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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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artu
에스토니아어 남부 방언: Tarto
에스토니아 동부의 도시. 인구는 96,763명으로(2017년 통계) 에스토니아에서 수도 탈린에 이어 두번째로 큰 도시이며, 에스토니아인이 인구의 80%를 차지한다. 중세 축제인 한자 페스티벌이 유명하며, 탈린에서 버스로 약 두 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에스토니아 대법원과 교육부, 국립박물관이 소재하는 도시다.
타르투 대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도시이며 타르투 시는 이 대학과 떨어뜨려 설명할 수 없다.
2. 역사
1030년 경부터 기록된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도시이다. 키예프 루스, 노브고로드 공국, 루스 차르국,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 스웨덴 제국, 러시아 제국 등 동북 유럽의 열강들의 지배를 받았는데, 특히 17세기에는 폴란드(22년)와 스웨덴(73년), 러시아(5년) 간의 각축장이었다. 독일, 스웨덴, 폴란드는 여기를 도르팟(Dorpat)으로, 러시아는 유리예프(Юрьев)라고 불렀다. 에스토니아 독립 후 타르투가 공식 명칭이 되었으며, 소련 시절 타르투 공군기지 때문에 외국인 출입이 통제된 비밀도시로 있었다.
2.1. 타르투 대학
스웨덴 지배 시기인 '''1632년''', 30년 전쟁 당시 폴란드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설립한 타르투 대학교는 발트 3국을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교육 기관이다. 타르투 대학교에 이를 기념하는 동상이 많다. 에스토니아에 탈린 대학교와 탈린 기술대학교가 있긴 하지만 이들 대학교는 1918년 에스토니아 독립과 함께 설립되어서 타르투 대학에는 한끗발 밀린다. 러시아 제국 치하에서는 유리예프 대학교로 불리며 러시아화가 이루어졌으나, 에스토니아 독립 이후 러시아인 교수진 등은 보로네시로 대피하여 보로네시 대학교의 모태가 된다.
타르투 인구 10만 명 중에 2만여 명이(학생 1만 6천 명, 교직원 2천 명, 기타 관계자 2천여 명) 대학에 연관되어 있다. 중앙 광장에 키스하는 연인상이 유명하며, 매년 이 동상과 가장 비슷하게 키스하는 연인을 선발하는 콘테스트가 열린다. 이런 분위기 덕분인지 학생들, 시민들의 마인드는 꽤나 개방적인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