절 2008년 주택 구입을 위해 사업가인 지인으로부터 시중금리보다 현저히 낮은 4% 조건으로 50만 유로의 부도덕한 사채를 쓴 의혹과 같은 해 가을 아내와 함께 옥토버페스트를 보려고 뮌헨에 갔을 때 영화제작사 대표인 데이비드 그뢰네볼트로부터 720 유로(한화 105만원)의 호텔 숙박비를 지원받은 정황 및 불프가 이후 엔지니어링 기업인 지멘스로 하여금 그뢰네볼트의 영화 제작을 지원하도록 로비를 정황이 부정 청탁이 아닌가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결국 2012년 2월 17일 사임했는데 전날 하노버 지방검찰청이 면책특권 폐지신청을 연방하원에 요청한 것이 타격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공천해 준 기독교민주연합이나 메르켈 총리도 그다지 쉴드쳐주진 않았다.
2.3. 사임 이후
검찰은 본래 해당 혐의에 대해 2만 유로 상당의 약식명령을 청구할 생각이었으나, 불프는 공판을 통해 무죄를 판가름하자는 입장을 고수했고 2014년 2월 27일 하노버 지방법원은 불프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후 변호사 생활을 함과 동시에 사회 원로로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참고로 그는 후임인 요아힘 가우크(1940~)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1956~) 보다도 나이가 어리다.
[1] 이라크 전쟁 파병문제에 관련하여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이 행한 발언이 논란을 빚자 자진 사임하였고, 옌스 뵈언젠 상원의장이 임시로 권한 대행을 맡고 있었다[2]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직선제를 실시한 것과 달리 현 독일은 연방 의원과 각 주에서 선출한 선거인단만 투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