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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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 구시가지
에스토니아어: Tallinn
러시아어: Kолывань
독일어: Re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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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발트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의 수도. 옛 이름은 레발. 레발이란 이름은 에스토니아 북부의 레발라 지방(현재의 하르유 주 북쪽)에서 따 온 이름이다. 탈린이란 이름은 에스토니아어로 덴마크(Taani)의 도시(Linn)라는 뜻이라고 한다. 스탈린과는 전혀 상관 없다.
사실 이 도시는 20세기 이전까지는 레발이라고 하였다. 독일어이지만 러시아인들도 그렇게 불렀다. 1918년 에스토니아가 1차 독립을 하자 서둘러 이름을 붙인다는 게 그만 탈린이 되어버렸다. 자기 나라 수도의 이름이 타민족의 도시라는 황당한 결과가 나왔지만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사는 듯하다.
2. 역사
1219년 덴마크 왕 발데마르 2세가 에스토니아인들이 세운 성채에 성을 세우면서 도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덴마크 국기인 단네브로의 유래가 덴마크의 에스토니아 원정 도중 흰 십자가 그려진 붉은 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승리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 전설의 배경이 탈린이라고 전해진다. 덴마크령 에스토니아 공국의 수도였으며 13세기에는 한자동맹의 중심지로써 융성하였다. 1346년 덴마크 왕이 튜튼기사단에 도시를 팔았고, 1561년에는 스웨덴에 속했다.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과의 전쟁으로 이 도시를 점령한 후, 발트함대의 근거지가 되었다.
1939년의 탈린 모습
적백내전 이후 에스토니아가 독립하면서 수도가 되었지만 2차대전 이후 소련에 점령되었고 소련의 해군 기지가 이 도시에 위치했다. 그나마 구시가지는 보존이 잘되어있었고, 발트해에 인접해있다는 점때문에 손꼽히는 관광도시였기도 했다. 핀란드TV를 접할수 있었기 때문에 인디문화에서도 중요했었기도 했고, 1991년 에스토니아가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수도로서 역할을 계속해오고 있다.
3.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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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은 (위 지도의 1번부터 순서대로) 하베르스티, 케스클린, 크리스티네, 라스나매에, 무스타매에, 넘메, 피리타, 그리고 북 탈린의 8개 구로 구성되어 있다. 가운데의 케스클린 구에 구시가지와 시내 중심부, 여객선이 도착하는 항구가 모두 들어간다.
탈린 구시가지는 고풍스런 분위기의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해 관광객이 많이 오며 구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다만, 구시가지 지역은 규모가 작은 편으로 인구도 4,000명이 채 안된다. 구시가 지역은 크게 서쪽의 톰페아 언덕과 동쪽의 저지대로 나눌 수 있는데,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성당과 톰 교회, 에스토니아 국회(톰페아 성)가 톰페아 언덕에 위치해 있고 동쪽 저지대에는 라에코야 광장과 올레비스테 교회가 위치해 있다. 그리고 현존하는 약국 중에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 이곳에 있다. 이 약국은 1422년에 개업했다.
구시가지의 동남쪽으로는 신시가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동북쪽으로는 항구가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외곽 지대로 나가면 삭막한(…) 아파트 단지들이 있다. 라스나매에, 무스타매에, 배이케-어이스매에 등지가 대표적이다. 구글 스트리트뷰 등으로 이 동네를 찾아보면 삭막한 풍경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이런 단지들은 보통 1960-80년대 소련에 의해 개발되었다. 1960년대에 무스타매에가, 1970년대에 배이케-어이스마에와 라스나매에가 개발되었고 소련 시절 에스토니아로 이주해 온 러시아인들이 이런 아파트 단지에 모여살면서 이런 지역은 러시아인이 인구의 주류가 되었다. 이런 연유로 이런 아파트 단지는 에스토니아의 강제적인 러시아화의 상징처럼 느껴지게 되었고,[4] 노래 혁명[5] 당시 이보 린나의 Mingem üles mägedele(모두 산으로 올라가)[6] 라는 노래 가사 중간에 나오는 "라스나매에는 그만!(peatage lasnamäe!)"이 슬로건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1980년대만 해도 러시아인이 에스토니아인보다 많았고, 지금도 탈린은 러시아인이 많이 사는 곳으로 인구의 40%가 러시아인인데 라스나매에 같은 지역은 여전히 러시아인이 에스토니아인보다 많다. 러시아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탈린시내에서는 러시아어와 에스토니아어가 함께 쓰이고 있고 러시아어와 에스토니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소수의 고려인들도 여기에 정착해 한국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물론 소련 시절에 탈린에 정착한 사람들이라 러시아어를 하고 에스토니아어는 못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에스토니아는 독립 이후 에스토니아어를 못 하면 시민권을 주지 않아 고려인들이 고생을 겪은 바 있다. 2019년에는 고려인 혼혈인 미하일 컬바르트(Mihhail Kõlvart)가 탈린 시장이 되기도 하였다.
2011년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됐다. 이 즈음 구시가지 정비를 대대적으로 실시했고, 지정 이전 구시가지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구 소련 시절의 흔적들은 많이 사라진 상태. 우리네 시골 전방 같은 구 소련 스타일의 슈퍼마켓이 몇몇 있었으나, 죄다 기념품 가게 혹은 에스토니아 대표 유통기업인 Rimi의 SSM으로 교체됐다.
4. 지리
핀란드 헬싱키와 발트해를 두고 무척 가깝다. 쾌속선으로 약 2시간 정도면 닿는 거리. 그래서 헬싱키 사람들은 주말에 돈 좀 아껴보려고 탈린에 와서 음주나 외식을 즐기기도 한다. 실제로도 탈린 항에는 여러 면세 주류점이 있다. 가격은 2017년 3월 현재 헬싱키 기준 2/3 정도의 가격. 과거 에스토니아가 자체 통화인 에스토니아 크론을 쓰던 시절에 비해, 유로화를 사용하면서부터 물가 차이가 좁혀지기는 했다.
워낙 거리가 가깝고 교류가 많기 때문에 탈린과 헬싱키를 잇는 해저터널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2030년 개통을 목표로 추진되는 이 해저 터널은 전체 길이는 100km, 해저 구간은 50km에 달하는 철도 전용 터널로 건설이 추진된다. 상세 정보
기후는 꽤 추운 편이다.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5도로 철원군과 비슷한 수준으로 가끔 영하 30도까지 내려가고, 눈도 꽤 온다. 위도를 감안했을 때 엄청나게 따뜻하다. 북위 59º 30'이다.
5. 기타
라이트 노벨 <트리니티 블러드>에서 알폰소 데스테의 노이에 바티칸과 로젠크로이츠 올덴에 관련된 사건의 무대가 되어 소개된 적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알음알음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숨겨진 관광 명소로 소개되고 있기에 탈린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주로 인근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헬싱키를 함께 여행하는 코스가 대중적이다. 특히 헬싱키와 선박으로 오갈 수 있으니 더욱 그렇다. 고풍스러운 탈린 구시가지에 호평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올림픽 분산개최 도시이기도 하다. 옛 소련 시절에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의 요트 종목이 탈린에서 열렸다.
주거민 입장에서 택시를 제외한 버스와 트롤러버스, 트램 등 대중교통을 공짜로 이용해 볼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소련 시절에도 버스나 트램, 지하철을 내려면 5코페이카짜리 동전 하나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요금을 내야 했는데 '''소련 시절에도 시행되지 않던 교통 무상화 정책이 시행된 셈이다'''. 2000년대 이후로 자가용이 많이 늘어나다 보니까 교통체증이 극심해지면서 2013년에 도입되었다. 예산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반대도 많았지만 막상 시행해 보니까 의외로 성공적이라는 반응. 외국인이라도 탈린에 주거등록이 되어 있거나 유학생이라면 공짜로 이용 가능하다. 하지만 외지인들이나 관광객들은 공짜 이용이 불가능하고 따로 승차표를 구입해야 되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는 논외의 일이다.
소녀전선에서는 2019년 여름 대형 이벤트 연쇄분열의 주 무대로 등장했다. 에스토니아의 전 국토가 온 세계를 지옥으로 만든 붕괴 입자에 의해 오염이 되었고 탈린도 예외는 아닌지라 버려진 지 10년이 넘은 유령도시가 되었으며, 한 때 교통의 요지였던 곳이라 탈린을 지나는 철도 너머에 중요한 기밀을 숨긴 소련 시절 잠수함 기지가 위치해서 어떻게든 지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허나 오랫동안 버려졌음에도 붕괴 입자의 농도가 의외로 낮은데다 방어시설도 어째서인지 제대로 정비되어 있어 그리폰을 의아하게 만든다. 여기에 정규군 특수작전사령부도 그리폰을 노리고 뒤쫒아와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Alan Walker의 Faded의 뮤직비디오가 촬영된 도시이기도 하다.
[1] 2008년 부분수정[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사실 에스토니아뿐 아니라 반러 감정을 가진 구 공산권 국가들은 이러한 아파트 자체를 매우 혐오해서 민주화 이후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어났다고 한다. 체코 애니메이션인 패트와 매트의 배경도 공산정권 시절에는 아파트였지만 민주화 이후에 나온 에피소드부터는 서방식 단독주택가로 바뀌게 된다.[5] 에스토니아/역사 항목의 "현대" 문단 참조.[6] 해당 링크는 2013년 노래 혁명 25주년 공연에서 에릭 메레마가 부른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