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라(9세기)
동로마 제국의 황후. 남편인 테오필로스 황제가 죽은 후 842년부터 855년까지 아들 미하일 3세를 섭정하였다.
대단한 미녀였다고 한다. 남편 테오필로스가 십대일 때 단독 황제가 되어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신부 간택을 위해 전국에서 후보를 불러모았는데, 시어머니인 유프로시니의 맘에 들어 간택되었다. 금슬도 괜찮았는지 7남매를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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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파괴종식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이콘. 성 테오도라 황후. 19세기 그리스.
남편인 황제는 물론 총대주교까지 성상 파괴론자였음에도 섭정이 되자 정치력을 발휘하여 성상 파괴령을 종식시켰다(843년). 그러나 이로 인해 성상 파괴파인 파울리키아파를 박해하게 되었고, 박해를 피해 도망친 이들이 동방의 이슬람 제국으로 넘어가면서 동부 전선의 긴장이 높아지는 결과도 초래하였다.
아들 미하일 3세가 성년이 되자 며느리감을 짝지어 주었으나 미하일 3세는 어머니가 택한 신부를 맘에 안 들어했으며[1] 점차 어머니의 영향력을 벗어나려 하였다. 결국 858년 황제는 손위 외삼촌[2] 바르다스와 손잡고 일종의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테오도라를 실각시켰다. 물론 조용히 물러날 테오도라가 아니어서 원로원에게 국가 재정 상황을 낱낱히 까발리는 뒤끝을 작렬해주셨다.
사후 테오도라의 유해는 코르푸에 안치되었는데, 4차 십자군으로 콘스탄티노플 시내의 영묘들이 모두 파괴됨으로써, 몇 안 되게 시신을 제대로 찾을 수 있는 황제 및 황후 중 하나에 속한다.